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한국 읽기

점 보러 갔다가 ‘점점’ 더 꼬이네! 불황 속 판치는 가짜 무속인실태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3. 29. 09:52

점 보러 갔다가 ‘점점’ 더 꼬이네! 불황 속 판치는 가짜 무속인실태고발

 

 

 

 

 

경제난, 취업난으로 힘든 서민들 점집 향하는 발걸음 늘어
사주포차, 사주카페 등 번화가에 저렴한 가격 점집 우후죽순

 

불황이 깊어질수록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중 하나가 ‘점집’이다. 가족들의 앞날이 걱정되는 중년부인들은 용하다고 소문난 철학관으로, 취업과 연애가 고민인 젊은이들은 사주포차나 카페에서 취미생활처럼 점을 보고 있다. 이렇다보니 점을 봐주고 돈을 버는 역술인이 인기직종으로 떠오르고 있을 정도다. 몫이 좋은 번화가마다 점집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돈벌이 수단으로 남의 앞날을 봐주는 점술가들이 늘면서 피해를 보는 이들도 속속 생기고 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점집을 찾는 이들을 이용해 돈을 뜯는 점쟁이들이 극성을 부리는 추세다. 그 실태를 좇았다.

지난 17일 밤, 밝은 불빛이 새 나오는 포장마차들 앞이 줄지어 선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소주도, 닭똥집도 찾아 볼 수 없는 이곳은 앞날을 점쳐주는 사주포차. 사주, 궁합, 손금, 결혼, 진로 등 비슷한 문구가 즐비하게 쓰여 있는 포차 중 유독 인산인해를 이루는 점집 앞으로 가봤다.

 

 

번화가마다 점집 늘어
젊은이들 발길 잡아

 

교복을 입은 소녀들부터 대학생 커플, 넥타이를 맨 남자 직장인과 오피스룩 차림의 여자회사원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손님들이 기대감과 긴장감이 교차되는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중 퇴근길 직장동료들과 버스를 타러 가다 우연히 발견해 사주포차를 찾았다는 회사원 이모(28·여)씨는 자칭 사주포차 마니했다. 대학시절부터 이름난 사주카페 등을 찾아다니며 점을 봤다는 그녀가 이날 보려는 것은 이직과 관련된 운세라고 했다.

이씨는 “맹목적으로 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면 버릇처럼 점집을 찾는다”며 “평소 자주 가던 단골 사주포차에 가려다 줄을 선 사람들이 눈에 띄어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포차 안으로 들어가 점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 10분간 점을 보고 나오는 그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현재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녀는 다른 직종으로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고 선택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점을 본 것이었다. 그러나 2만원이란 복채를 내고 들은 말은 신문에서 지겹게 본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뚜렷하게 앞날을 제시해 줄 거라고 믿고 점을 본 건 아니지만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야기나 들으려고 이곳에 와 돈을 쓴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점술가가 10분간 말한 것을 요약하면 “지금은 불황이라 어려우니 내년쯤에나 이직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고 하니 돈이 아깝다는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대기자들 중에는 취업운을 보러 온 사람도 눈에 띄었다.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취업하지 못했다는 정모(29)씨는 이날도 어느 기업이 자신에게 맞을지, 언제쯤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답답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또 하나 묻고 싶은 것은 이름을 바꾸는 것에 관한 문제였다.

정씨는 “한 달 전쯤 신촌에 있는 사주포차에서 점을 봤는데 그 점술가는 뭐 하나 맞추는 게 없더니 급기야 작명권유를 하더라”면서 “일이 안 풀리는 이유는 이름에 있다며 몇 만원을 더 주면 취업도, 결혼도 성공할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은근히 권유를 했다고 한다.

이미 그 점술가에게 신뢰가 떨어진 정씨는 5만원의 복채를 주고 도망치듯 포차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엉터리 점쟁이가 내린 처방이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

고민 끝에 결국 정씨는 한번 더 점을 보기로 결심했고 이 사주포차를 찾은 것이었다. 정씨는 “만약 이곳에서도 이름이 문제라고 하면 심각하게 작명을 고려해 볼 것”이라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진짜 점쟁이 맞아?”
짝퉁 점술사도 활개

 

 

친구를 따라 포차에 왔다는 김모(26·여)씨는 얼마 전 점을 보다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한 번도 연애경험이 없었던 김씨는 답답한 마음에 서울의 한 사주카페에서 연애운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30대 후반쯤 되 보이는 남자 점술가의 행동이 이상했다고 한다. 시종일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점을 봐줬다는 것.

