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8, 월
매듭짓기
드디어 인도에서의 마지막날을 맞이한다.
아침부터 이 땅 이 나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인해
중보의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호수가를 거닐면서 이 땅을 위해 기도한다.
이 땅의 황무함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한다.
그동안 우린 너무 움추렸는지도 모른다.
다시 이곳으로 온다면 나는 소극적인 영적전쟁이나 땅밟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적극적인 선교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생각하는 시간못지않게 체험 삶의 현장으로 청년들을 인도할 것이다.
몸을 사리기보다는 몸을 던져야 깨달음은 오는 것이다.
육신의 편안함을 버리고 온 몸과 맘을 던지면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맛볼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우리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의 한계로 설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멤돌곤 한다.
또한 그 반대의 길을 걷곤 한다.
자신의 인간적인 열심을 하나님의 열심으로 포장하며
몰상식한 방법의 길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초월적인 것이 몰상식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이면서도 초이성적인 것이 초월적인 것에 대한 해석에 가깝지
초월적인 것을 몰상식한 면으로 해석하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모든 영적 균형잡기는 역사의식과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이 아닌가 한다.
내가 인도를 다시 온다면 최대한 간소한 차림으로 올 것이다.
최대한 짐을 버리고 주님께 길을 묻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것이다.
이사할 때마다 종종 느끼는 것인데
우리는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쌓아두고 그것들을 붙들고 살아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별 가치와 의미가 없는데도
버리기가 아까워 챙겨두지만 이사하다보면
정말 산더미같은 쓰레기들이 나온다.
버릴 것은 버리며 살아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삶이 복잡하니까
행복을 느끼는 마음도 복잡해지고 둔해지는건 아닐까한다.
나는 인도 편자브를 입는다.
가볍다.
내 마음도 새롭게 입고 싶다.
생각과 마음은 언제나 내 안에서 투쟁을 한다.
생각은 마음에게 정언적 명령을 한다.
그러나 마음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목회자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생각에 구예받지 않고
마음이 요구하는 길들을 더 많이 걸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역자의 길을 걷기에 때론 혼돈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중요한 것은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삶의 모든 길목에서 지켜야 하는 기준을 망각하진 않을 것이다.
사역자의 길이 결국은 짐을 버리고 길을 묻는 과정의 연속이 아닌가 한다.
참 난해한 말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
아가페 미션 스쿨에 방문하여 나는 몇가지 도전과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2평 정도의 공간에 30여명 가까이 수업을 하는데 콩나물 시루와 같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가면서
어미닭이 새끼를 품은것같이 인도하고 있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엄마처럼 달래면서 수업을 하는 모습에서
나는 성직의 길을 보았다.
바로 저 모습이 성직의 모습이다.
누구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하듯 하는 이에게는
성직자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은 성직이 된다.
사람을 대할 때나 일을 할때나 하나님께 하듯이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면 삶은 감칠맛이 난다.
인생의 요리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양념이 있을 때
맛깔스러운 뭔가가 나온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찬양과 율동과 드라마와 메세지를 나누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귀엽기만 하다.
도중에 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비를 맞아 가면서 열심히 보고 듣고 따라한다.
너무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기특한 마음이 들어서
내내 우산을 펴서 받쳐 주었다.
종종 동네 아이들이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 아이들은 돈을 내고 와야하는 이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이다.
나는 내게 있는 사탕을 모두 털어서 최후의 하나까지도
아이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에 돈이 없어 학교도 못오는 아이들의
마음의 서러움이 내 마음에 그대로 전이되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빛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텅빈 주머니를 털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파
다른 지체들의 사탕까지 모두 모아서
한 명이라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아이들이 없도록
일일이 하나씩이라도 챙겨주었다.
마음으로 그들을 축복하면서 사탕 하나에 내 마음을 담아 전해 주었다.
공연후에 선생님들이 머무는 공간에 갔다.
"Freedom from Caste!" 란 글귀가 붉고 크게 씌여져 있다.
