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릭 워렌 목사
근심의 문제
하나님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목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목자처럼 그분의 백성을 돌보신다.” _ 이사야 40:11 (NCV)
“주(Lord)는 나의 목자이시다.” _ 시 23:1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대신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라. 하나님께 네 필요를 아뢰라… 이렇게 한다면 너는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_ 빌립보서 4:6-7 (LB)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7
“그러므로 내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네 내일도 돌보실 것이다. 한번에 하루를 살아라.” _ 마태복음 6:34(LB)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_ 마태복음 6:11 “네 하늘 아버지께서 네게 필요한 것을 이미 완벽하게 알고 계시며, 네가 하나님을 네 삶에서 가장 우선시하고 그분이 네게 원하시는 대로 살아간다면 그것들을 네게 주실 것이다.” _ 마태복음 6:32-33(LB) |
설교자: 릭 워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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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스트레스 해독제’라고 명명한 새로운 설교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스트레스의 커다란 일곱 가지 원천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이 원천들은 모두 시편 23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독제 역시 시편 23편에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성경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시편입니다. 그리고 시편 23편은 하나님이 실로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시편 23편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그림입니다. 앞으로 6주 동안 제 목표는, 우리가 이 시리즈를 끝냈을 때 여러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는 것과 하나님이 여러분을 정말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욱 잘 이해할수록 하나님을 의뢰하기가 더 쉽습니다.
스트레스의 첫째 원인은 근심입니다. 우리가 모두 소중히 여기는 근심들이 있습니다. 재정, 직업, 관계, 결혼생활, 자녀, 건강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근심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근심은 아무 도움이 안 되며, 비합리적이며,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근심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근심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근심은 하는 일 없이 속만 태우게 합니다. 이것은 차 엔진을 공회전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연기가 많이 나고 소리는 요란하지만 아무 곳도 가지 못합니다. 근심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근심은 여러분이 근심한다고 해도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근심은 미래를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를 오늘 하루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근심은 아무 도움이 안 되며,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근심은 비합리적입니다. 근심은 여러분의 문제를 과장하고, 침소봉대합니다. 근심은 문제들이 점점 더 커 보이게 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근심하고 있는 어떤 일을 자꾸 생각할수록 그 문제는 더 커집니다. 여러분이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 근심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 근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변화시키면 되니까요. 어느 쪽이든 간에 근심은 하지 마십시오.
근심은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몸은 근심을 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근심은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근심할 때 여러분은 궤양과 요통, 두통, 불면증을 겪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근심을 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식물과 동물은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근심하는 유일한 피조물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근심하지만, 우리는 근심을 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근심은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건강하지 않게 만듭니다. 근심을 표현하는 옛 영어 단어는 “질식시키다” 즉 “숨 막히게 하다”라는 단어입니다. 바로 그것이 근심이 하는 일입니다. 근심은 여러분의 생명을 질식시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근심하도록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근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근심에 능숙해지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은, 근심을 배울 수 있다면 배운 근심을 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근심에 대한 해독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시편 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리라는 것을 믿는다면, 나는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게 하는 것이 어떻게 내 삶에서 스트레스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주님을 내 목자가 되시게 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근심에 대한 해결제가 됩니까? 여러분은 목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1. 목자는 공급합니다. 목자는 먹을 것과 쉴 것과 양떼의 기본적인 필요를 공급합니다. 2. 목자는 보호합니다. 목자는 적과 위험을 막아줍니다. 3. 목자는 인도합니다. 목자는 양떼가 혼란스러워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양떼를 이끌어 줍니다. 4. 목자는 바로 잡아줍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목자는 그 문제를 바로잡습니다. |
놀라운 일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한다면, 여러분이 자신을 여러분의 목자가 되시게 한다면, 이러한 네 가지 일들을 여러분의 삶에서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공급하겠다.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 내가 너를 인도하겠다. 내가 네 인생에서 너를 위해 그 문제를 바로잡아주겠다. 네가 나를 너의 목자가 되게 한다면 말이다.”
