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우리 엄마다! 엄마 여기 있네.” 지난달 28일 중국 동북지방 한 도시에 있는 가정집. TV를 보던 민철군(7·가명)이 방 한쪽에 놓인 사진첩을 향해 달려간다. 공원에서 자신과 엄마,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을 담은 사진첩이다. 유리 속 너머 엄마 얼굴 사진을 어루만진다. 얼굴에는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볼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사진첩은 늘 방에 놓여 있지만 민철이는 처음 보는 것인 양 자주 이런 행동을 한다.
준원군(8·가명)도 자기 사진첩을 손에 든다. 엄마가 갓난아기 때부터 찍어 정리한 사진들이 보인다. 한 장씩 넘겨보던 준원이가 잠시 손을 멈췄다. 엄마가 자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다. 뚫어져라 엄마 얼굴을 쳐다본다.
민철이와 준원이는 지난해 5월 한 식구가 됐다. 한국의 탈북자 지원단체가 탈북 여성과 중국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위해 마련한 보호소에 입소하면서다. 엄마가 북송되거나 먼저 한국행을 택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먹이고 재워준다. 지난해 문을 연 보호소에는 지금까지 4명의 아이들이 수용됐다. 이중 2명은 한국으로 갔고, 민철이와 준원이는 남았다.
둘 다 탈북한 엄마가 중국에서 중국동포 남성과 결혼해 낳은 경우다. 둘을 돌보는 중국동포 ㄱ씨(31·여)는 “중국에 온 탈북 여성들은 대부분 아이를 낳는다고 보면 된다. 민철이와 준원이 같은 아이들이 중국 전체에 정말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중국은 탈북 여성이 낳은 자녀들을 자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합법적 결혼으로 출생하지 않았다며 우리의 주민등록증 격인 호구를 발급하지 않는다. 중국인도 북한인도 아닌 무국적 아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호구가 없으니 학교에 갈 나이가 돼도, 급한 병원치료가 필요해도 속수무책이다. 보호소를 운영하는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이런 무국적 아이들이 중국 전역에 5,000~1만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러다보니 돈으로 호구를 사는 행위가 잦다. 민철이와 준원이도 아빠가 업자에게 돈을 주고 호구를 만든 뒤에야 겨우 인근 한족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준원이는 1학년, 민철이는 학전(學前·우리의 유치원)반이다. 둘은 아침마다 손을 잡고 나란히 등교한다. 학교를 마치면 보호소에서 한글 읽기와 쓰기를 배운다. 곧잘 한다. 하지만 중국어가 훨씬 편하다.
피자와 햄버거에 사족을 못 쓴다. 또래 남한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이들의 웃음 뒤에는 깊은 상처가 어려 있다.
민철이는 엄마를 사진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 4살 때 갑자기 중국 공안이 집에 들이닥쳐 엄마를 붙잡아갔다. 아빠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였다. 민철이는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ㄱ씨는 “민철이가 이따금 ‘공안이 호구를 보여달라고 엄마에게 소리쳤고, 엄마는 팔과 몸이 줄에 묶인 채 잡혀갔다’고 말하는 것을 봐서 아직도 그때를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따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민철이가 ㄱ씨는 안쓰럽기만 하다. 민철이의 엄마는 북송됐다. 기약없는 이별이다.
이별은 민철이에게 낯설지 않다. 민철이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지난해 한국에 갔다. 친척집에 맡겨진 민철이는 학대당했다고 한다. 뒤늦게 이를 안 아빠가 민철이를 보호소에 맡겼다. ㄱ씨는 “처음 왔을 때는 상처입고 주눅들어 있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아빠는 남한, 엄마는 북한, 그리고 민철이는 중국에 산다. 남북 분단 비극의 살아 있는 산물이다. 민철이 가족이 언제 만나 가정을 꾸릴지는 기약이 없다. 가정을 다시 꾸리기는커녕 민철이 엄마의 생사마저 불명인 상태다.
준원이는 그래도 사정이 좀 낫다. 희망이 있어서다. 준원이 엄마는 보름 전쯤 중국 남부지방으로 떠났다. 한국에 가기 위해서다. 아직 연락이 없다. 준원이도 준원이 아빠 ㅂ씨(43·중국동포)도 애가 탄다. 엄마의 한국행 시도는 이번이 두번째. 지난해에는 내몽골에서 국경을 넘다가 붙잡혀 북송됐다. 2주간 구류를 살면서 척추질환과 출혈증을 앓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다행히 재탈북에 성공했다. 돈을 벌게 해 준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둘러댄 것을 북한 당국자가 믿고 석방한 것이다.
중국에 돌아온 엄마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정착하게 되면 남편 ㅂ씨와 준원이를 데려갈 수 있다고 계산한 끝의 결정이었다. ㅂ씨도 찬성했다. 중국도 북한도 영원한 안식처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ㅂ씨가 동북지방을 떠돌게 된 것도 준원이 엄마의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이었다. 원래 농사를 지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막노동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감이 많지 않아 준원이를 보호소에 맡길 수밖에 없다. 엄마가 한국행에 성공하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 이들 부자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준원이와 민철이는 둘 다 ‘밤송이 머리’에 순한 눈망울을 하고 있다. 얼핏 보면 형제같다. 사이 좋게 지내는 것도 그렇다. 민철이가 짓궂게 까불어도 한 살 위인 준원이는 불평하지 않고 받아준다. 장난꾸러기 동생과 의젓한 형이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선양|김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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