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 긍정의 힘]⑧현명한 승부사 ‘탁구 여왕’ 현정화 | ||||||||||||||||||||||||||
현정화_ (웃음)선수 생활할 때야 항상 있었죠. 김진세_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이 확정되자마자 감독님과 부둥켜안았던 당예서 선수의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현 감독님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중 제 눈에 들어온 건 “경기에 져서 선수들은 침울했는데 감독님은 ‘씨익’ 웃고 박수 치면서 가자고 하시더라”는 거였어요. 당 선수는 그 점이 놀라웠던 모양이에요. 현정화_ 아, 그래요? 저희가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졌어요. 그럼 3등이 되는 게 아니라 다시 8강전을 하고 또 3, 4위전을 치러야 해요. 준결승 패배 후 선수들은 ‘동메달 못 따겠구나’라고 생각했나 봐요. 저는 이미 우리의 목표는 동메달이라고 다시 정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종료하겠다는 마음이 급했어요. 내일 당장 경기를 해야 하니까요. 다그치기보다는 “잘했다”고 했죠. 사실 경기 내용도 좋았어요. 정말 아깝게 졌거든요. 당시 아쉬운 것은 ‘내가 조금만 더 준비를 했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 하는 나에 대한 질책이었어요.
현정화_ 네, 계산된 상황이었지요. 김진세_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시는군요! 승리의 쾌감에 익숙한 진정한 승부사 현정화_ 아무래도 저희들의 삶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훈련은 길고 지루하고 힘든 반면 경기 시간은 짧거든요. 거기서 뭔가를 얻어내지 못하면 이 생활을 견뎌내기가 힘들겠죠. 이겼을 때의 묘한 쾌감이 있어요. 자기만족도 크고요. 그것 때문에 한다고 보시면 되죠. 사실은, 그게 되게 짜릿해요. 김진세_ 좌절감에 너무 민감하면 오히려 경기를 못할 수도 있고, 이기는 습관이 들어 있거나 이길 때의 쾌감에 강한 사람들은 더 잘할 수 있겠네요. 승리의 쾌감을 얻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뇌가 자기 몸을 통제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정화_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학습을 통해서 제 몸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거예요. 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선수로 가는 길을 포기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중요한 포인트예요. 내가 상대 선수를 6:4로 이길 거 같다고 보면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거고, 5:5가 되면 좀 더 팽팽한 심리전이 펼쳐지는 거고, 4:6으로 불리한 경우에는 위축돼서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많죠. 김진세_ 저희 때는 모두가 현정화 선수 팬이었잖아요. 현정화_ 아, 고맙습니다(웃음). 김진세_ 그때는 국민적인 영웅이었어요. 당시 TV에 나온 모습을 떠올리면서 든 생각인데요, 긴장을 하셨던 건가요? 무표정하셨잖아요. 현정화_ 아, 경기할 때요? 정말로 아무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경기에만 집중하는 상태거든요. 어렸을 때는 경기 중에 제 표정에서 아쉬움이나 분노가 드러났나봐요. 선생님들로부터 그런 지적을 몇 번 받은 뒤에 되도록 내 표정을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요, 모든 사람들이 “현정화가 금메달을 딸 것이다”라고 하면 제가 흥분이 되지 않겠어요? 김진세_ 당연히 그렇죠. 현정화_ 사실 흥분이 되거든요. 승리를 예감하는 흥분 상태를 저는 알아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터질 거 같 죠. 그런 상태로 인해 다 이긴 경기를 진 적이 있어요. 얼마나 아까웠겠어요. 다음부터는 ‘이기나보다’ 싶으면 차분해지려고 했어요. 경기 중에 외치는 “파이팅”도 잘 안 하고요. 경기가 끝나도 그 상태를 쭉 유지하는 거예요. “왜 현정화는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저리도 차분할까”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제가 (감정을) 눌러야지만 이길 수 있으니까요. 김진세_ 이런 얘기를 선수들한테 해주세요?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현정화_ 그렇게 해야만 돼요. 경기에 나서면 저도 떨려요. 입술이 파르르 떨리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선수들이 작전에 성공하게끔 만들 수 있는가’를 잃지 않아야 하죠. 김진세_ 혹시 선수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이 따로 있나요? 현정화_ 저는 탁구를 할 때 그런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쪽에서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나고, 어떠한 유명인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저는 제 볼과 라켓, 상대방의 라켓만 보는 거죠. 그럼 무아지경에 빠지는데, 그러면 볼이 와서 제 라켓에 절로 맞아요. 그냥 쳐도 맞아 들어가고…. 연습 때 그런 상황을 반복하면 경기에서도 그렇게 돼요. 떨리거나 두렵지 않고, 내가 생각한대로 되는 거죠. 그럼 상대편이 아무리 잘해도 다 막아낼 수 있어요. 김진세_ 그런 집중력이 탁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시죠? 현정화_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해요(웃음).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답답하리만큼 고지식해요. 그런 점이 약간 화가 나요. 김진세_ 현 감독님같이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분이 나를 보좌해주면 너무 행복하죠. 하지만 위에 계시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요. 반면 탁구선수에게 있어서는 정말 유리한 성격인 거죠. 현정화_ 그런가요?