이사야 40장 11절은 “하나님은 목자처럼 그분의 백성을 돌보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돌볼 것이다. 나는 너를 인도하고, 보호하고, 바로잡아줄 것이다. 나는 너를 도울 것이다. 네가 나를 네 목자가 되게 한다면 말이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탐욕을 채우시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필요와 욕구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욕구를 채우셨다면, 여러분은 온 세상에서 가장 큰 망나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버릇없고 자기중심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이더스의 손길과 같을 것입니다. 곧 여러분은 비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겠다.”
하나님은 “내가 …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것에 대해 아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관계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실 때는 그분의 성품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행하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모든 … 것을 채우겠다”고 하십니다. “모든”은 무엇을 포함합니까? 의료비? 융자금? 영적인 필요? 재정적인 필요? 건강상의 필요? 관계상의 필요? 그렇습니다.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공급하겠다고, 여러분을 보호하겠다고, 여러분이 혼란스러울 때 인도하시겠다고, 여러분의 인생에 있는 문제들을 바로잡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무슨 근심할 일이 남아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보험증권이 있고, 그 보험의 지불 범위를 안다면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더는 근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7000가지가 넘는 약속이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에 설정해 놓으신 보험 지불 범위입니다. 여러분이 그 약속들을 이해한다면 무슨 근심할 일이 남아 있습니까?
근심은 아무 도움이 안 되며, 비합리적이며, 건강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목자이시라면 근심은 불필요합니다. 언제든 근심을 하고 있을 때에 여러분은 무신론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실 거야. 하나님께서는 내 필요를 살펴주시지 않으실 거야. 그렇게 되다면 그 일은 나한테 달려있지.” 근심할 때마다 여러분은 무신론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심은 실제적인 무신론일 뿐입니다. 근심은 “나는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행하시리라고 믿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목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분이 목자가 되시도록 하는 사람들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기
“주는 나의 목자이시다.” 그 목자가 여러분의 주님이 될 때에야, 비로소 주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 삼지 않는다면, 예수님에게 여러분의 목자가 되어달라고 구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역할을 하기를 그만두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게 해야 합니다.
주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주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말로는 사장, 매니저, 최고경영자, 의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다스리는, 지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인생을 지배하고 계시다면 그 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배하고 있지 않으시다면 그분은 주가 아니십니다. 그리고 주가 아니시라면 그분은 목자도 아니십니다. 주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4,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은 나를 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그들은 나를 따른다.’” 이 세 단어는 예수님을 목자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들으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여러분을 예수님이 다스리게 합니다.
여러분이 근심하고 있는 모든 근심은, 그것이 어떤 근심이든지 간에, 그것은 다스림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근심 이면에는 여러분이 다스리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근심은 다스릴 수 없는 것을 다스리려는 일종의 시도입니다. 근심은 하나님께서 한 번도 여러분이 갖도록 뜻하시지 않은 책임을 가정합니다. 여러분이 다스릴 수 없는 것들(자녀들, 국가, 경제, 환경 등등)을 다스리려고 시도할 때면 언제나 여러분은 근심을 하게 됩니다. 근심은 경고등입니다. 여러분이 근심을 시작할 때마다 그 경고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주의! 당신은 지나치게 다스리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모든 근심 이면에 있는 원인입니다. 여러분이 근심하기 시작할 때마다,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다스리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다스리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인생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선택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을 다스릴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다스리시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조 조종사가 되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여러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길인지 여러분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는 이러한 일들이 이루실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 선택권을 주려고 하십니다.