김씨는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더니 급기야는 ‘내가 남자친구가 되면 어떻겠냐’는 농담까지 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점술가의 불쾌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의 몸매를 훑어보더니 “몸매가 글래머인데 왜 남자친구가 안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시선을 그녀의 가슴 쪽에 꽂아둔 채 말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김씨는 “그 점쟁이 때문에 너무 불쾌해 이후로는 절대 점을 안보기로 결심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김씨의 말을 듣던 한 여성은 “나도 애정운이 궁금해 점을 보러갔더니 점술가가 ‘올해는 꼭 결혼할 남자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 뒤에 뜬금없이 ‘내가 결혼정보업체도 운영하고 있으니 공짜로 가입시켜주겠다’고 말하더라”며 “그런 사람을 보면 진짜 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인건지 아니면 사업 홍보수단으로 점집을 차려놓은 건지 의문이었다”고 성토했다.

인근의 다른 사주포차에서 취업운을 보고 나온 유모(30)씨는 “언제 대학을 졸업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등 맞추는 게 하나도 없더라”며 “쪽집게처럼 딱딱 맞추는 걸 기대하고 오진 않았지만 저 정도면 나도 장사할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씨는 “그래도 점쟁이가 본 운세라 그런지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며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처럼 몇몇 젊은이들이 앞날을 점치기 위해 점을 보러왔다가 실망감과 본전생각에 찜찜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점을 보러 온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점술가의 말에 희망을 얻고 좀 더 노력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잘 맞춘다며 점괘에 대해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불황속에서 예측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풀기 위해 점집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노리고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점을 치는 점술가들도 많아 두 번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여 돈을 뜯어내는 등 파렴치한 행각을 벌이는 무속인들도 있다. 어려운 이들의 절박한 심경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 것.

지난 1월에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기도를 해준다며 수십억원을 뜯은 무속인이 적발됐다. 서울 강남에서 운명상담소를 차리고 점을 봐주던 무속인 윤모(59)씨가 장본인이다.

윤씨는 딸의 수능시험 운세를 점치러 온 김모(51·여)씨에게 딸의 운명과 가정의 번창 등을 위한 기도비 명목으로 40여 차례에 걸쳐 15억이 넘는 금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수능시험을 앞둔 부모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돈을 뜯어낸 것.

윤씨는 또 “남편은 첩이 7명 있고 지독한 마귀가 달라 붙어 처와 자식을 해칠 수 있다”는 거짓말로 그녀를 속여 수억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지난 2월에는 굿을 하지 않으면 사생활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억대의 금품을 뜯은 무속인이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무속인 A씨(43·여)는 울산시 북구 연암동에서 무속행위를 하며 알게 된 B(44)씨를 상대로 굿을 하지 않으면 결혼 전 사생활을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48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뜯은 혐의다.

조사 결과 B씨가 “몇 번 굿을 해봤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 하겠다”고 하자 앙심을 품고 굿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B씨의 결혼 전 사생활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4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1억7400여만원을 뜯은 것으로 조사됐다.

 

 

점 보러 갔다가
성매매 늪 빠져

 

 

최근에는 점을 보러 온 손님을 6년 동안 감금시키고 성매매를 강요해 수억원을 벌어들인 파렴치한 무속인도 덜미를 잡혀 충격을 줬다. 대구에서 점집을 운영하던 무속인 김모(33·여)씨는 2002년 10월 자신의 점집에 온 C(27·여)씨에게 “무속인이 될 팔자니 내 제자가 돼라. 액운을 풀기 위해 500만원짜리 굿을 하라”고 꾀었다.

이 말을 믿은 A씨는 굿을 하기 위해 빚을 졌다. 이를 본 김씨는 사채업을 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소개시키면서 200만원을 빌려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빚은 1500만원으로 불어났고 A씨는 직업소개소에서 돈을 빌려 이 돈을 갚았지만 김씨는 가족들과 짜고 A씨에게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이 돈을 빼돌렸다.

그리고 다음날 A씨에게 “네가 술에 취해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속인 뒤 A씨를 집으로 데리고 와 성매매를 시키고 화대를 가로채기 시작한 것. 결국 A씨는 2003년부터 올해 2월까지 무려 500여 명의 남성과 성매매를 하고 김씨 가족에게 10억원을 뜯기고 말았다.

이밖에도 절박한 심경을 이용한 무속인들의 돈 뜯기 행각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어 점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불황을 틈타 검증되지 않은 무속인들이 증가하는 현실은 이 같은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증가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

<일요시사 김봄내기자│스포츠서울닷컴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