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한국 읽기

포스코, 포스텍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8. 6. 15:19

포항에 사는 황태현(18)군은 12년째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버지를 따라 학교에 간다.

포스코 직원을 아버지로 둔 황 군은 7살 때 포항제철 지곡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초등학교(포항제철 지곡초교), 중학교(포항제철중)를 아빠 회사에 붙어있는 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포항제철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 흔한 학원 수업을 제대로 받아 본 적도 없이 '학교만' 다니고 있다.

매일 밤 11시 30분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교수업이 없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친구들과 하루를 보낸다.

"중학교 때 잠깐 학원에 다녔는데 지금은 쓸데없는 것 같아서 안다녀요. 학교에서 모든 게 해결되니 학교만 다니면 되요. 유치원 때부터 그랬어요. 포스코에서 만든 단지에서 살고, 포스코에서 만든 학교에 다니고, 저는 포스코가 만든 사람이죠."

◈ "나는 made in 포스코"···태현이의 아빠 회사 자랑

모자라는 공부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김다윗 이라는 이름의 친구의 입에서 방과후 학교에서 한다는 보충수업, 특강 목록과 강의요금이 줄줄이 나온다.

특강의 경우 강의 종류는 4~5종류이며 수업당 강의료는 영어 특강이나 영어 에세이의 경우는 10만원이 넘지만 대개는 4~6만원 사이라고 했다.

황군과 달리 김군의 아버지는 포스코 직원이 아닌 그냥 포항 시민이라고 했다. 그저 포항에 살고 있는 이유만으로 국내에서 알아주는 자사고(자립형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만약 '포철학교'가 없었다면 이들 여드름쟁이 아이들은 지방 공장서 일하는 아빠를 둔 다른 청소년들처럼 아빠와 떨어져 서울의 주말 가정에서 크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교육보국을 기치로 내 건 포스코의 직원 자녀 교육이 올해로 38년이 됐다.

그 동안 고등학생 기준으로 93,000명의 학생들을 배출하며 회사 발전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어 일본과 미국 교육 기관에서도 관심이 크다는 포스코 교육이 빛을 발해 온데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선견지명이 컸다고 한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1971년, 낙후지역이었던 포항과 광양에 제철소를 건립하면서 우수한 기술자와 연구원을 유치하는 일에 골몰했다.

그런 그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최고의 주거 및 교육시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 "사교육 받지 않게"···유치원~고교 자녀교육 환경 완비

박 명예회장은 과거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인구 7만도 안 되는 도시에 직원을 불러들일 수 있었겠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서울에 가장 훌륭한 교육시설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제철소가 건설되기 전에 주거, 교육시설 건설을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포스코는 현재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3년간의 연계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

 

포항에 7개, 광양에 5개의 유치원, 초·중·고교를 두고 있는데 고등학교의 경우는 입학생의 60%를 포스코 직원과 계열사 직원 자녀에게 할당하고 있다.

사실상 포스코 자녀를 위해 존재하는 이런 교육 환경은 포스코가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데 강력한 유인책이 되고 있다.

특히 20년 막 넘은 역사를 지닌 포항공대(포스텍)가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일류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배후의 교육시설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포항제철고등학교 강석윤 교장은 "80년대 초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사립대학을 키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교수들 초빙부터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에 있는 우수한 교수들을 모셔오면서 그들 자녀교육을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쾌히 승낙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포스텍이 최고의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포스코 본사 뿐 아니라 포스텍 같은 관계사 직원들이 포항에 부임하면서 가족을 데리고 이주함으로써 포항 지역 인구도 증가했다.

이는 결국 지역 경제발전에도 든든한 디딤돌이 됐다.

◈ 지방 교육청 "지역 교육의 얼굴"···외국에서도 관심

포스코에 몸담고 있지 않은 일반 지역 주민들도 포스코 교육이 일군 과실을 함께 나누고 있다. 자사고인 포항제철고와 광양제철고 정원의 각 40%를 지역 주민 자녀들에게 문호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다만 대상 학생을 경상북도와 전라남도 지역 주민으로 국한시켜 그 혜택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돌아기지 않도록 했다.

게다가 일반고와 같은 전형 방법을 채택하고 있어 진학 희망 학생들이 고교 선행학습이나 학원 심화과정을 이수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그럼에도 두 학교는 매년 명문대 입학생 숫자 등 진학 성적에서 전국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지역 교육 전체에도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지역 중학생들에게 명문고등학교 진학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지역 중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크게 개선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역 교육청은 포스코의 교육 사업은 지역사회의 교육환경 개선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어 '지역교육의 얼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포항제철고 강석윤 교장은 "포스코 교육은 직원자녀의 성공적인 대학진학은 물론, 직원의 사교육비 절감을 통한 실질적인 임금 상승, 회사의 생산성 제고, 지역 사회의 교육·경제적 발전 등 회사 안팎의 모든 성공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며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델이다"고 말했다.

