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은 실력 아니다… 좋아하면 도전하라 ,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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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동대문 출신' 디자이너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대충 다녔다. 하지만 그의 매장은 그가 만든 옷에 열광하는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2006년 8월에는 한국인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프랭탕 백화점과 봉마르셰 백화점에 입성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 달에 두 번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예술학부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도 한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지난 16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그를 만났다. 책 속 사진만큼 차림새가 멋스러웠다. 하지만 "항상 옷을 잘 입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과 어깨까지 기른 머리 때문에 '게이'라는 오해도 종종 받는다. 해외에 나가면 100% 남자들이 작업을 걸어온다. "그때마다 기겁을 해요. 게이 같다고요? 에이, 절대 아니에요."
최씨는 서울 돈암동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방 두 칸짜리 전셋집에서 부모님까지 여섯 식구가 와글거렸다.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돈 갖다 주는 걸 못 봤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열다섯 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이를 속이고 호프집에서도 일했다. 옷을 만지게 된 것도 살아야겠다는 본능 때문이었다. 종자돈 100만원으로 구제 옷을 떼다가 홍대 앞에 노점을 연 게 열아홉 살 때였다. 첫 장사는 3개월 만에 폭삭 망했다. 절망스러웠다. 바닥부터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광장시장 원단공장에 들어갔다. 봉제공장에 배달 갈 때마다 원단을 만져보고 모르는 건 물어봤다. 아줌마들이 어떻게 자르고 바느질하는지도 눈여겨봤다. "그러면서 직접 옷도 만들었어요. 재고도 많이 쌓이고 돈도 까먹었지만 정말 신이 났죠."
동대문 시장에 진출했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의 옷은 독특하면서도 대중의 감성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패션은 대중예술이잖아요. 팔리지 않는 옷은 '체한 음식'처럼 꼴도 보기 싫어요. 저는 옷의 안감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이 옷 저 옷 다 들어가면서도 튀지 않으니까요."
아이디어는 주로 1960~70년대 영화를 보며 긷는다. 음악도, 그림도, 운동도 닥치는 대로 즐긴다. 신입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기준도 "핫(hot)하게 놀 줄 아는 친구라면"이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놀듯 패션에 몸을 맡기고 놀 줄 알아야 대중이 원하는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드시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성공하는 게 아니란 걸 저 자신이 너무 잘 알거든요. 좋아하면 도전하고, 도전한 뒤에는 즐기세요. 애착을 갖고 완전 몰입하면 학벌과 집안은 배경일 뿐 실력이 아니란 걸 어느새 절감하게 될 거예요."
꿈꾸라.
그리고 도전하라.
미래는 꿈을 꾸고 도전하는 이들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