혹시 여러분이 자신의 인생을 다스리고 있다면, 여러분이 하나님 역할을 대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할을 하는 것이 근심의 뿌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역할을 하기 시작할 때마다 여러분은 근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을 다스리고 그 일이 제대로 되게 하려고 시도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여러분의 지배에서 나온 많은 일들을 억지로 스스로 다스리려고 할 때, 여러분 속에는 이렇게 말하는 작은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너 농담하는 거야? 너는 네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 그리고 너와 하나님은 네가 절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 이것은 다스림의 문제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지도하심 없이 자기 자신의 삶을 경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근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일들은 대부분 여러분이 다스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근심할 이유가 속속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경영하고 계시며, 그분이 여러분의 주와 목자이시라면 여러분이 괴로워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어떤 일이든 다스리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기를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이 근심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기도하십시오. 그저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우정을 나누고 관계 맺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요? 근심할 시간은 있고요? 우리가 근심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기도한다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덜 근심하게 될 것입니다. 근심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기도는 변화시킵니다. 근심은 하는 일 없이 속만 태웁니다. 기도는 그것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과 접촉하게 합니다. 근심할 때마다 내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습니다. 전전긍긍할 수도 있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대신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라. 하나님께 네 필요를 아뢰라 이렇게 한다면 너는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와 관련한 일에 대해서만 기도하지는 마십시오. 대체로 사람들은 기도할 때 자기들 생각에 하나님이 듣기를 원하시리라는 기도를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십시오. 근심할 정도로 큰 일이라면, 그 일은 기도할 정도로 큰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여러분의 불안보다 큽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_ 베드로전서 5:7
맡긴다는 것은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는 문자적으로 떨어뜨린다는 의미입니다. 내려놓으십시오. 기도는 놀라운 스트레스 완화제입니다. 무엇이든 여러분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혼란스럽고, 짜증나는 모든 일들. 그 일들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것을 하나님께 털썩 던져놓으십시오. 내려놓으십시오. 문제는 우리들이 대부분 낚시질할 때 하듯이 근심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심을 던지고 나서 다시 감아 올립니다.
짐: 지난 10월, 제 인생은 과도기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좋은 집을 발견했습니다. 싸고, 대지가 넓고, 동물들을 위한 온갖 공간이 있었지요. 우리는 우리 집이 빨리 팔리도록 값을 매겼고, 집이 헐값에 팔렸는데, 곧 옛 속담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어떤 것이 사실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좋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속담 말입니다. 제 장인 어른이 건축설계사이신데, 우리한테 땅을 찾아보라고 격려하시고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을 도와주시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주일에 우리가 교회에 갔는데 단을 가로질러서 어떤 현수막이 걸려있었는지 아세요? “건축할 때라.” 저는 생각했지요. ‘그래, 하나님이 문자적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시는 거야.' 몇 달 안에 우리는 땅을 샀습니다. 11개월 후인 지금 저는 하나님이 그 신호로 제 마음에 주신 건물의 계단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허가가 나기를 계획하면서 환경영향평가, 수자원평가, 멸종위기 동식물 법령을 거치면서 11개월을 보냈는데 토질검사에서 탈락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에서 시험을 받아온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땅이 무너져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반석이셨습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안 받은 것은 아니지만, 바로 우리의 믿음으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짓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그 일이 어떻게 끝날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좌절에 안주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이 경험 대부분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습니다. 2달 전쯤에 저는 힘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큰 예금 계좌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기 직전이라는 것과 아주 비싼 토질검사에서 두 번째로 탈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이 지출되고 더 적은 돈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주정헌금을 내고 제 “건축할 때”에 따라 살아야 할 때가 되자 저는 그 일이 행하기에 현명한 일인지 근심했습니다. 제 심장과 머리가 서로 다른 말을 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 저는 아주 잠시 동안 일해본 다른 일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저는 그 규모를 완전히 잘못 계산했습니다. 곧 저는 그 일로 제가 헌금을 했던 액수의 10배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스트레스완화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또 다른 원천은 신자들과 나누는 교제입니다. 우리가 모두 같은 근심을 경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과 직장에서 시험을 당하는 동안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제 아내인 비키, 친한 회사동료이자 고객, 그리고 소그룹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제가 근심하려는 유혹에 빠졌을 때에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향한 제 사랑을 나눌 합당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찾기를 기도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근심에 대한 중요한 해독제는 이것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너희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출 때 희망이 제 마음에서 근심을 밀어낸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이번 주에 저는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했는데, 안개가 골짜기를 온통 뒤덮었고 오렌지카운티 대부분 지역도 그러했습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고서 안개 속을 뚫고 높이 올라가자 다른 쪽은 밝고 햇볕이 쨍쨍했습니다. 근심은 때때로 일종의 짙은 안개와 같습니다. 근심이 밀려들어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명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
안개 속에서 운전을 하려고 해본 적이 있습니까?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근심이 그와 같습니다. 근심과 안개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규격표준국이 알아낸 바는, 한 도시의 사방 일곱 블록을 100피트 높이로 덮고 있는 짙은 안개를 압축한다면 물 한 잔도 채우지 못할 정도의 수증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근심이 바로 그러합니다. 문제를 확대하고 과장하지요.
