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록 초동교회 원로목사에게 듣는다 “기독인이 된다는 건 역사의 중심에 선다는 뜻” |
[2010.01.04 20:30] | ||
![]() 조향록(90) 초동교회 원로목사는 한국 신학계의 어른이다. 33세에 초동교회 담임이 되어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시켰다. ‘교회는 세상 안에 서 있는 예수의 몸’이라는 신념으로 기독교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엘리트적 정체성을 가르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의 공의 실천에 헌신했다. 시인이기도 한 조 목사는 종교에 있어서는 ‘우리들의 목사’, 예술의 길에서는 ‘동도의 빛’, 삶의 길에서는 ‘우정 깊은 친구’라는 수식어를 달 정도로 깨끗하고 소탈한 삶을 살아 왔다. 2010 새해 인터뷰를 위해 초동교회에서 만난 조 목사는 1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분 같지 않게 매우 열정적이고 정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깊은 성찰과 기도에서 얻은 지혜의 말들을 쏟아냈다. 대담=이승한 i미션라이프 부장 -2010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목사님은 올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했습니까? “내 나이 90입니다. 이제 젊은 시절처럼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돌아보면 과거는 과거대로 다 아름답고 감사합니다.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제 내게 하루는 젊은 시절 1년만큼 소중한 시간입니다. 하루하루 나 자신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가는 것인데, 가는 것이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에 잘 죽으면 모든 잘못이 다 커버되지요. 삼손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됐지만 긴 세월 동안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민족을 위해 의롭게 죽어 20년 동안 지도자로 이루지 못했던 것을 한 번의 죽음으로써 다 감당했습니다. 잘 죽도록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해 목사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내 소원은 통일입니다. 꿈에도 통일입니다. 통일은 7000만 민족만의 통일이 아닙니다. 이 통일은 21세기를 맞은 인류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21세기 역사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통일을 그토록 소망하지만 목사가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한 번도 민족 통일을 위한 기도를 빼먹은 적이 없어요. 수천 년간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면 ‘예루살렘에서 만납시다’란 인사를 빼먹지 않았습니다. 통일을 위한 나의 기도도 그런 것입니다.” -목사님이 간직하고 있는 가장 높은 생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난 복음 전파에 내 생을 바치겠다는 데 조금도 의혹이 없습니다. 복음전파가 나의 생의 마스터키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한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를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나, 소명을 깨달을 때 생의 가치가 정해집니다. 조숙했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내 생애를 완전히 결정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피난 중에 강성란 목사가 설립한 한일중학교에서 교장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원래 신학교 선배가 적임자였는데 바빠서 못한다고 해서 나한테까지 온 것입니다. 몇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 떠안게 됐습니다. 30명 되는 학생들이 4년 만에 2000명으로 불어났지요. 그런데 갑자기 폐병을 얻었어요. 경남 진양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 고향 마을 뒷산의 정토원에서 요양을 했는데, 목사가 절에서 요양이라니요. 하나님이 다시 목회하라고 명령을 하신 겁니다. 내 삶의 최고의 가치는 복음전파입니다.” -한국교회는 70∼80년대 사회구원과 영혼구원의 두 수레바퀴를 조화롭게 이끌면서 지도력과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그 지도력과 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난 한국 교회에 대해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이나 한국 교회를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교회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이란 말은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잘못된 것이지요. 그리스문화가 이분법적입니다. 그들의 문화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모든 것을 이원론적으로 변증해 갑니다. 여기서 복잡한 문제가 만들어집니다. 성경의 논리는 수직적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면 구원은 하나이지요. 복음은 총체적 구원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소홀히 한 것이 에코(생태환경)입니다. 전인구원, 토털구원이 앞으로 한국교회가 취해야 할 자세입니다.” -목사님은 평생 설교의 초점을 어디에 뒀습니까? “내 설교의 제목은 80% 이상이 성경 말씀입니다. 초점은 텍스트(성경 본문)에 두고, 그것을 사람들의 상황에 대입하려고 합니다. 목사들은 하나님 말씀에도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만 세상도 잘 알아야 해요. 