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삶/생각

고종수와 이천수 그리고 박지성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2. 7. 07:52

고종수 "천수 자존심 꺾고 고개 숙여라..너도 적은 나이 아니다"

2009년 2월 6일(금) 오후 7:06 [스포츠조선]


이천수 고종수
6일 선수 은퇴를 선언한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 고종수의 목소리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듯 홀가분하게 들렸다.

고종수는 90년대 '천재' 소리를 들었다. 각도 크게 휘어 골문 구석에 꽂히는 왼발 프리킥은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하늘이 준 탁월한 축구 재능에다 톡톡 튀는 성격 때문에 '앙팡 테리블'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고종수는 슬럼프의 골도 깊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A대표팀에 탈락하면서 시작된 하락세는 결국 고질적인 왼무릎 부상과 겹치면서 끝내 선수 유니폼을 벗게 만들었다.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했지만 적응에 실패했고, 이후 수원, 전남, 대전으로 옮겼지만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원소속팀 대전 시티즌의 우선협상자 명단에서 제외된 후 고심끝에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고종수는 6일 스포츠조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더이상 많은 관중 앞에서 볼을 차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아쉽다. 여러가지 못다한 말이 있지만 가슴에 묻고 간다"면서 "이제 서포터석에서 팬들과 함께 형(오빠) 동생으로 더 자주 만날 것"이라고 했다.

고종수는 최근 수원에서 임의탈퇴 처리돼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천수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기자가 이천수를 살리는 차원에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없느냐고 하자 고종수는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거다. 나도 해봤지만 자존심을 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며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천수도 어린 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종수와 이천수는 무척 공통점이 많다. 둘은 고교 시절 이미 전국을 평정했다. 고종수는 금호고에서, 이천수는 부평고에서 고교 랭킹 1위였다. 고종수가 왼발 프리킥의 달인이라면 이천수는 오른발 프리킥의 절대 고수다. 그라운드에서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했고, 그라운드 밖에서 몇 차례 불미스런 사고를 낸 것까지도 닮았다. 탁월한 재능이 말많은 사생활에 희석되고 말았다.

고종수는 최근 심장수술을 받은 아버지를 보살피면서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은퇴 선언을 결정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돈 벌어 놓은 것 없다. 이제부터 많이 벌어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축구판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종수는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면 좋았든, 나빴든 나의 풍부한 경험이 후배들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고를 졸업하고 96년 수원 유니폼을 입은 고종수는 K-리그 171경기에 출전, 37골-34도움을 기록했다. A대표로는 98년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총 38경기에서 6골을 뽑았다.

< 노주환 기자 scblog.chosun.com/nogoon>

 

 

 

고종수와 이천수 그리고 박지성  선수

 

축구천재 

 

그러나 현실속에서 겸손하게 

스캔들과 담을 쌓고 살아야 

진정한 거장이 되는 것이다.

 

스타도 품위가 없으면 스스로 타락한 자로 추락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대가가 되려면  

겸손으로 몸을  동여야 한다.

 

박지성선수의 치열함 가운데 숙이는 고개를 생각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흘리는 눈물을 생각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배웠으면 한다.  

 

이천수선수에게 기회는 많지 않다. 

고종수선수의 충고를 깊이 새겨 들어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지나가고 있다.

철없는 어린아이의 어리광이 아닌 

프로로서 선배로서 서야 한다. 

 동료를 부러워 하지 말고 자기 안에 감추인 개성을 살리며

미래를 열어가기를 축복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