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쓸모없는 세대… 너희는 뭘 해도 안돼!" 대학신문 교수 기고문이 도화선… 아고라 등 토론게시판서 뜨거운 공방
지난 6월 초 충청도의 한 대학신문에 한 편의 기고문이 실렸다. 김용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쓴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란 제목의 글이었다. “5월 30일, 서울광장이 ‘털렸다’”로 시작한 이 글은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란 비관적인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
글이 올라오자 이 학교 학보사 게시판엔 “이 글을 쓴 저의가 뭐냐?” “어이가 없다” 등의 댓글이 130여개나 달렸다. “조금 아쉽지만 사실 아니냐” “댓글을 보니 희망이 더 안 보인다”며 김 교수의 글을 옹호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기고문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와 개인 자유게시판 ‘듀나게시판’ 등으로 옮겨져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대 ×새끼론’. 인터넷상에서 김 교수의 문제제기는 이렇게 불린다. 이른바 ‘작금의 20대는 아무 쓸모없는 세대이며, 20대에겐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고, 그러니 차라리 20대를 포기하자’는 ‘20대 포기론’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오늘날 청년들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20대’란 세대의 책임으로 싸잡아 몰아가려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도 20대는 기성세대의 눈에 항상 미성숙하고 기대에 못미치는 불만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또 다시 제기되는 ‘20대 역할론’의 구체적 공방 내용은 무엇일까.
범(凡) 386 교수의 비판 "스펙에 목숨 건 무개념 20대는 공부나 해라 차라리 촛불 들고 거리 나온 10대에 희망 건다"
▲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채용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 / photo 조선일보 DB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CBS 라디오방송 ‘시사자키 양병삼입니다’의 주말 진행을 맡고 있는 시사평론가다. 1974년생인 그는 시사 프로그램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그동안 꾸준히 강한 정부 비판을 해왔다.
그가 기고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우리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왜 서울광장엔 그 많은 대학생들이 안 보일까?” 주변 학생들에게 물으니 답은 하나였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취업하려면 입학하자마자 토익 점수를 관리해야 하고, 학점도 챙겨야 하고, 이른바 ‘스펙’도 쌓아야 한다. 시간을 쪼개 남들 다 하는 연애도 해봐야 한다. 김 교수가 학교를 다니던 때완 너무 다르다. 기득권에 반대하며 변화를 부르짖는 젊은이다운 패기는 저 멀리 사라졌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김 교수는 현 대학생 세대의 특별한 경험에서 답을 찾는다.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1990년대 후반 IMF를 겪은 이들은 아버지의 실직 등 끔찍한 구조조정의 위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뒤 ‘처세’와 ‘생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이때부터 이 아이들이 “모든 사안을 ‘가치’보다는 ‘자신의 유불리’에 방점을 두고 사리판별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런 학생들을 동정하거나 이해하기보다는 전에 없던 차가운 비판을 가한다. “너희가 이렇게 만만하게 행동하면 이 정부는 아무런 부채의식 없이 행동할 것이고, 너희도 곧 이 정부의 ‘밥’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386 선배들처럼 너희가 권력의 골칫거리였다면 이 정부는 결코 지금처럼 무덤덤하게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천지가 개벽해 너희가 조직적인 봉기를 벌여야 정부가 등록금 문제나 취업 정책에 상당한 성의를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대학생들의 반발을 부른 건 김 교수의 마지막 주장이었다. 김 교수는 “난 대학생들에게 시위라도 하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다”며 “오히려 만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일까. 어쩔 수 없고, 지금 20대는 뭘 해도 이미 늦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너희는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삽 들고 안전한 삶의 길을 모색하라”며 “나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10대의 강렬한 문제의식에 희망을 걸며 이 아이들이 너희 세대를 앞지르고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글을 끝맺었다.
20대들의 반응 "오직 시위만이 현실 참여 방법인가" "읽을 가치도 없는 글" 반박 댓글 줄이어
김 교수의 기고문이 공개되자 젊은 네티즌, 특히 대학생들의 반발이 거세게 이어졌다. 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희생양’인 20대만 욕하느냐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다음 아고라엔 관련 논쟁글이 20여개나 올랐고, ‘듀나게시판’에도 김 교수 기고문 관련 논박글만 30여개가 올랐다. 게시물마다 10~80개씩 댓글이 달렸다. 닉네임 ‘도토리’는 “스펙에 목숨 걸게 만든 기성세대야말로 ‘의식 낮고 사회참여율 낮은 20대’를 만들어 낸 장본인 아닌가”라며 “또 386 때의 시대 모습과 현재 모습이 많이 바뀌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려도 없이 이렇게 비판하는 게 적절한가”란 댓글을 달았다.
블로거들의 비판도 줄을 이었다. 한 블로거는 아예 “지금껏 시위 한번 안 나가본 대학생이라도 김용민 교수의 저런 비난을 참고 들어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잘라말했다.
