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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는 길]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1. 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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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레이디경향 | 기사입력 2008.11.10 09:31

 


삶이 뭔지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면 사막 여행을 추천한다. 사막에는 치열한 생과 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혜안을 지닌 사막 여우를 만나면 어린 왕자처럼 인생의 해법을 얻을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사막 능선
눈앞에 펼쳐지는 내셔널지오그래피!


십수 년 여행 기자를 하다 보니 가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 중 하나가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이다. 하필 그 많고 많은 곳 중에서 왜 사막이 좋으냐고? 사막이란 곳은 생명과 죽음이 교차한 접점이다. 허허롭고 황량하며 삭막한 모래언덕에 핀 꽃들을 볼 때에는 생명이 이렇게 질기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온다. 삐쩍 말라 죽어버린 고사목의 주검 앞에서는 생명의 무상함에 고개를 떨구기도 한다. 그래서 사막은 사막 자체도 아름답지만 생명붙이들에 대한 경외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게다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막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고르라면 단연 아프리카의 나미브 사막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피」 같은 이름난 잡지에서 붉은 사막을 오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거기가 나미브다. 빨간 모래밭을 컴퓨터로 조작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로 빨갛다. 그래서 이곳에서 CF도 많이 찍는다.

나미브 사막에 가려면 일단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가야 한다. 남아공에서 비행기를 타고 빈트훅 공항까지 다시 날아간 뒤 차로 6시간 정도 달려야 한다. 빈트훅 시내까지만 포장이 돼 있다. 나머지는 비포장이다. 나미비아 고원과 평원을 통과하는데 끝없이 이어진 목초지와 광활한 사바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사바나는 사막 기후와 열대우림 기후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 지역은 강수량은 적지만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나뉜다. 억새처럼 보이는 키 큰 풀과 아카시아가 많이 자란다(한국의 아까시 나무와는 종이 다르다).

이런 사바나 지역은 야생동물의 서식처이다. 야생동물은 '동물의 왕국'에서 보듯 허허벌판에 살지 않는다. 이런 숲 속에서 풀을 뜯고 산다. 스프링복이나 오릭스 같은 초식동물은 쉽게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표범류도 볼 수 있다.

나미브 사막까지 이어지는 길목엔 마을은 거의 없다. 나미브 사막 1시간 못 미쳐 있는 솔리테리(뒷페이지 사진4)가 눈에 띄는 마을이다. 솔리테리는 하나의 영화 세트장 같다. 부서져버린 작은 자동차, 주유소 주유기를 여기저기 배치한 마을의 느낌은 특이하다. 사진광이라면 꼭 한 번 들러서 소품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다. 사진작가 김중만이 사진 작업을 했던 곳이다. 마을은 초라했지만 사람들은 순박하다. 아이들은 관광객들이 올 때마다 손을 흔들어대고, 주민들은 환한 웃음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데드플라이 바닥은 진흙으로 돼 있다.
솔리테리 마을을 지나면 나미브 사막이 나타난다. 공식 이름은 세스리엠 소수스플라이 국립공원이다.

사막이 붉은 이유


여행자들은 사막 리조트에 묵으며 새벽에 여행을 한다. 낮에는 덥다. 기온이 40도 넘게 올라간다. 모래밭은 불을 땐 가마솥처럼 뜨겁다.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선선한 아침에 관광을 해야 한다.

국립공원 지역은 동이 터야 문을 연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붉은 모래밭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햇살이 닿는 부분은 새빨갛고, 그늘진 부분은 새까맣다. 양지는 붉고, 음지는 검다. 양지와 음지가 칼처럼 나뉜다.

사막 투어는 가이드를 잘 만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다행히 기자를 안내한 가이드 요한은 독일계로 오랫동안 사진작가를 안내해온 베테랑이었다. 이곳저곳의 모래언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요한이 데리고 간 첫 번째 모래언덕 능선은 S자 라인이 아름다웠다.