탁구 여왕 엄마의 지도자식 교육법 김진세_ 얼마 전 따님이 TV에 나와서 빵 터뜨렸던데요(SBS-TV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출연한 딸 서연이가 “엄마가 가장 슈퍼맨 같을 때는 탁구할 때도, 운동할 때도 아닌 술 마신 다음날 끄떡없을 때”라고 ‘폭로’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술 좋아하시나봐요?(웃음) 현정화_ (웃음)좋아하기보다는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마시죠. 요즘은 주로 탁구 하는 선생님들과 회의가 잦아서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김진세_ 주말에 집에 가시면 아이들과 뭐 하세요? 가끔 저희 동네 빵집에도 오시던데(웃음). 제가 몇 번 뵈었어요. 현정화_ 아, 제가 가는 데만 가요(웃음). 그 빵집이 저희 집과 멀거든요. 그런데도 꼭 그 빵집에서만 빵을 사요. 음식점도 많은데, 꼭 가는 집만 가고요. 김진세_ 어려서부터 그러셨어요? 현정화_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제가 갇힌 생활을 하는 거 같아요. 자신을 자꾸 가둔다고 해야 하나? 김진세_ 왜 스스로를 가두려고 하세요? 현정화_ 방해를 많이 받으니까요. 이쪽저쪽에서 도와달라고 하고요. 김진세_ 인터뷰도 해달라고 하고(웃음). 현정화_ 그런 일들에 제가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니까요. 탁구단 홍보라면 모를까, 제가 개인적으로 원해서 방송 출연 하는 건 없어요. ‘붕어빵’은 딸이 정말 원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한 거고요. 김진세_ ‘내가 이 시간에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엄마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갈등이 들 법도 하겠어요. 아이들이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나요? 현정화_ 이해하는 거 같아요. 제가 교육을 시키거든요. ‘엄마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고 탁구를 하기 때문에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너희들이 알아야 한다’고. 간혹 아이들이 투정부릴 때도 있지만, 시간 날 때면 늘 함께하는 걸로 만회해요. 김진세_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 현정화_ 딸은 아홉 살, 아들은 일곱 살이에요. 딸은 서운할 수 있는 나이죠. 그래도 제가 할 일은 다 해요. 학교 갈 일 있으면 가고, 틈나면 선생님과 상담도 하고, 다른 학부형들에게 식사도 사면서 학교 동향을 물어보기도 하고요. 김진세_ 서연이 성격이 어때요? 현정화_ 저를 닮았어요. 잘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스타일이죠. 제가 봐도 뭘 많이 시키거든요. 학교 숙제도 많고 학원 숙제도 있고 탁구까지 시키는데도 해내는 편이에요. 아들은 고집이 무지하게 세요. ‘땡깡’도 부려요(웃음). 요즘 보면 우리 아들은 습득력이 빠른 거 같아요. 또 다른 남자아이들에 비해서 과격하지 않아서 누나하고도 잘 놀고요. 미운 일곱 살이라고들 하는데 그런 건 모르겠어요. 김진세_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인가요? 양육법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교육철학이라고나 할까?
