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한국 읽기

성매매 여성을 돕는 여성성공센터 W―ING운영 12년 최정은 대표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3. 27. 13:34

여성성공센터 W―ING운영 12년 최정은 대표

[2009.03.24 18:15]      


성매매 피해자에 새빛… 주도적 삶 부축

서울 신길동 주택가 한켠에 '여성성공센터 윙(W-ING)'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바로 옆엔 '신길동 그 가게'라는 간판이 붙은 커피집과 '뚝딱뚝딱'이라는 이름의 목공소가 딸려 있다. 이름만 듣고 얼핏 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여기는 성매매 피해 여성과 지역의 여성들이 한데 어우러져 세상을 헤쳐 나갈 내면의 힘을 키우고 경제적인 독립을 준비하는 곳이다. 12년째 이곳에서 여성 사회복지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는 최정은(44) 대표를 지난 19일 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곳의 시작은 1953년 '데레사 모자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고한 최 대표의 할머니 백수남씨가 한국전쟁 직후 남겨진 모자 가정을 위해 사재를 털어 운영하던 자선기관이다. 66년 은성원이란 이름을 달았고 이후 70∼80년대를 거치면서 무작정 서울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온 가난한 여성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직업 전문 교육을 실시했다. 90년대에는 미혼모와 가출 청소년을 돌봤고,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된 이후부터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최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97년. 당시 그는 의류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그만두고 아버지를 도와 의류제조공장에서 경리, 총무, 디자인까지 각종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유난히 마음이 잘 맞는 딸과 함께 이 일을 하고 싶어하던 아버지를 따라 같이 자리를 옮겼다. 이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2004년 대표가 됐고, 이때 이름을 윙(W-ING)으로 바꿨다. 윙은 'Women Initiative Networking Growing'의 약자로 여성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통해 격려하고 응원한다는 의미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자활센터와 쉼터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여성 스스로 성공을 정의하고 그 삶을 떳떳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로, 무려 6개월간 고민 끝에 붙인 이름이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겐 '친구'라는 호칭을 쓴다.

그런 만큼 기존의 여성 사회복지 시설과 많이 다르다. 우선 주거권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당장 쉴 곳을 찾아온 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데 정원은 12명이다. 과거 30∼35명에서 줄인 것이다. 대신 쉬면서 치유받고, 훈련을 통해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여성에게는 그룹홈을 제공한다. 최근엔 SH공사를 통해 서울시로부터 상도동의 빌라 한 동을 임대주택으로 분양받아 8세대, 30여명의 여성들에게 삶의 둥지를 만들어줬다. 단, 무조건 공짜는 없다. 그룹홈 생활비는 물론, 임대주택의 관리비를 받는다. 그는 "사회복지시설이니까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기보다는 스스로 자존감을 갖도록 하고 싶어 이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문학 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 내면의 힘을 키우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 친구들이 자격증 10개를 갖고 있어도 한순간에 마음을 잘못 먹으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뭐가 부족해서 끝까지 가지 못할까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정도 뒹굴면서 지내고 깊은 곳까지 교감을 하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많고, 그것을 일깨워주는 게 우리의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2005년 가을 '치유적인 글쓰기' 프로그램에 이 친구들과 실무자가 함께 참여했고, 이후 겨울에는 단체 여행을 떠났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조를 짜서 자유 여행을 한 뒤 한자리에 모였다. 겨울바다에 가고 도예가를 찾아가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한 뒤,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글을 함께 나눴다. 최 대표는 "그때 비로소 여성들이 학력이 짧고 가난해서 그 일(성매매)을 했다기보다 경험의 폭이 너무 깊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깨달음이 인문학 아카데미로 이어졌다. 2006년 금요일마다 전문가로부터 철학 강의를 듣고, 시험도 보고 리포트도 내도록 했다. 한 친구는 "너무 재미있다. 대학에서는 이렇게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고, 또 다른 친구는 "앞으로는 나 자신에게 계속 '나는 누구냐' '어떻게 살아왔냐'고 물으며 살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회복지시설들과 네트워킹을 통해 다양한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옛날 같으면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사람들 많은 데는 나가지 않으려던 친구들이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공부하고 뒤풀이까지 할 정도로 변했다. 아울러 목공작업장 뚝딱뚝딱과 카페 신길동 그 가게, 영상작업을 할 수 있는 영상미디어센터, 핸드메이드 작업장 등 4개 사업장도 만들었다.

최 대표는 "사람은 누구나 다를 바가 없는데, 이 친구들은 좀 더 열악한 환경에 있었고 잠시 길을 돌아왔을 뿐"이라며 "사람을 개과천선시키고 완전히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영화를 보고, 혼자 밥을 먹더라도 제대로 밥상을 차려먹는 일상의 변화를 조금씩 가져올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센터 이야기를 할 땐 활기와 자신감이 넘치던 그는 신앙 이야기를 꺼내자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됐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센터를 운영하면서 늘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신념이 있다"며 웃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도르가'를 닮은 최대표의 리더십

'여성성공센터 윙'을 운영하는 최정은 대표의 리더십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우선 성경에서 찾아보면, 그처럼 어려움에 처한 여성을 돕는 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도르가'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제자'라고 불린 여성이기도 하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욥바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었고, 바느질로 과부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을 지어 입혔다. 그가 죽자 모든 과부들이 울면서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였다. 도르가가 죽자 제자들은 베드로를 불렀고, 베드로의 기도로 도르가는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의 부활로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됐다.

최정은 대표에게선, 성경이 말하는 선행과 구제의 실현을 뛰어넘는 새로운 리더십이 발견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양세진 사무총장은 24일 최 대표를 "여성 사회복지 분야의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라고 소개했다. 양 사무총장은 2006년부터 3년간 여성성공센터 윙의 인문학 아카데미 가운데 철학 강의를 하며 최 대표를 지켜봤다.

이 낯선 단어는 프랑스 경제학자 캉디앙이 중세 시대 성과 성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팔던 장사꾼을 지칭한 말로 당시 농경 중심의 경제 활동에 상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낸 이들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보통 '기업가 정신'으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는데, 본질적인 의미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람으로 '비전 혁신가' 정도가 적합하다고 양 사무총장은 설명했다. 양 사무총장은 "기존의 사회복지시설들은 시설 안에서 여성을 먹이는 데 머물렀다면, 최 대표는 시설 밖의 전문적인 자원들을 찾아내 연결함으로써 인문학 강의 등 새로운 가치를 실현해 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