대체 왜 이렇게 모래가 붉을까?
"현미경으로 모래알을 들여다보면 모래 알갱이의 95%는 쿼츠(석영의 종류)고, 나머지는 금속이죠. 금속이 산화되면서 붉은 색을 띠는 겁니다."



나미브 사막과 고사목. 사막에선 생명들이 벼락같이 피었다 벼락같이 진다.
모래가 뜨거운 햇살에 산화, 즉 속까지 타버린 것이다. 모래언덕 주변에는 힘겹게 뿌리를 박고 있는 가시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만 살아남았다. 주변에는 죽고 말라서 기둥이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는 나무들도 보인다.

경비행기 위에서 보는 절경


이런 모래언덕은 몇 개나 될까? 사막 지역은 16만5000㎢로 우리 국토의 두 배가 조금 못된다. 이 중 국립공원 지역은 8만㎢, 모래언덕이 있는 사막은 3만㎢다. 모래언덕 지역만 한국의 3분의 1이나 된다.

모래언덕에도 이름 대신 번호가 붙어 있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붙인 것이다. 가장 유명한 곳이 '듄 45'다. 공원 입구에서 딱 45㎞ 떨어져 있다. 관광객들은 공원에서 사막까지의 거리 때문에 45㎞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자들이 붙인 번호가 거리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듄 45는 150m다.

듄 17의 높이는 375m로 약 60층 빌딩의 높이다. 별명은 빅 대디(Big Daddy: 아빠).

듄 45는 나미브 여행자에겐 랜드마크다. 칼 같은 능선을 밟고 꼭짓점에 서면 나미브 사막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휘어진 모래 능선도 아름답다. 꼭짓점까지는 걸어서 약 20분이 걸린다.

정상에서 본 모래 능선은 겹겹이, 층층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모래언덕이 대서양의 일렁이는 파도처럼 많다.

듄 45에서 약 50㎞ 떨어진 대서양까지 이어진다. 듄의 각도는 완만한 쪽이 15~20도, 급경사가 32~35도다.

1억3500만 년 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분리됐다. 7500만 년 전부터 급격한 풍화가 시작됐고, 1500만 년 전부터 사막화가 진행됐다. 현재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500만 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이다. 새벽에는 기온이 0도까지 떨어지고, 오후 2~3시쯤이면 40도, 지표 온도는 70도까지 올라간다. 수천만 년 동안 이런 급격한 온도 차로 인해 나무도 부서지고, 바위도 가루가 된 것이다.



나미브 사막으로 가는 비포장도로
이 사막은 점점 커지고, 두터워지고 있다. 나미브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년 40만㎥의 모래를 사막에 퍼 나르고 있다. 그래서 오래전에 침몰된 배가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되기도 한다. 경비행기 투어를 하면 모래 능선이 얼마나 광활한지 알 수 있다. 벵겔라 해류는 연중 15도 안팎이고, 모래는 뜨거워 해안에는 늘 안개가 가득하다. 먼 옛날 나미비아 서해안으로 들어왔던 배들은 이 안개 바다에서 수없이 난파됐을 것이다.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했더라도 끝없는 사막에 기가 질렸을 법하다.

말라버린 그러나 아름다운 호수


모래언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듄 45라면 말라버린 호수인 데드플라이(Deadflei)도 숨이 멎을 듯 아름답다. 이름 자체가 죽은 웅덩이란 뜻이다. 죽은 나무 수백 그루가 촘촘히 박혀 있는 데드플라이는 나무들의 공동묘지처럼 보인다. 바닥은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진 회색으로 붉은 모래언덕과 대조를 이룬다. 고목엔 새집이 있었다. 새 한 마리가 관광객들을 경계하며 선회비행을 했다.

자세히 보면 바닥이 다르다. 붉은 모래밭이 아니라 하얀색 점토 바닥이다. 금까지 쩍쩍 갈라져 있다. 그리고 주위를 빙 둘러 모래언덕이 둘러막고 있다.

"이건 진흙입니다. 옛날엔 이곳에 강이 흘렀어요. 그런데 400~500년 전 모래가 쌓이면서 강이 끊긴 거죠. 이 고목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은 나무들입니다. 이런 곳이 서너 개 돼요."

