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똘똘’…수익률 ‘고공비행’
글로벌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가치 투자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즘, 대학 투자 동아리들은 오히려 가치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고수익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은 ‘한 기업의 주가는 그 기업의 가치에 수렴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넓은 시야와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업을 분석하고 투자함으로써 ‘실질적 수익과 학문적 성취’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가치 투자’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특히 가치 투자를 근간으로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실적을 자랑했던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가 경기 하락과 함께 고꾸라지면서 가치 투자에 대한 시장의 의심은 극에 달했다. 가치 투자자의 장기적인 시각이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처럼 급변하는 주식 시장의 흐름에서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3곳이 무너지고 초우량 기업이던 제너럴모터스(GM)가 몰락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개별 기업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가치 투자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의견까지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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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쏟은 노력과 열정만큼 수익도 높다. 사진은 프레젠테이션 중인 연세대 투자 동아리 YIG 박세라 회장. |
풍부한 경제·경영 지식으로 무장
하지만 실제 성과로 가치 투자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증권회사의 유명 애널리스트도, 자산운용회사의 펀드매니저들도 아니다. 재야에서 활약하는 ‘슈퍼 개미’는 더더욱 아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리서치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이들은 바로 ‘대학 투자 동아리’ 회원들이다.
이들을 바라볼 때 ‘아마추어’라는 편견을 던져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표면상 나타나는 실적이다. 2003년 투자 클럽 형태로 출발한 고려대 가치투자연구회(Risk:Real Investment Society of Korea)의 지난 상반기 수익률은 무려 83%. 서울대 투자연구회(SMIC:SNU Midas Investment Club, 1999년 창설)의 2009년 2분기 수익률은 시장 대비 8.8%가 높았다. 이에 질세라 2004년 투자를 시작한 연세대 YIG(Yonsei Investment Group)의 분기 최고 수익률은 120%(2007년 2분기)에 이른다.
이렇듯 높은 실적을 자랑하는 세 동아리의 공통점은 모두 가치 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가치 투자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지난 2001년께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들 동아리들이 가치 투자를 동아리의 방향으로 설정한 이유는 가치 투자가 학생으로서 추구해야 할 학문적 가치를 가장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에서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것이 가치 투자”라는 YIG 박세라 회장(경제학과 3학년)은 기업을 발굴·분석·평가하는 과정에서 경제·경영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 투자의 성격상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필수다. 원론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해당 산업 분야에 대해 전공 수준의 전문적인 지식 습득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자세에서 프로페셔널 애널리스트의 모습이 엿보인다.
주식에 대한 순수한 시각도 가치 투자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됐다. 돈벌이 수단으로 주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경제의 흐름을 반영하는 지표로 보며 ‘장기적으로 한 기업의 주가는 그 기업의 가치에 수렴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이러한 신념 아래 가치 투자를 추구,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이들 동아리의 기본적인 투자 결정 과정은 서로 비슷하다. 우선 3~5개로 이루어진 리서치팀이 매주 혹은 매달 1개의 기업을 각각 선정한다. 기업의 내부적 역량에 주목하는 가치 투자의 속성상, 기업 선정은 그 출발점임과 동시에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해당 기업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핵심 선정 기준으로 하는데, 현 주가보다 기업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주목한다. 서울대 투자 동아리 SMIC는 예상 주당순이익(EPS)에 타깃 주가수익률(PER)을 곱하고 현재의 주가와 비교해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예상한 후 그 차이가 큰 기업을 선정한다.
분석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은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한다. 계량적 자료를 통한 양적 분석과 경영주의 기업관이나 기업의 도덕성 등을 파악하는 질적 분석이 모두 동원된다. 정확한 리서치는 가치 투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지난 6월 현대중공업을 분석했던 고려대 투자 동아리 RISK는 학기말고사 이틀 전까지 진행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현장을 탐방, ‘키움증권 대학생 UCC 애널리스트 대회’에서 대상이라는 결과로 노력의 결실을 보기도 했다.
분석 결과는 매주 전체 회의에서 질의와 응답, 피드백을 통해 심층적으로 검증된다.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친 투자 보고서는 펀드팀이 다시 한 번 분석하고 최종 투자 판단을 내리게 된다.
