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삶/산본교회

[스크랩] 한국교회, 다음세대는 청년과 복음에 있다. 이상갑목사 (무학교회 청년대학부, 학복협 협동총무)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12. 6. 17. 08:35

 

 

한국교회, 다음세대는 청년과 복음에 있다.   



                           이상갑목사 (무학교회 청년대학부, 학복협 협동총무)



● 본 자료는 논문식이 아닌 대화식으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극동방송에서 청년 사역에 대해 나눈 것을 정리하고 확장 하였습니다. 대화 속에서 청년사역과 청년 세대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소화 시켰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담아 나눕니다. 



1. 안녕하십니까? 무학교회 청년사역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17년 전 100여명 모였으나 김창근목사님 부임 이후로 청년 사역에 청년사역자와 청년리더십들이 미치도록 집중하면서 해마다 꾸준히 건강하게 자라면서 현재는 교회 전체적으로 1-6부 예배에 출석하는 청년은 신혼부부를 포함해서 1000여명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복음을 붙들고 복음에 답이 있다고 믿었기에 지금도 복음에 진검승부를 거는 공동체가 되려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2. 청년사역에 있어 매력은 무엇입니까?


- 청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운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청년들은 무한한 하나님의 꿈이고 가능성입니다. 그런 청년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이고 운동원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섬기는 청년 리더십들이 하나님 나라를 꿈꾸지 않으면 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드리울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그 일에 헌신한다면 그들로 인해 세상은 아름답게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음 이후에 경험해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경험되어져야만 하는데 청년들을 섬기는 리더십의 자리는 하나님 나라 경험의 최전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사역자들은 선교단체 간사, 청년대학부 사역자, 청년간사, 리더, 임원으로 섬기는 우리 모두는 영적인 전투 현장에서는 야전에서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청년의 현실이라는 곳에서 전투가 끝이 없습니다. 휴전도 없습니다. 크고 작은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면서 영적인 지형도가 바뀌는 최 일선에서 피 흘리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청년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끝없이 깨어 믿음에 국데 서서 견고하여 더욱 주의 일에 힘쓰야 하는 자리이기에 계속되는 영적 전투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 청년 리더십들이 가진 특권이자 은혜가 인가 생각합니다. 



3. 한국교회에서 청년세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청년세대는 교회에서 말하는 허리세대입니다.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의 커넥션(연결)을 맡고 있습니다. 청년이 허리세대라면 몸에서 허리가 약해지고 허리가 사라지면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엔 병들고 죽을 위험성이 있는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교회에서 청년이 줄어든다는 것은 굉장한 위험신호인데 안타깝게도 잘 인식들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청년은 한국교회의 미래입니다. 청년이 사라지는 것은 한국교회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 제 생각에는 앞으로 10년이 한국교회의 명암을 좌우할 것입니다. 정말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지금 한국교회는 지금 허리가 너무 쪼그라들어서 병들었고 상체 비만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무게(숫자)가 많이 나간다고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균형이 중요합니다. 근육이 아닌 비만 때문이라면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몸은 위험해집니다. 거대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조폭은 거대합니다. 그런데 조폭이 많아지면 그만큼 세상은 위험해 집니다. 청년층이 교회의 허리라면 허리의 건강도를 체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어떤 면에서 이미 상체비만에서 오는 합병증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4. 혹시 청년 사역을 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 먼저 아래로 소통의 문제인데요. 저는 청년 세대를 미전도종족이라고 가끔 웃으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해마다 청년들이 바뀌고 새롭게 연구하고 다가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또한 위로의 소통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청년 사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안타깝게도 청년들을 살리고 세우고 격려하는 기성세대들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에 놀라곤 합니다. 지배하려고 하고 섬김 받으려고 하고 주인이 종에게 하듯 종노릇을 하는 권위주의적인 접근은 위험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 무엇보다 청년성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 됩니다. 청년들이 주체가 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중요합니다. 동시에 성숙한 사역자들의 적절한 지도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사역이 가능합니다. 청년이 주체라고해서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려고 하기보다 경험이 있고 성숙한 선배세대로부터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생각들로 생명력 있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멘토링과 코칭을 받으면 새부대가 될 것입니다. 그때에 이전세대보다 더 아름다운 청년사역의 계승이 가능합니다.


