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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구호현장에서 만난 하나님] 죽음·공포가 일상이 된 팔레스타인 아이들, 이건 아니쟎아.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1. 10. 17:38

한비야의 구호현장에서 만난 하나님] (5) 죽음·공포가 일상이 된 팔레스타인 아이들

[2009.01.09 22:14]      


뼛속까지 번진 증오… 정상적 삶 가능할까

기어코 전쟁이 터졌다. 아슬아슬 이어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휴전이 깨지면서 아파치 헬기, 박격포 등을 총동원한 전면전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이번 목요일 한시적 휴전에 합의는 했지만, 이제껏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어떤 휴전제안도 거절하며 이 기회에 하마스의 뿌리를 뽑겠다고 최첨단 무기와 정예부대로 연일 총공격을 가했다. 하마스도 끝까지 가보겠다고 했었으니, 이번 전쟁은 150만명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다 죽어야 끝나려는가 했다. 골다메이어 전 이스라엘 총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팔레스타인에는 그곳이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 없어지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팔레스타인 민족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두고 어떤 사람은 영적 전쟁, 종교전쟁이라고도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이건 명백한 영토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쪽에서는 수천 년 우리가 대를 이어 살아온 땅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수천 년 전 우리에게 예정된 땅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번 전쟁도 결국 이것에 맥이 닿아있다.

나는 구호팀장으로 전쟁의 뒷모습을 잘 알고 있다. 전쟁터에서는 군인보다 민간인이 훨씬 많이 죽는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여자와 아이들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그랬다. 이번 전쟁도 오늘까지 팔레스타인 사상자 4000여명 중 3분의 1이 어린 아이들이란다.

폭탄에 맞아 피 흘리는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가자지구 라파에 갔을 때 만났던 그 초등학생들은 무사한 걸까?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도시 외곽에 수십 대의 이스라엘 탱크가 시내를 향해 정조준하고 있어 섬뜩했다. 그런데 그건 위협용이 아니었다.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초등학교에 가 보니 건물 벽은 온통 총알자국 투성이에다 옥상은 며칠 전에 폭격을 맞아 절반이 무너져 있었다. 교전이 있었냐니까 그냥 평상시 수업 중에도 총알이 수시로 날아온다고 한다. 복도에는 무지개, 꽃밭, 동물원 등을 그린 그림과 함께 죽은 학생들의 사진 수십 장이 걸려 있었다. 하나같이 아직 젖 냄새도 가시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같이 있던 10살 남짓한 꼬마가 저 친구는 학교 오다가, 저 친구는 운동장에서 축구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설명해준다. 놀라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신이 났는지 집에서도 잠자다가 한밤중에 총소리에 놀라 피신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총에 맞아 생긴 상처까지 앞 다투어 들쳐 보여주었다. 세상에…. 숨이 턱 막혔다. 이 꼬마들에게 무자비한 군사폭력과 죽음의 공포가 웃으면서 말할 만큼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홉 살 난 파티마의 오빠도 이스라엘군인의 총알에 맞아 즉사했단다. 오빠는 겨우 열한 살. 파티마는 오빠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그 크고 예쁜 눈으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우리 오빠를 죽인 이스라엘 군인, 빨리 커서 다 죽여버릴 거예요"라고 나지막이 외쳤다. 그저 인형놀이나 해야 할 여자아이 입에서 그렇게 험한 말이 나오는 게 안타깝고도 미안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쯤이면 평화가 찾아올까? 이 아이들이 그 때까지 살아있기는 하는 걸까? 운 좋게 살아있더라도 이렇게 뼛속 깊은 증오를 가지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는 있는 걸까?

길거리에서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지고 있는 남자아이에게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냐고 물었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화가 난 듯 대답했다. "그럼 내 집에 누군가 들어와 우리를 죽이려는데 아줌마라면 가만히 있겠어요?"

자기 부모형제가, 친구가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 자라는 이 아이들에게 "그런 나쁜 마음 먹으면 못쓴다."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야 훌륭한 사람이지."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해라 그래야 평화가 온단다."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말 못한다. 그저 두려움과 증오감에 파르르 떨고 있는 아이들을 꼭 안아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안아줄 때마다 외마디 비명과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 제발 이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제발."

내 기도가 부족했는지 지금 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가자지구는 일년 반 전부터 완전 봉쇄되어 전쟁 전에도 식량과 의약품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지금은 팔 다리가 부러지고 배가 갈라진 정도로는 진통제도 쓰지 않는다는 현지의사의 전언이다. '아이들만이라도 이스라엘의 시설 좋은 병원에서 치료하게 하면 안 될까'라는 꿈 같은 상상을 해 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부탁이 하나 있다. 이번 전쟁으로 죽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이들, 특히 이 순간에도 두려움에 떨고 있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이 아이들을 이렇게라도 지켜주는 것이 어른으로서, 세계 시민으로서,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나는 믿는다.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