간디에 의해 법적인 자유가 인도인들에게 주어졌다면
이제는 누군가에 의해 카스트가 무너지는
실제적인 자유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그 일을 지구 한 모퉁이에서 선생님들이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분들의 월급은 우리 나라돈으로 한달에 5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과 눈빛이 살아 있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키는 시대의 양심이자 파수꾼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은 평생 마음과 정신을 지키는 이름이다.
인도식 도시락
선생님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학교를 쭉 둘러 보았다.
우리나라의 아주 초라하고 낡은 창고같은 곳이다.
공간은 1층에 4개와 2층에 3개가 전부이다.
운동장겸 마당은 4평정도 될듯하다.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내가 어릴적보다 더 낙후된 공간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행복하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만큼은 정말 부럽다.
선생님의 아이들을 대하는 눈길과 손길에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이곳에서 나와 국배형제는 반별로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 사진을 일일이 줄 수 없기에 한장은 선생님께 선물하고
또 한장은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붙여두도록 선물을 하였다.
즉석 사진은 어디에서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점심은 인도식으로 현지 도시락을 먹었다.
밥, 감자, 소고기등이 주로 있었는데 나에게는 향료탓인지
약간 입맛이 맞지를 않았다.
배탈이 날까봐 조금만 먹고 말았다.
미안했다.
그분들에게는 최고급 도시락인데 우리는 먹는둥 마는둥하고 버렸으니
아마 기분이 언짢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목마르다고 물을 주셨지만 이곳 물은 석회질이 많아
배탈이 나기싶다는 말에
몸상태가 피로에 찌들어 좋치않았기에 또 먹지 않고 몰래 버렸다.
정말 미안했다.
은정이와 일부 지체들은 아주 맛있게 물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그들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정말 훌륭한 자세다.
선생님들의 섬김에 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탈이날까봐서 밥과 물을 버렸지만
마음만큼은 100% 받았다는 것을 그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죽음의 집
오후에는 마더테레사가 섬겼던 죽음의 집을 방문 하였다.
운전사가 어떻게나 속썩이는지 한데 쥐어박아주고 싶었지만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지고나니
모험을 즐기려는 마음도 생겼다.
"짜슥 제대로 좀 해보자."
이런말이 나올 정도로 자꾸 제 맘대로 동료듥과 떨어져서 운전을 한다.
나름대로 지름길로 간다고 애쓰는 모양인데 늘 헤메기 일수이다.
이번에는 염려와는 달리 그래도 잘 찾았다.
죽음의 집 주변은 온통 정신이 없다.
죽음의 집에 들어서자 남자와 여자가 따로 구분되어 있고
한가운데는 목욕탕이 있다.
여기저기서 섬기려는 봉사자들의 섬김이 한창이다.
한쪽 모퉁이에는 관을 짜는 곳과 세탁을 하는 곳이 있다.
우리가 방문하자 집안에 있던 노인들과 환자들이 앉기도하고
우리를 향해 뭔가를 말하려 하는것도 같다.
공중으로 손을 휘젓지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
죽음의 집은 거리의 행려자들이 들어오는데
보통 1-3개월을 이곳에서 살다가
죽음 너머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은 너무나 메마른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아 있다.
대충 짐작하여 20킬로도 나가지 않아 보이는 분들도 제법 많았다.
그들은 얇은 옷 하나에 지친 육신을 기대고 있다.
1미터 간격으로 쭉 누워있는 그분들 가운데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는 사람은 지극히 찾아보기가 힘든 곳이라고 한다.
그들중 몇몇은 카드 놀이를 하고 있다.
그나마 상태가 제일 좋아보이지만 그들도 불치병자들이라고 한다.
휑한 눈으로 공중을 가만히 응시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 좁디 좁은 공간안에서 백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옆에서 앞뒤에서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마음에는 휑하니 구멍이 뚫린다.
온통 신음소리와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일생을 죽음의 집을 섬기다 가신 마더테레사 수녀가 참 존경스럽다.
그리고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로 구성된 봉사자들을 칭찬하고 싶다.
