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삶/이상갑목사

꿈이 있는 청년 신효범장로님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1. 14. 13:07

꿈이 있는 청년을 신효범장로님과 함께하는 집회에 초대합니다.

 

 

러빙유를 앞두고 다음 주간에 청년부 예배때 신효범장로님을 모시고 집회를 합니다. 1시 50분부터 오후 2시부터 40분간 간증을 하실 예정입니다. 기대하면서 초청할 친구들, 공동체에서 멀어진 지체들을 초대해서 함께했으면 합니다.  

 

1935년 경기 파주에서 태어난 신호범 美워싱턴주 상원의원은 4살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돼 졸지에 고아로 전락했다. 일제 말기무렵인 1939년부터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에서 노숙하며 살았다. 그의 인생은 6.25 피난길 한강다리에서 우연히 미군트럭에 탔다가 미군부대에서 잡일을 하는 '하우스보이'로 생활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됐다. 그는 일이 끝나면 외로움을 못이기고 산에 올라가 혼자 울곤 했는데 우연히 이를 본 '레이 폴'이라는 미군 장교에게 입양됐다.

신 의원은 "그때 그의 포옹과 입양이 나의 인생을 새롭게 출발시켰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인간 차별에 대한 설움과 증오 때문에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18세에 미국으로 떠났지만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나의 뿌리를 다시 찾게 됐다"고 말했다. 양아버지 '레이 폴'은 신 의원이 우울해 하고 난관에 봉착해 있을 때마다 "My son, I belive in you(나의 아들아, 나는 네가 무슨이든지 잘해낼 것으로 믿는다.)"라며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독학으로 1년6개월 만에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이후 브리감영 대학을 마치고 펜실베이니아대와 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 및 동아시아학 석·박사 학위를 따내고 강단에 섰다.

대학교수로 만족할 수 있었던 그가 정치인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는 인종차별이었다. 1958년 군복무 시절, 텍사스의 한 식당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뒤 반드시 정치인이 돼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신 의원은 30대 중반에 워싱터주립대 서두수 교수(작고·한국학)에게 찾아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임을 자각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 교수에게서 3년간 한국어를 배운 그는 "박사님이 한번은 춘향전을 번역해 오라고 했는데 정말 진땀을 흘렸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이를 통해 한국어 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더욱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1993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오른 그는 98년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이어 재선, 그리고 3선의원이 되면서 부의장직에 올랐다. 신 의원은 98년 상원의원 선거 당시 7만2000가구의 유권자를 일일이 방문했다. "당시 동양인이 정치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백인들도 많았지만 광활한 지역을 일일이 돌며 한표를 부탁하는 정성에 감명을 받은 유권자들이 나에게 표를 몰아줬다"고 말했다.

그는 하원의원이 되고 나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조성안'을 통과시켰다. 미군 5만명이상이 한반도에서 피를 흘린 보은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캐나다에서는 교민들이 한국인에게 헌신한 스코필드박사 추모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상원의원으로 있으면서 한미관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74년 동양학 교수 재직시절 워싱턴 주지사의 통상무역 통역관으로 일을 하게된 게 계기였다. 현재는 국제무역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미FTA체결에 많은 도움을 줬고 무역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신 의원의 이같은 활동으로 2003년 전미국 최고 해외이민자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재외동포재단에서 선정하는 '자랑스런 한민족'에 1호로 뽑혔다.

 


 

꿈이 있는 청년을 위해 기도하며

이상갑목사 

 

 

 

 

청년부 예배: 무학 청년과 함께하는 신호범 상원의원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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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 청년 예배

 예배 시작: 1:50 본당 (꼭 기억해 주세요.)

 신호범 상원의원 간증: 2:00-2:40

 미리 와서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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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부랑아서 美주요정치인물로 '우뚝'

신호범 美워싱턴주 상원의원이 걸어온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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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경기 파주에서 태어난 신호범 美워싱턴주 상원의원은 4살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돼 졸지에 고아로 전락했다. 일제 말기무렵인 1939년부터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에서 노숙하며 살았다.

그의 인생은 6.25 피난길 한강다리에서 우연히 미군트럭에 탔다가 미군부대에서 잡일을 하는 '하우스보이'로 생활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됐다. 그는 일이 끝나면 외로움을 못이기고 산에 올라가 혼자 울곤 했는데 우연히 이를 본 '레이 폴'이라는 미군 장교에게 입양됐다.

