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삶/청년

안철수 청년들에게 모델이 될 수 있는 길을 내는 사람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6. 18. 10:03

벤처의 신화를 이룬 기업인 안철수가 학창시절에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다고 털어놔 관심을 모았다.

안철수는 17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학창시절에는 60명 중 30등 정도 했다.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고, 운동도 잘 못했다. 그저 좋아한 것이 있다면 바로 독서였다. 병적으로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글자를 읽었고, 페이지 수, 발행된 연도와 날짜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활자 중독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안철수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는데 정작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말로만 시키면 절대 따라 할 수가 없다. 공부하는 모습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의대생이었던 안철수는 전공을 더 잘하기 위해 컴퓨터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며 바이러스가 생긴 원인과 처음 파키스탄에서 바이러스가 만들어진 계기 등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이어 의대 공부를 병행하며 백신을 연구하던 시절과, 군입대 전 날까지 백신을 개발했던 사연 등을 공개해 웃음을 선사했다.

그는 또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진정 도움이 되는지를 반문하며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공부할 때 좋은 성적으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은 학생들이 있었는데 10년 뒤에 보니 감옥에 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며 “백신을 만드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기 일에 대한 사명감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교수는 17일 방송된 '무릎팍도사'에 '직업이 너무 많아 선택을 못하겠어요'란 고민을 들고 출연, 안철수식 모범생 개그와 순수한 말투, 감동적인 인생스토리 고백으로 눈길을 끌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기 자신과의 7년 싸움을 경험한 안 교수는 의사 생활을 그만두고 돈벌이 안되는 백신개발로 전향해 연구에 몰입했던 과거와 현재를 온화한 표정과 함께 털어놨다.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 하루 4~5시간씩 수면을 취했다"는 그는 "군대 갈 당시에도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작업을 하다 V3 최초버전을 만들어냈지만 일에 집중하다보니 아내에게 군대간다는 말도 안하고 나왔더라"고 해 웃음을 선사했다.

'한국의 빌게이츠'라는 별명에 대해 그는 "(제게) 맞는 것 같지 않다"며 "여러가지 이유로 불편한 비유다. (미국과 한국의) 규모 자체가 다르다"고 대답했다.

한편 "비영리 공익법인을 만드는게 꿈이었다"는 안 교수는 "투자를 위해 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찾아왔었다. 일반인에겐 무료로, 관공서 등 기관에겐 유료화해 안철수 연구소가 탄생하게 됐다"고 안철수 연구소가 설립된 계기를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안 교수는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도 귀띔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 아내와 봉사진료를 갔다 우연히 만난 후 서로 도서관 자리를 잡아주고 커피마시던 사이로 지냈다"며 "돈 없는 학생이라 단순히 '같이 살자'라고 프러포즈했다"고 말했다. 또 "아내가 나이 마흔에 의사 생활을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에 들어가 법공부를 하고 있다"며 "때문에 딸도 같이 미국에 나가 아이비리그에서 생화학을 전공 중이다"라고 가족들의 근황을 전했다.

안 교수는 이날 아내와 부부싸움도 존댓말로 하고 심지어 군대 장교(대위)로 있을 때도 사병들에게 존댓말을 썼으며 술, 담배를 못한다는 등 인간적인 순수함이 묻어나는 말투와 고백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송이 끝난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안철수 교수님 존경합니다", "감동했고 배울 점도 많았던 방송", "안철수씨 보석같은 분인 듯", "최고의 게스트였다"는 등 안 교수의 출연에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로 유명한 안철수가 자신의 성공은 시기가 잘 맞은 것이라며 자기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안철수는 17일 오후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나와 이렇게 밝혔다.

그는 '성공의 요인'에 대해 "시기가 맞은 것 같다"며 "막 (컴퓨터)기계어 공부를 끝냈을 때 바이러스를 만났다. 당시 나이가 몇 살 어리거나 더 많았으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는 '본인을 빌 게이츠 같은 행운아라고 생각하냐'는 강호동의 물음에 "그런 셈이다"며 "운이라는 것은 기회가 준비와 만난 것이란 표현이 있다. 어떤 사람이 성공했다는 것은 열심히 했고 운도 좋아 성공한 것이다. 100% 성공을 개인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만의 '성공론'을 밝혔다.

