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삶/설교자

[스크랩] 하용조목사님을 떠나 보내며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11. 8. 9. 10:31

 

 

 

장례식 발인 예배시 나의 소중한 은사이신 김상복교수님의 추도사

 

 

 

                                                         10년전에 하용조목사님과 함께 무학교회 교역자들

 

 

 

하용조목사님 마지막인 발인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나 어느날 꿈속을 헤메며~ 찬양으로 환송하였습니다.

 

목사님 은 썩어 없어지는 인생이 아닌 닳아 없어지는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선교적 삶, 사역, 교회를 보여주신 꿈꾸는 자였습니다. 목사님의 꿈의 열매들은 저희 세대에게 주신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와 다음세대가 사도행전 29장을 계속 기록했으면 합니다. 신학생목회훈련 1기로 훈련받을때 열정과 꿈을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ㅡ하용조목사님 발인예배를 다녀와서ㅡ

 

 

 

"인간의 건강은 바람과 같습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삶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쁘지만 즐겁고 흥분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사세요."

 

- 하용조 목사님 생전 마지막 트위터 메세지- 

 

 

 

 

 

정치의 길과 목회의 길... 제 인생의 갈림김에서 두 목사님과 토론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세상 속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고 하용조 목사님은 세상 속에 제대로 머물기 위해 신학을 권면해주셨습니다. 하목사님은 제게 신학을 마치면 함께 일하자고 초청해주셨고 지난 4년 남짓 가까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세상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과 다른 점은 한 가집니다. 내가 너무 중요해서 목숨걸고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걸고 일하는 것의 차입니다. 전자는 속도가 먼저고 후자는 방향이 먼접니다. 나 때문에 목숨 건 일은 죽음의 길이고, 사람 사랑해서 목숨 거는 일은 생명의 길입니다. 생명길을 보여 주신 분과 그 분의 꿈을 저는 함께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 꿈은 가슴에 묻히기만하면...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열매가 됩니다. 그리고 참! 제가 깨달은 것은 참 정치는 목회이고 거짓 목회는 3류정치라는 것입니다. ^^

 

- 조정민 목사님 페북에서-

 

 


[미션라이프] “그는 꿈을 만들고 나누고 주었던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4일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서 진행된 고 하용조 목사 천국환송예배에서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하 목사를 이렇게 평했다. 이 목사는 3일간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으면서 하 목사에 대한 회고를 아껴왔다.

그는 이날 요셉의 이야기(창 49:22)를 주제로 설교하면서 하 목사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그는 중간중간 울먹이기도 했지만 시종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으며 천국에 들어간 하 목사를 그리워했다.



이 목사는 먼저 “하 목사는 성경 인물 중 요셉을 가장 많이 닮았다”며 “그는 ‘무성한 열매 인생’이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그는 개인적 고통과 고난의 세월을 보냈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견지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 “하 목사는 인리치(in reach)의 사람이었다”며 “평생 세계 선교를 위해 아웃리치(out reach) 활동을 했지만 그의 내면엔 인리치, 즉 샘 곁에 있었다”고 말했다.



“하 목사는 복음주의권에서 성령을 사모했던 목회자였고 성령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럼에도 말씀 묵상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말씀과 성령은 그의 샘이었습니다. 그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는 말씀묵상을 한국교회에 보편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는 회고하기를, “하 목사가 70년대 후반 몸이 아파 영국에 갔을 때 존 스토트 목사를 만나 말씀의 균형을 배웠다고 자랑하던 때가 생각난다”며 “하 목사는 말씀의 균형으로 교회를 세우고 이를 통해 사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 목사는 담을 넘는 선한 영향력의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지역교회와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 선한 영향력을 남겼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됐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가스펠 ‘야곱의 축복’은 하 목사 인생을 요약한 노래”라며 “수고 많았어요. 감사해요” 하며 설교를 마무리했다.