신 의원은 "그때 그의 포옹과 입양이 나의 인생을 새롭게 출발시켰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인간 차별에 대한 설움과 증오 때문에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18세에 미국으로 떠났지만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나의 뿌리를 다시 찾게 됐다"고 말했다.

양아버지 '레이 폴'은 신 의원이 우울해 하고 난관에 봉착해 있을 때마다 "My son, I belive in you(나의 아들아, 나는 네가 무슨이든지 잘해낼 것으로 믿는다.)"라며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독학으로 1년6개월 만에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이후 브리감영 대학을 마치고 펜실베이니아대와 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 및 동아시아학 석·박사 학위를 따내고 강단에 섰다.

대학교수로 만족할 수 있었던 그가 정치인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는 인종차별이었다. 1958년 군복무 시절, 텍사스의 한 식당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뒤 반드시 정치인이 돼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신 의원은 30대 중반에 워싱터주립대 서두수 교수(작고·한국학)에게 찾아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임을 자각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 교수에게서 3년간 한국어를 배운 그는 "박사님이 한번은 춘향전을 번역해 오라고 했는데 정말 진땀을 흘렸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이를 통해 한국어 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더욱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1993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오른 그는 98년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이어 재선, 그리고 3선의원이 되면서 부의장직에 올랐다. 신 의원은 98년 상원의원 선거 당시 7만2000가구의 유권자를 일일이 방문했다. "당시 동양인이 정치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백인들도 많았지만 광활한 지역을 일일이 돌며 한표를 부탁하는 정성에 감명을 받은 유권자들이 나에게 표를 몰아줬다"고 말했다.

그는 하원의원이 되고 나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조성안'을 통과시켰다. 미군 5만명이상이 한반도에서 피를 흘린 보은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캐나다에서는 교민들이 한국인에게 헌신한 스코필드박사 추모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상원의원으로 있으면서 한미관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74년 동양학 교수 재직시절 워싱턴 주지사의 통상무역 통역관으로 일을 하게된 게 계기였다. 현재는 국제무역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미FTA체결에 많은 도움을 줬고 무역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신 의원의 이같은 활동으로 2003년 전미국 최고 해외이민자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재외동포재단에서 선정하는 '자랑스런 한민족'에 1호로 뽑혔다.

◇신호범(폴신) 美워싱턴주 상원의원 약력

-1935년 경기도 파주시 금촌 출생

△ 현직
-워싱턴 주 상원 부의장 (2006 워싱턴 주 상원의원 3선 당선)
-국제무역 경제발전위원장
-농림·교육분과 부위원장
-한미정치교육 장학재단 이사장
-센츄럴 위싱턴 주립대학이사
-세계입양아협회 고문
-세계 한인무역협회 고문
-서울특별시 명예시민

△ 경력
-하와이대학 쇼어라인 대학, 메릴랜드대학, 워싱턴주립 대학등에서 31년간 교수로 재직
-워신턴주 무역고문
-워싱턴주 한인회장
-평화통일 자문위원회 서북미지역 회장


△학력
-브리감영대학
-핏츠버그대학
-워싱턴주립대학 동양학 박사
-건국대학교 명예 정치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 명예 정치학 박사
-군산대학 명예 정치학 박사
-조선대학 명예 정치학 박사

△수상
-KBS가 선정한 해외동포특별상(자랑스러운 한국인)
-2003년 전미국 최고 해외 이민자상
-최우수 상원 의원상
-세계 YMCA 공로상
-재외동포재단 자랑스러운 한민족 선정

△저서

-역사의 기적
-일본제국주의의 만주 침략정책
-공부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자전에세이)
-Price of Freedom
-사랑하며 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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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은 특별한 시간으로
청년들과 함께 합니다.

 

무학 청년들에게

믿음과 용기와 꿈에 대한

도전을 주실 한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신호범장로님입니다.

 

사랑하는 무학 청년들이  

기도하면서

기대하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집회가 청년의 가슴에 불을 던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공동체 지체들이 함께 꿈과 비전을 나누고
주변의 격려가 필요한 지체들을 초청하고
전도하고 싶은 VIP을 초대해도 좋습니다.
 

 

청년의 꿈을 응원하는

이상갑목사

 

 


 


 


 


5월 25일은 러빙유입니다.

 

기도하면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학 청년사역부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