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세상읽기

불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륜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입니다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0. 26. 08:40

바람 안 피우세요?

2008년 10월 25일(토) 12:57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김학현 기자]몇년 전 서울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친구 부부가 휴가 중이라며 북한강변의 한 모텔에 머물고 있다고 전화가 와 가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늦기는 했지만 아침을 같이 먹자고 해 모텔로 갔는데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차장에 서있는 차들의 번호판이 하나같이 판자로 가려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아내와 함께 차에서 내리자 종업원인 듯 싶은 아저씨가 달려오더니 번호판을 가리는 겁니다. 그냥 두라고 하고 친구를 기다린다고 하니, 그러냐며 물러섰습니다.

차량 번호판을 가린 판자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사회의 불륜 현장의 상판대기? 차량 번호판을 가리고야 모텔에 들어갈 수 있는 관계라면 뒤가 구린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그들의 불륜이 가려지는 걸까요? 친구 부부와 만나 대화를 하다가 그 얘기를 했더니 웃으며 그러더군요.

"우리 차도 그렇게 했거든. 우리 엊저녁부터 애인하기로 했어. '애인 같은 아내', 뭐 그런 말도 있잖아? 번호판 가린 애인, 어때?"

그 후로 이런 진풍경이 자주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대부분 모텔에는 입구에 주차장 안이 안 보이도록 발이 쳐져 있습니다. 심지어 요샌 최신식 무인시스템이란 게 있습니다. 들고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주인도 모르게 한 결제 시스템이죠. 왜 그런 시스템이 필요한 걸까요?

"아직 애인 없으세요?"

요즘 들어 무인결제시스템을 장착한(?) 모텔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 김학현



몇년 전 문학인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부 참석이 가능한 모임이었습니다. 회원 중에 한 사람이 미모의 여인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전 물론 부부 사이라고 생각했죠. 이미 모여 있던 회원들은 미인이라고 칭찬의 말을 했습니다. 저도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사모님이 참 미인이십니다. 두 분이 닮기도 하셨고요. 부부는 같이 살면 닮는다는데…."

그랬더니 옆에 앉은 한 회원이 제 무릎을 툭 치는 게 아니겠어요. 영문을 모르는 저는 옆에 있는 회원에게 "왜 그러느냐"라고 물었죠. 회원은 자꾸 입에 손가락을 갖다대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습니다. 하도 그러기에 더 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그렇게 모임이 끝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인은 그의 아내가 아니고 애인이라고 했습니다. 50대 문인의 애인이라. 그럼, 아내가 없냐고요? 나중에 다른 회원에게 물어보니 짓궂게 웃으며 그럴 리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 애인에 버금가는 미인인 부인은 집에 있을 거랍니다.

그 때 옆에 있던 회원이 귓속말로 제게 한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요? 김 형은 아직 애인 없으세요?"

그 옆의 회원이 한술 더 뜨며 내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한 사람 소개해 드릴까요?"

그냥 허탈하게 껄껄 웃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협박' 전화에 순순히 돈 보낸 공무원들



남편의 불륜과 그로부터 고통받는 아내들을 소재로 한 SBS 드라마 <조강지처클럽>
ⓒ SBS 홈페이지



지난 20일 신문들은 일제히 공무원들에게 무작위로 전화해 "당신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다,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전화를 걸어 금품을 갈취한 공갈범을 검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경찰에 의하면 용의자 김씨 등은 인터넷에서 입수한 신상정보를 가지고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해 공무원이나 공단, 국책연구원 직원 등 14명으로부터 3700만 원을 뜯어냈다고 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화를 받고 실제로 돈을 송금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만큼 제 발 저린 사람이 많다는 것이죠. 과연 '불륜 공화국'입니다. 돈을 준 공무원들은 경찰에서 "잘못한 일은 없지만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싫어 돈을 보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또 이런 뉴스도 있었습니다. 서울중부경찰서는 지난 17일 구의회 의장직 선출을 앞두고 동료 의원에게 성매매 등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중구의회 의원 A씨와 A씨로부터 향응을 받은 것으로 조사된 다른 의원 5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물론 사건의 형태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성의 도구화! 불륜의 일상화! 그렇습니다. 가정보다 섹스가 중요시되는 사회의 단면이죠. 현대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법이나 도덕이 무너져버렸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의 아내(남편)는 바람 안 피우세요?"

주차장 입구에 길게 늘어진 발입니다. 주차장 안에 세운 차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이 장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김학현



아무에게나 무작위로 전화해 "네가 지난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고 큰소리치면 돈을 내놓는 사회. 그만큼 우리 사회에 불륜이 만연하고 있다는 증거이겠죠.

드라마에서는 이미 불륜이 단골 메뉴입니다. 사회의 단면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그리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보통사람의 카타르시스를 대리 보상하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한 성도를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인터넷으로 일을 하다가 인터넷 안에서 애인을 사귀게 되었다고 합니다. 충실한 아내, 다정한 엄마로 살아오다 갑자기 다가온 중년의 사랑(?)에 그 성도는 갈 때까지 갔습니다.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게 안 된다는 게 상담의 요지였습니다. 남편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섹시하고 자상한 애인에게서 ?은 시절의 연애 감정이 다시 일었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둘도 없는 아내요 엄마인 그이기에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원론적인 부부의 도리나 성경의 가정관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요. 요즘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요, 애인 권하는 사회입니다. '젊을 때 한눈팔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불륜 관용어가 통하는 사회입니다. 매체의 발달로 엉뚱한 데 눈 돌리기도 쉬운 시대입니다.

몇 번의 상담, 몇 번의 주변 사람들의 불륜 사건, 이런 일들이 제 주변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걸 보면, 불륜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중년들이 공공연히 애인 이야기를 하는 시대, 모텔의 시스템을 그런 쪽으로 맞추는 시대.

사회가 이리 심각하게 불륜의 늪 속에 빠져 있다면 이제 이렇게 인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아내(남편)는 바람 안 피우세요?"라고. 제발 이런 인사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이중적 잣대가 더 이상 존재하면 안 됩니다.

불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륜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입니다. 불륜에 대한 관용은 암과 같습니다.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죠. 이 '애인 권하는 사회'에서 불륜에 단호한 이단아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