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의 눈물 - 로버트 맥체인
- 로버트 맥체인(Robert Murray McCheyne, 1813-1843)
- 1841년 12월 31일 저녁에 했던 설교.
『주께서 가까이 오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울며, 말씀하시기를 "적어도 이 너의 날에 너만이라도 너의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너의 눈에서 감추어 졌느니라』(눅 19:41,42).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지난날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던 그때와 똑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주이십니다. 그분이 지금 이 땅에 계셨다면,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던 것처럼,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도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밤, 본문의 말씀을 통해 다음의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은 당신의 평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2) 오늘은 은혜의 날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를 열망하십니다.
1) 복음은 인간의 화평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화평이 없다."고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사 57:21).
1. 양심의 평안
죄는 모든 슬픔의 근원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죄인 종인 당신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불안한 죄인들에게 최상의 평안을 가져오는 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선포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이 보시기에 구원은 죄인들의 등에 진 짐을 내려 놓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가 나를 더이상 지배하지 못하리라.' 도무지 삐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아도, 당신의 혼을 함정에 빠트릴 덫이 온 세상에 걸쳐 쳐져 있다 하더라도, 살아 계신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당신의 혼에는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죄를 제거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자에게 평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죄인들이여, 당신이 복음을 경멸하는 바로 그 만큼이나 당신은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사탄의 기세가 너무도 등등한 이 세상에는 화평도 안전함도 없으나, 예수님의 날개 아래라면 모든 것이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 바깥에 있으면서도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음에도 아주 행복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들이 앞을 못보는 자들이기 때문이며, 무감각한 데가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안전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옥을 목전에 두고 서 있는 사람입니다. 오! 죄인들이여, 이것이 바로 당신이 행복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리니, 그날에는 세상에 속해 있으며 태평스럽기 짝이 없는 죄인들에게 머무르던 평안은 순식간에, 그리고 영원히 분쇄될 것입니다.
2. 복음은 역경의 날에 평안을 줍니다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납니다. 당신의 지난날이 그 증거입니다. 당신의 가족들 중 많은 이들이 병마와 싸웠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멀리 떠나갔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올해의 마지막 밤이 끝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역경의 날에 평안이 있을 리 없습니다.
폭풍이 으르렁거리며 몰려오는데 그들에게는 피신할 안전한 장소가 없습니다. 화평의 반석이 없으니, 큰 바람이 몰려와도 그 바람을 막아 줄 것이 없습니다. 폭풍의 날에 화평이 없다니, 이 얼마나 가련하고 가슴아픈 일입니까? 역경이 닥치기 전,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병이 몰려오고 죽음이 눈 앞에 다가서기 전에 말입니다. 실로, 복음만이 당신에게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껏 여러분들 곁에 있으면서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권고를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화평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거부한다면, 평안도 당신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입니다. 비록 작금은 병도 없고 역경도 없어서 완악한 마음으로 평안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죄인이여, 재난의 날에는 어찌하시렵니까?
『내가 너를 다루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어 낼 수 있으며 네 손이 튼튼할 수 있겠느냐?』(겔 22:14).
3. 복음은 죽음의 순간에 평안을 줍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무엇을 가지고 평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막는다고 평안이 찾아들겠습니까? 성경은 당신이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왔음을 상기시킬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껏 살아온 악의 삶을 뒤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당신의 유쾌한 동료들이 그때에도 당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서 당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진노의 날에 돈은 또 무슨 소용에 닿겠습니까? 복음에 순종치 아니한 자의 마지막을 진지하게 숙고해 보십시요.
죄인에게 무슨 평안이 있겠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사람들을 조롱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생각을 비웃는 당신에게, 생의 마지막날에 무슨 평안이 임하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평안하리라고 믿고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이 모든 일들이 당신의 마지막 순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죄인이여! 사탄이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음을 아십시요. 죄는 사망의 쏘는 것입니다. 그 죄, 지금 당신이 품에 꼭 껴안고 있는 그 죄 말입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그 달콤한 잔이 죽을 시에는 독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달콤하겠지만, 결국엔 살모사처럼 당신을 깨물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앉아 있고, 또 이 해가 당신의 머리 위를 마악 지나가고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당신의 죄들은 죽지 않는 벌레로 변한다는 것이고, 지옥의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심판이 지금 코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복음은 평안의 열쇠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 일부는, 당신의 재난의 날에,
그리고 이 집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그 때에, 요단강 물이 당신의 발 밑을 적시게 될 그 시간에, 그리고 이제 평안이라는 것 자체가 당신에게서 영원히 멀어지는 그 순간에, 제 말을 기억하면서 위의 일들이 바로 당신의 평안의 열쇠였음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죄인이여! 그리스도만이 당신에게 참된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에서 사망의 쏘는 것을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화평입니다.
