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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72·소망교회 원로) 목사를 설명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설교의 달인’이라는 말이다. ‘설교를 예술적 경지에 끌어올린 목사’라는 평가도 받는다. 설교 뿐 아니라 목회에서도 곽 목사는 누구보다도 성공적이었다. 그는 또 ‘목회의 달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굳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43년의 목회 기간에 새벽기도를 개근한 것이라고 말하는 기도의 사람이다. 1977년 소망교회를 개척한 이후 한국 교회 중심에서 사역하다가 1년여전 은퇴한 곽 목사를 만났다. 곽 목사는 은퇴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주일에 수 차례씩 말씀을 전하며 성도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곽 목사는 매스컴을 타지 않는 목회자로 유명하다. 일간지와는 이번이 최초 인터뷰다. 곽 목사의 목회와 설교에 대해 들어 보았다.
-무척 건강해 보이십니다. 평생 목회를 하시면서 지내셨는데요 목회란 과연 무엇입니까.
△목회는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내가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가 ‘내가 하나님의 양을 기른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의식입니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 타이틀을 땄다고 해서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신다고 인식할 때 부터 진정한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는 교육이나 봉사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쓰여지는 것이 목회입니다.
-목회할 때 가장 치중했던 것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성도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가장 치중한 것은 물론 예배입니다. 경건한 예배를 드리기에 진력했습니다. 설교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시키는 작업입니다. 목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예배를 통해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그분의 뜻을 바로 받들어 응답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면 참다운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바른 응답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체험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매순간 가깝게 체험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 내용을 말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말씀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른 응답이라는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예배,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마다 드려지는 예배를 보시고 어떤 느낌을 가지셨습니까.
△슬프지만 요즘 경건한 예배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침체된 것은 참다운 예배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예배는 사라지고 교회에 노래방만 남았습니다. 예배가 실종됐습니다. 극도로 감성적인 모임만 교회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가 엔터테인먼트화됐습니다. 자기 충족과 자기 축제화의 현상이 넘치고 있습니다. 목사나 성도들은 스스로 흥분이 되면 예배가 되는 것 처럼 오해합니다. 열이 오르면 은혜 받은 것으로 착각합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먹고 마시고 뛰놀았습니다. 인간의 축제와 참다운 예배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한국 교회 예배는 기복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겠다는 결심이 대단합니다. 결국은 잘 안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참다운 예배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경건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정직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참다운 예배자의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감성적인 터치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시대가 변하고 있지 않나요.
△감성적인 예배를 드려서 참다운 부흥이 이뤄진다면 계속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같은 예배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감성터치를 통해 반짝 부흥한 교회 가운데서는 벌써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곳도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조용한 영성을 그리워합니다. 새신자들은 교회내에서 자기 축제를 벌이는 기존의 성도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감성적인 것은 더욱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합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실망합니다. 인간의 프로그램이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정말로 경건한 사람들은 교회에 붙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나는 오히려 감성 터치를 하는 분들이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반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종교 언어는 세속언어가 아닙니다. 세속언어를 따라서 종교언어를 바꾸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것을 구시대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최근 들어 교회마다 새벽기도 운동,셀교회 운동 같은 각종 운동(무브먼트)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인위적으로 실시하는 교회 운동들은 반드시 피곤하게 됩니다. 더 강한 무브먼트를 찾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소망교회는 총동원주일이나 부흥회 등 소위 ‘운동’들을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소망교회 성도들의 45%가 20대와 30대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시끄러운 운동이 없어도 열심히 나옵니다. 한번은 청년들에게 “왜 여기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주일날만은 조용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들은 경건을 찾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것은 경건이 아닙니다.
-새벽기도를 항상 강조하셨다고 하는데요.
△강조한 일 없습니다. 강조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강조하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목사 자신이 새벽에 나가 기도할 때 성도들이 나옵니다. 한번도 새벽기도에 열심히 나오라고 광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교회에는 수천명씩 새벽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습니다. 유감스럽고 섭섭합니다. 정말 성도들이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깊은 체험을 하면 나오지 말라고 해도 새벽에 나옵니다. 자연스럽게 새벽에 나와야 합니다.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배에서 설교의 의미를 말해주시죠.
△설교는 예배를 돕는 것입니다. 설교로서의 예배입니다. 설교는 지식이 아닙니다. 설교가 곧 예배입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예배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가톨릭이 상징으로 예배들 드리는데 비해 개신교는 설교로 예배를 드립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설교가 예배적 설교인지 심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설교가로서 목사님의 설교를 평가해주시지요. 한 마디로 어떤 설교입니까.
△제 설교는 귀납적 설교입니다. 오래전부터 터득했지요. 저의 설교 포인트는 영감있는 설교,창의력 있는 설교,검증된 진리를 설파하는 설교입니다.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깊이 경험하고 간증이 함께 가는 설교라야 감동이 있습니다. 요즘 목회자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를 수집하는데 일단 인터넷에 뜬 정보는 모두 과거의 것입니다.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진 설교는 절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목사들은 검증되지 않은 지식들을 겁없이 사용합니다. 그런 것들은 지식은 주지만 감화와 감동을 주지는 못합니다. 인터넷은 성령을 못 받았지요(웃음). 저는 인터넷 대신 책을 봅니다.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십니까.
△사실 한 편의 주일 낮 설교를 위해서 1시간 정도 준비합니다. 대신 늘 주제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 동안 책을 보거나 생각했던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놓으면 설교가 됩니다. 원고는 조그마한 카드 앞뒤로 메모 형태로 씁니다. 완전 원고를 쓰지 않습니다. 원고에 매이면 전달할 때 자유가 없어집니다. 감동을 주기 힘들게 됩니다. 읽으면 은혜가 없지요. 설교는 성도들의 눈을 보면서 전달해야 합니다.
-바른 설교란 어떤 설교입니까.
△바른 설교는 복음 설교입니다. 설교자는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속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바로 증거되면서 듣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요즘 설교자들은 은혜보다는 율법적인 설교를 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조차도 율법적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복음적인 설교를 해야 합니다. 목사들은 설교를 통해 지식을 주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를 알아서 무슨 도움이 됩니까? 교인들은 ‘제발 결론만 빨리 이야기해 주시오’라고 말합니다. 설교는 ‘오늘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는 해석이 아니라 적용입니다.
-설교가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해결책은 없을까요.
△인간은 감동된 것만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억된 것으로 실천하지 않습니다.목사가 성도들에게 말씀으로 감동을 줘야 합니다.
-설교하면서 좌절했던 순간들은 없습니까.
△한번도 설교하다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지식을 주려고 생각하면 좌절합니다. 복음만 주려고 생각하면 좌절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은무엇입니까.
△인생은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그분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대담=이태형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