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한국 읽기

내 삶의 멘토] 일가사상연구소 림영철 소장의 故 김용기 장로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1. 5. 16:20

내 삶의 멘토] 일가사상연구소 림영철 소장의 故 김용기 장로

[2008.11.04 22:34]      


"정신개척! 이겨야 산다!"

이 구호는 가나안농군학교에 입교하면 새벽운동 때 뛰면서 외치는 말이다.

1965년 어느 날 사법시험 2차 시험을 마친 나는 친구의 권고로 이 학교에 찾아가 교육을 받았다. 처음에는 시험에 지친 몸을 달랠 겸 쉬려고 찾아갔는데 가 보니 고된 연수였다. 하루 종일 뛰고 일하고 마루에 앉아 강의를 받는 등 단 10분도 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일가 김용기 교장의 감동적인 강의와 대화가 지루한 시간을 다 잡아 먹었고, 우리 수강생 56명은 눈물과 감사와 환희로 가득한 모습으로 모두 변화되었다.

내 삶의 결정적인 멘토는 세 분이다. 한 분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 담임이셨던 정진형 선생님이시다. 그분은 어느 날 나를 불러 "너는 장래 선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진로를 정해 주셨다. 그런데 그 말씀은 대 격랑의 6·25를 거치면서 잊었고, 가까운 서산농림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의 멘토는 학대받는 농민들로 변했다. 특별히 관권에 의하여 억울하게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민들이 나를 부르는 듯하여 나는 법과대학에 진학하였고 장차 변호사가 되어 그들을 돕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그 뜻은 세 번째 멘토에 의하여 바뀌고 말았다. 가나안 교육 중 일가 선생이 나를 불러 "농민을 돕는 방법은 변호사가 되는 길도 있지만 그들의 정신과 삶과 기술을 교육하는 길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며 함께 일하자고 권하셨다.

나는 그때 그분의 권고를 뿌리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힘을 느꼈다. 사실 그동안 변호사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의 꿈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나를 인도하신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선생이 돼라'는 선생님의 권고와 고등학교 때 결심한 '농민을 돕는 삶' 등 이 두 가지가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오로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한 가족이 되어 일하자는 일가 장로님의 뜻을 좇아 그의 큰딸과 결혼하게 되었으나 혹독하리만큼 어려운 자기절제와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모범적인 가나안의 삶은 나와 같이 훈련되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농군학교의 교육은 매일 새벽 4시 반에 기상해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가게 되는데, 가끔은 다음 교육 때까지 며칠 쉴 때가 있었다. 결혼 초인 우리 부부에게는 이 기간이야말로 황금기였고 부족한 잠을 보충할 절호의 기회였다. 늦잠을 푹 잘 계획을 하고 여유 있게 누웠다. 그런데 웬 일인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으니 가족들이 새벽에 일어나 전과 같이 운동을 하며 구호를 외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구호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듣기에 감정이 들어 있었다. 이상하여 나가 봤더니 온 식구가 농장을 돌며 구보하고 있었다. 내가 나갔더니 반가워하시며 같이 뛰자는 것이다. 한 처남이 말하기를 "자네 때문에 우리가 몇 바퀴를 더 돌았는지 알아? 눈치가 있어야지…."

김용기 장로님의 지도방법이다. 말로 하지 않고 솔선수범함으로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가족뿐 아니라 연수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보여주는 교육방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어려움을 당한다. 그것들을 해결하려면 지혜와 경륜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다가도 낙심하여 다른 길을 갈 경우도 있다. 일가 장로님은 그때마다 나를 이끌어 주신 나침반이 되어주셨다. 아직도 나에게는 그분이 주신 많은 교훈들이 살아 움직인다.

그분은 언제나 적은 자, 소외된 자, 특별히 농민을 걱정하시며 사셨다. 경제적 여유가 있건 없건 언제나 근검절약하셨으며, 황무지를 개척한 것처럼 사회를 개혁하려고 하셨다.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셨고 우리 사회를 협동공동체로 변화 발전시켜 이상촌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또 실행에 옮기려고 하셨다.

그분은 내 삶에서 영원히 멘토로 살아계실 것이다.

누구인가

△림영철=1936년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및 서울대 대학원 졸업, 한양대 교육철학 박사. 가나안농군학교 교장 및 농민교육협의회 회장 역임. 현 평택대학교 명예교수. 일가사상연구소 소장.

△김용기=1909년 경기도 양주 출생. 양주 광동학교 졸업. 1940년 양주에 이상촌, 1962년 경기도 광주에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 재단법인 '가나안 복민회' 이사장 역임. 막사이사이상 새마을훈장 협동장, 인촌문화상 수상. 1988년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