특히 교육적인 측면에서 가르치는 일과 관련해서는 청년 사역자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교육적으로 사역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되어져야 하고 지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은사 사역과 관련하여서는 청년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각각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함께 이루어가야 합니다. 몸이 지체라면 지체의 각 역할을 잘 조율하고 조정하면서 유기체적인 구조를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선배세대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부분은 스스로 어떻게 수정 보완해 갈 것인지를 잘 분별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그 자리에 섰을 때 대안의 사람으로서 서야 합니다. 청년 사역을 하면서 오해에서 생기는 비난과 비판의 화살을 많이 맞을 때가 있습니다. 또 근거 없는 비방과 모함과 인신공격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청년사역의 도처에 산발랏과 도비야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성찰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산발랏과 도비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 하신 비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쉽지는 않습니다.


리더의 자리에서 섬긴다는 것은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없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이신 예수님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분별하신 이후에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분별하여 처리 하셨습니다. 그리고 숱한 상처 속에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같이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청년리더십이라면 “상처입은 치유자” 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씨름은 이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넘어서서 계속 간다면 상처입은 치유자가 될 것입니다.   

   


5. 젊은이 사역은 타문화권 사역이라는 말까지 있던데요. 요즘의 청년들, 앞선 세대와는 좀 차이가 있습니까?


- 부정적으로는 공동체 중심성에서 개인주의적으로 변한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청년들이 과거보다 시야가 좁아지고, 관계가 좁아지고, 생각이 좁아지면서 점점 자기중심적이 되어 갑니다. 자기 소위에 좋을대로 행하는 사사시대의 위험성이 오늘 우리 시대에 있다고 생각 됩니다.


동시에 왜곡된 청년들이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아마도 시대적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국사회 청년들은 집단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 위험한 일입니다. 자폐적인 증상들도 많아집니다. 자기 생각 속에서 도무지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면 세상은 혼돈하고 공허함이 판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청년을 이끌어 내는 일이 참 힘이 듭니다.


- 긍정적으로는 요즘 청년들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규묘의 논리에 사로잡혔다면 요즘엔 의미와 가치의 논리에 더 가까이 다가 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좀 더 확장 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남들 보기에 좋아보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장점이자 동시에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나아가 획득된 귄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선긋기를 합니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말 듣고 따르기보다 이제는 본인들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존중해야 하는 세대들이라는 의미입니다.


-  비유를 활용해 본다면 청년들을 새에 비유하면 과거에는 텃새처럼 한곳에 정착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현재는 철새처럼 자신의 필요를 따라서 쉽게 떠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과거에 비해서 떠돌이 청년, 가나안 교회(?:안나가) 교인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도가 많이 약해졌다고 보여집니다.


또 직업에 비유하면 과거 선배 세대, 기성세대가 농경세대라면 요즘 세대는 인터넷 속도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유목민세대가 아닌가 합니다. 일단 교회든 공동체든 설교든 뭐든지 관심 없으면 바로 로그아웃합니다. 클릭 세대가 가진 장점을 살려 주면서도 단점은 보완하는 것이 타문화권 사역의 고민이 아닌가 합니다.


  

6.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해야 할 때 다음 세대가 약해진 이유나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있습니까? 청년들의 교회 이탈 원인과 관련하여 어떤 것이 문제일까요?