김진세_ 엄하세요? 현정화_ 그럴 때도 있지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데 혼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큰 아이가 원래 공부를 잘하는데 수학 시험에서 다섯 개를 틀린 적이 있어요. 아무튼 그때 혼내지 않고 “괜찮아”라고 해주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경기가 끝난 뒤 잘못한 점을 자꾸 들추어내면 짜증이 나서 더 하기 싫잖아요? 제가 그런 거 싫어해요. 그런 마음을 잘 아니까, 가능하면 혼내지 않아요. 연애를 잘하는 것도 탁구 챔피언의 능력! 김진세_ 남편도 탁구선수 출신이시죠? 현정화_ 네. 요즘은 탁구가 많이 활성화되어서 동사무소나 구청에 탁구교실이 많거든요. 남편은 거기서 강사하면서 생활체육을 하고 있어요. 김진세_ 바깥분 성격이 어떠세요? 현정화_ 유하세요. 김진세_ 감독님의 성격이 꼼꼼해서 남편과 부딪치는 부분은 없나요? 현정화_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서로의 어떤 영역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아요. 김진세_ 일하는 거에 대해서요? 남자들이 그러기 참 힘든데(웃음). 자꾸 간섭하려고 들거든요. 저 역시 그렇고요. 현정화_ 그러세요? 우리 남편은 절대 안 그래요. 제가 힘든 일이 있으면 상의를 하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대표팀을 계속 맡아야 하느냐, 그만두느냐를 두고 물어보면 “편한 대로 하라”고 해요. “결국에는 네 생각대로 할 거 아니냐”면서. 남편 말이 맞아요. 결국 제 생각대로 하거든요. 그걸 아니까(웃음). 김진세_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1998년에 결혼하셨죠? 결혼 10년 차에, 연애도 10년을 하셨고요. 참 연애는 어떻게 하셨어요? 한창 바쁘셨을 때인데. 현정화_ 선수촌에서 만났어요. 그냥 느낌이 좋았던 거 같아요. 김진세_ 미남이시던데요. 현정화_ 아마 그런 후광(?)도 있었겠죠. 김진세_ 하지만 그 당시 현정화 선수도 만만치 않았던 거 같은데…. 현정화_ 그건 저도 잘 모르겠고요(웃음). 고3 막바지 무렵이었는데 “밖에서 밥이나 한 번 먹지” 그러다가 우연찮게 밖에서 한 번 만났고 졸업 후 각자 실업팀 소속으로 뛰다가 여기 태릉선수촌에서 다시 만났죠.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주말이면 의레 만났어요. 영화도 같이 보고 밥도 같이 먹다가 친해졌어요. 우리 남편도 참 무던한 게, 변함없이 10년 동안 만났으니까요. 남편은 일정 부분 저 때문에 박해를 받았어요. 김진세_ 네? 박해라니요? 현정화_ 그때만 해도 연애하면 탁구를 못한다고 했거든요. 제가 잘하는 선수고 남편은 좀 부족한 선수니까. 아무래도 실력이 좀 부족한 선수가 박해를 받게 되어 있어요. 압력도 들어가고요. 김진세_ 아, 만나지 말라는? 현정화_ 우리 팀 감독님이 그 팀 감독님한테 그렇게 전하는 바람에 남편이 탁구를 일찍 그만뒀어요. 남편은 충분히 상무에 갈 수 있는 실력이었거든요. 그런데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실질적으로 탁구를 그만뒀죠. 제대 후에는 일반 대기업에 입사했고요.
현정화_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일정 부분 저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더 친해진 것도 있었고요. 김진세_ 지금 훈련시키는 선수들도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시기일 텐데, 뭐라고 얘기해주세요? 현정화_ 본인의 통제능력이 있으면 이성을 사귀는 게 별 문제가 되겠어요? “할 일 열심히 해라. 그리고 남자친구 있으면 데리고 와봐라” 그러죠(웃음). 통제한다고 해서 연애를 안 하겠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웃음). 그래도 저는 연애하면서 운동에 차질을 빚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저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더 도움이 됐고 같은 분야에 있어서 늘 경기를 보고 있으니까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더 의식되기도 했지만, 연애를 잘 못하는 것 역시 내 일을 못해내는 거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선수들에게도 연애에 대해서는 “노 터치! 본인이 판단하라”고 하죠. 어느 분야에 몸담든 최고가 되고 싶었을 것 김진세_ 선수들 카운슬러 역할도 잘해주신다면서요? 가정에서는 엄마가 상담 역할을 잘하잖아요. 아이들은 엄마에게 마음을 열고 얘기를 잘하나요? 현정화_ 딸은 첫아이라 첫정이란 게 있어요. 어려서부터 시근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사투리로. 애가 눈치도 빠르고 좀 어른스러워요. 엄마랑 오래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제가 집에 가면 딸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다. 누구보다 우리 딸이 최고다”라고.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줘요. 김진세_ 꼼꼼하고 완벽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나와 같은 기준으로 가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아이들에게 지적을 많이 하지는 않나요? 현정화_ 선수들 지도하면서 제가 아무리 완벽하게 이끌어줘도 본인이 우러나서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저 역시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지금의 자리에 왔기 때문에 잘 알죠. 김진세_ 무엇이 최고의 탁구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동기가 됐을까요? 현정화_ 목표? 의식? 글쎄요. 처음에는 탁구를 잘하고 싶었고,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어요. 국가대표가 되고 난 뒤에는 1인자가 되고 싶었고요. 어떤 분야에 몸담든 그 분야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거예요. 김진세_ 선수들이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문제가 있을 때 고민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감독님도 어려서 아버님이 많이 아프셨기 때문에 힘드셨을 텐데. 현정화_ 그랬죠, 그랬는데…. 지금은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아! 그런 건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너무 힘들게 사시니까 ‘엄마를 위해서 내가 잘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은연중에 있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그것도 동기가 될 수 있죠, 어린 현정화에게는 충분히. 현정화_ 그렇지만 어머니는 제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어요. 늘 부지런하게 일하시고 제 뒤에서 그림자처럼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셨어요.