근심을 다루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할 셋째 사항은 이렇습니다.
한 번에 하루를 고려하십시오.
한 번에 하루에만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고, 고려하십시오. 마태복음 6장 34절. “그러므로 내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네 내일도 돌보실 것이다. 한번에 하루를 살아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가 오기 시작하기 전에는 우산을 펼치지 마라. 오늘은 네가 어제 근심하던 내일이다. 근심할 때 너는 어제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내일을 다스릴 수도 없으며, 그저 오늘 하루를 망치게 될 뿐이다. 미래가 압도하는 듯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한입거리로 작게 하셨다. 하나님은 미래를 한번에 24시간씩 작게 늘어나도록 우리에게 주셨다. 한번에 하루를 살아라.”
마태복음 6장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근심을 극복하는 것은 하루하루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근심을 그만하도록 해줄 알약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근심을 그만하도록 해줄 세미나나 테이프나 책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근심을 하지 않게 할 영적 체험도 없습니다.
근심은, 그리고 그 근심의 해독제는, 매일의 선택이, 때로는 매시간의, 때로는 매 순간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나의 목자이심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의 목자라고 믿을 것인가? 누가 내 삶을 다스리고 있는가?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 말입니다. 만일 내가 다스리고 있다면 내게는 걱정할 거리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문제며, 그분은 그것을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낸시: 남편은 신장이 암세포 때문에 망가졌다는 진단을 받았고, 우리는 의사의 진찰, 치료법, 투석치료 중에 있게 되었지요. 우리의 완벽한 작은 세계가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뒤집어졌고, 부정과 우울과 분노와 근심이 그 추한 얼굴을 들어올렸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며 기도할 때 교회 식구들의 도움과 함께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신실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앞으로 치를 전쟁에서 강건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집에 있기로 했었기 때문에 우리 가정의 수입은 오로지 릭코가 버는 돈뿐이었는데 그 다음 5년 동안 릭코가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수입이 40퍼센트로 삭감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림을 꾸려나갈까요? 우리는 근심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하심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근심을 가져가시고, 그 자리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기도가운데 함께하는 시간으로, 우리가 전체 나누지 못했던 친밀함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릭코가 투병생활을 한 지 3년인가 4년째로 접어들자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우리는 보험을 지속할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건강관리 비용만 해도 우리는 보험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일을 시작한 날부터 3개월동안 보험회사가 제 가족을 위한 보험적용 범위를 완전히 회복시켜줄 일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에 다른 상황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있었으며, 우리는 목자이신 주님의 팔 안에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프던 5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 가족의 필요뿐 아니라 욕구까지도 놀랍게 공급해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1988년에 릭코가 죽었을 때, 저는 경력은 없으면서, 양육해야 하는 십대 자녀 2명, 집과 융자금, 의료비와 병원비, 제 적은 은행 일로는 감당하지 못할 매달 기본적으로 갚아야 하는 빚이 있는 과부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근심할까요? 저는 아닙니다! 저는 신뢰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한 시험에서 다른 시험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으며, 제가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하시게 했을 때마다 제가 저를 돌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 아이들에게 아주 풍족하게 공급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대학에 다시 들어가서 간호사자격증을 딸 수 있었고, 멋진 직업을 얻었으며, 우리 가정을 유지하고 가정이 지고 있던 모든 빚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이 쉬웠을까요? 아니요. 하지만 하나님께 근심을 맡겨버리고 하나님을 기다릴 때 이 일이 더 쉬워졌을까요? 물론이지요. 일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모두 시험을 계속해서 통과합니다. 저는 매일 제 직업과 재정과 아이들과 관련하여 근심하고 초조해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가끔은 그렇게 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시간을 들여서 제 선택권을 고려해보고 제가 신뢰하기로 선택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삶이 얼마나 훨씬 쉬워지는지를 기억합니다. 현재 저는 누구든지 바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그룹이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내면에 근심이 솟아나고 제가 그것을 다스릴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소그룹에 전화를 걸어서 함께 기도하고 서로 상대방을 붙들어주고서 뒤로 물러서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근심은 사라지고 대신 평화와, 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최선이 바로 앞에 있다는 지식이 들어섭니다. 시편 144편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오 나의 요새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
