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삶/설교자

성숙하다는 것은 사고의 시선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재철목사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0. 30. 11:46

성숙하다는 것은 사고의 시선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성숙은 그리스도인이면 마땅히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재철 목사

성숙’이란 아젠다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거듭난 순간부터 영적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성장과 성숙이 더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른 사람이 있다.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가 ‘성숙’이라는 주제로 <성숙자반>이란 책을 홍성사에서 출간했다. 이 목사가 말하는 성숙은 무엇일까? 양화진에서 만난 이재철 목사는 성숙을 두고 ‘사고의 시선’이라는 말을 꺼냈다.

 

시선이 바뀐다는 것은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날 대오각성 하듯이 새로운 눈으로 사람과 삶, 그리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 목사는 그것을 두고 득도한 삶보다 자신 안에 들어온 말씀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시선을 바꾼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대학교 입시 자체를 하는 과외를 하지 않았습니다. 큰 아이에게 아빠 엄마는 입시 자체를 위한 과외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늦게 갈 수 있지만 아빠가 인생을 살아보니 늦게 가는 것은 하나도 해가 되지 않더라, 그냥 그 삶에서 최선을 다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을 복 받는 것이라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스스로 다르게 보는 것이 성숙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과외시키지 않고 남들과 다르게 키우는 것, 세상을 따라잡는 것보다 천천히 커가는 것이 성숙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거슬려 살며 사고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곧 성숙임을 상기시켰다.

이 목사의 성숙은 결국 성화다. <성숙자반>에서 이 목사는 ‘생명을 건저 올리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성숙은 철없어 보이는 나이에도 세상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가 박완서가 말한 성화를 인용했다.

 

 

“박완서 씨가 표현한 것 중에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죽인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삶은 곧 하나님을 죽이는 것이란 뜻입니다. 영성이란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주님에 대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에 대한 지식(앎)이 많아도 주님과의 동행함이 없으면 성숙한 것이 아니지만 지식이 짧아도 그분이 삶 속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면 그 삶은 곧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숙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량주의, 성장주의, 성공주의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한 쪽, 즉 목회자만의 책임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국민들의 수준이 대통령을 결정하듯이 한국교회의 문제 자체가 교인들의 몫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교회의 갖가지 문제에 대해 목사 입장에서 목사의 잘못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면책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가 말씀의 혼합물을 섞는다면, 그런 혼합물을 원하는 ‘구매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현대 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남의 탓이라고 말하기보다 똑같은 책임감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교회에서의 평신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목사는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양화진 연구원을 설립해서 한국기독교 초기에 관련한 여러 문헌을 접하면서 느낀 것이 많다고 했다. 그 중에 하나가 한국 기독교초기 평신도들에 대한 것이다. 그는 양화진에 묻혀 있는 선교사들도 위대하지만 그 복음을 받아들인 선조들도 위대하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그들이(선교사) 태국에 갔더라도 사분의 일이 복음화 되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한국교회의 성장은 120년 전의 신앙의 선조들이 말씀을 삶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축첩, 노비제도, 소작농 제도를 없앤 것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다. 이 목사는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고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선교사들은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더욱 큰 위대함은 탁월한 지도자가 아니라 정말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대로 살려고 했던 평신도들에게 있었다.”

 

 

그의 이런 강조 속에는 한국교회의 성숙, 그리고 희망은 목회자의 책임도 있지만 평신도의 성숙된 삶이 정말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목사는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발간한 자신의 <성숙자반>은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재철 목사의 성숙에 대한 것을

        기록한 <성숙자반>(홍성사 발행)

이 목사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사람으로 어머니, 아내 그리고 구상 시인을 꼽았다. 구상과의 첫 만남에서 이 목사에게 눈의 시야를 열어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준 말은 ‘견월망지’(見月望指)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가리키는 달을 봐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라’는 뜻이다. 이 목사는 그 말을 듣고 ‘아! 그동안 (성경을)지식으로만 알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그는 지식으로 있던 것을 삶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이 목사의 성장에서 성숙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계기였다.

