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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 기한’ 쫓긴 이주노동자 삶 접어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3. 21. 00:22
재취업 기한’ 쫓긴 이주노동자 삶 접어
한겨레 | 입력 2009.03.20





[한겨레] 재입국 2달만에 해고…등록증·생활비 도둑맞고 절망


"인생에 시련 많다는데 저는 극복할 수 없네요"

"멀리 있어 더 생각나는 할아버지와 부모님, 인생에는 시련이 많이 있다는데 저는 극복할 수가 없네요."

지난 11일 밤 9시께 경기 평택의 한 공장 기숙사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응우엥(32)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재입국 허가를 받아 다시 한국 땅을 밟은 지 52일 만이었다.


2006년 한국에 온 응우엥은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다 3년의 취업기간이 지나 본국에 돌아갔다가 지난 1월 재입국했다. 예전에 일했던 자동차 부품공장에 다시 취업했지만 경기침체의 파고는 거셌다.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두 달여 만에 해고됐고, 고용지원센터를 전전하며 새 일터를 찾아야 했다.

당장의 생활비조차 막막했다. 응우엥은 동료 노동자의 기숙사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했고 부족한 생활비도 꿔야 했다. 동료들은 "고향에 있는 동생 부부와 가족들의 생계를 모두 응우엥이 부담하고 있었다"며 "그 때문인지 직장을 잃고 나서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개월 안에 재취업을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로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인 등록증과 빌린 생활비가 든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최홍진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상담실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 등록증을 잃어 버리면 바로 미등록 불법 체류자로 분류되는 줄 아는 경우가 많다"며 "재취업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등록증과 생활비까지 잃자 극심한 혼돈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응우엥의 주검은 지난 17일 오후 베트남 고향으로 실려갔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내·외국인을 가릴 것 없이 구인난이 심한 요즘, 2개월의 구직기간 제한 규정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숨진 응우엥의 겉옷 안주머니에서는 고용지원센터에서 내준 20여개 업체의 구인 소개장이 들어 있었다.

안경덕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장은 "이미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 노동자의 구직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