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5. 6. 17. 18:23
24, July, 2003, 목


일출

새벽 5시가 되어서 일출을 보기 위해 갠지스 강을 다시 들렸다.
구루들이 갠지스 강에서 목욕도 하고 그곳에서 물을 마시고 그 물을 떠서 수련터로 향한다.
새벽부터 꽃을 파는 아이와 물건을 파는 이들이 따라다니면서 사달라고 조른다.

아침을 여는 갠지스 강변은 무척 조용한 분위기지만 각자 자신들의 일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리잔층들은 아침부터 빨레에 바쁘다.
태어나서 죽도록 남의 빨레만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그들의 굴레속에서 힘겨웁게 삶을 지탱하고 있다.

배를 타고 가노라니 흐르는 강물따라 아기의 시신이 떠내려간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길로 간 아이의 마지막을 보는 마음이 아프다.
인도에서는 어린아이의 시신은 싸서 바로 강에 띄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 그 시신은 새나 고기의 밥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길.
아침부터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도란 곳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나라다.
나의 갈 길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낮추며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자 순간 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 했다.
언젠가 돌아가야할 본향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내 삶 가운데서 고백하며 살아가야할 책임이 나에게는 있다.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

"잔치집보다는 초상집을 가는게 낫다."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 구절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피부로 와 닿는 말씀이기도 하다.
죽음 너머의 세계를 아는 사람은 결코 헛된 가치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아침부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강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볼 일을 본다.
너무 가까와서 한국에서는 심히 노출을 꺼려하는 모든게 잘 보인다.
심히 민망하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먼저 눈길을 돌린다.

강가의 풍경중 인상적인 것은 여기저기서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모습들이다.
인도인뿐 아니라 서양인들과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많다. 영혼의 기갈을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강물의 물결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면서 배가 지나가니까 많은 이들이 손을 흔들어댄다.
함께 흔들어 주고 싶었으나 사람들의 분위기가 심히 심각한 상태이다.
영적 전투의 최전선의 사람들의 표정이다.
나도 손을 흔들지는 않고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면서 그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했다.


아침분위기가 한결 느껴지는 것은 목욕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곳 인도에서는 벌거벗은 채 목욕하는것 마저 자연스럽다.
어디를 가든지 주홍색 옷을 입은 사제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다.
그러나 어제 저녁에도 느꼈는데 이곳 바라나시에서도 카스트 제도는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다.
점점 형식화 되고 의식화 되어가는 힌두교는 대중을 잃을 것이다.
대중이 떠나간 상태의 종교는 결국 생명력을 잃는다.



산책하며

강에서 나와 청년들이 쉬는 사이에 잠시 아침 산책을 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야위어 있다.
여기에서는 나도 살찐 사람으로 보일 정도다.
길거리 곳곳에는 누워자는 이들로 가득하다.
릭샤꾼들은 시골에서 상경했지만 잘 곳이 없어 그냥 릭샤 위에서 자고 있다.

릭샤를 끄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같이 비쩍 말라있다.
여기에서는 모든게 카스트가 있어 보인다.
릭샤도 층이 있다.
피이플 릭샤, 사이클 릭샤, 오토 릭샤, 택시, 서모....

사람들뿐 아니라 소도 계층이 있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자유롭게 살다가 죽는 소, 태어나서 죽으라고 일만하는 일소, 태어나서 식용으로 키워지는 소,...


사람들은 단조로음, 권테, 무기력, 자포자기라는 순환의 고리를 돌고 돈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주어진 삶의 무게를 그냥 지고서 견디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져야 한다.
인도는 또 한 명의 간디가 필요할 것이다.
간디가 카스트를 없애는 사법제도를 만들었다면 또 하나의 간디는 이제 법이 아닌 일상 가운데 카스트는 사라지는 그 날이 오도록 해야할 것이다.
아마도 인도 땅 가운데 미국의 마틴 루터킹같은 새로운 세대를 열 눈군가가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신전을 들렀더니 한국의 서낭당같다.
그곳을 지키는 이가 있고 아침부터 사람들은 그곳에 음식을 가지고 와서 절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는데도 돈이 필요하다는 안내인의 말에 가벼운 미소로 답례하고 그냥 나왔다.
이곳은 틈만나면 돈을 요구한다.
정당한 요구가 아니기에 그냥 모른척하고 안내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대신한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순간순간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그들과 눈과 눈을 맞춘다.
그리고 씩 웃어준다.
손을 흔들어 준다.

인도의 낮선 거리에서 그들과 나는 일생 단 한 번의 만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그들에게 축복의 상징으로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미래 인도의 희망을 이들 누군가에게 걸어 본다.
어쩌면 내가 길거리에서 스치며 지나간 만남 가운데 이 당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질서와 민족의 질서를 만드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상쾌해진다.

길거리에서 나만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외로움이라는 느낌으로 몰아 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만나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이국 땅에서야 만나는 나 자신의 현주소는 나를 더욱 진지한 성찰을 하는 수도자로 만들어 주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
그때가 언제일런지는 모른다.
누구와 함께 올런지도 모른다.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와 함께 올 수 있다면 좋겠다.

홀가분하게 인생을 묵상하며 길거리를 거닐며
시간에 얽메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곳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고
이들에게 진리에 대한 성찰을 나눌 수 있는 그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의 인생의 뒤안길에서
나는 또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오늘 갠지스 강변과 산책을 하면서
더욱 창조적으로 열심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생긴다.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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