글=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사랑하고 존경하는 하목사님께

저는 목사님께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목사님이 이 땅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저를 무척 힘들게 합니다. 저는 목사님을 직접 대면하기 전부터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저는 80년대 초 말씀묵상에 대해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쳐 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때 미주두란노서원에서 이재학목사님이 전해준, 목사님의 큐티세미나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면서 말씀 묵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면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영혼 관리에 대해 배웠고, 영적 훈련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님과 사모님을 처음 만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 제게 주신 말씀은 제 평생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습니다. “일군이 되기 전에 예배자가 되십시오. 일은 길에 돌처럼 많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큐티하십시오. 영적 전쟁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짧은 조언들이었지만 그 조언들이 제 가슴에 늘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은 피 묻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메시지 속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통해 사역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생애는 성령님이 함께 하신 기적의 생애셨습니다.

목사님은 사람을 아끼셨습니다. 젊은 목회자들을 키워주셨습니다. 후배 목회자들 속에 있는 잠재력을 보시고,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제게는 글쓰는 잠재력을 보시고, 글을 쓰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IMF 때 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고, 출판하려던 책들을 중단할 때 목사님은 무명의 작가인 제 책을 출판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때 출판해 주신 책이 “뿌리 깊은 영성”입니다. 그 격려에 힘입어 저는 목회자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격려가 아니었다면 결코 글쓰는 일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좋은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과의 만남, 좋은 목회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좋은 사역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저의 스승이셨습니다. 영적 안내자이셨습니다. 큰 형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바로 잡아주셨고, 때로는 어머니처럼 연약해진 저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소박함을 좋아하셨습니다. 가식없는 순수함을 좋아하셨습니다. 맑고 밝은 영성을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성장하는 중에 변질되지 않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작은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길 소원하셨습니다.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세워지길 소원하셨습니다. 제가 로고스교회를 개척하고, 작지만 건강한 교회의 비전을 가지고 세워 나갈 때 기뻐하셨습니다. 로고스교회 개척과정을 담은 “뿌리 깊은 영성으로 세워지는 교회”를 썼을 때 제게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아주 잘 쓴 책은 아니지만 젊은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철학을 따라 사역하는 내용을 책에 담은 것은 훌륭한 일이다.” 목사님은 작은 교회였지만 로고스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시고, 장로님들과 함께 식사 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조국교회뿐만 아니라 이민교회들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가 승리할 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힘들어 할 때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얼마 전 마지막 뵈었을 때 제 손을 붙잡고, “힘들 때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요.”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너무 송구했습니다.

목사님은 목회의 어려움을 품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통을 친구로, 고난을 스승으로 삼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암마저도 친구로 삼고, 암을 당황하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찌 저만 목사님께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이 전한 복음과 목사님의 겸손하고 소박한 사랑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목사님은 천국에 가셨지만 목사님이 남긴 사랑과 영향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조국교회와 이민교회 그리고 세계 교회에 큰 손실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를 잃은 아픔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이 염려하며 기도해 오신 조국교회와 이민 교회를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목사님, 이제 천국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안식하십시오.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사모님과 두 자녀 그리고 목사님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강준민(새생명비전교회담임)드림

 

 

 

 

 

 


영적 거목을 추억하며…

하용조 목사님은 CCC 선배라서 그런지 내게는 형님과도 같은 분이셨다.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할 때나 그 이후 파송을 받아 독자적으로 사역을 할 때에도 필요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 때마다 핵심을 찌르는 통찰력과 선견력으로 나의 영안이 열리도록 도움을 주셨다. '거목 사이를 걷다 보니 키가 커졌다'는 말처럼 그 분을 뵙고 나면 키가 석자나 커버린 느낌이었다.

하 목사님 자체가 성령님의 작품이기에, 혹여 드러날 수 있는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에게는 항상 영적 거목의 풍모가 있었다. 나를 만날 때면 항상 하시던 말씀, '자신과 기질이 같은 멀티 플레이어'라고 하시며 좋아하시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목사님이야 말로 교회뿐 아니라 두란노사역, 해외선교사역, 그리고 CGN-TV를 통한 미디어사역까지 복음을 위해 모든 영역에서 모든 도구를 다 활용하신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이셨다.

간암 수술을 받기 이전에는 사도행전적 비전의 영성을, 수술 이후에는 수년 간의 투병생활을 통해 체득하신 연약함에의 영성을 깨닫게 해 주셨다. '아프고 보니 삶의 군더더기가 다 없어지더라'라는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는 말씀이 실감나도록 말씀사역은 깊이가 더해지셨다. 또한 성령사역을 통해 폭풍처럼, 바람처럼 엄청난 영적 영향력을 남기셨다.

