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아무 변화가 없던 프랑스의 작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비안느라는 여인이 딸과 함께 나타나 초콜릿 가게를 열면서 시작되는
영화 <초콜릿>. 비안느가 만드는 초콜릿은 마을 사람들을 사랑과 정열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발휘하는데, 현실에서도 사람들을
달콤한 행복 속으로 빠지게 만드는 비안느가 존재한다. 바로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 고영주씨(42). 벨기에 정통 초콜릿을 만드는
그녀의 달콤 쌉싸래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평일인데도 수제 초콜릿 전문점 ‘카카오 봄(www.cacaoboom.com)’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모두 쇼콜라티에 고영주씨가 만드는 초콜릿 맛에 반해 찾아온 사람들인데, 그녀가 만드는 초콜릿에 어떤 특별함이 숨겨져 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비결은 벨기에에서 직접 배워온 정통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신선한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남편과 벨기에에 유학을 가서 8년 정도 거주했는데, 남편 공부가 먼저 시작됐고 저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공부를 잠시 미루고 취미로 초콜릿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사실 전 원래 초콜릿을 안 좋아했었는데, 벨기에 에서 초콜릿을 맛 보고 기존에 제가 알던 초콜릿 맛이 진짜가 아니 었다는 걸 알게 됐죠. 진짜 초콜릿 맛을 알게 되면서 초콜릿을 좋아 하게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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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에 따르면 벨기에에서는 초콜릿이 생활 속에 늘 함께 한다고 한다. 선물 아이템만이 아니라 차 마실 때에도 초콜릿을 먹고,
파티할 때에도 초콜릿이 빠지지 않으며, 심지어 아침식사로 빵에 초콜릿을 발라먹기까지 한다. 초콜릿이 벨기에의 국가 산업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벨기에가 초콜릿을 원료로 다양한 재료들과 섞어서 한 입 크기의 보석 같은 초콜릿 디저트 과자를 처음 개발한 나라에요. 그만큼 전통이오래됐고, 또 그만큼 문화적으로, 기술적으로 발달했죠. 전 세계 최고급 초콜릿의 60% 이상의 이득을 벨기에가 가져갈 정도로 국가 산업
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초콜릿 산업을 육성시키고,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해요. 국민들도 초콜릿 품질의 차이를 잘
알고, 정보에도 민감하죠.”
벨기에에서 수입한 초콜릿 원료를 녹여서 견과류, 과일, 술, 버터, 생크림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을 섞어서 다양한 맛과 모양을 만들어내는
쇼콜라티에 고영주씨. 그녀는 기본적으로 벨기에 전통 레시피를 충실히 따르면서 본인이 개발한 초콜릿도 선 보인다. 그녀가 개발한
초콜릿 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초콜릿은 ‘실키봄’. 실크처럼 부드럽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각기 다른 특성의 초콜릿을
섞고 헤이즐럿 테이스트를 넣어서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그럼 그녀가 좋아하는 초콜릿은 무엇일까?
“전 초콜릿은 다 좋아해요. 각각의 재료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모두 사랑해요. 밀크는 밀크대로, 화이트는 화이트대로, 다크는 다크대로.
대신 기분에 따라 집어 드는 초콜릿이 다르죠. 배고플 때 화이트 초콜릿을 먹으면 달고 느끼하고 부드러운 맛이 잘 살아나요. 배가 부른
상태에서 차와 함께 디저트로 먹을 땐 고심해서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으로 골라요. 그리고 우울할 때는 어떤 초콜릿이든 다 좋아요. 내
앞에 초콜릿이 없는 게 우울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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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카카오가 건강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는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초콜릿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카카오 함유량이 높을수록 좋다는 인식 때문에 쓰디쓴 99% 초콜릿을 인상 쓰며 먹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고영주씨는 초콜릿은 약이 아니라 먹기에 즐거운 기호식품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가공된 초콜릿의 품질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며 모든 초콜릿이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카카오 자체는 건강에 굉장히 좋아요. 문제는 그걸 가공해서 초콜릿으로 나오기까지 설탕도 섞고 우유도 섞어야 되는데,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좋지 않죠. 우유의 품질에 따라서 초콜릿의 품질도 달라지고요. 어떤 것이든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도 다른 재료들을 마구마구 섞어서 인스턴트화 시키면 건강하고 점점 멀어지잖아요. 좋은 재료를 얼마만큼 살리느냐, 첨가하는 재료들을 얼마나 좋은 걸 썼느냐가 관건이죠. 그리고 요즘엔 카카오 열풍이 불어서 무조건 퍼센트가 높은 건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떤 품종의 빈을 썼느냐, 어떤 기술로 어떻게 가공했느냐, 어떤 화학 첨가물을 넣었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거든요. 퍼센트가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에요. 퍼센트가 높지만 인공향신료나 방부제가 들어가면 안 좋을 수 있어요.” |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데이. 많은 연인들을 설레게 하는 발렌타인데이가 한편으로는 초콜릿을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데,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로서 그런 이야기들이 속상할 것 같다.
“유럽에서는 발렌타인데이가 명절 같은 거에요. 연인끼리 서로 초콜릿과 꽃과 선물을 주면서 사랑을 더욱 특별한 마음으로 표현하는 날이죠. 일상 생활에서도 초콜릿을 소비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더욱 특별한 초콜릿을 선물해요. 장인이 만든 초콜릿이나 그 집에 가야지만 살 수 있는 초콜릿이거나 하나를 사더라도 마음을 담아서 특별한 초콜릿을 고르죠. 연인 사이에서 초콜릿은 정말 좋은 아이템인 거 같아요. 왜냐면 초콜릿 자체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거든요. 누구나 초콜릿을 먹으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앞에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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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달콤함이 퍼지고, 행복함에 미소 짓게 되는 초콜릿. 하지만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수십 박스의 재료를 날라야 하고, 매일 추운 작업실에서 서서 초콜릿을 만들어야 하는 등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에 몸이 많이
상한다. 뿐만 아니라 집중력과 섬세함, 날렵함에 창의력까지 갖추어야 하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고영주씨는 초콜릿의 매력에 푹 빠져 초콜릿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이야기 한다.
“
초콜릿은 사는 거랑 참 많이 닮은 거 같아요. 해도 해도 만만치가 않고,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어려우니까 더 겸손하게
만들고…… 어떨 때는 부드러우니까 달콤한 사랑 같고, 어떨 때는 씁쓰름해서 좀 심통 나고, 희로애락이 다 담긴 재료 같아요.이제는 초콜릿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는데, 그게 매력인 거 같아요. 그런 게 없었다면 반복되는 작업들 속에서 쉽게 질렸을 거
같아요. 또 한 가지 매력은 반복되는 작업을 하다가 어느 선에 올라가면 그 다음엔 창의력을 마음껏 표현해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제대로 된 기술자를 배출하는 게 목표라는 고영주씨는 일대일 도제식 교육으로 본인이 알고 있는 섬세한 느낌까지 전달하려고 한다. 또한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여유를 추구하면서 하루에 십 분이라도 차와 초콜릿을 먹으며 자신을 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문화가 확산
되길 바란다는 그녀는 매일 와서 초콜릿 하나씩을 사가는 손님이 제일 반갑다고 한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추구하고 삶을 즐기려는모습, 그것이 그녀에게는 보람이고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