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건강

쪽방촌의 ‘슈바이처’, 요셉의원, 이문주 신부원장, 선우경식원장, 신완식 의무원장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11. 5. 14:01

쪽방촌의 ‘슈바이처’, 요셉의원


 

[서울] 정윤지 janeglay@naver.com

“노숙인, 행려자, 알코올 의존증 환자.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들의 아픈 몸을 고쳐주는 일을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주는 것이 저희들의 의무이지요.”

가을날 오후 서울 영등포역 뒤편 붉은 벽돌건물의 요셉의원에서 만난 원무과 한동호씨의 이야기다. 병원 문 앞은 4시에 있을 음식 나눔 행사로 시끌벅적했다. 남루한 옷차림의 이들은 쌀쌀한 가을바람에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지만 눈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왼쪽은 현 요셉의원 전경, 오른쪽은 요셉의원 개원 당시의 모습. <제공=요셉의원>
왼쪽은 현 요셉의원 전경, 오른쪽은 요셉의원 개원 당시의 모습. <제공=요셉의원>

22년째 이어온 ‘무료자선병원’
영등포 근처의 좁은 골목에 숨은 듯 자리한 요셉의원은 극빈층을 위한 ‘무료 자선 병원’이다.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 부설인 이곳은 노숙인,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이 병원의 주된 고객.

고 선우경식 원장이 1978년 8월 신림동에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까지 총 40만명이 넘는 환자가 다녀갔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그는 결혼도 뒤로 한 채 한평생 극빈층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엔 소홀했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환자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지난해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요셉의원 초창기 멤버로 22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배모씨는 “선우경식 선생님은 정말 누구에게나 인자하고 친절했다”며 “그야말로 성인 같으신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순전히 자원봉사자들로 맥을 이어
이곳의 일과는 오후 1시에 시작한다. 이때부터 오후 5시까지 낮진료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저녁진료를 한다.

이곳에선 80여명의 전문의가 자원봉사자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안과 등을 진료한다. 이밖에도 400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요셉의원을 지탱하고 있다.

요셉위원의 옥상.
요셉위원의 옥상. 영등포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여 고 선우경식 원장이 제일 좋아했던 곳이다.

운영비도 모두 독지가의 후원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정부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병원 원무과 한동호씨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환자 홍길동씨에게 약을 처방해주었다고 합시다. 그럼 약값으로 얼마만큼의 돈이 나갔는지 정부에 보고를 해야해요. 그러기 위해선 홍길동 씨의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하는데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됐거나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 지원을 받을래야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만 둬라, 어차피 망한다’, ‘하지 마라’ 등의 만류도 수도 없이 들은 요셉의원이지만 지금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셉의원 설립 당시 지도신부로 요셉의원과 연을 맺은 뒤, 지금은 원장이 된 이문주 신부(72)는 “처음부터 후원자들의 힘으로, 봉사자들이 시작한 것”이라며 “그 정신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음주환자에 힘들지만 감사 인사 하면 보람 느껴"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술에 취한 환자들이다. 간혹 행패를 부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찔하다. 몇 달 전 현관 봉사자 한 명은 음주상태의 환자를 안내하다 걷어차여 눈을 실명할 뻔하기도 했다. 이문주 신부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얼마 전에 유리창을 깨져서 새 것으로 바꿨습니다. 문을 걷어차기도 하고. 술을 먹은 상태에선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술이 깬 뒤에 찾아오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막무가내인 경우도 있죠.”

요셉의원의 이문주 신부원장님. 하얗고 긴 수염이 인자한 그의 얼굴과 잘 어울린다.
요셉의원의 이문주 신부원장. 하얗고 긴 수염이 인자한 그의 얼굴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오히려 병원에 폐를 끼친 적이 있는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봉사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치료를 받은 후 감사 인사도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정말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들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오늘처럼 음식 나눔 행사를 할 때도 그래요. 처음에는 질서라는 게 없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끼리의 ‘배려’가 생기더군요. 단순히 치료와 음식만을 제공한 게 아닌 셈이죠.”

이문주 신부는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치료만 아니라 인간적인 대접”이라며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이곳에서 척추 수술을 받고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김모씨는 “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요셉의원 덕택”이라며 “절망에 빠져있던 삶을 다시 살게끔 해준 고마우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봉사하라!"
요셉의원의 신완식 의무원장(59)은 선우경식 원장의 뒤를 잇는 제 2의 슈바이처다. 여의도 성모병원의 감염내과 과장이자 가톨릭중앙의료원 세포치료 사업단장을 맡았던 그는 정년퇴임 6년을 앞둔 올해 2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에 아내가 많이 서운해했죠. 그렇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특별히 요셉의원에 온 계기는 없습니다. 그저 죽는 날까지 교수 생활로 나의 인생을 끝마치기엔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밖에는.”

선우경식 원장의 뒤를 이은 신완식 의무원장. 뛰어난 실력과 넘치는 유머감각을 겸비한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원장의 뒤를 이은 신완식 의무원장. 뛰어난 실력과 넘치는 유머감각을 겸비한 요셉의원의 ‘보물’같은 존재다.

또 그는 “정년까지 일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 늙은 뒤에 오면 제대로 봉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새 식구가 된지 어느덧 9개월 남짓. 매주 이틀, 아침 11시에 출근해서 진료준비를 마치면 오후 진료를 시작한다. 진료를 하는 동안 그의 마음을 슬프게도, 기쁘게도 하는 일들이 많았다.

요셉의원에 온 뒤, 구개파열로 일생동안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노숙인 한 명을 치료해준 적이 있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소리를 조금씩 낼 수 있게 되자 그는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며칠 뒤, 어디서 구했는지 사탕을 양손 가득히 가져와 요셉의원 식구들에게 나눠줬다. 그 모습을 보고 신 원장의 마음이 짠해졌다고 했다.

“치료를 하기 전에 환자와 인터뷰를 해요. 언제 이혼을 했는지, 언제 노숙을 하게 됐는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등을 오랫동안 이야기하죠. 그러면 울지 않는 환자들 못봤어요. 누구할 것 없이 전부 넋을 놓고 울어요.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끔 저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남자’니까 꾹 참아야지요.(웃음)”

“인간적 교감을 통해 근본적으로 치유해야”
그가 이곳에 부임하기 전 만났던 정진석 추기경은 그에게 “의학적으로 치료만 하려들면 안된다”며 “그들과의 인간적 교감을 통해 근본적인 치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역시 아픈 곳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문래동쪽도 재개발된다고 들었는데 큰일입니다. 노숙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역부족이지 않습니까. 의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앞으로 어떻게 도와야하나, 그게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옛말이 있다. 22년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의 몸과 마음의 고통까지 치유했던 요셉의원. 그들은 어떠한 칭찬도,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묵묵히 봉사해왔다.

이들의 노력에 작은 정성을 보태보면 어떨까. 큰 기적을 이뤄낼 수 잇을 것이다. 이들을 후원하려면 요셉의원 사이트(http://www.josephclinic.org/Default.aspx)를 방문, 후원안내를 확인하면 된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다.

 

나눔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