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삶/사역 일기

청년사역은 허브사역입니다.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0. 31. 15:04

 

 

 

 

 

 

청년사역은 허브사역입니다.

 

 

 

청년사역을 하면서 청년사역이 교회안의 허브사역이라는 사실을 눈을 뜨게 되면서 청년사역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청년사역은 처음에는 청년으로 시작하지만 이들이 자라서 교사로 성가대로 교회 곳곳의 봉사와 헌신의 자리로 파송되어 교회 전체를 살리는 활력소의 역활을 하게 된다는 점을  누구나 인정합니다.

 

문제는 파송할만큼 성장 시켜서 파송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현실은 영적전쟁터로 바로 내 보낸다는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청년들의 경우 대부분 처음에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점점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자취도 흔적이 없이 잠수 타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년을 양육대상으로 먼저 선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청년을 심부름꾼 정도로만 생각하고 내가 부리기 쉬운 상대로 대할 때 그들은 자라지 않고 결국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을 가진채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러면 청년사역을 허브사역으로 세워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청년에게 양육의 기회를 먼저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조급증입니다. 지나치게 빨리빨리 뭔가 진행하고자 합니다. 일단 눈 앞에 불을 끄고 보자는 식입니다. 그런데 양육이라는 것은 교육입니다. 교육은 철저히 깊고 오랜 통찰력을 통해 진행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이 큐티, 중보기도, 복음, 소그룹에 대해 이해할만큼 충분히 훈련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에는 청장년성도와 장년 성도가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자꾸 동역자화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교회안에 잠자는 평신도를 깨우라는 것입니다. 평신도는 잠자는 거인입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교회만 오가고 있습니다. 단지 예배만 드리고 갑니다. 은사를 사용하여 섬기는 경우는 드물어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삼중 사중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호히 안에서 일꾼을 두고 긴장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평신도를 잘 훈련 시켜서 동역자화 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30대와 40대가 헌신한다면 교회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혁명적으로 교회가 건강해 진다는 것입니다. 3040 세대는 자녀를 낳고 키운 경험이 있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영적 아비의 심정으로 차세대를 양육하는 영적전사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3040 세대의 헌신을 이끌어 낸다면 교회안의 헌신된 청년들은 더 깊은 차원의 훈련을 받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헌신된 그들이 청년 세대를 섬기는데 더 많은 영적인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교회는 더 젊고 역동성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청년들을 끌어 모으는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3040세대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040세대의 집중도만큼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청년들을 세우는데 집중하는만큼 교회는 폭발적으로 소생되고 회복될 것입니다.

 

 

2. 청년들과 네트웍을 형성해야 합니다.

 

청년들을 양육하여 파송한 이후에 많은 부서들은 청년부의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청년부와는 별도로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움직임이 강합니다. 청년부와 청년교사를 두고 줄다리기가 이어집니다. 대게의 경우 더 강하게 말하는 쪽으로 이끌려 갑니다. 배려하는 쪽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청년들이 계속 부서에서 섬김을 감당 하기를 원한다면 한 차원 더 높고 깊은 배려를 필요로 합니다. 청년사역의 일정을 고려하고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것과 청년들을 배려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을 잘 분별하여 도와주어야 합니다.

 

청년들이 배려의 대상이 되고 청년사역 속에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파이조각 나누어먹기식으로 헌신하는 청년들이 고통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부와 부서는 네트웍을 형성하고 소통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네트웍과 소통에 있어서 청년이 주체가 되고 청년의 필요가 무엇인지 고민해야지 무조건적인 헌신과 섬김의 요구는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부서는 청년의 성장과 성숙을 도와야 합니다. 청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시너지 효과가 나기 마련입니다.

 

저는 교육부서를 섬기면서 청년예배에 참석하여 청년사역의 흐름을 현장에서 피부로 와 닿게 습득하고 각 부서를 섬기는 청년들을 배려하고 지원해야 하는 시점을 읽어서 때를 따라서 돕는 사역을 하면서 많은 청년동역자와 함께 교회를 섬기는 기쁨을 누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 예배를 들어가지 않는 청년교사들을 직접 데리고 함께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청년사역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청년사역의 중심부에서 함께 뛰도록 돕는 사역을 했습니다. 특별히 해외 단기선교를 가는 경우 장년교사들과 함께 그들의 후원자가 되어 주고 청년담당 교역자와 자주 정보를 교환하고 사역일정을 교환하면서 상호협력 구조를 만들어 가곤 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청년성 중심의 네트웍이 아니라 부서의 필요중심적 네트웍을 하려고 하기에 부서에 집중하는 청년들은 청년사역의 변방에 머물다가 청년의 때 마땅히 누리며 받아야 하는 양육과 훈련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곤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좀 더 청년을 한번 더 생각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3.   청년의 청년성을 살리도록 도우십시오.

 

대부분의 성장한 청년사역부를 본다면 청년만의 빛깔과 향기가 숨쉬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고 때론 염려할 정도록 독립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속의 교회로서 일치성과 더불어 다양성을 가져야 약해지거나 병들지 않습니다. 청년성이 숨쉬기 어려운 시공간에서는 전통 속에서 청년은 희생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청년사역은 스피드와 스피릿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청년들을 나의 사고와 틀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장년은 청년을 위한 디딤돌의 역활을 해 주어야 합니다. 청년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과 소통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속의 종이호랑이가 되어 갑니다. 왜 입니까?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교회 속의 왕노롯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청년들이 교회 속에 안주하고 갇힌다면 이미 병들고 왜곡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의 중심부만 붙들고 있다면 청년의 옷을 입도록 끊임없이 격려해야 합니다. 오늘날 장년들이 청년들에게 사울의 갑옷을 입히고 세상의 골리앗과 싸우도록 내본낸다면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게 될 것입니다. 청년 다윗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사울의 갑옷보다는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뭔가 엉성해보여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 준비된 무기를 가지고 사우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자주 청년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을 입을 것을 권합니다. 만일 청년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입는다면 특유의 스피릿과 스피드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보기에 특유의 열정과 믿음의 시야를 상실할 것입니다.

 

청년을 청년답게 키워야 합니다. 청년에게 실수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그들만의 옷을 준비하고 입도록 열려진 사고를 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장애물 경주를 좋아 하지 않습니다. 청년에게는 불가능의 사ㅣ고를 하기 전에 깨끗한 눈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향해 포효하도록 해야합니다. "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 거룩한 야성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무학교회 청년부는 허브사역의 중심입니다.

한국의 선교단체와 만나는 장입니다.

한국 청년사역의 문화와 만남의 장입니다.

지하철과 국철의 만남의 장입니다.

장년세대와 차세대의 만남의 장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만남의 장입니다.

 

허브사역이라고 크고 고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양한 필요를 묶어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의미있는 좋은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끼리만이 세상의 유일한 생명체는 아닙니다.

개미일지라도 의미있고 가치있는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생명력이 문제이지 크기가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꿈이 없어서 문제이지 다른 어떤 조건 때문에 하나님의 꿈은 제한되지 않습니다.

 

청년사역은 허브로서의 역활을 꾸준히 찾아서 중개해야 합니다.

자꾸 모이고 움직이고

하나님이 이 시대에 원하시는 바로 그 일에 동참하는

깊고 진지한 헌신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