▲ 토익 시험을 위해 사설학원에 몰려든 20대 / photo 조선일보 DB
“김 교수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1980년대 대학생들의 시위는 현재의 20대가 정치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식도 아니고, 더 이상 효과적인 방식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네티즌은 “2000년대의 대학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바로 여기 생생하게 현존하는 20대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지성의 전당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닌, 그러나 김 교수가 보기 힘든 매우 찾기 쉬운 곳들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용민 교수는 한양대 게시판에 ‘2차 20대 ×새끼론’을 펼쳤다. 김 교수는 “진짜 문제는, 치졸한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꾸짖어야 할 여러분의 목소리가 ‘왜 우리를 ×새끼라고 하느냐’라는 엉뚱한 부분에서 증폭된다는 데 있다”며 “여러분이 시대를 잘못 만난 건 인정하지만 왜 이런 지형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또 “키보드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며 “피눈물 흘리며 숨어다니고 제적당하고 포박당하고 불이익 당해도 바른 일을 위해 싸웠던 이들(‘386’)과, 기껏 인터넷에서 뒷담화나 늘어놓으며 ‘우리가 왜 ×새끼냐, 이 ×새끼야!’ ‘네 애는 안 그러나 보자!’고 하는 이들(현 20대)의 자세와 열정, 미래는 같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가 ‘2차 포문’을 열자, 젊은 네티즌들의 반응도 폭발했다.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이다”라는 극단적인 분노와, “20대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나’다. 10대도 이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다. 교수가 착각하고 있다”는 비아냥,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글이다. 이런 글에 상처받지 말자”는 위로, “삶과 역사의 현실이니 누굴 탓하겠나. 기다려보자”는 관망까지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일부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반응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20대의 탈정치화' 어떻게 볼 것인가 "386 잣대로 20대 평가하는 건 독선" "어쩔 수 없는 시대변화… 20대도 아울러야"
20대의 보수화·탈정치화에 대한 비판은 많았지만 김 교수의 기고문처럼 ‘20대를 포기해버리자’는 식의 경멸을 담은 주장은 처음이었다. 김 교수의 기고문을 둘러싼 논쟁이 새삼 ‘우리 사회에서 20대란 누구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현재 우리 사회의 20대는 ‘20대는 급진적이고, 변화를 추구하며, 저항적이다’라는 고정관념을 흔들어놓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홍두승 교수가 최근 서울대 재학생 6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대생들이 답한 본인의 정치 성향은 진보(42%)`-`중도(30%)`-`보수(28%) 순이었다. 2002년 조사 때 진보 63%, 중도 26%, 보수 11%였던 것과 비교해, 진보는 크게 줄어든 반면 보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지 정당도 한나라당(20%), 진보신당(19%), 민주당(10%) 등의 순이었다.
가장 가깝게 느끼는 국가도 미국(42%), 북한(15%), 일본(13%) 순으로, 2002년 서울대 등 서울 소재 6개 대학 재학생 조사에서 미국의 호감도가 7%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 큰 변화를 보였다. 경제 문제에서도 ‘자유경쟁 원칙 우선시’에 대한 찬성(50%) 의견이 반대(26%)보다 많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한 의견도 찬성(34%)이 반대(28%)를 앞섰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대가 실시한 서울 시내 7개 대학 재학생 의식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자신의 이념지향을 ‘보수’라고 답한 학생이 전체의 35%에 이르러, 진보(33%)라 답한 학생 수를 최초로 뛰어넘었다. 대학생 40%가 지지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꼽았고, 나머지 33%는 ‘없다’고 답했다. 보수화 혹은 탈정치화 흐름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20대의 모습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현 20대의 변화를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보고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야지, ‘평가의 대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는 “20대의 탈이념화된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386 세대를 정점으로 지난 20년간 꾸준히 지속돼온 변화의 연속선상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지난 10년 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386세대의 ‘열정’이 각종 제도권 정책으로 흡수됐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이런 이해 없이 ‘20대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바로 심각한 독선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특정 관점으로 사회현상을 이끌어 가려고 하면 ‘목적을 가지고 사실을 왜곡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특정 세대의 ‘세대 정서’를 바탕으로 다른 세대를 재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386세대가 20대이던 시절 공유했던 정서가 따로 있듯, 현재의 20대에게도 그만한 세대 가치와 정서가 있는 것이다.
함 교수는 “현재의 20대는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이 바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을 수 있다”며 “특히 삶의 위협을 받는 20대에게 너무 ‘안정지향적이고 생존지향적인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것은 이들의 절실함을 외면한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함 교수는 또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은 ‘지금 같은 정치 상황에 그다지 높은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들 입장에선 기존 386 세대의 거대 담론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며 “진정한 사회변화를 이루기 위해선 20대가 원하는 사회변화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의미없다’ ‘포기하자’고 하는 건 갈등과 분열만 조장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박세미 runa@chosun.com 출처:주간조선 [2074호] 2009.09.28
장근석 "20대가 정치 무관심? 동의 할 수 없다"
입력 : 2009.09.16 15:20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지난 10일 개봉한 홍기선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 가게의 화장실에서 일어났던 대학생 고 조중필씨 살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조중필씨는 단지 화장실에 있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미국 국적의 십대 소년 두 명이 피의자로 붙잡혔다. 구속된 이들은 재판과정에서 풀려났다. 피의자들이 조중필씨 살해 현장에 있었지만 서로가 범인이라고 지목했고 증거는 나오지 않아서였다.
