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삶/리더십

박항서 리더십을 응원하며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7. 3. 10:43

 

 

이제 이천수는 잊고 박항서를 이야기하자

 

“현회 형, 저 외로운데 소개팅 좀 시켜주세요.” 한 후배가 부탁을 했다. 나는 후배의 외로움을 방관할 수 없어 주위에 아리따운 처자를 물색하다 친한 친구 여동생을 떠올렸다. 결국 나는 친구 녀석과 그 여동생을 힘겹게 설득해 ‘소개팅에 나가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소개팅 날, 약속 시간이 10분 쯤 흐른 뒤 후배와 친구 여동생에게서 동시에 문자가 날아들었다. “형, 쟤는 진짜 아니잖아요. 난 통통한 여자 정말 질색이에요.” “오빠, 무슨 남자가 저래요. 정말 매너 없네요.” 자초지동을 들어보니 후배는 그녀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자 불과 몇 분 만에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고 그녀는 그런 남자를 보면서 굉장히 불쾌해 한 것이다. 나는 친구 여동생 앞에서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친구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할 말이 없었다.

괜한 오지랖을 부리다가 결국 가운데서 나만 ‘새’가 된 것이다. 굉장히 입장이 난처해졌다. 불편한 심기에 소주를 들이킨 나는 혼자 다짐했다. “다시는 소개팅 같은 건 주선하지 않으리라.” 왜 축구기자가 축구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런 공간에 일기나 쓰고 있느냐고 하지 말라. 이천수 때문에 힘들어하는 전남 박항서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잠시 썰을 풀었다.

이천수가 K-리그를 떠났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거짓말을 한 이천수가 잘못했다’, ‘이천수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득을 챙기려던 전남 구단이 잘못했다’는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박항서 감독의 입장을 떠올려 보자는 것이다. ‘이천수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천수도 아니고, 전남 구단도 아닌 박항서 감독이다.

흔히들 명장을 논할 때 대게 세 가지 경우를 예로 든다. 첫 번째로는 잘하는 팀을 더욱 잘하게 만드는 감독, 두 번째로는 못하는 팀을 잘하게 만드는 감독,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미 한물 간 선수를 재기시키는 감독이다. 이 세 가지 경우 모두 훌륭한 감독이 가져야 할 요소지만 그래도 나는 이 중에 마지막에 언급한 요소를 가진 감독이야 말로 명장이라고 생각한다. 한물 간 선수를 재기시킬 줄 알아야 못하는 팀을 잘하게도 만들고 잘하는 팀도 더 잘하게 만드는 법이니 말이다.

박항서 감독은 수원에서 버리다시피 한 이천수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코치와 선수로 인연을 맺은 박항서 감독은 돌출 행동을 일삼는 이천수의 축구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전남 구단이 이천수의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재기했지만 박항거 감독은 “재능 있는 선수를 이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면서 구단을 설득했다.

구단 측도 결국 박항서 감독을 믿고 이천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이천수 영입 한 달 만에 구단 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3월 벌어진 서울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이천수가 ‘주먹 감자’ 제스처로 징계를 받을 때 ‘선수 관리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엄중 경고와 함께 벌금 100만 원을 냈다.

당시 박항서 감독은 “이천수 뿐 아니라 다른 선수가 잘못을 해도 감독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아니겠느냐”면서 “이천수가 다른 어떠한 행동을 했다 해도 내 책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3개월 뒤 박항서 감독은 ‘믿었던’ 이천수에게 완전히 배신을 당했다. 이천수는 원소속팀 페예노르트의 완적 이적 추진을 받아들였다. 자존심을 세워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남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코칭스태프와 불미스런 충돌까지 빚어졌다. 이천수는 “원래부터 전남이 싫었다”는 말도 남겼다.

이 와중에 계약서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이천수는 기자들을 따로 만나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기 급급했다. 前에이전트가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전남 구단은 팀을 떠난 이천수에 대해 프로축구연맹에 임의탈퇴 요청을 했다. 전남과 이천수는 갈 데까지 간 상황에서 최악의 이별을 하고 만 것이다.

박항서 감독은 앞서 언급한 명장의 조건 중 세 번째 요소에 겁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 ‘이천수 사태’로 큰 상처를 입은 ‘초보 감독’이 다시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선수 영입에 모험을 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박항서 감독이 의욕적으로 부활시키려는 선수가 머리에 떠올라도 ‘이천수 사태’를 겪은 그가 ‘의욕’보다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힐지도 모를 일이다. 구단에서 반대한 이적을 추진하며 의욕을 보인 박항서 감독은 결국 소개팅을 주선하고도 원망만 들은 나처럼 난처한 상황이 됐다. 구단에 고개를 들 수도 없고 팬들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도 없다.

명장의 조건을 떠나 발언권이 약해졌다는 것도 ‘감독 박항서’가 풀어야 할 숙제다. 구단에 미안한 마음 가득한 박항서 감독이 강력히 선수 영입과 전력 강화를 위한 요구를 할 수 있을까. 발언권이 약한 감독은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박항서 감독은 이천수를 잃으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1일 3연승 중이던 강원을 1-0으로 제압하고 팀을 FA컵 8강에 올려놓은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떠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이제 내 선수도 아닌데…”라고 말한 그는 “남은 사람은 축구를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팀을 수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규리그 7위를 질주 중인 전남은 정규리그 6강 플레이오프 진출과 FA컵 제패의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감독 생활이 4년 밖에 되지 않는 박항서 감독은 노련한 감독도 쉽게 넘기기 힘든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축구팬들도 지금은 박항서 감독을 응원하고 위로해 줄 필요가 있다. 박항서 감독의 상처는 그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크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다면 박항서 감독은 더욱 훌륭한 지도자가 돼 K-리그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우리가 그를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에게 또다시 실망을 안겨준 ‘알 나스르 이천수’는 잊고 이제는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할 ‘K-리그 박항서’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길 바란다. 소개팅 주선자였던 내가 그 소개팅녀와 지금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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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을 응원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가치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진심이 받아 들여지지 않고 

배반 당하였을지라도

기회를 주고자 했었던 그 마음은 

여전히 아름다운 메아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