- 저는 한국 교회안에 다양한 영역에서 영적인 어른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청년은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영적 어른이 사라진 교회는 위험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늘 자라가는 모습에서 씨름하는 참된 어른이 많아져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의료, 언론, ....일상 속에서의 예배자로서의 롤모델이 너무 절실한데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 괴리감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리더십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성품과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많아져야 청년들이 보고 듣고 배울 것입니다.  청년들은 침묵하고 있고 모르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영적 아비 세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현재 한국교회는 사회 환경적 요인,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외부 비판과 내부적인 부패와 부정의 이미지가 여러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서 반복되면서 대안공동체, 거룩 공동체, 성별된 공동체라는 이미지가 사라졌습니다. 심각한 위험입니다. 결국 이 핵심에는 기성세대가 있습니다. 청년세대들은 이제 말로 배우지 않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듣고 보여주는 것을 통해 배우는 세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장 한다면 어른들의 무조건적인 봉사나 무조건적인 순종의 요구에 대해서 청년세대들은 공감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구조가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을수록 청년들이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일꾼이 아닌 자녀로 보고 먼저 양육훈련을 충분히 하도록 배려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적인 양육 훈련이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또 청년들과 공유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시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7.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청년들의 교회 이탈의 원인을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 제 생각에는 2000년대 이후로 선교단체가 어려움을 경험하였고 2000년대 후반기부터 청년대학부가 어려워진 것이 확연하게 경험되어 집니다. 그 원인들은 다양합니다만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내부적으로는 삶으로 연결되는 성경적인 양육훈련의 약화라고 생각됩니다. 그 결과 세상과 타협하거나 단절하는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났습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된 이원론적인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서 세상 속에서 성경적 가치와 기준을 붙들고 씨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줄어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손해보고 희생하면서 변혁적인 작은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줄어든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청년대학부나 선교단체들이 바른 양육훈련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고 변화 시키는 사람을 키워내는 작업이 부족합니다. 최근에 숫자의 논리에 빠지는 것을 보는데 제 생각으로는 꼭 소수만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수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핵심은 “제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꾸 놓치는 것은 “제자도”가 아닌가 합니다. 참된 제자는 그가 서 있는 영역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각 영역 속에서의 제자들을 키워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학교 교육이 점점 약화되는 것을 현장에서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과거에 비해서 어린이부서와 청소년부서를 통해 올라오는 청년들의 성경 지식이나 영적 성숙도가 너무 빈약하여 처음부터 복음의 기초부터 씨름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기가 없는 것이지요. 교육은 재미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의미가 빠지면 재미는 무리로 만들지 결코 제자가 나오지는 못합니다.


- 외부적으로는 분주함, 산만함, 조급함이라는 심각한 병에 시달리고 잇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이러한 질병을 이겨내는 영적인 힘이 빈약합니다. 취업준비학원처럼 변해버린 캠퍼스 상황, 청년실업의 증가가 본질에 집중하는 힘을 분산 시킨 것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청년대학생들은 분주함, 산만함, 조급함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비전을 위해 쏟아 부었던 에너지가 지금은 어디에 부어지고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3S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에 미쳐있는 것이 한국사회 청년들의 현실입니다.


저는 한가지를 더 추가해서 4S를 이야기 합니다. 즉 스마트폰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화가 사라졌습니다. 같은 공간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대화합니다. 모두들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소통합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그 이면에 맘몬과 아세라가 영향을 미치면서 쥐고 흔들고 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청년들을 다시 창조적인 자리로 이끌어 와야 합니다. 창조적인 일에 시간을 쏟지 않은 결과 교회도 청년도 함께 병들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특히 비교의식, 경쟁의식으로 스피드 따라잡기에 골몰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1등외에는 모두 불행한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모두가 1등인 세상을 꿈꾸어야 합니다. 그것은 창조의식의 회복, 소명의식의 회복에 있습니다. 스피드보다는 스피릿이 중요합니다.   

-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허다한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교회 청년 이탈은 “사람 키우기의 실패다.” 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변혁 시킬 사람을 키워내지 못하기에 점점 약해진다고 생각 합니다. 다른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일어나는 합병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8.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대응해 나가야 할지 간단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 지금이야말로 성경적인 건강한 제자 공동체를 세워가야 할 때입니다. 한국교회 청년대학부가 항상 프로그램에 쫓기고 이벤트를 찾아 헤메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제자도” 를 추구하고 성경적인 가치와 기준을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을 키우는 작업”을 모든 교회가 시작 했으면 합니다.


- 영적 기본기에 대해 양보 없는 철저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다원주의, 상대주의 영향으로 절대 진리가 요청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잃어가는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이 세상에서의 성공에 강한 인생이 아닌 은혜에 강한 인생으로 키워야 합니다. 성경을 청년들의 삶의 자리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서 각 영역 세상의 모든 필요한 영역 속에서 건강한 성경적인 지도자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지금은 말로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설교하는 설교자가 더 많아져야 하는 시대라고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에서 듣는 설교보다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복음의 진리를 풀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성공의 복음이 아닌 성경의 복음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을 깃발로 내세우고 달려 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깃발로 휘날리며 달려가야 합니다. 세상이 보기에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복음을 위해 살고 성경적인 가치와 기준과 의미를 담아내는 삶을 위한 씨름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적으로 꼭 성공하고 출세해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산 꼭대기에 오르고 점령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둘레길을 걸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빈부가 어우러지고,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어우러지고,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저는 성경의 복음이자 우리 시대에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는 비밀이라고 생각합니다.    



