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씨 “더이상 ‘비운의 체조선수’가 아니에요”
다국적 여성 4인조 그룹 미소(M.I.S.O) 장애인 <열린세상> 후원회밤 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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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연예스포츠/뉴스캔]
[일간연예스포츠] 아시아프로젝트 4인 여성 그룹 MISO, 장애인<열린세상>후원회밤 행사 초청 받아 ASIA의 심장을 울리고자 결성된 다국적 여성 4인조 그룹 미소(M.I.S.O)가 (사)열린세상국민문화운동본부에서 주최하는 장애인 후원회밤에 초청되어 10월 31일 토요일 오후 7시 용산 소재 국방부 육군회관 무대에 오른다. |
김소영씨 “더이상 ‘비운의 체조선수’가 아니에요”
일간스포츠 기사전송 2007-05-20 17:03
19일 체조국가대표선발전이 열리던 태릉선수촌 체조경기장에 반가운 얼굴이 찾았다. 지난 1986년 아시안게임을 20여일 앞두고 이단평행봉 훈련 중 사고로 팔다리가 마비돼 1급 장애인 선고를 받은 전국가대표 체조선수 김소영씨(38). '비운의 체조선수'라 불리던 김씨는 지난 2월 미국 마스터즈 칼리지를 졸업한 뒤 지난 15일 미국인 친구 제니 시멘스(24)와 귀국했다. 연두색 털실 가디건을 걸치고 붉은색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김씨는 '마스터스 칼리지'라고 적힌 검정색 베낭과 물병을 달려 있는 휠체어에 앉아 시멘스와 함께 후배들을 지켜봤다. 선발전 도중 시멘스에게 장면 장면을 설명했고, 박득표 대한체조협회장 등 체조인들의 격려와 인사를 받으며 밝은 웃음을 보였다. 전날 귀국 인사차 이애리사 태릉선수촌장을 만난 김씨는 체조대표선발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선뜻 발길이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고생의 꿈과 미래가 무참히 부서졌던 장소가 바로 태릉의 체조훈련장이었기 때문. 21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김씨는 "다시 체조훈련장서 대표선발전을 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멘스가 보고싶다고 해서 찾게 됐다"라고 말했다. 모처럼 체조인들과 어울린 김씨는 아직도 자신을 쫓아다니는 '불운의 체조선수' '비운의 체조선수'라는 수식어가 싫다. 김씨는 "이제 나는 괜찮은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자꾸 그런 말을 한다"라며 "이제는 '불운'이나 '비운'이라는 말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체조에 대한 애정도 식지 않았다. 김씨는 미국 유학 중 한국을 찾을 때마다 태릉선수촌을 방문했고, 대한체조협회와 E메일 연락을 주고받으며 한국체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학에서 상담학을 전공한 김씨는 앞으로 국내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을 할 계획이다. 김씨는 "아직 정확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앞으로 전공을 살려 장애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허진우 기자 [zzzmaster@jesnews.co.kr] |
오후여담>김소영
문화일보 기사전송 2007-05-17 14:28
김씨는 아시안게임의 유력한 메달 후보였다. 당시만 해도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는데다 개최국의 체면을 앞세워메달 숫자 높이기가 ‘국책사업’이 되다시피 했다. 그런 면에서아시안게임 개막 20일을 앞두고 훈련중 목을 다쳐 전신마비가된 그에게 국민은 일종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의 불운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했지만 이내 기억 속에서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후 김씨가 장애를 극복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샌타 클라리타 마스터스 칼리지에서 감격의 학사모를 쓰고 14일 귀국했다. 그의 인간 승리야말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그토록 꿈꾸었던 금메달보다 더욱 빛을 발하는 듯싶다. 또한 태극마크를 단 소녀의불운에 대한 국민의 빚을 어느 정도는 덜어주는 것 같아 그의 귀국길이 더욱 반갑기만 하다. 여기에 더해 그와 함께 온 ‘파란 눈의 천사’ 제니 시멘스(24)의 헌신적인 사랑이 한국인에게 진한 감동과 함께 교훈을 주고있다. 그의 성공 뒤에는 3년을 하루같이 그의 손발을 자처한 제니의 희생적 자원봉사가 있었다. 제니는 대소변을 받아주고 몸을씻겨주는 등 늘 그의 곁을 지켰다. 먼저 졸업해 대학원에 갈 수있었지만 그를 위해 졸업을 1년간 늦춰 11일 함께 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부득이 학교를 비울 때는 여동생인 크리스틴(22)이 대신 그 일을 맡았다고 하니 자매의 헌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상담학을 전공한 그는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 남이나 환경을원망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포부를밝혔다. 덧붙여 “체조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이제 ‘비운’ 아닌, ‘행운의 체조선수’로 불러주기를 바랐다. 그의이런 포부가 모두 이루어져 그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이 ‘행운’의 삶을 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호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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