국제사랑의봉사단을 시작하면서 조언을 구했더니, '교회는 1차 산업이요, 사역은 2차 산업이요, 선교는 3차 산업이다. 모든 교회, 모든 사역은 궁극적으로 선교를 지향한다.'며 확고한 선교관과 선교적 교회론을 피력하셨다.

1993년 1월, 방글라데시 찔마리로 제1기 사랑의 봉사단 의료봉사를 떠날 때 일이었다. 내 손을 꼭 잡고 5,000불을 쥐어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황 박사에게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눈과 남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다'며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의 자상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1999년 교회 개척을 위해 온누리교회를 떠날 때 2,000/10,000 사역자로 하 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들의 축복을 받으며 파송을 받은 감격도 아직 생생하다. 기쁨으로 파송해 주시던 목사님의 스케일과 포용력에 감탄했고 그 때 주셨던 파송패는 많은 기념패 중에서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념패이다.

2004년 분당에서 꿈이있는교회를 창립하며 감사 예배를 드렸었는데, 온누리교회 설교를 뒤로 하시고 꿈이있는교회 주일 11시 예배에 오셔서 '꿈꾸는 교회, 춤추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시며 격려해 주시던 사랑을 잊을 수 없다.

2006년 KWMA와 같이 백만 자비량선교사 파송운동을 시작할 때 조언을 구했을 때에는 서로의 바쁜 스케쥴로 인해 중국 베이징 공항 대합실에서 만났었다. 더욱이 목사님은 불편하신 몸인데도 그 만남을 기뻐해 주시며 '어떤 교회든, 어떤 단체든 먼저 치고 나가는 모델이 있어야 이 운동은 성공할 수 있다'며 지혜를 빌려 주셨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뵌 것은 작년 일본 도쿄에서 '에든버러 선교대회 100주년 기념 포럼'에서였는데 안식년 이후 변화된 삶과 당시 하고 있는 사역들과 비즈니스를 소개해 드렸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하시면서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다.

목사님을 추억하며, 목사님을 칭송하거나 그분의 삶을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직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린다. 연약한 한 인간을 위대하게 들어 쓰신 주님을 찬양할 뿐이다. 그리고 목사님을 통해 크리스천의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지를 계시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그 동안 이렇게 귀한 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황성주 국제사랑의봉사단 국제대표

 

 

 

 

 

 


[미션라이프] “목사님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잘 할게요.”

세계 선교와 말씀, 성령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고 하용조 목사가 4일 그가 가장 좋아하던 찬송, ‘내 영혼이 은총 입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충효공원묘원 내 온누리동산에 안장됐다. 성도들은 풍선을 날리며 하늘나라로 떠난 하 목사를 향해 작별 인사했다.

이날 오전 내내 흐리고 비 오던 날씨는 안장될 때 햇빛으로 바뀌어 그의 묘소를 비췄다. 한국교회 복음주의 선두주자로 말씀과 성령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세계 선교를 통해 예수 재림을 강렬히 소망했던 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이었다. 더 이상 수술도 투석도 병원행도 없었다. 안식만 있었다.



온누리동산은 교회 성도들의 가족묘로 하 목사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교인들과 한 자리에 묻히게 됐다. 온누리동산은 이라크 선교에 힘쓰다 별세한 고 김사무엘 목사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관예배에서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목사는 성경 속 인물인 에녹(창 5:21∼24)을 예로 들며 하 목사의 삶을 조명했다. 홍 목사는 “하 목사는 1966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이후 진짜 삶을 시작했다”며 “하 목사의 멋진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하 목사는 대학 시절부터 아프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며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픔을 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갔다”고 했다. 홍 목사는 1000여명의 추모객을 향해 “하 목사의 생애가 평가받는 것은 이제부터”라며 “성도들은 온누리교회가 하 목사의 것이 아니라 예수의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 서빙고동 교회에서 진행된 발인예배(천국환송예배)는 하 목사의 마지막 길을 지키려는 신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교인들은 하 목사의 관이 운구차량에 실릴 때까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을 불렀다. 성도들은 차량이 서서히 떠나자 “목사님!”하며 목 놓아 울었다.