나는 이런 곳에서 수행하며 삶의 진리를 찾는 이들을 부딪히면서
그들을 참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들었다.
술 담배와 마약과 섹스로 찌든 정신빠진 세대들에 비하면
이들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자신들의 시간과 돈과 정성을 다해서 먼 타국까지 와서
인생의 종착점에서 새로운 길을 떠나는 그들을 지키고 있는
호스피스 사역자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곳에서 영원한 존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나는 기억한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나도 할수만 있거든 무거운 짐을 버리고
끊임없이 믿음의 길, 소망의 길, 사랑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오늘 이곳에서 다시금 짐을 버리고 길을 묻고있는 내 자신을 만난다.
짐을 싸면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간소하게 이곳에 와서 옷도 인도식으로 사서 입었었기에
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빛된 삶을 살라고 하는 의미에서
그들을 줄 초를 수십개 샀다.
지현이가 산 것과 교환해서 정성껏 담았고
인도식의 십자가와 목걸이를 샀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요르단을 갔을때
가장 인상 깊고 의미있는 것은
비싸고 좋은 상품이나 쇼핑물이 아니라
내게 또 선물을 주는 이에게 의미를 전해주는
그 무엇인가를 배웠기에 그런 마음을 담은 선물들로만 샀다.
이제 선물은 돈으로 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선물은 가치이고 의미이다.
그것이 비싸지 않아도 좋다.
단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도박물관에서 산 엽서들과 그동안 여행을 기록한 노트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틈틈히 본 책들을 주섬주섬 주워담는다.
그러다가 샌달이 생각이 났다.
바깥으로 나와서 나와 함께 8년을 함께한 샌달을 쳐다보니
다 닳을대로 닳아 있었다.
그렇치만 나는 그 샌달이 너무 편해서 사람들보기에는
오래된 닳아빠진 샌달이지만
내 발에게는 편안한 친구였기에
수련회나 야외로 갈때마다 신곤 했었다.
심지어는
작년에 이집트와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광야을 갔을때에도
이 신발을 신었었다.
그런데 이 샌달이 밑창까지 다 떨어져서
보기 흉하게 너들거리고 있다.
나와 헤어질 순간이 되었음을 인식하면서 쓰레기통에 넣는데
생명체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우울해진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갑자기 샌들을 보다가 이런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른다.
"네 인생이 무엇이냐?"
사랑하며 축복하며
내 인생 가운데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내 샌달처럼 최후의 순간가지
누군가를 위해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고
좋은 영혼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과 동행하며 삶의 사계절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함께하는 Soul Friends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곁에서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아이는 소년이 되고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장년이 되고 장년은 노년이 된다.
어제의 꼬마들이 이제는 꼬마를 둔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있고
함께 불렀던 정다운 아저씨와 아줌마는
이제는 우리들 곁에서 늙고 쇠약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으로
그리움으로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사랑하며 축복하며 산다는 것 외에
그보다 좋은 삶의 의미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나누며
정겹게 사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도 어디 있겠는가?
인생의 순례길에서 잠시 만난 사람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로 서로를 비교하고 우쭐거리며 교만해 하거나
또는 부끄러워 수치스러워하는것은
영원한 시간 앞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부귀도 명예도 권력도
어찌보면
다 인간 세상의 크고 작은 자기기념비에 불과하다.
그것은 호흡이 끊어지면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의 인생을
그 사람이 타는 차나 그 사람이 사는 집의 크기나
그 사람이 모은 재산에 의해 평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삶은 사랑하며 축복하며 사는 것으로만
영원히 남는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들 수 있다.
저녁 식사후에 떠나기 전에 그동안 함께했던
라쥬와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우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간다.
인도 형제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간다.
우리는 지금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서로 가볍게 포용을 해주며 축복의 말들을 건넨다.
정말 이제 인도를 떠난는 마지막 날이다.
몇 시간 후면 이곳을 떠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인생의 반복되는 여정의 일부일 것이다.
짐을 버리고 다시 길을 묻는다.
나마스테! (당신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안녕!!!)
