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 머물라.
고난을 생각하면 6년의 공백 후에 대입공부를 시작 했었던 때가 기억 납니다.
6년 동안의 공백의 시간으로 인해 공부를 시작하였던 초기의 몇 달간의 시간은
제게 있어서 너무 힘들었던 완전한 어둠의 시간이들이었습니다.
그때 너무 힘들어 정신병동이라도 들어가 1년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계속 그 생각만 했다면 저는 정말 정신병동에 갇혀 지냈을런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생각이 모여서 삶을 세워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현실의 고난의 어려움 대신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했을때 제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빌립보서 4:13입니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당시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이 계셨기에 어둠의 시간들이 빛의 시간들로 바뀌었습니다.
고난의 시간은 고백이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고난의 시간이 길고 힘들었지만 고난을 힘들다는 이유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정면돌파한 기억은 두고두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난이 오면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때론 과신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자신을 과신 했습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자기 자신의 예수님에 대한 헌신이 확고부동하다고 생각한데 기인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충성됨이 다른 제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배반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주 좋습니다 .
그런데 인간은 그 약속을 지킬 정도로 훌륭하지 못합니다.
연약할수록 어릴수록 쉽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깨뜨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베드로는 영적으로 아직 자신의 연약함을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위협과 죽음의 공포가 덮치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하고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것입니다. 죄책감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그토록 맹세했지만 지키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햇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떻습니까? 세상엔 내 힘과 의지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를 반드시 만나고 그분 안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인생을 변화 시키는 힘인 영적야성의 회복의 시작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견고히 서는 일입니다.
"먼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머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번 질문을 하십니다.
왜 3번이나 동일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베드로를 심문한 것인가요? 넌 나쁜 놈이야. 넌 배신자야. 넌 약속도 안 지키는 배은망덕한 놈이야. 이렇게 고문한 것입니까?
아니면 베드로 이 나쁜놈 네가 얼마나 큰 배신을 했는지 고통을 느껴봐라고 베드로에게 자아비판을 하게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확인입니다. 사랑하는 크기만큼 인간은 돌이키게 되어 있습니다.
배신해도 배반해도 다시 돌아가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해도 뉘우치고 다시 일어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변화 시키고 회복 시킨 것은 베드로가 의지력을 강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연약함보다 큰 사랑을 통해 회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쓰리고를 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통, 고난, 고독"
이때 잘 통과하면 영적 야성을 가진 인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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