안철수는 "나는 담배도 못 피우고 골프도 못 배웠다"며 "하지만 행복하다. 지금껏 재밌고 잘하는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지금도 의사를 했으면 더 행복했을 것도 같다"며 "더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하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를 그만둔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다채롭게 많은 사람을 만나면 살았으니까 그렇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이날 'CEO 안철수'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는 화를 낸 적은 없다"며 "스스로에게 화나면 가끔 목욕탕에서 소리를 지르고는 한다"고 의외의 말을 했다.

이어 "하지만 참으면서 산적은 없다. 참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 그렇다"며 "돈보다 명예가 좋고 명예보다 마음 편한 게 좋다"고 밝혔다.

안철수는 "효율성이라는 입장에서 보는 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이라며 "의사로서 했던 게 CEO로서는 쓸모가 없고 또 백신 개발자로 했던 것은 경영에는 쓸모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효율적인 면에서 보면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며 "하지만 자기가 정말 맞는 것을 찾는 시간은 중요하다고 본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기회를 주는 것은 가장 큰 선물이고 기회인 것이다"고 조언했다.

올해 나이 48세인 안철수는 그간 의사, 의대교수, 기업가, 학생 그리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벤치마킹하고 싶은 CEO 1위','청소년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기업인' 등 성공한 기업인으로도 손 꼽힌다.

 

 

 

'황금어장'에 출연한 안철수는 비록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한국 기업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안철수는 17일 오후 11시 5분에 방영된 MBC '황금어장'에서 '직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라며 강호동을 찾아왔다.

안철수는 그동안 의사, 의대교수, 기업인, 학생, 교수 등의 직업을 거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유지해왔다.

강호동은 연예인이 아닌 교수였기 때문에 질문 선정과 토크 방식에 대해 다소 고민을 했다. 하지만 강호동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편하게 대답하는 안철수에게 은근 고마움을 느끼며 그와 기업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철수는 백신연구업체인 안철수 연구소의 대표이기도 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그는 많은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당초 의대 출신인 안철수는 심장 계통의 부정맥을 연구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신문에서 봤던 컴퓨터 바이러스가 지금의 이 길을 걷게 만들었다.

안철수는 치료되지 않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후배의 말에 바이러스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그 결과 1988년 V3의 원형인 V1을 개발하게 된다.

안철수는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 하루 4~5시간씩 수면을 취했다"며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작업을 하다 V3 최초버전을 만드는 등 일에 집중하다보니 아내에게 군대간다는 말도 안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나와는 맞지 않다"며 "불편한 비유다. 미국과 한국의 규모자체가 다르다"고 겸손함을 드러냈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사원들에게 스톡옵션이나 주식을 나눠줄 때도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떠나는 현실에 안타깝게 생각한 직원들이 많았다.

안철수의 인생은 핑크빛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것은 병적으로 많이 읽었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한편 안철수는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안철수는 "아내는 서울대 의대 1학년 때 봉사진료를 하러 갔다 처음 만난 후배였다. 도서관 자리를 잡아주는 사이로 시작돼 늘 함께 공부하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모르 사이에 캠퍼스 커플이 됐다. 아내와는 생각도 비슷했고 가치관도 비슷했다"고 덧붙였다.

'아내에게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나'라는 질문에 안철수는 "학생 때 프러포즈를 했다. 그냥 '같이 살자'고 말했다"고 답했다.

안철수는 "아내가 나이 마흔에 의사생활을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러 들어갔다. 딸도 함께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생화학을 전공 중"이라고 가족의 근황을 전했다.

'부부싸움을 하나'라는 질문에는 "가끔 하는데 존댓말로 한다. 사람들에게 반말을 못쓴다. 대위시절 사병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어린 시절 나에게 늘 존댓말을 쓰시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살면서 가장 큰 일탈에 대해서는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 말 어기고 성룡 영화를 보러 간 적 있다. 이것이 내가 한 최고의 일탈이었다"고 밝게 웃었다.

 

 

안철수씨에- 대한 여러 기사를 읽으면서

 

그는 청년들에게 모델이 될 수 있는

 

길을 여는 인생이란 생각을 해 본다.

 

수많은 청년 세대가

 

그와 같이 길을 여는 인생을 살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