현정화_ 제 딸도 탁구를 치면 잘하지 않을까요?(웃음) 김진세_ 그럴 수 있죠. 아버님이 탁구 치시는 거 본 적 있으세요?(1983년 작고한 아버지 현진호씨는 부산상고 재학 시절 탁구선수로 활약했다.) 현정화_ 저는 못 봤어요. 오래전부터 집에 누워계셨고 활동은 거의 못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저를 보면 “네가 탁구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강요는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려고 하면 “더 자지, 왜 이리 일찍 일어났느냐”고 하시고, 경기 하고 늦게 오면 아이스크림 사오셔서는 “이걸 먹어야 피로가 빨리 풀린다”고 하신다든가. 김진세_ 아주 어려서부터 자기 일을 잘 챙기셨군요. 지금도 남편이 “하고 싶으면 해라,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라고 할 정도니까요. 현정화_ 그런 편이었어요. 저희는 딸만 셋이라 어머니가 일일이 다 챙겨주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서 저녁 늦게 오시는 편이라 저희가 청소도 하고 밥도 챙겨 먹었죠. 여성 IOC 위원으로 또 한번 한국 최초의 기록을 김진세_ 독자들은 아마 이제 마흔 살이 된 아줌마 현정화 감독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할 거예요. 현정화_ 여자로서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는 걸 두렵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주머니들이 “쉰 살이 좋고 예순이 되면 더 좋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어요. 아니 느끼고 있어요. 나이를 먹으면 주름이 생기잖아요. 김진세_ 아니, 주름 없는데요?(웃음) 현정화_ (웃음)아니, 저는 느껴요. 주름이 생기는 게 싫긴 한데, (마음은) 풍요로워지는 거 같아요. 어린 선수들이나 후배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경제력이 생긴다거나 지휘력이 생기는 걸 보면서 제 가치관이 바뀌고 있어요. 지금은 과도기인 거 같아요. ‘지금까지 여자로서 나의 삶은 뭔가’라는 고민을 해왔는데, ‘앞으로 해야 할 새로운 게 더 많네’라는 방향으로 바뀐다는 거죠. 김진세_ 아까는 너무 바빠서 일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니(웃음). 만약 시간이 생기면 뭘 하실 건가요? 현정화_ 저를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도록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배운 걸로 이렇게 왔는데 그래도 배울 게 많아요. 김진세_ 시간을 줄일 수가 있을까요? 자기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세요? 현정화_ 지금은 안 돼요. 하지만 대표단만 나가면 가능할 거 같아요. 김진세_ 지금의 코칭 체제가 2012년까지 가는 거 아닌가요? 현정화_ 아니요. 지금은 2010년까지 되어 있어요. 만일에 잘하면 연장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안 하고 싶어요. 김진세_ 헉, 이건 기사화하면 안 되지 않나요?(웃음) 현정화_ 다른 쪽에서 (선수들) 서포트해주면 되죠. 김진세_ 이건 제 생각인데, 2012년이 돼서 ‘감독님, 계속 하셔야죠’ 하면? 현정화_ 할 거예요. 김진세_ 아까 말씀하신 책임감 때문에 하실 거예요. 혹시, 다른 꿈도 꾸세요? 현정화_ 네. 체육계에서 일하는 여성 지도자, IOC 위원이 되는 게 제 궁극적인 꿈이에요. 김진세_ IOC 위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하나요? 현정화_ 전반적인 올림픽 관련 사업을 하고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높이는 거죠. 우리가 모든 스포츠에서 국제 경쟁력이 부족한데 제가 IOC에 있으면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죠. 이를테면 대회를 유치하거나 세계적인 지도자들을 이끌 수도 있고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서 우리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김진세_ 언제부터 생각하셨던 거예요? 현정화_ 서른 살부터(웃음). 그런데 나이 들면서 몸이 피곤해지니까 의지가 자꾸 약해져요. 공부도 안 하게 되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선수촌에서 나가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김진세_ 집중력이 좋으시니까 그런 단점이 있는 거예요. 아마 멀티플레이어라면 탁구에서 그랜드슬램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현정화_ 한때는 사업을 하면 좋겠다거나 아주 문외한인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은 전혀 없고 내가 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계획이나 내가 후배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해요. 현정화 장학재단, 나누는 삶을 꿈꾸며 김진세_ 공식 질문 드립니다(웃음). 저희 독자들께 긍정적인 삶에 대한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현정화_ 저는 요즘 나누는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동료, 친구, 여러 사람들과 같이 행복도 나누고 불행도 나누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공유하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져요. 또 그 나눔이 반드시 돌아와요. 