3일간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던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발인예배 설교에서 그간 아꼈던 하 목사에 대한 기억을 쏟아냈다. 중간 중간 울먹이기도 했지만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고 천국에 들어간 하 목사를 그리워했다. 이 목사는 “하 목사가 70년대 후반 몸이 아파 영국에 갔을 때 존 스토트 목사를 만나 말씀의 균형을 배웠다고 자랑하던 때가 생각난다”며 “하 목사는 말씀의 균형으로 교회를 세우고 사역했다”고 했다. 또 “하 목사는 ‘인리치(in reach)’의 사람이었다. 평생 세계 선교를 위해 아웃리치(out reach) 활동을 했지만 그의 내면엔 인리치, 즉 샘 곁에 있었다”며 말씀과 성령, 말씀과 선교의 하모니를 이루려했다고 회고했다.

원주 글=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사진=곽경근 선임기자

 

 

 

날짜: 2011년 8월 4일
본문: 창세기 5장 21~24절
설교: 홍정길 목사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 막바지에 국방장관 선임을 고심했다. 그리고 스탠튼이라는 변호사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주변에서 모두 반대했다. 스탠튼은 당신을 가장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이라고. 이 사람은 명문가문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법조인으로 명성을 떨칠 때 학력이 전무한 링컨이 시골에서 변호사로 정치한다는 모습을 보고 늘 멸시했다. 크가 큰 원숭이, 시골덱이. 그래서 주변에서 다 반대했는데, 링컨은, 그 분이 날 싫어하는 걸 잘 알아. 그런데 그 분이 이 전쟁을 마지막까지 잘 끌고 갈 수 있는 인물이야, 하면서 고집을 피웠다. 이 스탠튼이 링컨과 사역하다가 링컨이 암살돼서 죽은 현장에 와서 가장 먼저 애도하면서 말하길, 나무하고 사람은 누워봐야 그 크기가 얼마인지 안다고.

 

오늘 여기 우리 하용조 목사님 누우셨다. 그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지금 절실히 느낀다. 얼마나 큰 분이었는지를. 나는 처음 이동원 목사님과 계속 전화하면서 마지막 임종예배 드리면서 울면서 전화 받으면서 지금까지 하 목사 없는 삶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런 생각에 많이 울었다. 여기 하 목사님 시신이 누워있다. 이것은 하 목사가 아닌 그를 담고 있었던 그릇에 불과하다. 그를 만들었던 원재료를 다시 돌려주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 목사님이 정말 소중하기에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기억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게 하나님 앞으로 간 애녹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진실로 거룩하고 위대하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델을 생각해본다.

 

사람의 인생에 그 축복은 길 위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했던 애녹이었지만 그 시대 사람의 삶에 1/3만 살게 하시고 데려가셨다. 그러나 성경에서 애녹보다 더 빛나는 삶은 찾기 힘들다. 애녹이 65세에 무두셀라를 낳은 그 즈음에 하나님을 만났다. 그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렇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만이 인생이다. 하나님 없으면 우리와 동물은 차이 없다. 우리와 동물의 차이는 하나님의 존재 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지만 그냥 동물 인생을 산다.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아직 인생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두 번 태어났다, 성경말씀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씀을 새겼다. 그래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죽지만 두 번 태어난 사람은 죽지 않는다. 우리는 하 목사님이 죽지 않는 인생이었음을 목도하고 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예수 믿는 것 아니다. 봉사하는 것이 예수 믿는 것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만이. 예수가 구세주고 그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놀라운 인생을 시작한다. 하 목사님의 생애의 멋진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 그리고 하 목사님이 살았던 삶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과 동행하며...이 말에 있다. 아모스 3장 3절에 뜻이 맞지 않고는 동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 아무리 가까워도 뜻이 다르면 동지가 아니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뜻이 같으면 동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이 하 목사님의 능력이었다.