우리나라 초대 교회 목사님들은 성경도 많이 읽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다가 늦게 목회를 한 분들이 많습니다. 인생이 뭔지 아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어요.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가 하나의 표본이라고 봅니다. 설교가 아주 심플합니다. 자기 말을 거의 섞지 않고 성경을 가지고 정리해서 연결합니다. 요즘 목회자들 중엔 성경 사전 가지고 꿰맞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용은 같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목사님께서는 설교에서 의인이란 말씀을 많이 쓰셨습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는 의인이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예수를 구주로 믿고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의인은 엘리트 의식과 같은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의인 10명이 없어서였습니다. 이것은 구약적인 의인 해석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속죄 은총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돌아온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기독교인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믿고 예수님의 제자로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관의 변화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지극히 적은 무리라고 한 것은 창조적 소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별들이 순환하는 것은 중심에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인류 역사에서 태양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인생관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에서 이웃 중심으로, 개인 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남을 위한 존재로 그 인생관과 그 사람 바탕을 바꿔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사회에 문제가 많은 것은 오히려 나 때문이라고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1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2주 동안 의식이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깨어난 뒤 하신 말씀이 회자가 됐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있었다는데 내 혼은 중환자실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갔다 왔어요. 그때 내 혼이 보고 들은 것들을 책으로 쓸까 합니다.” -원로로서 한국 교회를 향한 고언(苦言)이 있으시다면? “목사님들이 신앙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언제부턴가 호텔이 아니면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교회 식당도 많은데, 왜 호텔 다니면서 몇 만원짜리 밥을 먹으며 돈을 낭비합니까. 회장을 뽑는다는데, 회장 하고 싶다고 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무슨 설교를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저는 총회장 하는 게 부끄러워서 얘기도 못했습니다. 목사가 되는 게 하늘보다 더 두렵고 영광스런 일인데 거기에 무슨 직책이 필요합니까. 목사직은 천하를 빼앗긴다 해도 뺏길 수 없는 직분입니다. 목사님들이 이걸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조향록 목사는 조향록 목사는 1920년 8월 3일 함경남도 북청군 거산면 건자포에서 가난한 집의 둘째로 태어났다. 불신자였던 부친이 예수를 믿고 신유의 은사를 받은 다음 교회를 세우자 당연히 목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흥과 원산의 성경학원을 나온 그는 20세에 조선신학원(한신대 전신)에 입학해 송창근 김재준 목사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43년 풍상읍교회 전도사를 시작으로 목회에 나선 조 목사는 51년 경남 진양 한일중학교 교장으로 잠시 일했고, 그 다음해에는 한일고등학교를 설립했다. 54년 서울로 올라온 조 목사는 리더스다이제스트 한국어판을 간행하던 이주운 주태익 등과 함께 다방교회를 열어 예배와 문학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다방교회에는 김형식 김동진 이성삼 이희호 임인수 정규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54년 초동교회에 부임, 1년 만에 판잣집 예배당을 2층 벽돌예배당으로 건축하고, 60년대 초에는 제네바대학교에 유학했다. 65년 다시 교회에 부임한 조 목사는 교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자 71년 현재 위치인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뒤편에 지하 2층, 지상 6층의 현대식 건물로 예배당을 건축했다. 71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낸 조 목사는 76년 한국신학대학장으로 부임해 종합대학 인가에 힘써 오늘날 한신대학교의 기초를 놓았고, ‘생명의 전화’ 운동을 벌여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됐다. 자나 깨나 통일을 외쳐온 조 목사는 민주평통 종교분과위원장, 현대사회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기독교’ ‘복음은 땅 끝까지’ ‘시편강화’ ‘역사의 지표’ ‘사랑의 빛 사이를 지나며’ ‘팔십자술’ 등의 책을 저술했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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