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든 일에 때가 있습니다 | ||
주제어키워드 | 모든 일에 때가 있습니다 | ||
자료출처 | 갈보리교회 박조준 목사 | 성경본문 | 전도서 3:1∼15 |
조회수 | 추천수 | ||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무차별하게 발생합니다. 해가 뜨고 달이 져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며 우리의 일평생이 다 지나가고 마는 것처럼 인간의 생애는 야고보가 말한 대로의 바퀴와 같아서 빙빙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세요. 여기 수레바퀴가 돌아갑니다. 살대가 맨 위에 오는 때가 있는가 하면 이 살대가 맨 밑으로 내려오는 때가 있습니다. 바닷물은 아침과 저녁으로 만조가 되었다가 간조가 되었다가 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 동안 유난히 덥던 금년 여름 더위도 이제 계절로 말하면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났으니 벌써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하고 얼마 오래 있지 않아서 춥다고 할 겨울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즐기는 유행이란 것은 어떻습니까? 어느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유행은 빠르면 10년, 늦으면 40년만에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세상의 것은 이 끝에서부터 저 끝으로 변화해 가며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때와 철을 따라 변화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무쌍한 이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이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 때 잠시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2장 2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 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사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심령의 낙, 마음의 평화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볼 때 부러울 것이 없이 산다고 해도 그 마음에 평화, 기쁨, 낙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서로 반대되는 것 같은 일들이 차례를 따라 움직입니다. 낮은 밤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다시 밤은 낮에게 자리를 내어 줍니다. 여름인가 하면 얼마 안 있어 겨울이 닥치고, 겨울인가 하면 머지 않아 여름이 다가옵니다. 우리 사람 편에서 보면 그저 우연한 일처럼 보이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한 시간도 앞당기거나 연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33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한정된 이성, 제한된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바라보며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변화하는 스물 여덟 가지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처럼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변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십시다. 첫째,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며 너무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에 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나고, 죽는 것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므로 죽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대로 나고 사람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 사람이 날 때와 죽을 때에 대해서는 말씀은 하였지만 살 때에 대해서는 말씀은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 헨리는 이것을 주석하기를 "아, 그것은 이유가 있는데 사람이 살 때라는 것은 너무 짧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조차 없어서 그랬다"고 하면서, "사실은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옛날 모세는, "인생이 칠십이요 혹 강건해서 팔십이라도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 2장 22절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호흡하는 것인데 호흡이 끊어지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나시는 분을 보셨어요? 내쉬는 호흡은 많고 들이쉬는 호흡은 아주 짧습니다. 이것이 얼마간 반복되다가 그저 한숨 푹 쉬고 가 버립니다. 어떤 분은 늘 한숨을 자주 쉬는데 이것은 사실 죽는 연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살았을 때 한숨 쉬지 말라고 말씀했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도 사실 수에 칠 가치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분명한 사실, 사람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같이 착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착각은 자유이지만 이것은 인간 사회의 비극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분명히 알고 있으면 이 세상이 이렇게까지는 어지럽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중상 모략하는 일도 적어질 것이구요, 미워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이 잔칫집에 있고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 전도서 7장 2절에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했습니다. 열왕기상 2장 1절 이하에 보면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으니"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왕도 갑니다. 대통령도 갑니다. 수상도 갑니다. 학자도 갑니다. 재벌도 갑니다. 미인도 갑니다. 가난한 사람도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갑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갑니다. 이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기억하고 지나갈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날이 얼마가 되든지 간에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물건 하나를 사도 '이것을 사면 얼마의 이윤이 있겠나?' 하는 것을 생각하며 삽니다. 젊은 사람들이 흔히,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사귈 때도 요사이는 너무 타산적이 되어서 내가 이 사람하고 좋아하다가 결혼하게 되면 내게 얻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교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자유입니다만 심판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나중에 하나님이 심판 앞에서 어떻게 될까?'