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한국 읽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민족 우리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9. 12. 16:48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민족 우리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해외에선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했던가. 태극기를 바라보는 순간, 애국가가 울리는 순간, 국내 대기업 로고를 발견하는 순간, 왠지 가슴이 먹먹해오고 나도 몰래 눈가에 이슬이 맺히던 기억을 우리 모두는 간직하고 있을 게다.

두어 해 전 발칸반도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접경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에 들렀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삼성’ 에어컨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드리해 연안 중세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우리를 반긴 건 ‘LG’ 에어컨이었다. 물 설고 낯선 곳에서 하루 24시간이 짧다 하며 쉬지 않고 땀 흘린 성과임을 그 누가 부인하랴.

세계를 다녀보노라면 대한민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멤버십 국가요, 경제력 15위의 강국임을 실감케 된다. 일례로 터키나 멕시코를 지나가다 보면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전혀 개발되지 않은 땅들이 어김없이 눈에 들어온다. “저긴 디지털 단지를 조성하고 여긴 아파트 단지를 지으면 떼돈(?)을 벌 수 있을 텐데….” 땅을 놀려둔 채 이런저런 핑계 대며 손 놓고 지내는 건 우리로선 이해 불능이다.

손발을 쉬지 않아야 직성이 풀리는 부지런함과 불가능을 가능케 해온 특유의 끈기는 한국인의 해외여행 스케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어느 곳에서든 거의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강행군이다. 그래야만 불평이 없다는 것이 여행관계자의 전언이다. 본전 생각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빨리빨리,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픈 한국인 고유의 기질이 한몫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인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으론 미국 인류학자 영(D. Young)의 평가가 인상적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에겐 ‘수치심과 쇼비니즘(Shame and Chauvinism)’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 같단다. 곧 내부를 향해선 스스로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관점이 주를 이루다가도, 외부를 향해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국수주의에 가까운 애국적 열정을 뿜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외국인 눈에 수치심으로 비쳐진 대목은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겸손함의 또 다른 표현이요, 쇼비니즘으로 비쳐진 건 외부의 침략에서 벗어날 길 없었던 역사적 서러움을 극복코자 하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게다. 실제로 우리네 전통 속엔 ‘자식 자랑은 팔불출’로 여겨왔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으며, 거꾸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했고 ‘작은 고추가 맵다’ 해오지 않았던가.

다만 개인이든 국가든 약점은 결코 장점이 될 수 없으나 장점은 언제라도 약점으로 화하여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특별히 우리 국민성에 대해선 식민시대 왜곡이 자리하고 있는 만큼 지나치게 자기를 비하함은 필히 극복해야 할 것이요, 이의 반동으로 속을 충실히 채우지 못한 채 무늬만의 자만심을 내세우는 일 또한 경계할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주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한 세계 유일의 신생 국가 대한민국은 최근 10년만 해도 IMF 외환위기에 굴하지 않고 ‘온 국민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위기극복에 힘을 보탰고, 2002 한·일월드컵에선 거리 축제의 열기 속에서 4강 신화의 ‘꿈을 이루어’ 냈으며, 다시 닥친 경제위기에도 꺾이지 않고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젠 우리 자신의 저력과 잠재력을 존중하자.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자. 우리 앞엔 소중한 후손들에게 물려줄 선진 조국이 있지 않은가.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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