매듭짓기
드디어 인도에서의 마지막날을 맞이한다.
아침부터 이 땅 이 나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인해
중보의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호수가를 거닐면서 이 땅을 위해 기도한다.
이 땅의 황무함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한다.
그동안 우린 너무 움추렸는지도 모른다.
다시 이곳으로 온다면 나는 소극적인 영적전쟁이나 땅밟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적극적인 선교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생각하는 시간못지않게 체험 삶의 현장으로 청년들을 인도할 것이다.
몸을 사리기보다는 몸을 던져야 깨달음은 오는 것이다.
육신의 편안함을 버리고 온 몸과 맘을 던지면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맛볼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우리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의 한계로 설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멤돌곤 한다.
또한 그 반대의 길을 걷곤 한다.
자신의 인간적인 열심을 하나님의 열심으로 포장하며
몰상식한 방법의 길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초월적인 것이 몰상식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이면서도 초이성적인 것이 초월적인 것에 대한 해석에 가깝지
초월적인 것을 몰상식한 면으로 해석하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모든 영적 균형잡기는 역사의식과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이 아닌가 한다.
내가 인도를 다시 온다면 최대한 간소한 차림으로 올 것이다.
최대한 짐을 버리고 주님께 길을 묻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것이다.
이사할 때마다 종종 느끼는 것인데
우리는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쌓아두고 그것들을 붙들고 살아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별 가치와 의미가 없는데도
버리기가 아까워 챙겨두지만 이사하다보면
정말 산더미같은 쓰레기들이 나온다.
버릴 것은 버리며 살아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삶이 복잡하니까
행복을 느끼는 마음도 복잡해지고 둔해지는건 아닐까한다.
나는 인도 편자브를 입는다.
가볍다.
내 마음도 새롭게 입고 싶다.
생각과 마음은 언제나 내 안에서 투쟁을 한다.
생각은 마음에게 정언적 명령을 한다.
그러나 마음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목회자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생각에 구예받지 않고
마음이 요구하는 길들을 더 많이 걸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역자의 길을 걷기에 때론 혼돈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중요한 것은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삶의 모든 길목에서 지켜야 하는 기준을 망각하진 않을 것이다.
사역자의 길이 결국은 짐을 버리고 길을 묻는 과정의 연속이 아닌가 한다.
참 난해한 말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
아가페 미션 스쿨에 방문하여 나는 몇가지 도전과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2평 정도의 공간에 30여명 가까이 수업을 하는데 콩나물 시루와 같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가면서
어미닭이 새끼를 품은것같이 인도하고 있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엄마처럼 달래면서 수업을 하는 모습에서
나는 성직의 길을 보았다.
바로 저 모습이 성직의 모습이다.
누구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하듯 하는 이에게는
성직자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은 성직이 된다.
사람을 대할 때나 일을 할때나 하나님께 하듯이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면 삶은 감칠맛이 난다.
인생의 요리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양념이 있을 때
맛깔스러운 뭔가가 나온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찬양과 율동과 드라마와 메세지를 나누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귀엽기만 하다.
도중에 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비를 맞아 가면서 열심히 보고 듣고 따라한다.
너무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기특한 마음이 들어서
내내 우산을 펴서 받쳐 주었다.
종종 동네 아이들이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 아이들은 돈을 내고 와야하는 이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이다.
나는 내게 있는 사탕을 모두 털어서 최후의 하나까지도
아이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에 돈이 없어 학교도 못오는 아이들의
마음의 서러움이 내 마음에 그대로 전이되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빛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텅빈 주머니를 털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파
다른 지체들의 사탕까지 모두 모아서
한 명이라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아이들이 없도록
일일이 하나씩이라도 챙겨주었다.
마음으로 그들을 축복하면서 사탕 하나에 내 마음을 담아 전해 주었다.
공연후에 선생님들이 머무는 공간에 갔다.
"Freedom from Caste!" 란 글귀가 붉고 크게 씌여져 있다.
