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한국 읽기

천안함 침몰…그 34일간의 기록 그리고 그 이후가 중요하다.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10. 4. 29. 17:46

천안함 침몰…그 34일간의 기록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께 주말 저녁의 한가로움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들려왔다. 해군의 1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두동강 나 칠흑같은 밤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것.

 승조원들은 갑작스런 사고에 휩쓸려 104명 중 58명만 가까스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틀 후인 지난달 28일부터 침몰 지점 인근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의 구조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연일 거센 바람과 빠른 조류 때문에 잠수사들이 수중 작업에 난항이 계속됐다.

 30일 오후 3시께 기다렸던 희소식 대신 구조 작업을 하던 해군특수전여단 수중폭발팀(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숭고한 희생에 국민들이 가슴아파 할 때쯤 사고 원인과 군의 대응을 놓고 공방이 심해졌고, 지난 1일 군은 TOD 화면 전체 분량을 공개하며 의혹을 해소하려 애썼다.

 당시 사고 해역에서 진도 1.5의 지진파가 관측됐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사고 원인에 관한 여러 가설 중 외부 충격설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어뢰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해 북한 연루설을 본격 제기했다.

 구조 작업은 기상 악화로 중단됐다 재개되길 반복했지만 지난 2일에도 가슴아픈 희생을 낳았다.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저인망 어선 금양98호가 캄보디아 선박과 충돌해 대청도 인근에서 침몰한 것이다. 2명의 선원들은 시신을 찾았지만 7명은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3일 오후 6시10분께 천안함 함미 부분 상사식당 쪽에서 남기훈 상사의 시신이 발견됐다. 생존시한이라던 69시간이 지났음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와 수색 작업을 중단토록 하는 용단을 내렸다.

 7일 민ㆍ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와 생존 장병들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기자회견 이후오후 4시께 김태석 상사의 시신이 천안함 함미 기관 조정실 부근에서 발견됐고, 다음날인 8일 이어진 생존 장병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만남은 연이은 비보에 애끓는 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인양 작업은 속속 진행돼 지난 12일 오후 함미를 백령도 해안 방향 수심 25m 해저 지점으로 이동했다. 14일에는 함미에 체인을 연결해 준비를 마쳤고, 15일 오전 함미를 끌어올려 그 안에서 36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함수 인양은 배의 구조와 기상 상태 등의 여건 때문에 다소 지연됐다. 함미 인양 작업을 준비하는 동안 민ㆍ군 합동조사단은 지난 16일 외부 폭발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고, 지난 24일 인양한 함수의 절단면은 외부 폭발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명확한 물증이 물증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북한 어뢰의 천안함 좌측 하단 수중폭발과 이로 인한 버블제트로 침몰한 것으로 가닥이 잡아지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방안을 한국과 함께 모색하는 단계로 진전했다.

 영결식인 29일까지 실종 장병 46명 중 40명이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다. 실종자 중 박보람 하사와 박성균 하사는 함수 인양 작업을 준비하는 중에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6명 장병들은 끝내 찾지 못했다. 군은 실종 장병을 산화자로 결정하고 영결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도현정 기자/kate01@heraldm.com

 

  <천안함 사고 일지>

 ▷3월26일 오후 9시22분 = 천안함 침몰. 58명 구조, 46명 실종

 ▷3월27일 = 국회 국방위, 초계함 침몰 긴급현안보고

 ▷3월28일 =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 구조작업 시작

 ▷3월30일 = UDT 소속 한주호 준위, 함수 부분 탐색도중 순직

 ▷4월1일 = 군, TOD 화면 일부 공개. 진도 1.5의 지진파 관측

 ▷4월2일 오후 8시30분 = ‘금양98호’, 수색 작업 후 침몰

 ▷4월2일= 김태영 국방장관 “어뢰 가능성이 더 현실적” 언급

 ▷4월3일 오후 6시10분 = 남기훈 상사 시신 발견

 ▷4월3일 오후 9시40분 = 실종자 가족, 수색 작업 중단 요청

 ▷4월7일 오전10시30분 = 천안함 생존장병 기자회견

 ▷4월7일 오후 4시 = 김태석 상사 시신 발견

 ▷4월15일 = 천안함 함미 인양. 36명 시신 수습

 ▷4월17일 오후 = 北 ‘군사논평원’ “천안함 북 관련설 날조” 주장

 ▷4월22일 오후 9시21분 = 박보람 하사, 함미 연돌 시신 수습

 ▷4월24일 오전 8시 = 함수 인양. 박성균 하사 시신 수습

 ▷4월24일 = 수색작업 종료. 민군조사단 “버블제트 추정” 발표

 ▷4월25~29일 = 천안함 46용사 5일간 해군장

 

천안함 46勇士 '국민 품에 잠들다'(종합2보)

 

'해군장' 엄수..이 대통령 등 2천800여명 참석
추도사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대전현충원 안장..유족 "영면 하소서" 오열.통곡

(평택=연합뉴스) 김명균 기자 = 故 '천안함 46勇士'의 숭고한 넋을 국민들의 가슴 속에 담는 영결식과 안장식이 29일 해군 평택 2함대사령부 내 안보공원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해군장'으로 엄숙히 거행됐다.