9. 그럼 교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인데요. 이 같은 문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한국교회 안에 충분히 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 아쉽지만 다 인식은 하지만 긴급성에 쫓겨서 중요하면서 긴급하지 않은 중요한 일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긴급성에 쫓기게 되면 늘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는 일들은 희생되는 것이 종종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불행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욕심이 나서 당장 황금을 많이 가지고 싶어 그 거위를 죽여서 배를 갈라서 만들어지고 있는 황금알까지 모두 차지했는데 그 것이 당장은 유익한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어리석은 일을 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또한 청년들도 봉사 이전에 양육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양육만 받고 봉사하지 않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제가가 되어야지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팬클럽의 팬이 아닙니다. 제자여야 합니다. 청년대학부에서 시급한 일이 있다면 봉사 이전에 양육에 눈을 뜨는 일입니다. 이것에 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동시에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살아내도록 하는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삶으로서의 제자도가 강조되어야 하는데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0. 사실 모든 문제는 전조가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한국교회 안에 청년 이탈의 전조가 언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까?


- 적어도 제가 사역을 하면서 현장에서 경험한 바로는 2000년-2010년 선교단체의 어려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2010년부터는 급격하게 지역교회 청년대학부의 어려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 모든 원인을 추적해 가면 청녀들이 시대적 고통 속에서 부흥이 아닌 생존에 매몰되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 한국교회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민족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었습니다. 전쟁이후에는 한국교회는 구제에 최일선에서 실제적인 봉사와 섬김을 감당했습니다. 독재시대에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선 사람들도 그리스도인 청년들이었습니다. 민족을 위해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다라 갔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 이슈가 사라지고 또 부각되는 이슈들도 정리정돈 도지 않고 각자 소위에 좋을대로 이슈화를 시켜서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상실 했다고 봅니다. 교회가 세상에 희망을 제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상실하면서 급속도로 세속화 되었습니다.


- 교회의 세속화는 어떻게 세상의 눈에 비춰집니까? 교회가 이익집단이나 기득권층의 옹호 집단으로 비춰지면서 교회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실추되었습니다. 게다가 차마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치명적인 실수들이 연속되면서 세상 속에서 청년들에게 매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단과 사이비들이 교회를 더 어지럽히고 본질과 비본질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자정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생수의 강이 되어야 할 교회라는 강물이 병들어 오염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이 물을 더 이상 냄새나고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마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총체적인 부실이 청년대학부와 선교단체의 정체와 침체가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가속도가 붙어서 더 위험해졌습니다. 누군가가 급제동을 걸지 않으면 추락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앞으로 10년은 그 분수령입니다. 한국교회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청년사역자(청년리더십)인 여러분이 희망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11. 이 같은 문제에 무학교회 청년대학부는 어떤 대응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까?


- 저희 무학교회의 경우에는  8년 전부터 방향성을  “세상을 품고, 세상을 섬기며, 세상을 변화 시키는 작은 예수들을 세우는 것”으로 정하고 한결같이 그 방향으로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3가지 방향을 세우고 움직였습니다.

  

1. 양육훈련을 강화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로 키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2.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닌 소그룹 중심적인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