간디에 의해 법적인 자유가 인도인들에게 주어졌다면
이제는 누군가에 의해 카스트가 무너지는
실제적인 자유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그 일을 지구 한 모퉁이에서 선생님들이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분들의 월급은 우리 나라돈으로 한달에 5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과 눈빛이 살아 있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키는 시대의 양심이자 파수꾼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은 평생 마음과 정신을 지키는 이름이다.
인도식 도시락
선생님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학교를 쭉 둘러 보았다.
우리나라의 아주 초라하고 낡은 창고같은 곳이다.
공간은 1층에 4개와 2층에 3개가 전부이다.
운동장겸 마당은 4평정도 될듯하다.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내가 어릴적보다 더 낙후된 공간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행복하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만큼은 정말 부럽다.
선생님의 아이들을 대하는 눈길과 손길에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이곳에서 나와 국배형제는 반별로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 사진을 일일이 줄 수 없기에 한장은 선생님께 선물하고
또 한장은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붙여두도록 선물을 하였다.
즉석 사진은 어디에서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점심은 인도식으로 현지 도시락을 먹었다.
밥, 감자, 소고기등이 주로 있었는데 나에게는 향료탓인지
약간 입맛이 맞지를 않았다.
배탈이 날까봐 조금만 먹고 말았다.
미안했다.
그분들에게는 최고급 도시락인데 우리는 먹는둥 마는둥하고 버렸으니
아마 기분이 언짢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목마르다고 물을 주셨지만 이곳 물은 석회질이 많아
배탈이 나기싶다는 말에
몸상태가 피로에 찌들어 좋치않았기에 또 먹지 않고 몰래 버렸다.
정말 미안했다.
은정이와 일부 지체들은 아주 맛있게 물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그들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정말 훌륭한 자세다.
선생님들의 섬김에 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탈이날까봐서 밥과 물을 버렸지만
마음만큼은 100% 받았다는 것을 그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죽음의 집
오후에는 마더테레사가 섬겼던 죽음의 집을 방문 하였다.
운전사가 어떻게나 속썩이는지 한데 쥐어박아주고 싶었지만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지고나니
모험을 즐기려는 마음도 생겼다.
"짜슥 제대로 좀 해보자."
이런말이 나올 정도로 자꾸 제 맘대로 동료듥과 떨어져서 운전을 한다.
나름대로 지름길로 간다고 애쓰는 모양인데 늘 헤메기 일수이다.
이번에는 염려와는 달리 그래도 잘 찾았다.
죽음의 집 주변은 온통 정신이 없다.
죽음의 집에 들어서자 남자와 여자가 따로 구분되어 있고
한가운데는 목욕탕이 있다.
여기저기서 섬기려는 봉사자들의 섬김이 한창이다.
한쪽 모퉁이에는 관을 짜는 곳과 세탁을 하는 곳이 있다.
우리가 방문하자 집안에 있던 노인들과 환자들이 앉기도하고
우리를 향해 뭔가를 말하려 하는것도 같다.
공중으로 손을 휘젓지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
죽음의 집은 거리의 행려자들이 들어오는데
보통 1-3개월을 이곳에서 살다가
죽음 너머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은 너무나 메마른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아 있다.
대충 짐작하여 20킬로도 나가지 않아 보이는 분들도 제법 많았다.
그들은 얇은 옷 하나에 지친 육신을 기대고 있다.
1미터 간격으로 쭉 누워있는 그분들 가운데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는 사람은 지극히 찾아보기가 힘든 곳이라고 한다.
그들중 몇몇은 카드 놀이를 하고 있다.
그나마 상태가 제일 좋아보이지만 그들도 불치병자들이라고 한다.
휑한 눈으로 공중을 가만히 응시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 좁디 좁은 공간안에서 백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옆에서 앞뒤에서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마음에는 휑하니 구멍이 뚫린다.
온통 신음소리와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일생을 죽음의 집을 섬기다 가신 마더테레사 수녀가 참 존경스럽다.
그리고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로 구성된 봉사자들을 칭찬하고 싶다.
