세상과 삶/세계읽기

버락 오바마의 어머니가 세계를 보는 눈을 키워준 날개(wing) 역할, 외할머니는 뿌리(root)를 심어준 사람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1. 7. 09:42

 

오바마, 그냥 버릴 옷까지 기워 입어”

 

 

2008년 11월 7일(금) 2:16 [중앙일보]


[중앙일보 박춘호] “오바마가 4일 밤(현지시간)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당선 수락 연설을 할 때 입었던 짙은 남색 정장은 그날 아침에 내가 세탁해 준 옷이에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살고 있는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 51가 인근 하이드파크에서 ‘골든터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인 세라 강(여·사진)씨는 5일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 캠프 관계자가 4일 오전 급하게 양복을 맡기면서 ‘빨리 세탁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둘러 세탁했더니 그날 오후 2시에 찾아갔다”는 것이다.

또 “당선 수락 연설 장면을 보니까 내가 세탁한 옷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동네가 온통 잔치 분위기”라며 “단골손님이 대통령이 됐으니 기분이 좋다. 오바마의 포스터와 티셔츠를 업소 안에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뒀는데 당선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세탁소는 30여 년간 다른 한인이 운영하다 지난해 강씨가 인수했다. 강씨는 “전 주인으로부터 ‘오바마가 1992년 아내 미셸과 결혼한 뒤부터 우리 세탁소를 이용한 단골손님’이란 이야기를 들었다”며 “오바마는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도 일주일에 두 차례씩 세탁물을 맡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바마의 사진과 그가 지불했던 영수증을 보여 줬다. 미셸의 부모들도 강씨 세탁소의 단골이다.

그는 “오바마는 매우 검소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오바마가 지금까지 맡긴 옷들은 고가 명품이 아니었고, 오래된 옷도 수선해 계속 입었다”는 것이다.

강씨는 “지난겨울에는 오바마가 속이 해진 코트를 맡겨 고쳐 준 적도 있다”며 “웬만한 집에선 그냥 버릴 옷까지 기워 입는 걸 보고 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대선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동네 잡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십 달러짜리 셔츠도 많이 맡겼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2004년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기 전까지는 매주 토요일에 직접 세탁물을 맡겼다고 한다. 오바마는 지난해 대통령 출마 선언 직후 한 인터뷰에서 “이발소와 세탁소는 예전부터 자주 찾던 동네 업소를 이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강씨의 고객 중엔 시카고대 교수와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이 많다고 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제시 잭슨 목사의 아들딸도 단골 명단에 포함돼 있다.

시카고지사=박춘호 기자

 

 

 

 

 

대통령 오바마 만든 ‘여인 3대’

2008년 11월 7일(금) 2:04 [중앙일보]


[중앙일보 최지영]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백인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면서 좌절과 방황을 거듭했던 버락 오바마. 그가 정신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 정치적 대성공을 거두기까지는 강인한 여성 세 명과 교육의 힘이 있었다.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은 싱글맘으로 오바마를 키워내며 세상을 보는 눈을 물려줬다. 외할머니 메들린 페인 던햄은 딸이 인도네시아로 떠나자 열 살인 외손자를 떠맡아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이 두 여성의 교육방식은 오바마에게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표현 능력을 길러줬다. 그리고 오바마가 선택한 부인 미셸(44)은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로서 흑인 사회와의 고리를 제공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어머니=어머니 던햄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18세 나이에 하와이대에서 유학하던 케냐 출신 흑인의 아이 오바마를 낳고 그와 결혼했다. 오바마가 두 살 때 이혼한 후엔 인도네시아 남성과 두 번째 결혼한 뒤 오바마를 데리고 인도네시아로 갔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 함께 사는 아들이 영어를 잊을까 걱정돼 일하러 나가기 전인 새벽 4시에 아들을 깨워 영어를 가르쳤다. 또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 등 다양한 책들을 읽도록 권했다. 머핼리아 잭슨(흑백차별 철폐운동을 펼친 흑인 가수)의 음반을 사와 자녀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던햄은 그 자신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왕성한 탐구욕의 소유자였다. 박사 학위를 받은 저명한 인류학자이며, 인도네시아어·자바어·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아프리카·남아시아를 돌며 연구했고, 빈민들을 위한 소액자금 대출 봉사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오바마는 “어머니는 내가 약한 자들을 괴롭히거나 그런 모습을 보고 못 본 체할 때 가장 화를 냈다”고 종종 회고한다.

◆바위 같은 버팀목 외할머니=“버락 오바마의 어머니가 그에게 세계를 보는 눈을 키워준 날개(wing) 역할을 했다면, 외할머니는 바위 같은 안정감과 미국인으로서의 뿌리(root)를 심어준 사람이다.”(시카고 트리뷴)


외손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날 눈을 감은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85)이 없었다면 오바마는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딸이 혼혈아를 낳자 매들린은 외손자의 양육을 위해 하와이은행에서 비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입고 쓸 돈을 아껴가며 오바마를 하와이 명문 사립학교 푸나후 스쿨에 보냈다. 오바마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로스앤젤레스(LA) 옥시덴털대에 입학한 79년까지 외조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똑똑한 현실주의자인 아내=오바마는 종종 “모르는 것을 아내에게 물어본다”고 말한다. 미셸은 오바마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 중 하나다. 미셸은 시카고의 전통 흑인 거주지역 사우스사이드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흑인 사회에 뿌리가 없는 오바마에게 흑인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제공했다. 오바마 당선을 기뻐하며 승리 축하모임에서 눈물을 흘렸던 흑인 지도자 제시 잭슨 목사는 미셸 집안과 오랫동안 아는 사이다. 그의 딸은 오바마 부부의 결혼식 때 축가를 부른 미셸의 어릴 적 단짝 친구다. 미셸은 참모들에게 당선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해 꼼꼼히 살펴본 뒤에야 남편의 대선 출마를 허락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꼼꼼한 면도 갖추고 있다.

◆독서와 비판적 사고의 힘=오바마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 얼음과 같은 성격’(시사주간 타임),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 적재적소에 사람을 고용하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들은 모두 다양한 독서와 비판적 사고를 키워준 교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가 다닌 하와이의 명문 푸나후 사립학교는 다른 미국의 명문 사립과 마찬가지로 소수 정예의 학생들에게 토론식 수업을 하는 곳이다. 이때 형성된 비판적 사고 능력은 후에 그의 지적 능력의 기초가 됐다.

오바마와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 마야 소에토로 응(38)은 “오빠는 어릴 때 언제나 책을 끼고 살았고 나에게도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미국 이후의 세계』를 읽고 있는 모습이 기자들의 눈에 띄기도 했다.

폭넓은 독서는 오바마의 문학적 재능에 밑바탕을 제공했다. LA의 옥시덴털대에 다닐 때는 학생 문집에 시를 발표했다. 하버드대 법대에서는 흑인 최초의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을 지냈다. 33세 때인 1995년 펴낸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과 2006년에 출판한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 역시 30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오바마의 연설 능력도 이런 독서와 비판적 사고가 바탕이 됐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연설문을 대부분 직접 쓴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를 화려하게 ‘정치 무대의 록스타’로 만든 기조연설 역시 오바마가 직접 작성했다. 로이터 통신은 “당시 일리노이주 주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짬짬이 화장실에서 메모를 적는 등 시간을 내 원고를 썼다”고 전했다.

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