오전 10시 평택 2함대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이용훈 대법원장, 김형오 국회의장 등 3부요인과 전두환 전 대통령, 국무위원, 전군 주요지휘관 및 유가족 등 2천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전우의 '마지막 길'..영결식 =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희생 장병들에 대한 경례 및 묵념으로 시작된 영결식에서 이 대통령은 고귀한 젊음을 국가를 위해 바친 故 이창기 준위를 비롯한 46명의 희생장병 모두에게 일일이 화랑무공 훈장을 추서했다.

장례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들이 남긴 살신보국의 참군인 정신은 모든 국민이 자자손손 이어 누릴 자유와 번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어 "우리 국민에게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찾아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생존장병인 김현래 중사(27.해군부사관 196기)는 추도사를 통해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하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전우들에게 더 큰 용기를 주고, 우리의 바다를 굽어 살피시어 이 나라를 지켜주소서"라며 추도사를 맺었다.

이 대통령 내외와 김태영 국방부장관 등 주요 군 지휘관과 유가족 대표 등의 헌화 및 분향에 이어 9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군함 부두에 정박 중인 함정들은 10초간 기적을 울렸다.

해군 군악대 중창단 20명이 천안함 용사들이 평소 즐겨 부르던 '바다로 가자'와 '천안함가'를 합창하는 가운데 46용사의 영정은 전우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는 천안함 생존장병 46명에 의해 운구됐다.

해군 의장대 208명이 도열한 가운데 호위병 2명의 선도로 대형 태극기와 해군기를 앞세운 운구행렬은 용사들의 영현과 영정과 위패, 훈장, 운구함 순으로 이동했다.

영현과 영정은 군항부두 내 정박 함정에서 울리는 5초간의 기적소리와 함께 하늘로 높이 떠오르는 해군 정모와 정복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풍선 3천 개를 뒤로 한 채 2함대 정문을 거쳐 해군 아파트로 이동했다.

모든 함정의 승조원들은 정복 차림에 함정의 뱃전에 도열, '대함경례'로 최고의 예우를 표시했다.

해군아파트를 지날 때에는 도로변에 도열해 있던 해군 장병 가족과 주민들이 "편히 쉬시라"며 고인들에게 국화꽃을 헌화했고, 태극기를 저마다 손에 든 원정초교 4∼6학년생 300여명이 흰색 풍선과 추모의 글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천안함 전사자 협의회'는 "천안함 46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감사의 성명서를 냈다.

◇"영면 하소서"..현충원 안장식 = 2함대를 영원히 떠난 46용사의 유해는 이날 낮 1시 30분께 유가족들과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했다. 대전현충원이 문을 연 1979년 이래 최대 규모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안장식은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과 묵념, 종교의식에 이어 유해, 화랑무공 훈장과 함께 놓인 고인들의 영정을 향한 유가족들의 헌화와 분향으로 진행됐다.

유가족들은 마지막 길을 떠나보내야하는 아들과 남편들의 영정과 유해가 담긴 봉안함을 부여잡고 한없이 오열과 통곡을 했다.

김성찬 해군참모총장과 국가보훈처처장, 대전 및 충남지역 기관장 등의 헌화 및 분향, 9발의 조총발사와 묵념도 진행됐다.

이어 사병 제3묘역에 특별조성된 308합동묘역으로 유해를 옮겨 하관 및 허토, 성분 등의 순으로 최고 예우를 갖춰 진행됐다.

가로 10위, 세로 5위씩 총 165㎡ 규모로 조성된 합동묘역 맨 앞줄 중간에는 '서해안 임무수행 중 희생된 천안함 46용사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라고 적은 표지석이 세워졌다.

故 이창기 준위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장교묘역이 아닌 천안함에서 생사를 같이 한 전우들과 함께 안장됐다.

합동묘역 건너편 50m거리의 장교 제3묘역에는 희생장병들을 구조작업하던 중 순직한 故 한주호 준위의 묘소가 자리해 있어 천안함 46용사들과 영면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kmg@yna.co.kr
(끝)

 

 

 

 

 

천안함 침몰…그 34일간의 기록 그리고 그 이후가 중요하다.

 

오늘 제자훈련 중에 싸이렌이 울려

 

잠시 

 

숨져간 장병과 유가족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였다.

 

참 슬픈 민족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