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삶/영성

[스크랩] 영신수련: 왜 안되는가(Warum nicht)?!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1. 16. 16:59

왜 안되는가(Warum nicht)?!

 



예수회원과 대화를 자주 하는 사람은 한번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당신네들 예수회원은 어떤 이가 당신들에게 무엇에 관하여 질문하면 항상 바로 반문을 합니
까?'─ 이에 대한 예수회원의 대답은 이렇다: '왜 안됩니까?!'─ 들음과 질문에 대한 강조는
철저하게 이냐시오식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근원적 질문 요점에 가능한 한 가깝게 접근하려
는 시도이기도 하다. 금세기 위대한 신학자 칼 라너(예수회 신부)의 경우 그것은 신학적 방
법론을 위한 질문이 되기도 하였다. 만약 질문이 심오하고, 충분히 세밀하게 던져진다면 대
답은 거의 질문 자체에 암시되어 있다고 그는 확신하였다. '왜'와 '왜 안되는가'는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에서 듣고 질문하는 일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성과 영적 프로필에도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냐시오 영성의 탁월한 전문가 후고 라너(예수회 신부)는 『인간과
신학자 이냐시오』(프라이브르그 1964)라는 그의 저서 서두에서 이 점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pour quoy non.' 왜 안되는가. 이 문장의 제명은 로욜라 성의 경당 안에 있는 성모영보(예
수탄생 예고) 그림 밑에 적혀 있다. '이 집의 막내아들인 이니고가 어린이다운 용기를 처음
으로 보였을 때인 1497년에 이 그림은 로욜라에 도착하였다. 그는 회심의 시기에 그가 언제
나 단호히 '왜' 나 '왜 안되는가'를 숙고할 때와 고매한 기사로서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방해되는 요소로의 이유인 '왜'란 있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파악하기 시작하였을
때 이 그림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이 문장의 명제는 '고매한 기사' 이냐시오 성인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무엇보다
는 '왜?'와 '왜 안되는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모든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왜 벌써 자야만 합니까?' '왜 같이 가면 안됩니까?' 등등. 아마도 이것은 나이 든 사람
들의 '그것은 항상 그래 왔어!'에 반대하여 '왜 다르게는 안됩니까?'라는 모든 젊은이들의 다
음 배후 질의도 함께 지니고 있을 것이다.

젊은 이냐시오로부터 기사답고, 때로는 공격적이고, 오만하고 도전적인 음색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들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중대한 위반사항 때문에 그가 법정에 소환되었을 때; 모
든 무기 훈련에서 가장 뛰어난 검투사, 명인으로 모습을 보였을 때; 그를 방해하는 사람들
을 쫓았을 때;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팜플로나 요새를 방어하자고 홀로 주장하였을 때; 위대
한 업적과 모험을 꿈꾸었을 때 ─ 이것은 다름아닌 도전을 기꺼이 즐기는 기사다운 질문
─ '왜 안되는가?'이다.

'왜 안되는가?'를 결정적으로 해명하고 다듬어 깊이를 더하는 일은, 이냐시오 성인이 하느님
의 사랑이 예수님 안에서 사람으로 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내적으로 이해할 때만 이루
어진다. 이것은 영신수련의 핵심적인 고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우리 주님 그리스도님을 눈앞에 모시고 그와 서로 이야기할 것이다: 즉
주님은 창조주이시면서 어떻게 내 죄를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영원한 생명에서 현세의 죽음
을 당하시기까지 되셨는지 생각할 것이다. 그 다음에 다시 자신에게 눈을 돌려서 '나는 그리
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라고 물을 것이다'(영신수련 53).

이냐시오 성인에게 이 사건이야말로 그가 자주 그 앞에서 기도하였던 로욜라성 경당에 걸려
있는 그림이 담고 있는 예수탄생 예고 장면에서 마리아가 체험하였을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
려운 일이다. '왜…?'라는 그의 질문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운 해답─'하느님
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
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16: 공동번역)를 포함하고 있다.

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가능성을 믿는 그 곳에서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이 하느님
영의 작용을 통해 자라날 수 있다: 사라, 너는 왜 네 나이에 더 이상 아이를 잉태하면 안되느
냐? 모세, 너는 왜 더듬거리는 네 말로, 내 능력과 네 형의 도움으로 파라오 앞에서 이야기하
면 안되느냐? 네 스스로 '너무 어리다'고 느끼는 예레미야, 너는 왜 나의 예언자이면 안되느
냐? 마리아, 왜 너한테서 하느님 ─ 성령의 비호에 힘입어 하느님의 사랑이 태어나면 안되는
가? 베드로, 너는 왜 네 발을 씻도록 놔두면 안되느냐?─항상: '왜 안되는가?' 이 하느님 사
랑의 질문은 인간의 모든 항변들과 핑계들을 무력하게 한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마르
10, 27: 공동번역).

이것은 한 인간이 처한 한계상황에도 적용되지만 또한 일상적인 한계에도 적용된다: 나는
화해를 위해 첫걸음을 내딛어야 하는가? 왜 안되는가?! 나는 한번 더 이 어려운 과제에 접근
하여야 하는가? 왜 안되는가?!─나는 사건을 또 한번 심사숙고하고 다시 결정을 내려야 하
는가! 왜 안되는가?!…

이냐시오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이 왜 사람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그는 자신의 삶의 중앙에
서 거룩한 대답을 통하여 변화되었다. 그가 준 대답 가운데서─'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
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의 신학의 핵심과 교회를 형성하는 그의
행동의 원천을 파악한다'(후고 라너).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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