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대학생, 가족·친구만 믿고 사회집단 못믿는다
출처: 2009년 2월 5일(목) 오후 6:18 [경향신문]
‘국가지속가능성 의식조사’ 결과는 젊은 세대가 지닌 사회에 대한 불신과 비관적 전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젊은 세대들은 가족과 친구 등 자신의 주변에 있는 집단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정치인·기업 등 사회적 집단에 대해서는 거의 신뢰하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고교생 87.4%, 대학생 91.6%가 가족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친구 집단에 대해서도 신뢰도가 높았다. 고교생 72.7%, 대학생 83.5%가 친구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가장 신뢰도가 낮은 그룹은 정치인이었다. 고교생 3.3%, 대학생 1.6%만 신뢰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도덕적 집단으로 인식, 신뢰받는 그룹이었던 시민단체와 종교단체의 신뢰도 역시 굉장히 낮은 수준이었다.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고교생은 22.6%였으며 대학생은 16.7%였다. 종교단체에 대한 불신은 더 컸다. 종교단체를 신뢰한다는 고교생과 대학생은 10명 가운데 1명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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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터넷의 신뢰도를 비교해 볼 때, 고교생은 언론보다 인터넷을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였다. 언론과 인터넷에 대한 불신도는 대학생도 유사했다.
반면 국제기구의 신뢰도는 높은 수준이었다. 국제기구를 신뢰한다는 고교생은 33.4%, 대학생은 37.1%였다. 상대적으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보다도 신뢰를 많이 한다는 뜻이다. ‘외국정부’를 신뢰한다는 수치(고교생 11.4%, 대학생 9.8%) 역시 정치인과 기업에 대한 신뢰도 수치보다 높았다.
이를 두고 연세대 한준 교수(사회학)는 “신뢰가 트랜스퍼(이동)되고 있다”며 “시민단체 등의 신뢰가 낮아지고 점차 국제기구나 해외정부로 눈이 쏠리는 모습이며, 이는 곧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고립과 단절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젊은 세대의 불신은 ‘국가발전을 위한 주도세력이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도 잘 나타났다.
고교생(37.5%)과 대학생(29.7%)은 ‘국민’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는 일반인의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일반인의 21.4%도 국민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통령, 정부공직자, 정당 및 정치지도자 등의 역할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강하게 불신을 나타냈다. 특히 일반인 가운데 대통령의 역할 수행능력을 물었을 때, 부정적 의견이 48%였으며, 긍정적 반응은 26.7%뿐이었다. 다만 60대 이상에서 대통령에 대한 역할 기대는 비교적 높았다.
미래 세대에 대한 발전 가능성 예측도 세대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성인들은 전체의 46.9%가 다음 세대가 현 세대보다 더 잘 살 것이라고 밝은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다. 대학생은 45.4%, 고교생은 절반이 넘는 53.7%가 다음 세대를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한 교수는 “현 10대, 20대는 사실 신자유주의 세대로 ‘고용 없는 성장’ 등 좌절만 경험했지 노력해서 성공한다는 희망적 체험이 없기 때문에 더욱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0명중 2명 “결혼 안해도 돼” 10명중 1명 “아이 없어도 돼”
이번 조사에서는 결혼에 대한 젊은층들의 관념이 개방화되었음이 뚜렷이 나타났다. 고교생·대학생 10명 가운데 2명은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답했으며, 10명 가운데 1명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수도권 고교생 2302명과 수도권 대학생 1736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는 고교생보다 대학생이 통상적·사회적 관념에서 더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줬다.
‘성인이 되면 결혼해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대학생은 57.3%, 고교생은 64.4%였다.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비율도 대학생이 21.3%로 더 높았다. 고교생은 18.2%였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다.
남자 고교생 73.3%가 필수로 생각한 반면, 여자 고교생은 57.1%만 ‘그렇다’고 답했다. 대학생에서도 마찬가지 결과였다. 여대생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50.5%가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군대를 다녀온 남자 대학생은 70.1%,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 대학생은 60.9%가 결혼을 필수로 꼽았다. 결혼을 할 경우 아이는 대체적으로 2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생 55.2%, 대학생 55%가 자녀를 갖는다면 2명을 원했다.
그러나 젊은층 10명 가운데 1명은 자녀를 꼭 낳지 않아도 된다고 응답했다. 자녀가 없어도 된다는 비율은 고교생 9.5%, 대학생 9.3%로 고교생과 대학생이 비슷한 결과를 보여줬다. 특히 경제수준이 낮은 고교생의 30%가량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젊은 세대는 남녀 부부로 이뤄진 전통적인 가족 형태 이외에 동성애 결혼이나 ‘싱글맘’도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의식도 높았다. 동성애나 여성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현상에 대해 무조건 터부시하던 기존 통념보다는 개방적 의식을 보였다.
대학생 45.8%와 고교생 38.2%가 동성간의 결혼을 법적 지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교생 중 34%는 동성간 결혼을 부정한다고 답해 고교생은 동성간 결혼에 대해 찬반이 비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의 남성으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해 키우는 싱글맘도 가족 형태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인 대학생은 64.9%, 고교생은 58.9%였다.
“일자리 남성우선 반대” 군필 대학생도 40%
젊은층들이 결혼과 성 관념에 대해서 개방적 의식을 보였으나 일자리 문제로 직결될 때는 차별적 의식을 보였다.
‘일자리가 부족할 때 남자가 여자보다 직업에 대해 더 많은 권리를 가져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학생 전체적으로는 63.8%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부정적 의견이 더 많았다. 16.3%만이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성별 비교 분석 결과, 여대생은 절대 다수가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보인 반면, 남성은 그보다 적었다.
여대생의 80.9%가 남자가 여자보다 직업에 대해 더 많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 대학생은 39.6%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 대학생은 50.1% 정도만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남성이 더 많은 직업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 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3~4배가량 많았다.
여대생의 6.9%가 이에 동의했으며 군필남은 32.6%가, 미필남은 21.3%이 찬성 의견을 보였다. 이는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여성이 먼저 해고되는 데 동의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임지선기자 vision@kyunghyang.com 그래픽 | 전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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