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하와를 만났을 때는 결혼 적령기였다?
황미진 기자
보기 좋은 형제Vs 사귀고 싶은 형제를 찾는 방법
어느새 가을도 거의 지나가 버린 듯 하다.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낙엽을 밟는 <센치멘탈표 신사, 숙녀>들은 내 주위에 눈을 부릅뜨고 봐도 없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외로워장단에 맞춰 가을타령을 부르는 솔로 추남, 추녀들에게서 가을을 실감했다. 솔로와 가을의 함수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적령기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이가 어떠한 표준에 이른 때"를 뜻한다. 내 국어사전엔 이 단어의 사용예로 <결혼~> 딱 하나가 썰렁하게 적혀 있다. 그만큼 결혼적령기 말고 이 단어가 사용됐던 예는 별로 없어보인다. 어쨌거나. 나는 '적령기'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이 단어를 재촉해서 사용했을 때 초래되는 나쁜 상황과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사람나고 적령기 났지 적령기 나고 사람 났으랴? 그 순서만 헷갈리지 않는다면 적령기의 값어치는 매력덩어리에다가 금덩어리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있어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귐의 적령기를 찾기 위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담이 하와를 만났을 때>를 살펴보자. 그 속에서 해답은 매우 간단하게 도출된다. 거기다 꿩먹고 알먹기 식으로, 보기 좋고 사귀고 싶은 형제는 가볍게 찾을 수 있다. 그건 마치 퍼즐에서 세로 답이 알쏭달쏭 할 때 가로 답에 힌트를 얻어 세로 답을 쉽게 맞추는 것처럼, 두 문제는 똑같은 키워드가 적용된다. 적에도 나에게는.
첫째,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무위도식 백수건달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흔히 천국이라 불리는 에덴에서 아담은 단순히 먹고 놀기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엄연히 청지기 직분을 가지고 있던 아담은 그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잠시 잠깐이 아닌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야 하는 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조차 소홀하면서 누구를 만난다면 속된말로 누구 인생 망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참 아름답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를 위해 생겨났다고 생각할 정도다. 사람들이 말한 정상의 자리, 인정받는 자리는 아닐지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애정을 쏟으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만 반해서 곁에 있고 싶어진다. 그런 형제가 나는 좋다.
둘째, 은혜의 유업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실천은 있는가? 아담에게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주신 유업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비전이 그에겐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그 은혜의 유업을 누군가와 이루어가고 싶은 열망도 생겼났을 것이다.
성경은 젊을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씀한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 만큼, 또한 그를 힘써 아는 것 만큼 중요하고 명쾌한 것은 없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출발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성실하게 자문자답하며 세워나간 비전, 달리 표현하자면 인생 설계도 없이 누군가를 만나겠다고 서두르는 건 위험스런 장난이 될 수도 있다.
가정의 머리로 세워주신 남자. 그 남자의 인생설계도가 <짓밟고 오르기 공법을 사용해 온 천하가 내 눈 아래 바벨탑 건설>이라면 NO, <이웃친화적 공법을 도입한 세상속에 하나님나라 건설>이면 OK이다.
솔직히 난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형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남자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머문 자리엔 정의가 통하고 사랑이 넘쳐서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나라 브랜드를 선호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기꺼이 혼자보다 하나를 원하는가? 아무래도 이 말엔 어패가 있긴 하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혼자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동물 열 쌍의 이름을 지어주었던 아담. 너는 호랑이, 타조, 사슴, 백조… 이렇게 일을 끝내고 밤이 되어 돌아온 아담이 나도 다른 피조물처럼 짝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 이리 허전할까? 생각하다 잠들었다. 그 때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든 것이 하와다. 하와를 본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난 이 아담의 고백이 하와의 모습에 눈이 멀 정도로 반해서 그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담의 그 말의 의미는 '당신이 곧 나네. 우리는 서로 다른 둘이 아닌 원래 하나다. 정말 놀랍다'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혼자가 아닌 하나이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에 품을 때, 하나님은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해주시는게 아닐까? 하나님은 그렇게 남녀가 한 몸을 이룬다는 '연합'의 비밀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아담에게 공개하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형제를 만날 때 그가 누군가와 삶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하는 자세가 되어있는지 살펴보겠다. 나눔이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 만은 아니다. 때론 혹독하리만치 희생과 수고를 그리고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만남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확실한 내 배우자감 호언장담해도 그것은 겨우 시작이다. 아담과 하와만큼 하나님이 이어주신 확실한 짝은 또 어디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이 정말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로 끝맺지 않는다. 선악과라는 치명적인 사건 앞에서는 서로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했다.
이혼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그리고 그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벨을 그의 형 가인을 통해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 감내해야 했다.