 

 

“하나님 은혜로 극적인 회심을 했는데, 연속성으로 볼 때 모태신앙으로 태어나고 방탕한 세월을 보냈어도 주일 어긴 적이 없는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것이 거듭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신칭의 다음으로 성화이다.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꽂힌 것이 26살 때다. 이때부터 성화의 과정을 걷기 시작했다.”

 

 

이 목사는 이신칭의로 인해 믿음으로 교인(하나님의 자녀)이 되었다는 전제 아래 수준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 성화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인에서 의인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신분이 바뀐 것이고 그 신분에 걸 맞는 수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화는 구원받은 자의 의무이고 <성숙자반>은 결국 성화의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했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이 부흥을 기념하며 새로운 시대의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이목사가 생각하는 부흥은 무엇일까? 그는 대뜸 “부흥이라는 것은 인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되돌아 갈 때 주시는 것이다”고 말했다. 목회자(성도)가 주님께로 돌아가는 마음을 가질 때 일어나는 것이 부흥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현재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100주년기념 행사와 함께 부흥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목회를 하면서 사도바울이 하는 말을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고린도후서 2:17에서 바울은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혼잡하게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혼잡하게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혼잡하게 하다는 말에는 ‘카펠류오’(καπηλε?ω)라는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이 동사는 카렐로스(καπηλο?)라는 명사에서 파생한 것이죠.

 

 

고정 점포를 가진 상점 주인은 가짜 상품을 팔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행상은 고객을 한 번 보면 끝이기 때문에 포도주 물 섞은 가짜를 팔면서도 문제의식을 못 갖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4:2에서 “우리는 다시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혼잡하다’는 2장 17절에 사용한 헬라어와는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돌로오’(δολοω)라는 헬라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미끼로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두 말씀이 내 안에 박혀 있습니다.”

 

 

말씀을 섞는다는 것에 대해 이 목사는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긍정적 사고방식이니 적극적 방식이니 하는 것을 섞을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고린도 후서 2:17, 4:2의 배경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주님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위한 미끼라는 점에서 경계할 것을 지적했다. 즉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 고후 2:17, 고후 4:2의 회복이 평양대부흥운동이라고 했다.

 

 

그는 1988년 <주님의교회>을 개척하고 10년 목회를 한 뒤에 사임을 했다. 그리고 담임목회를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런 그가 다시 2005년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담임은 일반목회와 사뭇 다르다. 이를 두고 그는 양화진의 외국선교사 묘역에 대한 애뜻함과 남다른 애정 때문이라고 했다.

 

 

“20년 전에 거의 이곳은 버려진 곳이었다. 양화진은 여러 면에서 훼손되었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이 중요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유명 목사들이 당신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묘를 쓸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시도들이 있고 몇 해 전부터 선교회들이 돈을 받고 묘역을 참배케 하는 상업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2005년 4월 20일에 교계 어른들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양화진을 관리한 교회를 세울 테니까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눈물까지 비치시면서 부탁하셨습니다. 제가 뭔데 말입니까? 그래서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개교회 목회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사양했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저 양화진이 어떻게 훼손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화진 묘지기를 할 결심을 했습니다. ‘개신교의 시발 정신 물려주어야겠다. 어떻게 하면 저 묘지를 지켜서, 눈이 파란 이들의 말씀대로 살던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찾아서 전수해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평이동은 개신교 교인들의 특권

이재철 목사를 존경하고 따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를 불편한 눈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바르게 함과 올곧은 것에 대한 시기일 것이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신에 한국교회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부둥켜안고 함께 울기를 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한 단편적인 말 중에 하나가 현재 한국교회의 일부 교회 가운데 수평이동에 대한 견해였다. 그는 수평이동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톨릭교회가 가지지 못하는 특권이라고 했다.

 

 

“자기 수준에 맞는 교회로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것이 개신교회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교파가 있기에 자기의 영적 취향과 영적 수준과 코드에 따라 교인들이 얼마든지 교회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학생 4학년 천재가 있습니다. 더 배울 것이 없다면 월반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6학년 끝났는데도 계속 잡아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 수준이 나를 앞서서 여기서 성도가 침체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데로 가라고 해야 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만 영적 수준이 달라서 주일을 망치는 것은 일주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리고 일생을 망치게 됩니다. 교인들의 영적 수준, 개신교의 특성을 따져볼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