사막에선 모래가 강도 죽인다. 180㎞ 떨어진 나우클루프트 산에서 흘러내린 타우합 강은 땅이 꺼져 생긴 협곡으로 흐르다가 데드플라이 인근에서 뚝 끊긴다. 이 강은 지하로 스며들어 바다까지 간다.



1 나미브 사막 가는 길에 만난 카우보이. 2 빈트훅 시내에서 만난 아이. 남아공보다 빈트훅이 안전하다. 3 솔리테리 마을 입구. 다 부서진 차와 주유기가 오히려 정겹다.
그럼 사막엔 물 한 방울 없을까? 사막에도 비가 내린다. 다만 적게 내릴 뿐이다.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은 곳이 사막이다. 비가 내릴 때는 풀도 자란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풀씨들이 웅덩이에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 도마뱀도 살고, 개미와 풍뎅이도 물 때문에 산다. 연강수량은 75㎜. 이럴 땐 웅덩이에도 물이 고인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물은 며칠 못 가서 증발해버리고 만다. 벼락같이 풀들이 피어났다가 벼락같이 지고 만다. 풀을 찾아서 오릭스와 스프링복들이 무리를 지어 찾아왔다. 비록 금세 말라버릴 풀들이지만 사막에서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생명붙이들에게 찬사를 보낼 만하다.

사막은 삶과 죽음의 경계다. 피었다 시들고, 일어섰다 쓰러지는 생명들이 가득하다. 한 알의 모래도, 한 움큼의 풀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사막은 생명을 잉태하고, 그 주검도 껴안는다. 생과 사의 모래 능선 위에 서보면 세상에 지루한 삶이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막은 '모든 삶은 그렇게 치열하다'는 교훈을 준다.



나미브 사막 가는 길에 만난 스프링복.
사막 구경 뒤에는 인근 소수스플라이 협곡도 둘러본다. 산에서 흘러온 강줄기가 땅을 파고 흐른다. 한탄강과 비슷하게 생겼다. 흙은 푸석푸석한 이암. 마이산의 흙더미와 비슷해서 강물에 쉽게 깎였다. 움푹 패 있는 협곡은 생김새도 기기묘묘하다. 사막 아래 이런 별천지가 있나 싶다. 한 번도 물은 넘치지 않았다고 한다. 산에 비가 많이 오더라도 중간쯤 차오르는 게 전부다. 사막 지역이라 수량은 많지 않지만 동물들에게는 오아시스다. 늠름한 돌산과 동물이 숨은 사바나, 바람에 깎인 모래 능선, 찬란한 양지와 새카만 음지, 강렬한 광선, 독특한 생물…. 나미브 사막은 신비 그 자체다.

■여행 길잡이■


남아공항공(02-775-4697)이 홍콩을 거쳐 요하네스버그까지 간다. 서울~홍콩 3시간 30분. 홍콩~요하네스버그는 13시간 30분. 다시 나미비아 빈트훅 공항까지는 약 2시간. 한국보다는 8시간 느리다. 사막은 늘 덥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밤중에는 0도까지 떨어지고 낮에는 40~50도까지 오른다. 따뜻한 옷이 필수. 우기는 보통 10월에서 4월까지인데 사막 지역은 연중 10~15일 정도밖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모래 언덕을 오를 때에는 샌들보다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지표 온도가 70도까지 올라가 발에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막에도 리조트가 많다. 사막 리조트는 주로 바닥을 시멘트처럼 단단한 것으로 만든 뒤 위에 텐트를 친 게 많다. 사막 투어 프로그램 중 세스나 비행과 열기구 투어가 있다. 세스나는 한 시간에 우리 돈 30만~50만원, 열기구는 더 비싸다. 하지만 모래사막을 가장 잘 볼 수 있어 꽤 인기가 높다. 인터아프리카( www.interafrica.co.kr/02-775-7756 )

■ 글 & 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