이를테면 애들이 어릴 때 제가 태릉선수촌에 들어오려면 대단한 각오를 했어야 하잖아요? 김진세_ 그렇죠. 현정화_ 처음엔 ‘지금 이 시간에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돌볼 선수들도 다른 부모들의 아이들이잖아요? 제가 이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으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상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 거죠. 지금도 탁구계 후배들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제 시간을 투자하는 거고요. 많은 분들이 나누는 삶을 실천하시는데, 저도 그럴 수 있는 때가 되면 나서고 싶어요. 조금 더 부(富)가 쌓이면 저도 현정화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고 실질적으로 준비도 하고 있고요. 김진세_ 자기가 남보다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눈다는 말씀이죠? 돈이 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일 수도 있고, 시합에 집중할 수 있는 노하우가 될 수도 있고요. 현정화_ 네. 사실 처음 지도자로 나설 때는 확신이 없었어요. 내가 가진 노하우로 세계를 제패했음에도 제가 선수들에게 확신을 갖고 가르치지 못했어요. 그런데 10년 이상 선수들을 가르쳐보니까 제 방법이 맞더라고요.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정말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거예요. 김진세_ 예전에 쓰신 책 보니까 한창 때 나이트클럽도 다니셨던데, 지금도 경기 끝나면 나이트클럽 가세요?(웃음) 현정화_ 선수들이 원하면 가요. 그런데 재밌지는 않더라고요(웃음). 차라리 저녁 먹으면서 술 한잔 하고 다음에 더 잘하자고 얘기하는 게 낫죠. 그런 점을 보면 나이 드는 거 같아요. 김진세_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 많지만 일단은 내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거 같아요. 하늘이 무너져도 이건 절대 침범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하죠. 또 한 가지는 쓸데없는 사람 만나지 않는다! 이것도 들어가더라고요(웃음). 자, 인터뷰는 이제 끝난 거 같은데요, 혹시 하실 말씀 있으세요? 현정화_ 그럼, 이제 탁구나 치러 가시죠! 현정화는… 1969년 부산 출생.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탁구 입문. 1987년 양영자 선수와 팀을 이뤄 출전한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복식 부문 우승으로 시작해 한국 탁구 역사의 빛나는 순간을 장식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중국의 덩야핑에게 패배한 뒤 ‘현정화의 시대는 갔다’는 기사가 난무할 정도로 혹독한 슬럼프를 겪었으나 199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화려하게 부활! 한국 탁구 역사상 37년 만에 여자단식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최초로 탁구세계선수권대회 그랜드슬램(단식·복식·혼합복식·단체전)을 달성했다. 1994년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현재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1998년 결혼한 동갑내기 탁구선수 출신 김석만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긍정의 힘을 보태는 선물 현정화에게 선물하는 한 권의 책 - 「여행의 책」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행의 책」(열린책들)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여행이 주는 여러 가지 멋과 맛이 있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과 함께라면 더욱 좋지요. 여행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고, 꼭 ‘시간 내서’ 여행 다녀오세요. ‘시간 나면’ 가지 마시고요. 여행은 지친 마음과 몸을 치유한답니다. 실은 욕심이 나서 그래요. 감독님이 건강해야, 좀 더 빨리 한국 최초의 여성 IOC 위원을 볼 수 있으니까요!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현정화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현정화 감독에게 선물한 「여행의 책」을 보내드립니다.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파리6대학의과대학에서 메조테라피 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며, 고려제일신경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마흔의 심리학」(공저)을 쓰고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를 번역했다.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에 이어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을 더했다. ■ 기획&정리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
출처: 레이디 경향
현정화 선수
뭐든지 프로는
피, 눈물, 그리고 땀에 절여진 인생이다.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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