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목사는 평생을 평신도를 깨우는 일에 헌신해 왔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이 한 가지 일념으로 목회를 해 왔다. 그는 목회를 ‘예수님의 명령대로 하자’는 신념 아래, 전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하여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를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리고 예수 믿는 각 사람을 주님을 닮는 온전한 제자로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바울의 목회 모범을 따라 사랑의교회를 목회했다(“평신도와 함께하는 목회,”『월간목회』, 2003. 8), p.59-60).
옥 목사가 갖고 있는 목회철학은 교회 운영뿐 아니라 목회 전반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총신대 신대원 박용규 교수는 사랑의교회를 일컬어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성장 모델’이라고 평가한다(“사랑의교회가 한국 복음주의에 끼친 영향,”『목회와신학』, 통권 113호, p.38). 그 근거로 사랑의교회가 한국 복음주의에 기여한 이중적인 면을 밝혔다. 교회 내적으로는, 복음주의 목회철학에 근거한 평신도 운동을 전개해 잠자는 평신도들을 깨워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로 만든 점을 손꼽았다. 교회 외적으로는, 복음주의 연합을 구축해 복음주의 철학과 사상을 한국교회 전반에 확대해 나간 것으로 보았다.
사랑의교회 철학, 아니 옥한흠 목사의 목회 철학은 교회가 부름 받은 자이면서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 받은 자라는 사실과 사도성과 만인제사장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평신도를 깨우라”라는 것이 그의 목회 철학이다. 교회 주체인 평신도들이 잠을 잔다면 교회는 소망이 없으므로, 평신도를 깨우는 것은 한국교회를 위한 시대적 소명임에 틀림없다. 이런 이유로 옥 목사는 부패와 세속화의 물결이 홍수같이 밀려오는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얼굴인 평신도를 예수의 제자로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옥한흠,『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서론.)고 외친다.
평신도 운동은 옥한흠 목사의 세 가지 신학적 재발견에서 출발한다(박용규, “사랑의교회가 한국 복음주의에 끼친 영향,”『목회와신학』, 39-40). 첫째, 교회관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현대교회는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교회가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데는 너무 미흡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불신자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는 일뿐 아니라,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와 평신도 지도자로 훈련시켜 세상으로 다시 내보내는 일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하는 것이 옥 목사의 지론이다.
둘째, 사도직을 재발견하라. 옥한흠 목사는 마태복음 28장의 주님의 위대한 위임을 사도들에게 국한시키는 해석은 본문의 본래 의도나 목적을 왜곡시키는 행위로 이해한다. 이런 해석은 한스 큉을 비롯해 20세기 들어 여러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였다.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은 주님의 제자들, 그들에 의해 제자가 된 사람들 그리고 제자가 된 이들에 의해 제자가 된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사도의 사역을 이 시대에 계승하는 것이 곧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고 보았다.
셋째, 만인제사장직을 회복하라. 옥 목사의 평신도 운동에 대한 신념과 확신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유산 중 하나인 ‘만인 제사장’ 원리에 근거한다. 이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핸 ‘단번에’(once for all)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그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간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원리가 한국교회에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국교회에 만연되고 있는 성직주의를 극복하는 것과 평신도들에게 제사장직의 기능이 부여되었음을 인식시켜 그들로 하여금 주의 사역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회관의 재정립, 사도직의 재발견과 만인 제사장직의 회복을 통해 평신도들을 깨워 그들이 목회현장에 투입시키는 것이 옥 목사의 목회철학이라면, 제자도는 목회 전략이다. 제자훈련은 이런 철학과 전략의 토대 위에 구축한 목회 방법이다.
옥 목사는 늘 성경적인 제자훈련을 강조한다. 그가 강조하는 제자훈련은 위탁자, 증인, 종으로서의 요소들을 평신도의 인격과 삶에서 온전히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써 교회의 이미지를 갱신하고 평신도의 자아상을 올바로 정립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교회에서 훈련 목회로의 전환이 가능하며, 전교회가 상호 사역하는 유기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교역자 중심 체제에서 평신도 중심 체제로 바꿀 수 있고, 분담 사역의 잠재력을 가진 평신도 지도자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인 교회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평신도를 깨우는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을까? 평신도들이 훈련받은 대로 제자로서의 삶을 살면 교회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변화에 초점을 둔다. 전통적인 한국 목회자들은 교회만을 중시하고 가정을 이차적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옥 목사는 교회와 가정은 양립적인 관계이지 결코 대립적인 관계로 보지 않는다. 옥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영적인 제사장이 된 성도들은 누구든지 자신의 가정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작업은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초석이라는 사상을 그는 몸소 가르치고 실천해 왔다.