올해 저는 여러분에게 수차례에 걸려 이 평안을 전파해 왔습니다. 저는 실로 평안의 전파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왜 아직 그 평안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왜 진리를 거부하는 것입니까? 왜 아직까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경멸하고만 있는 겁니까? 부디, 여러분, 지혜로워지십시요. 그리하여 당신의 평안에 관련된 일들을 깊이 숙고하십시요!
2) 은혜의 날이 있습니다
『"적어도 이 너의 날에 너만이라도 너의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너의 눈에서 감추어 졌느니라』하루 중에는 그의 새벽이 있고, 정오도 있으며, 또한 자정도 있습니다. 저는 은혜의 날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지자들이 구주의 오심을 예언할 때의 예루살렘은 은혜의 날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거기 서셔서『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라고 외치실 때는 정오였으며, 지금 예수께서 울고 계신 때는 바로 한밤중이었습니다. 은혜의 날이란, 그리스도께서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실 때를 말합니다. 어떤 이들에게 그 날은 전 생애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복음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은혜의 날이 죽음이 오기 전의 어느 시점에서 끝이 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항해 마음을 점점더 완악하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앉은 분들 중 많은 이들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당신은 이 앉아서 구원의 복음을 들으면 들을 수록 그 마음을 더더욱 굳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음의 우상을 더욱 공고히 세우고, 마음의 구상을 따르는 일에 점점더 몰두하기만 합니다.
저는 은혜의 날이라고 불리우는 날을 몇 개의 시기로 나누겠습니다.
1. 젊은 시절
왜 그런지에 관해선 주제넘게 설명을 늘어놓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를 따라, 젊은 시절을 구원받기에 가장 좋은 시절로 정해 놓으신 듯합니다. 이는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고, 또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시대나 지나간 시대를 살펴보면, 큰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는 항상 젊은이들의 회심의 물결이 있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는 뉴잉글랜드의 부흥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언급을 했고, Robe도 1742년 Kilsyth에서 일어난 부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동일한 진술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젊은이들은 어렵지 않게 마음을 낮추고 회개를 하는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 가운데 완악한 마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간구하노니, 청춘을 아무 일 없이 그냥 보내지 마십시요. 아직 마음이 젊고 부드러운 그 시절에 주를 부르십시요. 뒤로 미루면 미룰 수록 당신의 마음은 더더욱 완악해질 뿐이고,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구원을 받기가 더더욱 힘들어집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인들을 어느 연령에서든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특별히 젊은 시절을 많이 선택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어린 아이들의 찬송을 좋아하십니다. 주님은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 듣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아직 젊은 때에 주님을 찾으십시요. 주를 찾을 만한 때에 그분을 부르십시요. 구원받지 못한 채 청춘을 다 보낸 뒤, 후일 지옥에 가게 된다면 당신은 무심히 지냈던 젊은 시절을 후회할 것입니다.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2. 복음이 집중적으로 전파되는 기간
이 또한 특별한 은혜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기간을 통해 특별히 많은 은혜를 베푸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때로 어느 장소나 활기찬 사역이 행해지는 기간을 만드셨다가는, 그 다음에는 냉랭한 기간을 만드시는 듯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한때 신실한 복음 전파 활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수해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화평을 전파했습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파송된 주의 사자들은 그들 가운데 서서 화평을 전하고, 왕국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혜의 기간이 지나자, 보십시요, 자신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 기간 이후로 선한 소식들은 그들의 눈으로부터 숨겨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역시 제 앞에 있고, 또한 은혜의 날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이 날을 아무 일 없이 그냥 보내시렵니까? 오 죄인이여, 하나님의 진노를 머리 위에 그대로 머무르게 한 채로 새로운 해를 맞이할 작정입니까? 이 제 몇 시간만 지나면 이 해는 끝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다음해가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중 많은 사람들의 목전에 마지막 원수(사망, 고전15:26)가 다가서 있으며, 그들은 얼마 안 가 복음이 끊임없이 전파된 올 한해 동안 왜 구원을 받지 못했는가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십시요!
