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재발견―③독일] 교회 벽 넘어 유럽 다민족 신앙공동체 일군다
[2008.12.16 17:56] | ||
![]() "내 딸아, 내 딸아, 건강해야 돼. 에미는 너를 믿는다." 1972년 봄 어느날. 간호사 100여명이 사랑하는 가족과 배웅객을 뒤로 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울음바다가 된 김포공항의 광경을 지켜보면서 함께 독일로 향했던 이사라(59·UBF 독일선교사) 간호사는 이국 땅에서 동고동락할 동료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 영혼들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외롭고 힘든 그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받을 수 있도록 저를 사용해 주세요." 올해로 한국을 떠난 지 36년째 되는 그녀는 간호사, 주부, 선교사로 1인 3역을 소화하며 지금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선교사가 살아온 지난날은 40여년전 독일에 정착해 일과 신앙생활을 병행하면서 디아스포라의 지경을 넓혀갔던 한인 크리스천들의 삶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독 디아스포라의 자화상=지난해 말 현재 독일거주 교민은 3만5000명선. 현지 한인 교계에 따르면 이들 교민 가운데 기독교인은 대략 70%인 2만5000명 정도다. 한인거주 비율이 높은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베를린,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등지에 한인교회가 많이 자리잡고 있다. 쾰른 한빛교회(박정동 목사), 뒤셀도르프 순복음교회(김광덕 목사),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김현배 목사)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독일의 한인 교회들은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 비해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김동욱(라인란드지방 한인교회) 목사는 "독일이 정책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당 교인수는 많으면 400∼500명, 적으면 100명 내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인 성도들은 독일(당시 서독)과 한국의 정책에 따라 주로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취업을 위해 건너온 광부와 간호사들과 그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 식당주인이나 소규모 자영업자, 유학생과 상사 주재원 등도 포함돼 있다. 재독 한인교회 성도들의 연령분포를 보면 60대와 20∼30대가 대부분이다. 반면 40대는 상대적으로 적다. 30년 넘게 독일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나기호(58·부퍼탈 한인선교교회) 목사는 "60∼70년대 밀려들었던 취업세대 이후로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을 제외하고 거주 목적으로 독일에 건너온 이주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독일 한인교회에는 1세대와 그들의 자녀가 대부분이고, 핵심 일꾼층이라고 할 수 있는 40∼50대의 성도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인 교회들은 기독교 재독한인교회협의회를 비롯해 지역별로 교회협의회 등을 조직해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지친 영혼의 구원자,두려움없는 선지자로=재독 한인 디아스포라의 본격적인 출현은 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광부와 간호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60년대 초반 당시 서독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시급했다. 탄광개발을 위한 광부가 필요했고, 아울러 부족한 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간호사 인력도 절실했다. 이 같은 상황은 경제성장에 목말라하던 당시 국내 사정과도 맞아떨어지면서 독일로의 인력수출의 길이 열렸다. 초창기 한인교회의 역할은 한인광부와 간호사들, 이른바 '나그네'들을 위한 교회로서의 역할이 컸다. 한인들의 거주지역을 파악하고, 예배장소를 정해 함께 예배를 드리거나 신앙상담을 하는 일도 교회의 중요한 몫이었다. 직장 계약문제와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활동도 병행했다. 한인 근로자들에게 교회는 육체적 쉼터이자 영혼의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당시 광부와 간호사들 간에는 사랑이 싹트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김동욱 목사는 "노동계약기간(3년)이 만료되기 수개월 전쯤 토요일에 결혼 주례를 하루에만 4차례 선 적도 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독일 한인교회들은 민주화·통일운동의 불꽃이 일던 곳이기도 하다. 70년대 중반, 당시 한국사회는 '반공' 정치가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다. 유신독재 체제에서 교포 사회 분위기도 삼엄했다. 하지만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보호, 사회정의를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인교회에 대한 감시가 날로 심해졌지만, 선지자적 사명을 꿋꿋이 감당해 왔다. ◇다민족 신앙공동체의 첨병으로= 유럽지역 한인 목회자들은 올 초 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에서 '건강한 유럽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라는 주제로 지난해에 이어 '유로비전 포럼'을 개최했다. 유럽의 영적 각성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를 두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자리였고, 이 같은 모임은 매년 이어질 예정이다. "한인 교회의 벽을 넘어서 유럽에 흩어진 다민족 공동체를 통해 신앙공동체를 일궈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재독한인교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김동욱 목사는 향후 재독한인교회의 과제를 '다민족 신앙공동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차세대 한인 크리스천들이 한국인 특유의 영성과 신앙적 열정을 독일사회와 유럽에 전파하는 사명을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뒤셀도르프·쾰른=글·사진 박재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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