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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명저―‘침묵’] 고난의 순간 침묵하는 하나님 향한 절규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3. 19. 07:49

기독교 명저―‘침묵’] 고난의 순간 침묵하는 하나님 향한 절규

[2009.03.18 18:08]      


로마 교황청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왔다. 포르투갈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배교(背敎)를 맹세했다는 것이다. 일본에 체류한 지 33년이 되는 페레이라 신부는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얻으면서 일본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언제나 불굴의 신념이 넘치던 이 성직자가 교회와 신앙을 배반했다는 소식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1635년 예수회는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로 불명예를 당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일본으로 들어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잠복 선교를 계속할 계획을 세운다. 이들과 함께 또 다른 잠복 선교 일행이 있었는데 포르투갈에서 일찍이 페레이라 신부에게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스승이 개처럼 신앙을 배반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로드리고 신부를 포함한 3명의 포르투갈 신부들이 먼저 일본으로 떠나게 되는데….

흥미진진한 서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로드리고 신부와 동행하도록 만든다. 일본 최고 현대 소설가 엔도 슈사쿠(1923∼1996)의 대표 작품 '침묵'(홍성사)은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라는 역사적 정황을 토대로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스토리를 전개한다.

'침묵'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죽어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향한 절규를 담고 있다. 이 절규는 예기치 않은 고통과 뜻 모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묻는 우리의 외침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처절한 순간에 그분은 어디 계신가? 하나님은 정말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신가? '침묵'은 신학적 난제 중 하나인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로드리고 신부 역시 관헌에 잡혀가 배교를 결정해야 할 상황과 마주한다. '침묵'은 이 고뇌의 현장에 고성능 망원렌즈를 들이대고 생중계한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 순간이다. 이 고뇌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침묵'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렇게 전달한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