 

나는 오늘 온누리공동체에 속한 젊은 교역자에게 도전하고 싶다. 여러분, 여러분의 스타팅 포인트는 하 목사님의 시작보다 훨씬 더 좋은 장점을 많이 갖고 있다. 우리 시대는 공부 별로 못했다. 하 목사님은 거기다가 처음부터 병 앓이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는 20대 결핵을 앓았다. 그는 원래 축구선수였다. 그런데도 자기 건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없는 체로 살았다. 한 번은 40여 일간 그와 단독으로 여행을 했다. 홍콩에 왔는데 그냥 쓰러졌다. 밥을 먹어도 땀을 흘리고. 오자마자 병원에 갔더니 비형간염이라고. 너무 몸이 약해서 간염이 도져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가 아프지 않았을 때를 기억할 수가 없다. 여러분, 그런데 하 목사가 왜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젊은 목회자들에게 도전하고 싶다. 그가 위대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였다. 단순했다. 하 목사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믿은 그 하나님이 위대하시다. 오늘 젊은 목회자들 낙심치 말라. 당신에게 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지 하 목사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우리 하 목사님, 얼마나 그 생애가 빛나고 아름다운가는 지금으로 끝나면 안 되고 이후다. 여러분이 그걸 입증해주셔야 한다.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다.

 

하 목사는 믿을 것이 없으나 하나님을 믿었다. 사람은 믿을만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몸이 건강해서 건강을 의지하는 것보다 몸이 약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훨씬 더 낫다. 우리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하나님 붙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 목사님은 오직 그 분만을 철저히 붙잡는 인생이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하 목사님을 축복하시고 역사하셨던 능력이 손길로 우리 온누리공동체 위에 성령으로 기름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우리 성석이 성지가 그대로 물려받는 축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그 분의 시작은 하나님이었고 그 분과 함께 동행하는 동반자는 하나님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았던 베들레헴의 촌놈이 한 명 있다. 이름은 다윗이었다. 그가 좋은 학교 나왔다는 좋은 훈련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그런데 그 보다 위대한 인생 없었다. 그런데 다윗이 위대했던 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위대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당신이 내 목자이십니다. 당신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양에 불과하다는 그 믿음이 역사상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걸작의 인생을 살게 만들었다. 그런 은혜가 이 자리에 이 예배에 참석하고 이 하 목사의 마지막 하관예배를 듣는 모든 귀 위에 그 영혼 깊숙히 울리는 메시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 목사님, 그 생을 우리 주님의 데려가셨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주일학교 교사가 어린 소년에게 애녹을 말하면서, 애녹은 언제나 하나님과 늘 재밌게 놀았어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한참 멀리 데려가시더니, 애녹이 지금 해는 저물었고 너희 집은 머니까 너 나랑 같이 갈래?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녹을 옮가가셨다고 말하더라. 하 목사님은 여기 있지 않다. 애녹처럼. 하 목사님 여기 있지 않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은 한철하 박사가 3대 독자 외동아들을 잃었다. 그 때 아마 예능교회 중심으로 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만들고 시사회 하던 때인데 한철하 박사가 오질 않았다. 3대 독자 외아들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한 박사를 찾아갔다. 망연자실한 그 분들 위로하고 돌아와서 장례식이 끝난 후에 무심결에, 한 목사님 아들이 없어서 허전하시죠, 했더니 홍 목사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아들 아버지 품에 있잖아! 호통을 들었다. 하 목사님, 하나님 데려가심으로 여기 있지 않을 뿐이다. 시간 문제지 우리가 곧 만난다. 지금 마음 아프지만 유일한 소망은 우리 다시 만난다는 것. 이것이 우리 소망이다. 우리 하 목사님 다시 만날 때 애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다가 승리의 영광을 우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영광의 시간들이 되시기를...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서 그 분의 능력으로 살다가 개선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날짜: 2011년 8월 4일
본문: 창세기 49장 22절
설교: 이동원 목사
제목: 당신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발인예배에서 이동원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2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러브 소나타 집회 도중에 하 목사님께서 수술을 하게 돼서 긴급히 내가 투입돼서 집회를 감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가 참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정말 그리울 것 같다.

 

여러 언론사에서 하 목사님 어떤 분이냐 해서, 내가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죠, 라고. 꿈이 그를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꿈을 먹고 살았다. 그는 꿈을 심고 살았다. 그는 꿈을 나누고 살았다. 그는 꿈을 남기고 떠났다.

