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삶/영적 리더십

청년대학부가 부흥하려면,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4. 10. 07:53

청년포럼을 하는 동안 한국교회, 특히 우리 감리교회의 청년목회의 현주소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첫째는 청년 대학부의 부흥을 일으킨 모델이 될만한 교회들이 감리교내에는 매우 적었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포럼내내 저조한 참여률 볼 때 청년목회에 대한 교회의 긴박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들이 살아서 숨쉬고 있는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포럼을 통하여 바람직한 청년목회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청년대학부가 부흥하려면


청년대학부를 어떻게 하면 부흥시킬 수 있는가라는 매우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청년들을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사랑하는 것이 청년부흥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이다. 청년들의 군대가는 것에 참여하기 위하여 함께 머리를 빡빡 밀었던 이문동교회의 김만수목사처럼 청년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희노애락에 깊이 참여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청년이 되는 것을 말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청년대학부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반대로 말해서 청년들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해서 교회가 청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청년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청년들의 삶과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는커녕 교회 자신의 문화와 형식에 청년들을 제한하고 속박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교회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청년대학부가 부흥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청년목회포럼을 통하여 얻은 것들을 종합하여 열가지 정도로 말하고자 한다.

첫째, 청년대학부의 부흥의 기본은 말씀과 기도 생활등 영성의 회복에 있다. 청년들을 위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움직이는 어느 교회의 목회자가 이런 고민을 토로해온 적이 있다. 교회가 청년들을 위하여 예산을 풍족히 세우고, 청년들을 위하여 교회 안에 까페를 만들어주고 원하는데로 인터넷 시설과 농구골대 그리고 충분히 찬양팀도 활동할 수 있도록 악기와 기재들을 다 사주고 최선을 다하여 청년들을 위하여 지원하였고, 다른 교회보다 앞서서 불신청년들을 타겟으로한 콘서트와 같은 공연을 기획하고 담임목사 자신도 청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주일 2시에 드리는 청년예배에 직접 매주일 설교하는등 많은 사랑을 붓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청년부의 부흥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 목회자가 놓친 것이 있다면 청년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영적 부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놓치기에 많은 청년목회자들이 영성의 기본인 말씀양육과 기도생활은 한결같이 청년들의 영성을 회복하는 계획한 탁월한 영성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같은 기본기는 소홀히 한 채 문화적으로만 접근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문제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교회들이 이런 특징을 가졌지만, 특히 남서울교회(신승진목사) 청년대학부의 부흥에는 “아드모”라 하는 청년들의 아침 기도운동에 있었고, 둔산제일교회(문상욱목사)의 경우는 무리수처럼 보이지만 40일동안 지속되는 말씀양육에 있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성육신 정신으로 해야


둘째, 청년들이 원하는 것이 영적부흥이라면 그것에 이르기 위하여 열린자세인 문화사역이 청년들의 부흥에는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성육신이라는 예수의 문화적인 동일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읽게 되는 것처럼 청년들도 교회의 문화적인 수용태도와 행동들을 통하여 교회의 메시지에 신뢰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꿈이있는교회(하정완목사)처럼 열린예배와 문화사역을 통하여 청년들을 만나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정말로 청년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히피문화라 할지라도 수용하고 그들의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성육신 정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청년들이 가장 중요하게 만나는 예배에 승부가 있다. 우리가 만난 모든 교회들의 특징은 예배에 성공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예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필요하며 목회자는 목숨을 건 사역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청년들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은 채 장년예배에 청년들을 포함시키는 경향일 것이다. 최근 들어 청년교회 혹은 청년대학부를 위한 주일오후예배들이 생기는 좋은 시도들이 있지만 단순히 청년들을 위한 시간대를 만든다는 개념보다 설교자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들이 청년대학부의 성격에 맞게, 그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청년들과 함께 놀고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형성이 중요하다. 사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교회감소의 원인에는 신앙이 매우 개인적으로 흐르는 경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것은 익명을 요구하는 신앙형태로, 대교회 중심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관계가 상실된 교회의 움직임에 관계를 중요시하는 청년들이 감소의 주체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청년대학부가 성장하는 교회들은 한결같이 강한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예수마을교회(성락범목사)처럼 교회를 개방하여 교회에서 공부하고, 먹고, 놀고 생활할 수 있는 생활공동체가 청년부흥하는 교회들의 특징이었다는 말이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교회구조에서 청년부흥이 요원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섯째, 청년부흥이 이루어진 교회들은 교회에 의존적이기보다는 자기 훈련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각 청년 개인이 큐티처럼 정기적인 기도와 말씀공부, 경건서적 읽기등의 기본적인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신앙생활의 영역을 교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까지 확장시키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섯번째, 뿐만아니라 소그룹에 강조점을 둔 제자훈련과 같이 청년들을 양육하여 역동적인 그룹으로 성장시키는 훈련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사실 양육되기 전까지 청년들은 교회내에서 애물단지처럼 취급될 수 있다. 하지만 동기가 부여되고 양육을 통하여 성장하면서 헌신하게 될 때 그 갖고 있는 능력은 극대화될 수 있다. 청년들이 90%인 꿈이있는교회의 경우 교회운영이 힘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청년들의 70%정도가 십일조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 일반교회들과 비교해서 예산적으로 위축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현재 교회의 문제는 훈련에 대한 관심보다는 성가대, 교사등 교회안의 일을 위한 존재로만 사용하는데 있다.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중에 상당수가 양육받고 싶어서라는 대답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청년들을 교회의 주체로