나는 <인연>이란 시작할 때 보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하는 고백이 더 진실하다고 믿는다. 아담이 하와를 먼저 떠나보냈는지, 하와를 남겨두고 아담이 먼저 구백 삼십 세에 죽었는지 성경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와를 보내셨을 때 했던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보다 몇 백 배나 더 귀하고 값진 고백을 아담은 하와에게 고백하면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하나님, 어느 날인가 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폭풍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가진, 눈보라 속에서도 뜨거운 용기를 가진, 가뭄 속에서도 샘솟는 지혜를 가진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사랑 안에서 이루려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
황미진 기자
보기 좋은 형제Vs 사귀고 싶은 형제를 찾는 방법
어느새 가을도 거의 지나가 버린 듯 하다.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낙엽을 밟는 <센치멘탈표 신사, 숙녀>들은 내 주위에 눈을 부릅뜨고 봐도 없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외로워장단에 맞춰 가을타령을 부르는 솔로 추남, 추녀들에게서 가을을 실감했다. 솔로와 가을의 함수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적령기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이가 어떠한 표준에 이른 때"를 뜻한다. 내 국어사전엔 이 단어의 사용예로 <결혼~> 딱 하나가 썰렁하게 적혀 있다. 그만큼 결혼적령기 말고 이 단어가 사용됐던 예는 별로 없어보인다. 어쨌거나. 나는 '적령기'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이 단어를 재촉해서 사용했을 때 초래되는 나쁜 상황과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사람나고 적령기 났지 적령기 나고 사람 났으랴? 그 순서만 헷갈리지 않는다면 적령기의 값어치는 매력덩어리에다가 금덩어리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있어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귐의 적령기를 찾기 위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담이 하와를 만났을 때>를 살펴보자. 그 속에서 해답은 매우 간단하게 도출된다. 거기다 꿩먹고 알먹기 식으로, 보기 좋고 사귀고 싶은 형제는 가볍게 찾을 수 있다. 그건 마치 퍼즐에서 세로 답이 알쏭달쏭 할 때 가로 답에 힌트를 얻어 세로 답을 쉽게 맞추는 것처럼, 두 문제는 똑같은 키워드가 적용된다. 적에도 나에게는.
첫째,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무위도식 백수건달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흔히 천국이라 불리는 에덴에서 아담은 단순히 먹고 놀기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엄연히 청지기 직분을 가지고 있던 아담은 그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잠시 잠깐이 아닌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야 하는 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조차 소홀하면서 누구를 만난다면 속된말로 누구 인생 망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참 아름답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를 위해 생겨났다고 생각할 정도다. 사람들이 말한 정상의 자리, 인정받는 자리는 아닐지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애정을 쏟으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만 반해서 곁에 있고 싶어진다. 그런 형제가 나는 좋다.
둘째, 은혜의 유업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실천은 있는가? 아담에게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주신 유업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비전이 그에겐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그 은혜의 유업을 누군가와 이루어가고 싶은 열망도 생겼났을 것이다.
성경은 젊을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씀한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 만큼, 또한 그를 힘써 아는 것 만큼 중요하고 명쾌한 것은 없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출발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성실하게 자문자답하며 세워나간 비전, 달리 표현하자면 인생 설계도 없이 누군가를 만나겠다고 서두르는 건 위험스런 장난이 될 수도 있다.
가정의 머리로 세워주신 남자. 그 남자의 인생설계도가 <짓밟고 오르기 공법을 사용해 온 천하가 내 눈 아래 바벨탑 건설>이라면 NO, <이웃친화적 공법을 도입한 세상속에 하나님나라 건설>이면 OK이다.
솔직히 난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형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남자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머문 자리엔 정의가 통하고 사랑이 넘쳐서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나라 브랜드를 선호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기꺼이 혼자보다 하나를 원하는가? 아무래도 이 말엔 어패가 있긴 하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혼자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동물 열 쌍의 이름을 지어주었던 아담. 너는 호랑이, 타조, 사슴, 백조… 이렇게 일을 끝내고 밤이 되어 돌아온 아담이 나도 다른 피조물처럼 짝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 이리 허전할까? 생각하다 잠들었다. 그 때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든 것이 하와다. 하와를 본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난 이 아담의 고백이 하와의 모습에 눈이 멀 정도로 반해서 그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담의 그 말의 의미는 '당신이 곧 나네. 우리는 서로 다른 둘이 아닌 원래 하나다. 정말 놀랍다'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혼자가 아닌 하나이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에 품을 때, 하나님은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해주시는게 아닐까? 하나님은 그렇게 남녀가 한 몸을 이룬다는 '연합'의 비밀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아담에게 공개하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형제를 만날 때 그가 누군가와 삶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하는 자세가 되어있는지 살펴보겠다. 나눔이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 만은 아니다. 때론 혹독하리만치 희생과 수고를 그리고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만남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확실한 내 배우자감 호언장담해도 그것은 겨우 시작이다. 아담과 하와만큼 하나님이 이어주신 확실한 짝은 또 어디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이 정말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로 끝맺지 않는다. 선악과라는 치명적인 사건 앞에서는 서로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했다.
이혼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그리고 그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벨을 그의 형 가인을 통해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 감내해야 했다.
나는 <인연>이란 시작할 때 보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하는 고백이 더 진실하다고 믿는다. 아담이 하와를 먼저 떠나보냈는지, 하와를 남겨두고 아담이 먼저 구백 삼십 세에 죽었는지 성경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와를 보내셨을 때 했던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보다 몇 백 배나 더 귀하고 값진 고백을 아담은 하와에게 고백하면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하나님, 어느 날인가 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폭풍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가진, 눈보라 속에서도 뜨거운 용기를 가진, 가뭄 속에서도 샘솟는 지혜를 가진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사랑 안에서 이루려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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