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삶/설교자

[스크랩] CBS ‘새롭게 하소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신년특집… 눈물로 일군 목회 반세기 기적의 역사 소상히 증언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2. 23. 19:37

CBS ‘새롭게 하소서’ 조용기 목사 신년특집… 눈물로 일군 목회 반세기 기적의 역사 소상히 증언

[2007.12.30 18:12]     


영광 뒤에는 반드시 피눈물 나는 고통과 연단이 있게 마련이다. 2008년 새해 첫날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의 숨은 이야기가 공개된다. CBS의 간판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에서 조 목사는 지난 50여년간 죽기 살기로 붙잡았던 십자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부작 ‘새롭게 하소서’에서는 과거사역(1부)과 은퇴 이후 앞으로의 사역계획(2부)을 중심으로 조 목사의 삶을 조명한다. 아내 김성혜 한세대 총장과의 결혼 과정, 이단으로 몰렸던 상황, 유창한 외국어 실력 비결, 가족에 대한 미안함, 후임 이영훈 목사에 대한 기대감 등도 밝힌다. 조 목사는 지난 27일 녹화 현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본부’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조 목사는 1부 첫머리부터 철저한 신앙을 강조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왜 대충대충, 건성으로 믿으려 하나. 믿으려면 제대로, 철저하게 믿어야 한다”면서 과거 어렵던 시절 선교사의 후원금에만 의지했던 일부 목사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17살 되던 해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간증은 구원의 역사가 얼마나 오묘한 것인지 상기시켜준다. 훗날 4000명의 심장병 환자를 치료해주고 북한에 심장병원을 건립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누구보다 질병의 고통과 절망감이 얼마나 큰지 잘 알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한 경험도 이야기했다. “최자실 목사님이 나를 사윗감으로 정해서 그런지 다른 여성들은 내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면서 “교회에서 늘 보던 6살 어린 소녀가 아내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다. 그리곤 “어머니 같은 최자실 목사님이 어느날 ‘내 딸과 결혼하라’고 추상 같은 명령을 내려 꼼짝없이 서른살 나이에 그렇게 했다”고 말해 방청객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서울 대조동에서 서대문으로 교회를 이전하던 이야기에는 고난의 눈물이 배어 있다. 1958년 세운 대조동 천막교회는 말이 교회지 다 쓰러져가는 움막 같았다. 끼니 굶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빈민굴 사람들에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 “우린 벌써 지옥에 살고 있소. 딴말 말고 쌀이나 주쇼”라며 맞받아쳤다. 하지만 신유(神癒)의 사역은 달랐다. 조 목사는 앉은뱅이와 중풍병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켰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너도나도 고쳐달라고 달려들자 ‘이젠 못합니다. 실수하면 목사 망신이요, 하나님 망신입니다’라고 주저했던 조 목사. 이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고 기도도, 설교도, 신유도 전적으로 성령에 의지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서대문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3000명의 성도가 6000명으로, 다시 1만명으로 불어났다.

사실 조 목사가 말하는 십자가는 살기 위한 수단이었고, 죽지 않고 강단을 지키는 힘이었다. 몸이 약했던 조 목사는 강단에서 여러 번 쓰러졌다. 강단이 죽음과 삶의 경계선이었던 셈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말이지 죽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의 말에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와 막노동에 가까운 기도, 영혼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2부는 여의도교회 시대로 시작한다. 공사비가 모자라 건물은 못 올리고, 하루하루 피가 말라갔다. 설상가상으로 오일쇼크까지 터졌다. 임금을 줄 수 없다니까 노동자들이 벽돌을 들고 쫓아와 황급히 도망친 일도 있었다.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철근골조를 붙잡고 ‘제발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자금 독촉과 부채 압박이 너무 고통스러워 죄 짓지 않고 죽게 해달라고…. 간증을 하는 조 목사 눈에 눈물이 흘렀다.

성전 건축을 위한 기도회에서 어떤 80세 할머니가 “이렇게 하다간 우리 목사님 죽는다. 내가 가진 것 다 내놓겠다”고 한 간증이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너도나도 재산을 내놨다. 1973년 하나님은 그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1980년대 본격적으로 이단 논쟁이 시작됐다. 이 계기로 조 목사는 현장목회에 치중하며 소홀히 여겼던 자신의 신학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제자를 해외 일류 신학대에 보내 공부시켰다. 이것이 훗날 신학연구소가 세워지고 순복음 신학을 정립하는 초석이 됐다. 해외 선교에 눈을 돌리게 된 것도 대구집회 당시 지역 목회자들이 ‘신자를 다 빼앗아간다’고 아우성쳤기 때문. 그렇게 해서 70여개국 290회의 해외 집회를 인도하게 됐다.

조 목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밝혔다. ‘조용기 목사는 알아도 아버지 조용기는 모른다’고 했던 자녀들, 50년간 사흘 이상의 휴가 한번 없이 달려왔던 바쁜 목회 일정으로 같이하지 못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커 보였다.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게 된 비결도 밝혔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설교를 하는데 제대로 전달이 안되더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 집회의 경우 생생한 영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하루종일 일본어 성경을 쳐다보고 주머니에 단어장을 갖고다니며 외웠다고 했다. 꿈에서 외국어로 대화할 정도로 연습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어 “후임 이영훈 목사가 나보다 목회를 훨씬 잘 할 것이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잘 이끌어가리라고 생각한다”면서 내년 5월 후임자로 취임하는 이 목사에 대한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북한 평양심장병원과 관련해서는 남북 화해와 협력, 북한 복음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세워진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사랑으로 끌어안을 때 변화될 수 있다”면서 “성급하게 추진하지 말고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사회적 제사장 역할을 하기 위해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본부’를 세우겠다고 공식석상에서 처음 밝혀 눈길을 끌었다. 조 목사는 운동본부를 통해 소외계층의 주택 수리와 치료비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이번 방송에 대해 CBS 반태경 PD는 “새해를 맞아 조 목사의 간증이 영적 정체를 겪고 있는 한국 교회에 십자가 정신을 되살리고 영적 도전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는 임동진 목사와 고은아 권사가 맡았다. 1부는 1월1일 저녁 10시와 2일 새벽 3시30분, 오전 9시50분 방송되며 2부는 2일 저녁 10시와 3일 새벽 3시30분, 오전 9시50분에 각각 방송될 예정이다. 신년특집은 스카이라이프 412번이나 각 지역 케이블 TV를 통해 볼 수 있다. 라디오 채널인 표준FM(서울·수도권 98.1Mhz)에서도 1일과 2일 저녁 10시10분에 각각 방송된다.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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