일곱 번째, 결국 청년들을 단순히 교회안의 소모적 존재가 아니라 교회운영에 함께 동참시키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청년부흥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교회일수록 청년들이 적게 모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만큼 어릴 때부터 자란 청년들을 교회안의 독립적인 신앙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서울교회는 청년교육목사를 청년담임목사라고 부름으로 독립체로 인정하고 있었고, 예수마을교회는 장년과 청년을 동수로하여 교회사역을 꾸려가고 있었고, 꿈이있는교회는 교회를 이끄는 리더들이 나이를 막론하고 훈련되고 제자를 삼은 경력에 따라 정해지고 있었다. 예수가 20대의 제자들을 구원사역의 주체로 삼은 것처럼 청년들을 교회의 중심적인 사역의 한 축으로 참여시킬 때 청년부흥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덟 번째, 청년부흥이 이루어진 교회들은 예외없이 단기선교를 비롯하여 교회밖으로 눈을 돌리는 사역에도 열심을 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단기선교사역은 청년들에게 기도, 말씀, 생활, 사역, 팀훈련을 단기간내에 시킬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세계를 품으므로 자신의 비전을 재확인하고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결국 모든 문제는 고인 물에서 시작되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같은 선교지향적인 청년사역은 청년부흥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동시에 청년들의 성향상 관심의 영역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이벤트적 사역접근도 필요하다. 청년들의 부흥이 이루어지는 교회들은 예외없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공고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이벤트행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홉 번째, 청년부흥을 위해서는 확실한 리더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들의 특징중에 하나가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결국 친구나 선배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세대가 청년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리더들을 양육하고, 좀 부족하더라도 리더로 세우는 일은 건강한 청년부흥을 이루게 할 것이다. 사실 우리 교회들이 부족한 부분이 리더십훈련의 부재에 있다. 그 말은 청년들을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청년들을 리더로 인정하고 맡기지 않으면 언제나 마마보이같은 애물단지로 남을지도 모른다.


열 번째, 청년사역의 범위를 확장시켜서 대학생선교와 직장청년 선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대학생선교와 직장청년선교는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어왔지만 기성교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영역이라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직장선교를 감당해온 안암제일교회의 원용일목사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20-30대 청년들의 대부분이 직장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일주일내내 직장과 학교에서 피곤하게 시달려온 청년들을 배려하는 사역, 그들도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셀러리맨으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청년부흥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부흥은 주님의 명령


청년부흥! 마지막으로 이런 제언을 하고 싶다. 그것은 교회성장학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교회의 아웃사이더로 취급받고 있는 청년들의 회복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청년들을 위한 전문목회자들이 더 많이 훈련되어지고 교단적으로 청년목회자들을 양육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예를 들어 수련목회자들이 청년목회를 할 경우 연속성을 고려하여 청년대학부때 헌신한 청년이 그 교회의 청년부와 함께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교회에서 다시 청년들을 맡으면서 수련목회자를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후에는 더욱 전문적으로 청년부를 계속 인도할 수 있는 시스템의 보완같은 것 말이다. 청년이 살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일부분의 소망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소망이고 지상명령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청년부흥은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말이다. <끝>

하정완 목사
(꿈이있는교회 , 감리교 청년목회자 네트워크 공동대표)

 

 

이와 관련하여 청년대학부가 부흥하려면

 

건강한 두날개로 준비함이 필연적이다.

 

축제적예배와 전인적인 소그룹이 필요하다.

 

또한 역동적인 사역을 위해 성령사역이 필요하다.

 

금요기도회와 다양한 방법으로 빚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생없는 열매는 없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법이다.

 

기도하면서 미래를 열라.

 

 

- 무학교회 청년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