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니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민족을 심듯이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심을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도록 하시려고 그곳에 심었던 족속을 뽑아 내실 때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심었던 이스라엘 민족도 불의가 가득하면 뽑아 버리겠다는 경고가 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18장 7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했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게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한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 심는 것과 뽑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를 행하는 민족을 삼으시고 악을 행하는 민족을 뽑아 버리십니다. 개인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곡식을 심거나 나무를 심어도 얼마 후 변변치 못하고 소망 없는 것은 뽑아 버리고 맙니다. 둘째,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했습니다. 죽일 때라는 말은 심판해서 황폐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상한 상처를 치료시킬 때가 있습니다. 호세아 6장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며 죽이십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라도 돌아오고, 회개하면 매 맞아서 상처가 난 곳을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면 됩니다. 그리하면 위로해 주십니다. 치료해 주십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났던 아들이 형편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냥 있으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정신이 들어 그의 불의를 버리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싸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깨닫고 지체하지 말고 돌아오면 삽니다. 고단하고 지친 심령 계십니까? 심령이 매를 맞아 죽을 지경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곧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 오세요. 그가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우는 것과 슬퍼하는 것이 웃을 때와 춤출 때보다 먼저 나와 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표현입니다. 시편에 말씀한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물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눈물을 흘려야 기쁨의 날이 임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했습니다(행 3:19).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누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가는 불안과 초조의 심정으로 지낼 것이 아니라 통회하며 눈물로 자복하고 죄에서 돌이켜 죄 씻음을 받으면 하나님께로부터 기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찬송가에 있는 이 말씀과 꼭 같습니다. 내 죄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 흘리며 슬퍼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므로 기뻐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세상에 살 때 죄 때문에 눈물 흘리면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심령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고 죄 때문에 슬퍼하지 아니 하면 죽은 후 심판 때에, 형벌 받는 곳에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슬퍼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넷째,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돌을 던질 때는 요새를 다 철거해 버리고 흩어진 돌들을 던지는 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국경에 평화를 주셔서 더 이상 돌들이 필요하지 않는 평화의 시대가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곽을 쌓기 위하여 돌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전쟁을 준비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 따라 살면 돌을 던지고 평화를 유지하며 살 수 있으나 하나님을 떠나면 돌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 사이에 진실이 있을 때는 안을 때입니다. 부부 사이에는 사랑이 있을 때가 안을 때입니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는 신뢰가 있을 때가 안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믿음이 있을 때가 안을 때입니다. 그런데 친구 사이에 진실성이 없어질 때 안는 일은 멀어집니다. 국민이 정부를 불신할 때 국민이 등을 돌립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과 멀어지고 맙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다섯째,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기회는 대개 있는데 가령 모든 경영하는 일이 잘 되어 기회가 미소를 짓는 때가 있습니다. 몸은 건강합니다. 하는 일이 잘 되어 돈이 잘 벌립니다. 사업은 날로 번성합니다. 계급은 승진합니다. 모든 것을 찾을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찾을 때만 있고 지킬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찾은 것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지키는 것, 애써 모은 것, 아끼는 것, 좋아하던 것을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게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얻을 때, 찾을 때, 벌 때, 누릴 때, 잡을 때는 조용하지만 잃을 때, 놓을 때, 물러날 때는 조용하지 못합니다. 잃을 때, 버릴 때는 시끄러울 때요, 고통스러울 때입니다. 그런데 힘이 들어도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잡고 있으려 한다고 잡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친구들과 더불어 땅 따먹기 놀이를 하던 생각을 하면서 혼자 빙긋이 웃곤 합니다. 시골이라도 요사이 같으면 경우가 다르겠지만 제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일본 사람들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절이므로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겨울에는 썰매가 아니면 나무로 팽이를 깎아 돌리며 놀았고, 여름에는 강에서 수영을 하지 않으면 나무 그늘에서 사발 깨진 것을 동전처럼 다듬어서 둥근 땅을 그려 놓고 상대방을 세 번만에 맞히면 한 뼘, 두 번만에 맞히면 두 뼘, 단 번에 맞히면 세 뼘의 땅을 먹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놀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한 치라도 더 먹으려고 별 짓을 다합니다. 어떤 때는 싸움이 붙기도 합니다. 상대보다 빼앗은 땅이 적을 때는 속이 상합니다. 조금이라도 많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뿌듯한 기분입니다. 서산에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열이 나는데 그러다가 저녁을 다 장만하신 할머니가 "얘야, 어서 와서 저녁 먹어라" 하게 되면 아무런 미련 없이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버리고 일어서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는 가지고 있던 것, 그렇게 열심히 찾던 것, 지키느라 애쓰던 것 다 버리고 일어날 때가 옵니다. 어리석게 살지 말고 지혜있게 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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