동아리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연간 작성하는 보고서의 수는 30~40건 정도다. 이들 동아리에서 만들어진 분석 자료는 실제 증권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2008년 국제적으로 납 가격이 급락한 것에 주목했던 고려대 RISK는 자동차에 쓰이는 납축전지에 대한 분석을 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축전지 산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가 없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분석이 여러 증권 관계자들 입에 회자되기도 했다. 이 보고서 작성을 담당했던 학생이 증권사에 스카우트됐다는 것은 전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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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 투자의 성격상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필수다. |
이들 투자 동아리의 고수익 비결은 투자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학생들끼리 모여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학업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투자에 열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수업 시간표 자체를 투자 관련 강의들로 구성해 학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회원들도 있다. “주중에는 저녁 7시부터 막차가 다닐 때까지, 전체 세션이 진행되는 토요일은 아침부터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시작해 끝나면 이미 날이 어둑해져 있다”고 밝힌 SMIC 정광우 회장(경영대 4학년)의 말에서 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노력은 스스로의 적극적인 분석 없이 들려오는 풍문이나 시장 상황에 귀를 펄럭이며 매수 클릭을 하는 개인 투자자가 여전히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발로 뛰며 투자 정보 얻어
전 세계가 금융 위기 여파로 시름하던 2008년 3분기를 회상하며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평가한 YIG의 김재성 씨(국어국문학과 3학년)의 말에서 이들의 투자 노하우의 기본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작년 10월 정도에는 ‘요즘을 무엇을 사도 다 오르겠다’고 본 사람도 있을 정도로 대 바겐세일을 맞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하며 시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공포에 떨기보다는 ‘지금이 기회다’는 자세로 저평가된 가치주들을 꾸준히 찾다보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시장에 팽배했던 매도 분위기 속에서 매수의 기회를 찾는 모습에서 가치 투자 거장들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시장은 궁극적으로 효율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이라는 RISK 정재훈 회장(식품자원경제학과 2학년)의 말은 이런 의견에 힘을 더한다. 끊임없이 변화를 지속하는 주식 시장의 특성상 주가가 기업의 제 가치를 반영하는 기간은 상당히 짧다. 그렇기 때문에 주가와 실제 기업의 가치가 괴리돼 있는 시기는 강세장이든 약세장이든 그 수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언제나 존재한다.
이들 대학생 투자 동아리는 시장의 흐름에 따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시세 차익을 낼 수 있는 기업보다 탄탄한 수익 구조와 원활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수익과 성장이 예측되는 기업을 공통적으로 선호한다. 시장의 분위기보다는 기업의 내재 가치에 더 주목한다. 그렇다고 시장의 분위기를 마냥 무시한 채 기업의 가치에만 주목하는 것도 아니다. RISK 정재훈 회장은 ‘기업 자체의 가치가 전체의 70% 정도라면 나머지 30%는 시장의 상황’이라며 수익을 내려면 전방위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 속에서 저평가주를 찾아라’
저평가주를 찾아내는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생활 주변, 투자자 자신의 관심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이다. 수험생들이 메가스터디 같은 교육주에 정통할 수 있고, 주부들은 유통주 전문 투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SMIC의 정광우 회장은 ‘누구나 본인이 관심이 가고 잘 아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고 투자는 이러한 분야의 기업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게임 업체 엔씨소프트를 사례로 들었다.
정 회장에 따르면 엔씨소프트가 중국에 진출했던 당시 국내 애널리스트들의 반응은 우호적인 보고서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게임을 직접 접하며 즐기는 주변 대학생들의 의견은 이와 무척 상반돼 대다수가 중국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이 직접 해 보니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과 감상을 토대로 분석해 보니 중국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대학생들의 예측이 적중, 현재 엔씨소프트는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선전 중이다.
세부 투자 종목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어떠한 기준으로 투자 기업을 선정하느냐는 질문에 YIG는 두 가지 기준을 들었다. 첫째, 해당 기업의 부채 유무와 현금 보유량이다. 둘째, 그 기업의 영업이익이 꾸준히 증가하는지 여부를 제시했다. 부채가 없을수록, 현금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그리고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증가할수록, 반 토막 난 주식을 들고 좌절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관심 있는 기업의 투자 위험성이 클 경우 지주회사에 투자해 위험 요소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는 방법, 상장되지 않은 알짜배기 기업을 자회사로 가진 모기업에 투자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개인 투자자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우선 투자자 개인이 확고한 자기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SMIC의 정광우 회장은 ‘특히 초보 투자자에게 중요한 부분’이라며 어떠한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는 차치하더라도 기준을 설정한다는 자체를 통해 자신의 투자가 왜 잘 된 투자이고 어떠한 부분에서 잘못 되었는지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흥적으로 투자하면 단기적으로 어찌어찌 수익을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를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RISK 정재훈 회장은 투자 시 확실한 근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투자란 복잡한 이유나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며 “자신이 이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는 논리를 그림으로 간략히 표현할 수 없으면 매수를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가는 자신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큰 변화나 부분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간단히 생각해서 ‘이건 이래서 싸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투자에서의 신중함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YIG 주청(사회복지학과 3학년) 부회장은 HTS(Home Trading System) 프로그램을 통해 주식을 거래할 때 ‘컴퓨터 모니터에 돈을 올려놓고’ 투자하는 습관을 들였다. 투자자는 매매 과정에서 현금의 가치를 쉽게 여기는 좋지 않은 버릇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돈의 소중함을 실제로 자신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실생활에서 밥값, 담뱃값을 아끼는 것처럼 주식 투자도 현물 거래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다가서면 더 나은 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제언이다.
또한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리포트를 매수 의견 위주로 작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증권시장 구조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말조차도 매도 의견을 낸 국내 증권사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꼬집으며 매도나 보유 의견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장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충모 인턴기자 gaddjun@gmail.com 출처:한경비즈니스 2009년 08월 17일 제 715호
이상 청년은 돈이나 낭비하는 것들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세대가 아니다.
청년은 당당하고
청년은 멋진 미래의 생산의 주체이다.
물론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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