그리스도의 신앙 영역을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가정으로 확장한 옥한흠 목사는, 다시 그것을 사회로 확장해 나간다. 그리스도인은 교회-가정-사회라는 구도 속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소홀히 할 경우 그리스도인의 근본 정신을 균형 있게 세워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평신도 훈련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 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천국의 일꾼 양성하는 데 두었다. 제자훈련은 섬김을 지향하는 목회철학이며, 이 섬김은 반드시 교회와 사회 두 영역 모두를 포함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옥한흠, “지금은 자랑할 때가 아닙니다,”『목회와신학』, 통권 22호(서울: 두란노서원, 1991. 4), 267).
Ⅳ. 강남 4인방의 특별한 우정 ‘강남 4인방’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강남 4인방’은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를 묶어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서두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명실 공히 한국 최고의 목회자들이다. 교회 규모도 그렇거니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개성을 발휘하여 한국교회 성장과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장본인들이다.
‘강남 4인방’과 관련해서 주변에서 자주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들은 교파와 배경이도 다른데 어떻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친분을 갖게 되었는가, 또한 이런 관계가 신앙 여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이들이 얼마나 친한 관계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 1998년, 사랑의교회는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그때『빛과소금』은 ‘평신도를 깨운 사랑의교회 20년과 전망’이란 ‘특집’(Special Theme)을 기획하여 총체적인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선임기자이던 필자는 하용조 목사를 대동하고 옥한흠 목사를 인터뷰하러 당회장실로 들어갔다.
옥 목사는 하 목사를 오랜 만에 만난 까닭인지, 반갑게 악수례를 한 후 서로의 건강을 물었다. 하 목사는 “형님, 요즘 건강이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그 때 상황은 두 사람 모두 건강이 좋지 않던 시기였다. 옥 목사는 급격한 건강 악화로 안식년을 다녀온 직후였다. 운동을 싫어하는 옥 목사에게 주변에서는 건강 회복을 위한 취미생활로 사진 찍기를 권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사진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시기였다. 하 목사 또한, 간염과 간암을 반복해서 앓고 있던 시기여서 서로의 건강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건강이야, 자네가 더 잘 알잖아. 나 일찍 은퇴할거야. 자네는 일 중독자야. 그러니 건강이 안 좋을 수밖에. 일찍 은퇴하고, 나랑 같이 사진이나 찍으러 다니세.”
이 시기는, 옥 목사가 은퇴하기 6년 전(2004년)의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옥한흠 목사의 은퇴 이야기가 나온 것은 2002년 5월, 남가주사랑의교회 장로들을 만나서 함께 대화하기 시작한 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런 주제를 스스럼없이 나눌 정도로 친근한 사이였고, 사석에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서로의 안녕을 묻는 그런 사이였다.
주변의 측근 인사들에 따르면, 강남 4인방 모두 이런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서로 견제하며, 은근히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서로의 강단을 공유하는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강남 4인방’은 어떻게 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을까? 이들의 관계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로 넘어가던 치열한 계절에 한국대학생선교회(CCC)는 교파와 선교단체의 범주를 넘어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었다. 그 당시 CCC 총무였던 홍정길 목사는 신학적인 부분을 보충해서 전도자로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1967년에 총회신학교에 입학했다. 또한, 당시 건국대를 졸업한 하용조 목사는 CCC 간사로서 홍 목사와 교분을 쌓고 있었다.
이때 이동원 목사는 YFC(한국십대선교회)의 간사요, 총무로 뛰면서 복음의 첫사랑과 열기를 몸으로 발산하며 살고 있었다. 그때에도 선교단체간의 협력을 시도해 보려는 몸짓들이 있었으나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이 목사는 홍정길 목사와 만남을 갖기 시작했고, 이 목사는 YFC 모임에 홍 목사를 여러 차례 초청해 그 비전을 함께 나누었다. 이동원 목사는, 홍 목사와 이런 인연이 개인적인 교우관계로 발전해 형님처럼 의지하고 따르게 되었다.
