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한국 읽기

한국사람들은 아파트에 미쳤다.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2. 20. 19:06

한국 사회가 응축된 곳 ‘아파트’

출처: 2009년 2월 20일(금) 오후 2:07 [문화일보]


지난해 말 한 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월급만으로 집을 장만하려면 통상 9.4년이 걸린다. 게다가 서울에서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17.8년이 걸린다. 사회초년병이 월급을 20년 가깝게 ‘올인’해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얻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은 2005년 52.7%로 과반을 넘었고, 2007년 현재 서울시민의 55.7%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는 여전히 최고 인기 주거 공간이다. 한마디로 한국사람들은 아파트에 미쳤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인 저자의 단언이다.

한국의 사회과학이 전체나 구조이론에 대한 관심이 너무 센 나머지 스토리와 디테일이 취약하다는, 그래서 재미가 없다는 저자는 몇년 전 ‘아파트’에 꽂혀, 2∼3년간 아파트를 연구했다. 한국사회의 독특한 아파트, 아파트 문화야말로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내시경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파트를 통한 한국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조망,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한국 사람은 왜 아파트에 미쳤는가? 한국아파트의 역사를 훑고, 아파트에 대한 인문·사회적 탐색을 해나가는 저자의 답은 명료하다. 한국사회에서 적어도 번듯한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어야 멸시를 받지 않는 데다, 재테크 수단으로도 아파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집단적 열망과 개인적 욕망의 대상이자, 중산층 이상이라는 자격증이 된 것이다.

이같은 논점의 축을 유지하면서 저자는 서양의 아파트가 어떻게 한국의 전통 가옥과 결합해 한국식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주고, 아파트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분석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말 이후 한국 여성의 자궁경부암이 급감한 것은 아파트 거주 확산에 따른 샤워의 일상화 덕분이고,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아파트의 확산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한국사회의 아파트가 곧 각종 도시 문제의 온상이 된다거나,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는 바뀔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파트 전성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인의 일상과 깊숙이 결합돼 하나의 한국적 사회·문화 현상이 된 아파트이기에 주택 과소비라는 비판 속에서 적어도 전국민의 60% 이상이 40평대(약 132㎡)에 살게 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급속한 아파트의 고가화로 인해 아파트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아파트는 우리 사회에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를 쉽게 파급시키는 온상이 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저자는 사회로 막 진출한 젊은층을 위해 최소한의 주거복지는 미룰 수 없는 문제라며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안정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현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