3. 세상을 품고 세상을 섬기는 섬김과 봉사에 대해 헌신하는 것


지난 시간동안 참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보육원 2곳과 장애우 시설 2곳과 노인요양원 시설을 1곳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4명의 해외 어린이를 입양하여 1명당 매월 45000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미자립교회 섬김, 캠퍼스 섬김, 사랑의 연탄 배달, 무의탁노인 섬김, .....다양한 섬김에 끊임없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비난하고 비판하는 공동체와는 다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꾸 낮은 곳으로 연약한 곳으로 우리가 받은 생수의 강이 흘러가도록 물고를 튼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무학 청년 사역부와 한국교회 청년대학부가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공동체가 아닌 세상을 부끄럽게 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양극화문제로 몸살을 앓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미래로 가는 이정표를 제시한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양극화가 심합니다. 또 분단국가입니다. 바로 이 영역에 있어서 기독 청년들이 눈을 열어서 대안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 청년들이 희망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청년공동체는 선교단체든 청년대학부든 규묘에 관계없이 대안의 공동체로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기성세대가 되어서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성공의 복음이 아닌 “성경의 복음”을 위해서 철저히 준비되어지고 실험되어지고 시도 되어져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청년성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1가지가 더 적극적으로 구비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청년들이 세상 속에서 만인제사장적인 삶을 살도록 도전하고 격려하며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세대는 본질이 살아 숨쉬지 않으면 언제든지 채널을 바꾸는 시대입니다.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바로 클릭해서 자신들의 시야에서 삭제해 버립니다. 복음의 가치가 살아나려면 다원화 된 세상 속에서 주일만의 신앙이 아니라 일상의 예배자의 삶의 회복이 시급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거룩한 문화적 충격을 긍적적인 의미에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 저는 저희 청년 리더십이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바쁘고 분주한 삶의 연속인데 세상 속에서와 교회 속에서의 균형감각을 가지고자 부단히 씨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리더십의 자리에서 자기의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붓는 작업들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은혜에 대한 반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섬김이 자기의 의가 되면 탈진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리더십의 자리에서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른 기준과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들임을 놓치지 말았으면 합니다.


  

12. 자, 보다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해법에 대한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 어떤 면에서는 원론적인 것 같지만 저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본기를 강화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숱한 청년대학부가 프로그램과 이벤트는 있었지만 복음에 대한 진지한 양육훈련이 너무 약화되어 기본이 뭔지? 이런 기본적인 것 마저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아닌 예수님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가도록 청년들을 깨워야 합니다. 저는 규묘의 논리가 아닌 제자도의 논리가 청년대학부 안에서 더 많이 더 깊이 고민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닌 전인격으로 전체적인 삶의 영역 속에서 제자의 삶을 살려고 하는 거룩한 씨름이 청년사역자들과 청년 리더십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러한 진지한 복음적 삶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진리를 미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리고 왜곡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미신에는 좋은 인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능력이 있으면 장땡이라고 합니다. 무당은 그 능력으로 평가하지 그 인격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잘못하면 진리를 비인격화 하는 위험성에 빠질 수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무당과 같이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는 삶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더 아름다운 인격으로 빚어지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전부 인격과 관련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항목이 전부 인격의 성숙함의 특징과 관련됩니다. 잘 믿는다는 것은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을 존중하면서도 초월성의 영역을 지니고 살기에 세상과 다른 기준과 가치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13. ‘복음은 더 이상 청년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는가?’ 물론 우문인 동시에 거짓이겠지만, 복음을 어떻게 시대적인 옷을 입혀서 전해야 할지 소통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 문화의 옷은 새롭게 갈아 입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담아내듯 복음 그 자체를 담아내기 위해 문화의 옷을 다각도로 디자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사실 교회는 문화 창조자의 역할을 했고 동시에 문화 공급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문화를 창조적으로 변혁하면서 이끌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잊고 있는 과제중의 하나가 문화 변혁적 소명이 아닌가 합니다.


청년들이 문화의 영역에서 창조적인 시도들을 했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청년의 문화를 교회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세상이라는 공간으로 나아가서 문화를 하나님의 창조성을 가지고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특히 교회는 섬김의 문화에 있어서 탁월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잘 다듬어서 섬김을 교회속에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유통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일터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섬김이라는 시대적인 옷을 입히고 이것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 시키면서 한국적 문화에 성경적인 가치관을 입히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우리기리만 좋은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축제에 참여하여 덤으로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14. 끝으로 한국교회 청년사역자들과 청년리더십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 주시지요.


* 이번 TED는 청년과 캠퍼스의 바른 방향성을 점검하고자 하는 꿈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로렌커닝햄을 통해 들려주는 메시지가 아비세대가 자녀세대에게 모세가 여호수아 세대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라면 이번에 나누어지는 TED식 나눔은 한국교회 청년사역과 캠퍼스 사역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로 가는 길의 이정표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캠퍼스 선교단체와 지역교회 청년대학부들의 아름다운 동역의 시작이 되길 소원해 봅니다. (14번의 질문에 대해 답한 글은 캠퍼스와 지역교회를 향한 마음을 제가 한 캠퍼스 모임을 통해 나눈 것을 수정하여 보완 하였습니다. 많은 지역교회 청년대학부가 선교단체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또 선교단체는 교회를 잘 모르기에 어떻게 서로 연합하고 협력해야 하는지를 서로 잘 모르고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몸을 사리며 지내 왔다고 생각 됩니다. 그래서 이 작업이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 됩니다.)