"학생선발권 가지는 기업학교 지금도 만들 수 있어" 포철고 강석윤 교장
포항제철고등학교 강석윤 교장은 기업 학교가 가진 여러 가지 장점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직장인은 물론 기업과 지역사회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최적의 모델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기업학교를 세워도 학생들을 자유롭게 선발 할 수 있도록 제도도 보완됐다고 귀띔했다. 그가 왜 기업학교 전도사를 자처하게 됐는지 이유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포항제철고라는 기업 학교가 만들어진 배경은?

A) 포스코는 직원주택과 자녀교육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서 창립초기부터 국내 최고의주택단지와 학교를 건립해서 직원들이 평생직장으로 보람을 느끼도록 했다. 포스코 종사자들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자녀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만들어서 온 가족이 공장 인근에 모여 사는 것이 생산력 제고의 동인이라고 봤던 것이다. 직원들로서는 좋은 학교에 자녀를 맡기게 되니 사교육비도 쓸 일이 없다. 그러면 나갈 돈이 안 나가니 실질적인 임금상승 효과도 있다. 그 것이 역으로 회사에 큰 이익을 줬다. 우리학교는 모든 것을 학교가 해결해준다.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해주고 있고 인성·생활 지도도 모범적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해준다. 지출면에서도 포스코가 자녀들의 등록금을 대주면 학교는 직원 자녀가 아닌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을 줄 수 있다. 직원자녀 뿐 아니라 지역사회 자녀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다.

Q) 학교 운영은 어떻게 하나?

A) 6시까지 보충수업 한 뒤 저녁 먹고 7시부터 10시까지 특강한다. 주로 포항공대 교수나 러시아 교수들을 불러다 강의한다. 특강 안 듣는 학생은 도서관에 의무적으로 있어야 한다. 학생들에겐 모두 개인 지정석이 있다. 1학년은 10시, 2학년 11시반, 3학년 12시 반까지 의무적으로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학원 교육을 받지 않게 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양질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학진학에서 최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렇게 학교는 학교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포스코의 생산력도 높아지고 우리교육 발전에도 기여하고..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델이다.

Q) 다른 일반 학교에서 똑같이 못하는 이유는?

A) 교육은 투자다. 그런데 공립학교나 일반사립학교가 투자는 하지 않고 보조금만 받아가면서 학교를 운영해서는 수요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투자를 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기업밖에는 여유가 없지 않나. 기업도 어차피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하는 입장이고. 그 일환으로 학교 운영하면서 직원 복지차원에서 일정 학생 숫자를 직원 자녀에게 할당해 주고 나머지는 일반 학생들 가운데서 뽑는다면 회사 직원들은 주말부부 신세 면해서 좋고 지역민들은 지역민대로 덩달아 수혜 받아서 좋은 것 아닌가. 일정 숫자를 직원자녀에게 할당해 주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기업이 학교를 세우겠나.

Q) 기업들은 학생선발권을 갖지 못해 학교를 설립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A) 그 것은 오해와 무지의 소치다. 과거에는 학생선발권을 가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선발권을 충분히 가져갈 수 있다. 올해 3월 27일자로 초등교육법시행령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자립형사립고의 경우도 입학선발의 자율권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자율형'사립고는 학생선발 자율권이 없지만 '자립형'사립고는 자율권 있다. 다시 말해 지역교육감과 협의해서 일정 숫자를 직원자녀 가운데 뽑을 수 있게 됐는데 이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Q) 현실적으로 기업이 학교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A) 우선 기업 이윤이 적정수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CEO 의지가 아주 중요하다. 이사회 요구나 노조 바람이 있으면 더욱 좋다. 과거 기업학교를 보면 모두 CEO의 의지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우리도 그렇지만 현대청운고, 상산고, 민사고, 해운대고도 CEO 의지가 절대적이었다.

Q) 공교육을 활성화 하면 되지 않나?

A) 현실적으로 아주 어려운 문제다. 사교육은 교사들이 죽기 살기로 가르치지만 공교육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죽기 살기로 가르쳐도 출세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80명의 교사가 있다면 교장 될 사람은 단 1명밖에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교사들이 진급에도 관심 없고, 열심히 하면 옆에서 견제하지..그렇다고 열심히 안한다고 현행법상 자르지도 못하잖나? 그래서 공교육이 사교육을 능가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둘은 게임이 안 된다.

Q) 사교육의 폐해도 만만치 않지 않나?

A)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박봉에 시달리는데 아이 낳으면 저축도 못하고 망하는 지름길이니 애를 안 낳는 것이다. 초·중학교 때는 월급의 반이 사교육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때는 월급으로 모자란다고 한다. 모두들 그렇게 사는 것을 보니까 아이를 갖지 않는 것 아닌가. 사교육은 그래서 망국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