3. 성령님께서는 특정한 지역에 은혜의 날을 만들기도 하십니다.
이런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왕국으로 몰려 들어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간에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 당신이 바로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올 한 해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 중 많은 이들이 이 호기를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예레미야 8:20은 바로 여러분들같은 사람들을 위해 기록하신 말씀입니다.『여름이 끝나고 추수가 지났어도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도다』(렘 8:20).
죄인들이여! 당신들은 지극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의 날은 곧 끝이나고 말 것입니다. 그 시기를 놓지고 구원받지 못한 채 사선(死線)을 넘게 된다면, 당신은 가련하고 비참한 존재로 영원을 지내야 합니다! 조금의 지혜라도 있다면, 부디 은혜로운 초대의 날을 그냥 흘려 보내지 마십시요!
3) 그리스도께서는 그 어떤 완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구원하실 의향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께서 가까이 오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울며, 말씀하시기를 "적어도 이 너의 날에 너만이라도 너의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너의 눈에서 감추어 졌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자신이 죄인들을 기꺼이 구원하실 의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두 가지 증거를 남기셨습니다.
하나는 그분의 눈물이고, 또 하나는 그분의 말씀입니다. 이 눈물은 가식이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직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만을 하시는 분의 음성으로 타고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주님에게서 거짓이 나올리는 없습니다. 주님은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너의 눈에서 감추어 졌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소망이 무너졌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그분의 위대한 사랑과 온유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혼들을 향한 사랑으로 말미암은 연민으로 애를 끓이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분의 욕망은 진실된 욕망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 가운데 놓여 있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그들의 말을 경멸했습니다.
주님은 또한 그들이 곧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손이 자신의 피로 붉게 물들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함에도 주님은 그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는 심판을 내다보고 있었고, 얼마 안 있어 그들이 지옥으로 끌려 내려갈 것임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우시며 부르짖으셨습니다.
『적어도 이 너의 날에 너만이라도 너의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너의 눈에서 감추어 졌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셨다면, 그분은 분명 여러분들 중의 몇몇 때문에 예전처럼 그렇게 우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빛과 사랑을 거부하고 죄를 지으면서, 지난 한해를 성령께 반항하며 모두 보내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그분의 사역자들에게 어떻게 저항했던 가를 알고 있으며, 당신의 반역을 알고 계시며, 그분의 친구들의 집에서 주님을 상심시켰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만이라도 너의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조인이여 돌이키십시요. 다음 한 해가 지나기 전에 고통 중에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될 지도 모를 죄인들이여, 어서 멸망에서 몸을 피하십시요. 거짓말하지 않는 그분께서는 당신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멸망한다면 당신의 피는 당신의 머리 위에 머무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기꺼이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분은 어느 누구도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분께 나아와 생명을 얻게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원하셨다면, 예루살렘은 왜 구원하지 못하신 거죠?" 제 대답을 이렇습니다. "그 대답을 알고 싶으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십시요." 주님이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드는 건 저나 여러분에게 속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열망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대서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죄인들이여, 간구하노니, 좁은 문으로 들어오십시요. 많은 이들이 이미 그 문을 통과했습니다. 당신은 왜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까? 당신의 부모나 아이들, 혹은 아내나 남편은 이미 그 문을 통과했는데, 왜 당신은 뻗대고 앉아 있는 것입니까? 현명한 사람이 되십시요.
이 밤이 다가고 나면, 당신은 구원받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 새해에는 이 자리에 다시 앉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복음의 메세지를 경멸하고 있군요. 당신은 자신이 하는 일을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오 죄인이여! 당신들을 보고 있자니, 자는 지금 눈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스스로를 숙고해 보십시요. 왜 계속하여 진노의 자녀로, 하나님의 원수로, 그리고 지옥의 상속자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오, 내 머리가 물이고 내 눈이 눈물의 샘이라면 내가 내 백성의 딸의 살륙으로 인하여 밤낮 울리라!』(렘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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