그런데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학생운동이 쉽게 지역교회 내에서 이해되지 못했고, 복음의 순전한 메시지를 교회 내에서 보편적으로 접촉함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복음의 동일한 열정을 소유한 그들은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하여, 20대 중반에 만나 시작된 우정의 강물에 자연스럽게 하용조 간사(이동원 목사가 한 살 위)가 동참했다. 그 후 선배격인 JOY의 이태웅 목사, 성도교회 대학부를 지도하던 옥한흠 목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당시, 복음이 희귀하게(?) 느껴지던 계절 복음과 학생운동이라는 공통의 관심을 바탕으로 결코 짧지만은 않은 동역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필자의 이들의 우정과 주님을 향한 각각의 열정을 보면서, 19세기 말의 영국 사회를 생각한다. 빅토리아(Princess Alexandria Victoria of Kent, 1837~1901) 여왕이 다스리던 19세기 영국은 다수의 설교자들로 인해 복음의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주일이 되면 런던에서는 메트로폴리탄 터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의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목사와 시티템플교회(City Temple Church) 조셉 파커(Joseph Parker) 목사, 리젠트파크채플(Regent’s Park Chapel)에서는 인물별 설교로 유명한 F. B. 마이어(Frederick Brotherton Meyer) 목사가 설교했다.
맨체스터 시 유니온채플(Union Chapel)에서는 유명한 강해설교자인 알렉산더 맥클라렌(Alexander Maclaren)이, 버밍햄 카즈레인회중교회(Carr’s Lane Congregational Church)에서는 로버트 데일(Robert William Dale) 목사가, 에든버러 세인트 조지 자유교회(Free St. George’s Church)에서는 알렉산더 화이트(Alexander White) 목사가 설교했다. 이제는 21세기에 설교자로 부름 받아 ‘강남 4인방’으로 불리는 선배 설교자의 가르침을 받은 우리가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한국과 세계를 복음의 충격으로 빠뜨려야 할 차례가 아닐까.
Ⅴ. 옥한흠 목사의 설교 연구 흔히, 사랑의교회는 제자훈련을 통해 성장한 교회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의교회가 성장하는 데는 제자훈련 못지않게 중요한 성장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옥한흠 목사의 설교다. 사랑의교회 교인들이라면, 옥 목사의 설교를 한 번 들어 볼 것을 권유한다. 이는 그들이 옥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교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설교를 하는 담임목회자는 행복할 것이다. 그의 설교에 맛들인 청중은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옥 목사의 설교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예피소드가 있다. 사랑의교회는 강남은평교회 시절, 1980년에 “꺾고 다시 꺾고”(욥 16:14)라는 타이틀로 개척 2주년 기념대성회를 가졌다. 또한, 이듬해인 1981년에 한 번 더 유명한 부흥강사를 모시고 부흥회를 가졌다. 그러나 두 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옥 목사의 설교에 익숙한 교인들에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부흥사 설교가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한흠 목사가 공식적으로 설교를 처음 해 본 것은 20살 때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설교자로서 강단에 설 때마다 자신은 ‘타고난 설교자가 못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달변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설교자가 되기 위해 문학이나 문장 수업을 철저하게 받은 적도 없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그는 설교를 쉽게 준비하는 재주가 있고, 그러면서 청중에게 큰 감동을 주는 설교자를 제일 부러워한다.
