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영 파워] [2] 가나 통신회사 나나텔 대표 최승업씨
선교사 부모 따라 이민 와 톱15 젊은기업가로 성장
"10년 뒤 가나의 주역 될 대학동기들과 꿈 펼칠 것"새해 첫날인 1일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가나국립대학교 안 교회에서 현지인 신랑·신부의 결혼식이 열렸다. 하객 수백 명 중 동양인 한 명만 피부색이 달랐다. 거의 모든 하객이 신랑의 고교·대학 선배인 그를 보자 현지어로 "코조 초이, 아페샤파(Afesheapa·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며 반겼다.
코조 초이(Kojo Choi)는 현지 기업인 최승업(崔乘業·34)씨의 가나 이름이다. '코조'는 가나 아칸(Akan)족 말로 '월요일에 태어난 남자'다. 가나 출신인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 이름의 '코피'는 금요일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최씨는 가나의 통신회사 나나텔의 대표이다. 직원 수 200여 명에 작년 매출이 750억원이나 된다. 가나의 한 시민단체는 그를 '가장 성공한 젊은 기업인 15인'에 꼽았다.
- ▲ 아프리카 가나의 통신회사 나나텔 대표인 최승업(34·사진 가운데)씨가 지난달 31일 회사에서 직원들과 현지 음식인‘켄키’를 먹고 있다. 최씨는 매주 금요일을‘켄키의 날’로 정해 직원들과 같이 식사를 한다. /전현석 특파원 winwin@chosun.com
최씨는 15세 때인 1992년 선교사 부모를 따라 가나에 왔다. 다른 한인 자녀는 국제학교에 다녔지만, 최씨는 집안 형편 때문에 현지 중학교에 들어갔다. 최씨는 처음에는 영어를 못해 몸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농구·탁구 대표로 가나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낡은 봉고차 짐칸에 가나 선수들과 뒤엉켜 타고 다녔다. 현지 음식인 와치(매운 양념을 곁들인 팥밥)와 켄키(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떡밥)를 맨손으로 나눠 먹었다. 곧 가나 공식언어인 영어뿐만 아니라 아칸족 말도 완벽하게 구사하게 됐다. 최씨는 최우수 학생 중 한 명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나의 국제고등학교(SOS-HGIC)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그는 고교 내내 반장과 회장단에서 활동했고, 졸업식 때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단상에서 학생 대표로 한국어와 영어로 인사말을 했다.
졸업반 50여 명 중 90%의 학생이 하버드·옥스퍼드 같은 미국과 영국 명문대에 장학금을 받고 갔지만, 최씨는 가나국립대를 택했다. 그는 "선진국의 수많은 한국 유학생 중 한 명이 되는 것보다 가나에서 대학을 마친 유일한 한국인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학 2학년 때 빈민촌에 가게를 열고 간판을 만드는 광고업을 시작했다. 현지인 두 명도 채용했지만 처음 6개월은 일감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나이도 어리고 회사 규모가 작아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인쇄지 납품 회사가 불량품을 파는 바람에 간판 수십 개를 다시 만들었지만, 가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을 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대학만 졸업하면 빨리 아프리카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기를 쓰고 버티며 계속 도전한 것은 "어릴 때 아프리카에 와서 현지 대학에 다니는 나까지 포기하면 아프리카는 가망이 없다는 말에 확인 도장을 찍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2000년부터 3년 동안 매주 통신업체 MTN에 찾아가 "광고를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2003년 최씨의 끈기를 눈여겨본 MTN 부사장이 그에게 광고 대신 '공중전화 점포' 한 곳의 사업권을 줬다.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비가 비쌌던 가나에서는 사무실에 전화기를 두고 사람들이 돈을 내고 전화하는 공중전화 점포가 많았다.
첫 점포를 열고서 한달 만에 500만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최씨는 곧 점포 수를 네 곳으로 늘렸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자전거 공중전화 20여대를 개발해 보급했고, 장애인에 일자리를 주거나 보육원을 지원하는 사회사업도 했다. 최씨는 지금 가나의 광역(廣域) 행정구역 열 곳 가운데 두 곳에서 MTN 휴대전화 사업권을 갖고 대리점 30여 곳을 운영한다. 컨설팅회사도 차려 다른 서아프리카 나라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하얀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을 때도 잦았지만 오랫동안 신뢰와 우정을 쌓으면 오히려 장점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지갑 속에서 10년 넘은 대학 학생증을 꺼내 보여주며 "10년 뒤면 동기·동창들이 가나의 주역이 될 텐데 그때 그들과 같이 가나를 이끌고 싶다"며 "대한민국과 가나를 연결하는 민간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새로운 길을 여는 젊음은 아름답습니다.
'청년과 삶 > 청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식배달부 김승일’ (0) | 2011.01.14 |
---|---|
홍익대학교 용역청소 노동자 감시에 학교 측이 학군단(ROTC) 소속 학생들을 동원, "ROTC 학생이 아니냐. 이럴 수 있느냐" (0) | 2011.01.11 |
글로벌 영 파워] [3] 중국 베이징 무역회사 KC21 백기성 사장, 손톱손질세트 50만개 팔아 (0) | 2011.01.06 |
글로벌 영 파워] (4) 네팔 보육원서 20개월째 봉사하는 박주희씨 (0) | 2011.01.06 |
‘시간관리 전문가’ 이경재 박사가 아들에게 전하는 다이어리 활용 노하우 (0) | 2011.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