나는 이런 곳에서 수행하며 삶의 진리를 찾는 이들을 부딪히면서
그들을 참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들었다.
술 담배와 마약과 섹스로 찌든 정신빠진 세대들에 비하면
이들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자신들의 시간과 돈과 정성을 다해서 먼 타국까지 와서
인생의 종착점에서 새로운 길을 떠나는 그들을 지키고 있는
호스피스 사역자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곳에서 영원한 존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나는 기억한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나도 할수만 있거든 무거운 짐을 버리고
끊임없이 믿음의 길, 소망의 길, 사랑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오늘 이곳에서 다시금 짐을 버리고 길을 묻고있는 내 자신을 만난다.
짐을 싸면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간소하게 이곳에 와서 옷도 인도식으로 사서 입었었기에
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빛된 삶을 살라고 하는 의미에서
그들을 줄 초를 수십개 샀다.
지현이가 산 것과 교환해서 정성껏 담았고
인도식의 십자가와 목걸이를 샀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요르단을 갔을때
가장 인상 깊고 의미있는 것은
비싸고 좋은 상품이나 쇼핑물이 아니라
내게 또 선물을 주는 이에게 의미를 전해주는
그 무엇인가를 배웠기에 그런 마음을 담은 선물들로만 샀다.
이제 선물은 돈으로 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선물은 가치이고 의미이다.
그것이 비싸지 않아도 좋다.
단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도박물관에서 산 엽서들과 그동안 여행을 기록한 노트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틈틈히 본 책들을 주섬주섬 주워담는다.
그러다가 샌달이 생각이 났다.
바깥으로 나와서 나와 함께 8년을 함께한 샌달을 쳐다보니
다 닳을대로 닳아 있었다.
그렇치만 나는 그 샌달이 너무 편해서 사람들보기에는
오래된 닳아빠진 샌달이지만
내 발에게는 편안한 친구였기에
수련회나 야외로 갈때마다 신곤 했었다.
심지어는
작년에 이집트와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광야을 갔을때에도
이 신발을 신었었다.
그런데 이 샌달이 밑창까지 다 떨어져서
보기 흉하게 너들거리고 있다.
나와 헤어질 순간이 되었음을 인식하면서 쓰레기통에 넣는데
생명체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우울해진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갑자기 샌들을 보다가 이런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른다.
"네 인생이 무엇이냐?"
사랑하며 축복하며
내 인생 가운데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내 샌달처럼 최후의 순간가지
누군가를 위해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고
좋은 영혼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과 동행하며 삶의 사계절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함께하는 Soul Friends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곁에서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아이는 소년이 되고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장년이 되고 장년은 노년이 된다.
어제의 꼬마들이 이제는 꼬마를 둔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있고
함께 불렀던 정다운 아저씨와 아줌마는
이제는 우리들 곁에서 늙고 쇠약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으로
그리움으로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사랑하며 축복하며 산다는 것 외에
그보다 좋은 삶의 의미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나누며
정겹게 사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도 어디 있겠는가?
인생의 순례길에서 잠시 만난 사람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로 서로를 비교하고 우쭐거리며 교만해 하거나
또는 부끄러워 수치스러워하는것은
영원한 시간 앞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부귀도 명예도 권력도
어찌보면
다 인간 세상의 크고 작은 자기기념비에 불과하다.
그것은 호흡이 끊어지면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의 인생을
그 사람이 타는 차나 그 사람이 사는 집의 크기나
그 사람이 모은 재산에 의해 평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삶은 사랑하며 축복하며 사는 것으로만
영원히 남는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들 수 있다.
저녁 식사후에 떠나기 전에 그동안 함께했던
라쥬와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우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간다.
인도 형제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간다.
우리는 지금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서로 가볍게 포용을 해주며 축복의 말들을 건넨다.
정말 이제 인도를 떠난는 마지막 날이다.
몇 시간 후면 이곳을 떠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인생의 반복되는 여정의 일부일 것이다.
짐을 버리고 다시 길을 묻는다.
나마스테! (당신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안녕!!!)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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