 

본문은 야곱이 이스라엘을 위해 남긴 유언적 축복이다. 동시에 예언적 축복이기도 하다. 그 중 요셉을 향한 축북인데, 이 예언을 잠시 생각코자 한다. 그 이유는 요셉이 너무나 하 목사님을 닮은 성경의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짤막한 구절에서 발견한 하 목사님의 인생, 그것은 요셉처럼 무성한 열매 인생이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이렇게 본문은 시작한다. 다른 말로 하면 열매 맺는 가지라는 말이다. 요셉은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로 이방 땅 애굽, 그리고 조국 이스라엘의 열매가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열매를 위해 수많은 세월, 고난을 견뎌야 했다. 억울한 옥살이의 고난 등. 그러나 마침내 이런 시련들이 다 지나고 그가 결혼한 후 두 아들 얻었는데 첫째는 므낫세, 둘째 아들은 에브라임이었다. 열매를 맺게 하신 것이다. 하 모사님 인생에서 맺은 모든 열매, 그 열매로 이 자리에 있는 온누리교회와 이 자리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열매는 하 목사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보상이라고 믿는다.

 

7차례의 대수술과 하루 세 번씩 투석을 받으시면서 마지막 자신의 생명을 산화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고난 속에서도 한 가지 비전의 성취 앞에 집중했던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의 별명은 종합병동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그 걸음을 멈춘 적이 없었다. 투석 하면서도 사역을 생각하고 병원에서도 선교를 위해 애썼다. 러브 소나타를 통해 일본을 축복했다. 이 열매는 고난을 통해 맺어진 열매라 더욱 값지다. 그의 열매는 무성한 열매 인생이었다. 그를 통해 이 무성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두 번째, 하 목사님의 인생은 인리치의 인생. 그는 아웃리치에 인생 걸었지만 그 안에는 깊고 부요한 인리치의 샘이 있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니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다. 요셉은 샘에 뿌리를 두고 열매를 맺었던 사람이었다. 하 목사님은 성령을 사모했다. 성령의 감동을 사모했다. 복음주의권에서 성령운동을 증폭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셨다. 나는 목회 초기에 이걸 비판했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하 목사님이 저를 바꾸었다. 나도 성령운동에 하 목사님과 더불어 취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목사님의 첫째 사랑은 말씀묵상이었다. 하 목사님은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의 생애는 말씀과 성령의 샘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삶이었다.

 

그가 한국교회에 남긴 중요한 공헌은 말씀묵상을 보편화 시킨 일이었다. 이런 묵상의 근거에서 그의 설교는 맑은 샘에서 나오는 묵상의 설교였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의 조화 속에서 한 평생 균형을 잡고 살아오셨다.

 

그가 한 번은 영국에 다녀 오면서 존 스토트 목사님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 칭찬을 쉼없이 했다. 그래서 물었다. 존 스토트가 예수 보다 더 좋느냐고. 그랬더니 그가 ‘나에게 균형을 가르치셨다’고 했다. 그렇게 하 목사가 존 스토트 목사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존 스토트 목사를 따라가셨다. 지금 그와 말씀을 나누고 있으실 것이다.

 

세 번째로, 하 목사님은 담을 넘는 선한 영향력의 인생을 사셨다. 가지가 담을 넘었을 때 그 가지의 열매가 이웃들에게 돌아가는 인생. 우리는 한 평생 자기 담 넘지 못하고 일생을 끝낸다. 자기 범주 벗어나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그러나 하 목사님은 교회의 경계를 넘어 민족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셨다. 요셉도 보디발의 집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교도소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감옥에도 촉복이 내렸다. 애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렇게 축복의 인생이었다.

 

하 목사님의 인생이 그랬다. 늘 축복을 만드는 인생이었다. 병을 치료하러 일본에 가서도 그곳에 교회를 만드셨다. 그는 무리한 출혈을 감수하고도 그가 선교에 올인하고 목숨을 걸었다는 고백처럼, 씨지엔TV를 만들고 감당했다.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일 하느냐 물으면, 그는 매우 단순하게 대답했다. 선교사들이 좋아한다고.

 

아무도 그를 멈출 수 없었다.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이틀 전 새벽 하 목사님이 산소 호흡기를 떼고 마지막 심장 박동을 멈추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멈추게 하셨어. 아무도 멈출 수 없었던 분을 예수님이 멈추게 하셔서 쉼을 주셨어.

 

이제 우리가 사랑했던 하 목 사님은 천국의 꽃피우는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고 계실 것이다. 그 안에서 온누리교회와 한국교회를 축복하실 것을 믿는다. 이제 그를 위해 마지막 고백을 드린다. 수고 많았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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