저는 10여년 청년들을 섬겨오면서 이런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먼저 지역교회를 향헤서 이런 꿈을 꿉니다. 청년 대학생들이 건강한 양육훈련 속에서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 봉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으로 자라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씨름하는 거룩한 씨름이 사라진 이런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혁하고 갱신하여 제자로의 삶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교회 속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말씀을 소화 시켜서 신앙을 삶의 영역 속에서 꽃을 피웠으면 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캠퍼스를 향해서도 설익은 꿈이지만 나누어 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강한 교단과 교회와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과 간사님들과 교수님들과 직원 신우회와 지역교회들이 다같이 한자리에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기쁨을 1년에 1회나 2회를 가지면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함께 꿈을 꾸고 동역하며 연합과 일치가 주는 기쁨을 누리는 꿈을 꾸어 봅니다. 


1년에 4번의 개강예배와 종강예배를 드릴 때, 학생들이 전적으로 계획하는 것과 협의회를 통해서 선배들의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 계획하는 것이 조화를 이룬다면, 우리는 서로 만나면 힘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과정이 더딜지라도 창조적인 대화를 하면서 서로 배우려는 자세로 다가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저에게는 이런 기대가 있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은 이 시대 상황 속에서 성육신의 마인드를 가지고 학교 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건강한 관계중심의 전도를 회복하고, 삶이 전도가 되게 하며 선교가 되게 하고, 선교단체 간사님들과 교역자들은 일선에서 청년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섬기면서 그들의 영적 필요를 민감하게 채우고,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영적 돌파구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하여 지역교회는 기성세대와 당회가 한마음이 되어 청년대학부를 지원하고, 캠퍼스의 경우에는 교수회, 신우회와 교목실이 마음을 모아서 지원을 하였으면 합니다. 또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1번쯤은 각 캠퍼스에서 필요를 따라 지역교회와 연합하여 의미있는 연합의 결과로서의 아름다운 영적 축제를 가지는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아닌 동역의 기쁨을 누리는 관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유기체적인 관계로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서로가 만남을 통해 큰 힘을 얻고 격려를 얻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캠퍼스 안의 이단과 사이비에 대하여 연합하여 대처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도 복음의 순수성과 순전성을 지키며 연합과 일치 속에서 창조성과 다양성을 살려 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청년과 캠퍼스 복음화 운동의 중심부에는 청년과 기독 학생들이 주체로서 우뚝 서 있어야 합니다. 청년이 시대를 깨우는 영적 대각성의 불씨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청년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며 후원하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 루터, 쯔빙글리,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교리와 봉건제도의 타락과 싸웠습니다. 이 운동의 시작은 캠퍼스였습니다. 윗덴버그, 취리히, 툴루즈 등의 대학에서 시작하여 일반 대중으로 퍼져갔습니다.

청교도 운동의 가르침을 목적으로 예일, 하버드, 다트모스 대학을 세워서 영적개혁운동을 확산시켰습니다. 초창기 하버드 대학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당신의 삶과 공부의 최후 목적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학생들은 하루에 두 번씩 성경을 읽는 훈련을 통하여 성경에 능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는 한국의 각 캠퍼스와 청년대학부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움추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움직여야 합니다.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역사하는 믿음이 절실합니다. 진리는 삶으로, 학업으로, 섬김으로, 강의실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직장 속에서, 업무 가운데, 모든 일상 가운데 성경적 가치로서 표현되고 드러나야 합니다. 


