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북한 한민족
빛으로 소금으로―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 여성] 초기 기독교를 이끈 사람들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9. 1. 14. 14:52
빛으로 소금으로―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 여성] 초기 기독교를 이끈 사람들
[2009.01.13 17:50] | ||
![]() 박에스더 여의사 1호로 진료 헌신 여메례 가난 구호 ‘보호여회’ 발족 초기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일등 공신은 여성이었다. 남존여비 사상과 신분 제도에 매여있던 남성들은 술·담배를 금지하고 남녀가 한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백정 등 신분이 낮은 남성들이나 교회를 찾았고 교회당을 채운 이들은 억압받던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다운 신앙의 꽃을 피웠고 그 믿음은 한국 기독교의 단단한 뿌리가 됐다. 이들이 독립 운동은 물론 의료, 교육 등 한국 사회 각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 널리 알려진 김활란 여사나 상록수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한 농촌계몽운동가 최덕신, 애국운동에 앞장섰던 여장부 김성무 등 쟁쟁한 이들 외에도 신앙의 힘으로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이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에스더다. 한국인 최초의 여성 의사이자, 한국인 최초 여성 미국 유학생인 그의 원래 이름은 김점동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밥 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아버지가 먹고 살기 위해 감리회 초대 선교사인 아펜젤러의 잡무를 봐주던 것을 계기로 하나님을 만난다. 12세 때 회심을 체험하고 세례를 받은 그는 '김에스더'란 이름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뛰어난 영어 실력 덕분에 여성 선교사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 보구여관에서 선교사 셔우드를 도와 일하며 의료인의 꿈을 키운다. 그는 1893년 셔우드의 남편 홀의 조수로 있던 박유산과 결혼하고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따라 박에스더로 이름을 바꿨다. 우여곡절 끝에 1895년 미국으로 떠나 이듬해 존스홉킨스 의대 전신인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 4년 만에 의학박사 학위를 딴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보구여관에서 처음으로 한국 여성 의사가 여성 환자를 진료하는 시대를 열었다. 10년간 불꽃 같은 헌신의 삶을 펼치다 34세 때 결핵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진명여학교 설립에 앞장서고 1906년 학감으로 취임했던 여메례. 그는 가난한 여성을 여성이 보호하고 돕겠다며 '보호여회'를 만들었고 초대 회장으로 활발한 구호활동을 펼쳤다. 진명여학교가 한일병합 이후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면서 쫓겨난 그는 성결교의 청주교회, 조치원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다 갑작스레 쓰러져 숨졌다. 어렸을 적 외국인 선교사의 양녀로 들어가 두 차례 결혼해 두 번 다 남편과 사별한 그는 불우한 삶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다. 이러한 초기 기독교 여성들의 삶을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이란 책으로 엮은 감신대 이덕주 교수는 "1900년대 개종한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해방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 공동체, 민족사회, 자유해방운동까지 전개시키는 힘이 됐다"고 분석했다. 김나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