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상품은 바로 '한국인'
서울에서 7년간 살았지만 사실 서울은 내가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아니다. 최근에야 이뤄진 미화 정비작업 이전만 하더라도 서울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도시 중 하나였다. 서울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너무 많고 사람도 너무 많다. 또 한국의 전통문화는 보존돼 있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서울을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고 오랜 시간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마다 가고 싶어한다. 이 도시를 그리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사람들 때문이다. 1987년 서울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한국인의 친절함과 매력을 대번에 알아버렸다. 그리고 의리와 정(情) 같은 또 다른 한국인의 매력은 지금도 제대로 알기 위해 배우는 중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매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무척 어렵다는 것을 요즘도 종종 깨닫고 있다.
한국인을 정의하는 자질 중 하나는 무척이나 복잡한 정(情)이라는 개념이다. 내 사전에서 정에 대한 정의는 ‘feeling’ ‘compassion’ ‘sentiment’ 등 무척 많다. ‘affection’이 어쩌면 가장 가까운 정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영어 단어도 정이 갖는 진짜 의미와 중요성을 전달해주지 않는다. 나는 한국 가족 구성원이나 친한 친구들 사이에 서로를 결속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정이 존재하는 것을 보아 왔다. 이것은 자주 말로 표현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느끼기는 쉽지 않다. 서양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인의 정을 처가 식구들을 통해 경험했다. (내 아내는 한국인이다.) 나는 7년 전 돌아가신 장인과 무척 가까웠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그는 북한과 관련된 내 일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한번은 내게 “북한의 고향에 가서 내 부모와 친지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줄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이 자네”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장인의 고향인 해주에 갈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다. 장인은 나에게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장인은 기르던 칠면조 두 마리를 잡아 미국식 추수감사절 만찬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한국인의 두 번째 자질인 의리는 더 파악하기 힘들다. 충성심과 성실함의 결합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미국, 특히 수도인 워싱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다. 트루먼 전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친구를 원하면 차라리 개랑 사귀는 게 낫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한국인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세 가지 관계인 혈연, 지연, 학연에 정과 의리까지 결부시키고 나면 한국인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력하고 강렬한 인간 관계로 이끌리게 된다. 관찰자인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간관계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관계는 때때로 강한 책임감과 도덕률과의 갈등을 수반한다. 예를 들어 법을 어기면서까지 친한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느냐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유교는 한국을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만든 요인이다. 이와 관련돼 내가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은 나이든 사람과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다. 나보고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문화적 배경을 짚어내라고 하면 나는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적 질서와 교육을 가장 상위에 꼽을 것이다. 한국에서 선생님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지위를 갖고 있다. 선생님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고 젊은이들은 선생님의 전통적 권위에 도전적이기까지 하지만 한국인의 자질 속에 그러한 전통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본다. 전통과 현대문명 간의 적절한 긴장이야말로 한국인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아닐까.
한국인의 변하지 않는 매력적 자질 중 하나는 친절함이다. 나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시도 때도 없이 길을 잃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던 길도 벗어나서 나를 목적지까지 안내하곤 했다. 시골을 돌아다니다 환갑잔치에 초대돼 음식을 대접 받은 일도 자주 있었다. 숱한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의 말과 문화를 설명해주려고 애쓰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2006년 독일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을 앞두고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 photo 스포츠조선 전준엽
내가 존경하고 또 닮으려고 노력하는 한국인의 자질 중 하나는 열심히 일하고 노는 것이다. 이러한 자질이 도전적인 성취욕과 삶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한국인들처럼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씩 일하고 난 후 다시 회사 밖으로 몰려나가 먹고 마시는 것은 쉽게 배우기 힘든 기술이다. 무박(無泊) 여행을 즐기는 나라도 한국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밤에 출발해 잠도 안 자고 산행을 즐기다 다시 밤에 돌아오는 것을 외국인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의 자질에서 한국인이 모르는 숨은 매력 중 하나는 한국인의 아름다움이다. 나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콘크리트 숲 속에서 한국인들의 매력적인 용모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배용준으로 대표되는 한류에서 보듯 한국의 배우와 모델들은 그 아름다움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 평양을 방문한 많은 외국인 리포터가 여성 교통경찰의 미모에 대해 언급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의 아름다움은 남과 북 모두 마찬가지다. 나도 개성공단에서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의 매력은 먹고 마시는 데 열중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배운 한국어 인사말 중 하나가 “밥 먹었습니까”였고 내가 배운 첫 한국 속담이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먹는 것은 물론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핵심적인 것이지만 한국인들은 세계 어디와도 견줄 수 없는 흥취를 갖고 먹는 행위를 즐긴다.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든 자판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든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식당에서 놓여날 수 없다. 한식당에 가서 갈비 2~3인분을 먹고 몇 가지 사이드 디시까지 끝내면 종업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묻는다. “식사는요?” 정말 즐거운 식탐 문화다.
한국은 음주문화에서도 먹는 것만큼 강렬함을 갖고 있다. 1988년 한국에서 첫 여름을 보낼 때 몇몇 한국 지인들과 함께 북한산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이 배낭에 불룩하게 짊어지고 가는 게 뭔지를 몰랐다. 정상에서야 그 짐의 정체가 막걸리인 줄 알았다. 한국인을 알코올중독자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요소지만 절대로 혼자 술을 마시게 놔두지 않는 독특한 음주문화도 그때 배웠다. 나도 이제는 자작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의 음주문화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서양 친구들에게도 한국의 음주문화를 강요하곤 한다.
나는 요즘 내 딸에게 “네가 한국인인 동시에 미국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 딸이 대단한 두 나라의 딸이라는 게 나도 자랑스럽다.
/ 피터 벡 |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UC버클리대 졸업. 캘리포니아대 국제관계 및 태평양연구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 실장,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서울사무소장,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역임. 현 이화여대·아메리칸대 초빙교수.
한국인
우리는 긍정적 자화상
긍정적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를 섬기는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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