복음은 결코 침묵하지 않습니다. 기독 청년이 깨어나지 않으면 역사의 진보는 없습니다. 기독 학생들이 헌신하지 아니하면 복음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역교회의 청년들이 복음에 헌신하지 않으면 청년대학부는 우리기리 좋은 집단이 될 위험에 빠집니다. 캠퍼스에서 복음에 생명을 걸지 않으면 복음의 진전은 헛된 망상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말로 하는 전도를 넘어서서 성경적 가치가 삶으로 보이도록 기독 청년대학생들을 통하여 재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지역교회와 각 캠퍼스마다 복음을 위한 캠퍼스만의 독특하며 건강한 유기체를 구성하고, 그것이 또 하나의 사역이 되어 힘을 빼고 탈진시키는 모임이 아니라, 동역의 즐거움을 맛보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로서 만나는 것은 지치고 힘들고 탈진이 일어납니다. 관계로서 만나면 동역자 의식이 생기고 공동체 의식이 생기고 서로 섬기고 서로가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경험하는 장이 됩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각자의 상황 속에서 더 아름답게 소화시키고 적용하여 꽃을 피우십시오.


저는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역교회와 각 캠퍼스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정기적으로 기도를 하고 의견을 나누며 먹고 마시고 교제하는 가운데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가장 적합한 방식의 캠퍼스복음화를 위한 협의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또 하나의 조직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또 하나의 “지원부대, 보급부대”를 만드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아름답게 진행되어서 저는 한국의 모든 캠퍼스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협의회들이 구성이 되어 선교단체와 지역교회들이 그리고 선배세대와 후배세대들이 한 길 가는 동역의 즐거움들을 맛보기를 기대하고 꿈꾸어 봅니다. 


끝으로 지역교회에서의 바라보는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제언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캠퍼스를 물 근원으로 봅니다. 이 물 근원이 오염되거나 마르면 시내가 마르고 강이 마르고 바다도 서서히 오염되고 죽어갈 것입니다. 캠퍼스가 물 근원이라면 시내는 지역교회의 청년대학부일 것입니다. 강은 지역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바다는 한국교회를 의미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샘 근원이 마르면서 시내가 바짝 말라가고 있고 강이 마르면서 가뭄과 홍수의 조절능력을 상실하고 정화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바다의 오염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역교회에서 샘 근원을 맑게 만들고 샘이 풍성하도록 만드는 일은 아주 중요할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함께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역교회가 캠퍼스를 이용하는 관점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캠퍼스에서 선교단체와 동역을 해 오면서 캠퍼스라는 생태계가 건강한 유기체가 되지 못하면 자정작용이 사라지는 현상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또한 캠퍼스를 섬김의 관점이 아니라 이용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캠퍼스의 생태계도 파괴되고 결국엔 그러한 지역교회들도 상처를 입는 모습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지역교회들은 캠퍼스 복음화 자체를 위해서 힘을 모아 주어야 합니다. 캠퍼스를 지원한다고 해서 당장 실감나는 유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숫자 늘리기로서의 섬김을 원한다면 차라리 그 재정을 각 지역교회 청년 사역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캠퍼스를 섬긴다고 해서 청년들이 몰려오는 시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교회 청년대학부는 캠퍼스의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긴박한 필요” 이기에  이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현재의 캠퍼스는 샘 근원이 말라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는 샘 근원이 말라 있기에 그 주변에서 기근을 느끼는 이들이 퍼 마시기에도 모자라서 물은 주변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먹고 남아야 물이 흘러 넘쳐서 주변으로 흘러가는데 샘에서 나오는 물을 퍼서 마시기에도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지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역교회는 자체적으로 건강한 공동체 만들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샘 근원이 되는 캠퍼스 사역을 도와서 샘물이 넘쳐흘러서 부족함이 없이 흘러가도록 돕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캠퍼스를 위한 “마중물”이 기꺼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달리 표현하자면 “물 떠 온 하인의 기쁨”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인은 주인을 위해 일합니다. 하인은 심부름을 하면서 주인의 기쁨을 경험하고, 주인의 말대로 전해주었더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현장에서 심부름꾼으로 쓰임 받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캠퍼스가 살아나는 것이 우리 지역교회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섬김을 수년 동안 지속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의 역사가 지역교회 공동체마다 나타나리라고 생각됩니다. 청년이 살아나는 교회, 청년이 하늘의 언어를 듣고 반응하는 교회, 청년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꿈을 꾸는 그런 교회들이 많아지기를 기도하며 응원을 보냅니다. 



 캠퍼스를 살리고 지역교회 청년대학부를 세우는 복음의 동역자들께 감사를 담아서

                                                                                                                                                           이상갑목사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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