최근 이데일리SPN과 만난 장근석은 이 영화에서 피의자 중 한 명인 피어슨 역을 맡았다. 장근석은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중필 사건’에 대해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1987년생인 장근석이 자신이 열 살 무렵에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해서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장근석은 데뷔 10년차가 넘은 연예인 이전에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20대 청년 대학생이었다.
-대학교 생활(한양대 연극학과 재학중)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기억나는 수업은 무엇이 있었나?
▲1학기 때 정치외교학과의 전공인 한국정치외교사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가 수업에 들어가자 다들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들 눈에 나는 같은 학생이라기보다 연예인 아니던가? 그에 아랑곳 안하고 교수님이 질문할 때 앞장서서 발표를 했다. 정확히 모르더라도 평소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다보니 교수님도 좋아하시고 수업 듣는 다른 친구들도 발표를 많이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타과 전공시간에 아무것도 모르는 연극학과 학생이 와서 수업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발표하기를 주저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따로 불러 왜 발표 안하냐고 걱정해주셨다. 그런 수업 과정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사실 얕은 지식으로 발표를 많이 했는데 많이 수용해주셨다. 물론 한국정치외교사 수업이 학점을 잘 주신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알고는 있었다(웃음)
-어렸을 적부터 연예인 생활을 했기에 대학 생활이 오히려 낯설지는 않았나?
▲그런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 과 생활을 하고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많이 달라졌다. 내공을 가진 또래들을 보며 놀랄 때도 많고 내가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가령 옷에 신경 쓰지 않는 친구들을 볼 때 이해가 잘 안되었지만 그네들이 가진 저력을 보면서 또 다른 세상이 있구나 싶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사실 연예인이라고 스스로를 의식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그런 것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학교생활이 즐겁고 하루하루 배우는 게 많다. 무엇보다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함께 영화에 출연한 정진영이나 홍기선 감독은 대학 재학시절 소위 운동권으로 이름을 날렸던 분들이다. 혹시라도 그 분들에게 당시 후일담 같은 것을 듣지는 않았나?
▲그 시대에 대학을 다니신 분들이 지금과는 여러 가지로 달랐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은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굉장히 겁을 먹고 촬영장에 갔는데 감독님은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별 말씀 없이 묵묵히 배우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진영선배는 즐거운 인생에서 워낙 좋은셨기 때문에 별 걱정 안했다. 진영 선배가 서울대 출신인 건 알았지만 운동권 출신인 줄을 잘 몰랐다. 선배가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것도 없고. 그냥 편하고 좋은 선배들이었다.
-억압당하는 노동자, 비전향장기수등 사회적인 소재를 다룬 홍 감독의 전작 스타일이나 ‘이태원 살인사건’의 소재를 봤을 때 청춘스타인 장근석의 출연이 이외라는 시선이 많았다. 알고 있었나?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어렸을 적 실제 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고 왜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해 어머니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그 사건을 다룬 걸 보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어쨌든 충무로에 ‘이태원 살인사건’의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그 시나리오를 구해다 읽고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즐거운 인생’에서 연을 맺은 정진영 선배도 추천을 해주셨다.
-살인을 저지르고 죄의식이 없는 10대 연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피어슨이란 인물은 한국사회가 만들어 놓은 후천적인 악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로 누군가를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십대 소년을 연기하기는 만만치 않았지만 극중 피어슨처럼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연기를 했다.
-극중 피의자인 피어슨과 알렉스는 서로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근석씨가 생각하기에는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
▲범인이 누군가라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범인이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할리우드의 스릴러 영화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감독님은 그런 부분을 피해가셨다. 오히려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믿는 십대 소년들. 누군가 억울하게 죽은 상황에서 그걸 방치하는 시스템. 그런 것이 이번 영화가 묻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태원 살인사건’은 당시 한미관계나 여러 가지 시사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봐야하는 영화다. 20대 청춘스타와 시사 문제와는 잘 매치가 되지 않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어렸을 적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자주 봤다.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시사문제에 관심이 컸다. 그래서 특별히 부담이 되거나 어색한 소재는 아니었다.
요즘 20대 대학생들이 시사나 정치 문제 등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고 지적을 많이 하는데 솔직히 그런 문제제기에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요즘 대학생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과거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은 아닐까? 친구들과 술 먹을 때 이외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우리 나름대로 갑론을박하며 결론을 내린다.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아직은 많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른들이 겉에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지라도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