옥 목사는 자신과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국내외 설교자들의 테이프를 즐겨 듣고, 자주 기독교 TV를 시청한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안 들으면, 심령이 컬컬해지는 중독 증세까지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각고(刻苦)의 피나는 노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이랜드 그룹 박성수 회장은 “(옥한흠) 목사님은 설교로 유명하고, 사랑의교회 부흥은 제자훈련 사역에 힘입은 바가 크다. 30년 설교를 들었으면 대개 어떤 윤곽 속에 그 설교가 들어 있을 법하지만, 목사님의 경우는 좀 다르다. 목사님 자신의 발전 때문이다. 나는 그 발전의 배경을 ‘배우려는 자세’(Teachable Mind)에 있다고 본다. 이런 자세 때문에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으셨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국제제자훈련원, “옥한흠 목사와 함께한 24년,”『8인이 말하는 옥한흠). 결국, 설교자는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1. 설교 철학- 들리는 설교를 해야 한다 옥한흠 목사는,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바울이 보여 준 목회의 모범을 받아들여 사랑의교회를 목회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성도들의 삶 속에 살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다락방 소그룹을 활성화시켰다. 또한, 제자훈련 과정을 통해 무기력하게 잠자고 있는 평신도를 깨워 그리스도의 제자로 무장시키고 목회의 동역자로 삼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그가 목회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실천한 사역이 있다. 그것은 설교다. 설교에 대한 그의 집념은 남다르다.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했고, 목회의 여러 가지 사역 가운데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을 가장 우선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왔다. … 지금까지 이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목회해 왔는데, 한 번도 이것이 뒤바뀌거나 좌우를 두리번거리면서 방황한 일이 없다(옥한흠, “특집/ 평신도 시대를 열자- 평신도와 함께하는 목회,”).
옥 목사는, 설교란 인간에게 있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설교와 청중,”『월간 목회』1984). 또한,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될 것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설교자라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설교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클 것이다. 항상 미흡한데서 오는 고통,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죄송함이 설교자라면 누구나 똑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옥 목사는 “설교에는 대가가 없고, 설교에는 완성이라는 것도 없으며 졸업도 없다”고 규정한다. 그저 평생 싸우고 고통하면서 일만 분의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충고한다. 위대한 설교자로 추앙받는 그도, 여전히 설교의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 설교는 사람들에게 ‘들려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들어주는 설교가 아니라, 들리는 설교라야 한다는 것이다. 옥 목사 스스로도, 타인의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설교가 있는 반면, 귀에 안 들어오는 설교가 있음을 지적한다.
진짜 살아 있는 설교는 영적으로 캄캄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든지 예배에 나온 사람에게 들려야 합니다. … 설교자는 ‘무엇을 전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설교를 듣는 청중이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를 깊이 고찰하는 눈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형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형편을 알면 그들에게 맞는 설교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킵니다.(옥한흠 목사는 총신대 류응렬 교수와의 대담에서 ‘안 들을 수 없는 설교’가 있음을 강조한다. 설교자가 성경 말씀을 똑같이 전하더라도 ‘나’를 위한 설교가 있음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그는, 정말 좋은 설교에 대해 ‘설교의 적절성’이란 관점으로 설명한다. 설교의 적절성이란,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목사님, 오늘 저를 위해 주신 말씀에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라고 한다. 청중이 자신만을 향한 설교로 알아들을 때 이것이야 말로 설교의 신비요,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는 증거임을 역설한다. 류응렬, “한국의 명설교가 시리즈3-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게 하십시오,”『그말씀』, 통권 215호(서울: 두란노서원, 2007. 5), 7-8. 옥한흠,『제자훈련 열정 30년 그 뒤안길의 이야기』, 136-138.)
설교에 대해 그 누구보다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옥 목사는, 작금 펼쳐지고 있는 한국교회 위기를 설교에서 찾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지적하는 설교 문제는 지나친 설교 강조로 인한 균형 감각의 상실이다. 옥 목사가 지적하는 사항은 이렇다. 지역마다 대형교회들이 등장하고 개척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일예배에 몇 명 모이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자연히 사람들을 끌기 위한 전천후 수단은 설교라고 하는 생각이 만연되기 시작했다. 이는, 설교를 평신도의 영적 성장을 위한 절대적인 수단으로 과신했다는 말이다. 설교만 잘하면 성도들의 영적 요구를 만족스럽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설교 만능주의’가 목회자들의 확신으로 굳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설교에 편중된 목회는 제자를 만들라는 주님의 분부에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설교가 평신도를 무력한 군중으로 변질시키는 심각한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 결과, 얼마 동안은 양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대신 예수님을 배우고 닮고 따라가려는 열정을 가진 제자들을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개탄한다. 결국, 설교와 훈련 가운데 지나치게 설교에 편중된 결과 100년 전에 겪은 영국교회의 퇴조 현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옥 목사는 지금부터라도 편중 목회를 털고, 목회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목회자가 각성하고 목회의 본질로 돌아서면, 하나님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밝게 해 주실 것이라는 신앙적인 낙관론을 피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