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삶/묵상
[스크랩] 성령의 훈련 : 해방으로 통하는 문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1. 16. 16:52
훈련은 보통 일상 생활 중에 실천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훈련이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변화는 사람이 살아가며 ㅁ는 일상의 관계에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훈련의 기본은 기쁨입니다. 훈련의 목적은 이기심과 불안의 숨막히는 사슬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 첫째는 철학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뿌리인 물질주의가 어찌나 깊이 배어 있는지, 내가 물리적 세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하고 심히 의심하게 됩니다. 가령, 묵상은 비록 그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참다운 영적 세계와의 접촉이라 보지 않고 심리적 조작이라 봅니다.
두번째 어려운 점은 실천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금식, 묵상, 에배, 성찬식 등등의 훈련을 하라고 명하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하라고 일러준 곳은 거의 없습니다. 심령 훈련은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솟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마음의 태도가 기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죄는 우리 삶의 내부 구조의 일부입니다. 의지력으로는 뿌리 깊은 죄의 습관을 결코 처리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의지의 힘으로 한동안 그럴듯한 겉모양을 내보일 수 있으나 언젠가는 "무익한 말"이 미끄러저 나와서 진정한 마음의 상태를 폭로해 버리는 순간이 오고 맙니다.
영의 훈련이 문을 엽니다. 속에서 필요한 변화는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내면의 일인데, 내면에서 일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받아들이는 수단으로서 영적 삶의 훈련을 주셨습니다. 훈련들은 우리를 땅 속에 심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영적인 훈련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무엇인가 일어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입니다. 영적 삶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축복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죽음의 길 : 훈련을 율볍으로 변질시키는 것
성령 훈련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요함을 우리의 삶으로 가져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혼을 죽이는 율법이라는 또 하나의 장치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성령의 훈련을 행할 때에 그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같은 겉모습의 의로 변질되기가 쉽습니다. 교만이 들어서는 이유는 우리가 의인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불안이 들어서는 이유는 남들을 지배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 그리고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 때문입니다.
훈련이 저주 아닌 축복이 되도록 영의 길을 걸으려면 남을 지배하려는 끈질긴 욕구의 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내면의 변화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남들을 간섭하려는 조바심을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성령 훈련이라는 내면 세계로 들어갈 때에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것을 율법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따릅니다. 하늘 나라의 권고에 기꺼이 귀 기울이기만 하면 필요한 지시를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