무엇이 여러분을 근심하게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안달하고 화내고 퉁명스럽게 하며 “도대체 일이 되기는 하는 거야?” 하며 돌아서게 합니까? 여러분이 생각할 때 위장에 구멍이 생기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현재 무엇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네 하늘 아버지께서 네게 필요한 것을 이미 완벽하게 알고 계시며, 네가 하나님을 네 삶에서 가장 우선시하고 그분이 네게 원하시는 대로 살아간다면 그것들을 네게 주실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시편 23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6절 안에 “나,” “나의,” “나를”이라는 단어가 17번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개인적인 시편입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당신”이라는 단어는 다섯 번, “그,” “그의”라는 단어는 7번에서 10번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스트레스의 대한 해독제입니다. 종교는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덜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는 여러분이 근심을 그만하도록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종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목자가, 공급하고, 보호하고, 인도하고, 바로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내가 너를 만들었다. 나는 너를 종교를 위해 만들지 않았다. 나는 네가 나를 알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며, 여러분이 그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한번도 여러분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열어드린 적이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첫 발을 내딛으시기를 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약속하신 것처럼 여러분의 주님, 즉 여러분의 사장과 매니저가 되어달라고, 목자가 되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윌버 채프만은 암으로 죽어가는 10살짜리 소년을 격려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채프만은 그 소년 집에 갔습니다. 그 소년은 죽는 것에 대해 근심하고 있었는데, 채프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한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어. 손을 이리 줘봐. 성경에서는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라고 말하거든. 앞으로 너한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되기 시작할 때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하고 생각하고 집게손가락을 꼭 쥐렴.” 두 주 후에 그 소년은 잠을 자는 중에 죽었습니다. 그 다음날 그 어머니가 아들을 발견했을 때 아이는 집게손가락을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 무엇을 근심하는지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살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각 단어를 강조해봅시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진정한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다른 것들은 모두 가짜이며 모조품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목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목자가 되실 것이고, 항상 목자이셨고, 언제가 목자이실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이 말을 확신 있게 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의 목자이십니까? 그 목자가 여러분의 주님이십니까? 목자이시면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할 수 있고 그런 뜻으로 말한다면, 여러분은 근심을 그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짐을 두 번 다시 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쓸데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 저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주님이 제가 주님을 신뢰한다면 제 필요를 돌보시리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근심은 제가 모든 것을 다스리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한 경고등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더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이 제 인생을 다스리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님이 제 매니저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님이 제 주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님께 귀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님이 저를 위해 만드신 인생 계획 가운데로 저를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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