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삶/에느욥시잠전아

즐거움이 어디 있습니까? 전도서 2:1-11, 갈보리교회 박조준목사님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0. 30. 11:58

제목  즐거움이 어디 있습니까?
 주제어키워드  즐거움이 어디 있습니까?
 자료출처  갈보리교회 박조준 목사  성경본문  전도서2:1∼11
 조회수    추천수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신 전도서의 말씀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쓴 글입니다. 솔로몬이 쓴 이
전도서는 관념적으로 얻은 지식이 아니라 그의 실제 생활 체험을 통해서 배우고 느낀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퍽 실감있게 들리는 말씀입니다.

전도서 1장에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씀으로 시작
합니다. 그래서 그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과 원로 정객들과의 교제, 재사나 용사,
가인과의 궁중 교제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어 보려고 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솔로
몬이 그와 같은 일을 통해서 잠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참
된 즐거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체험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시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참된 즐거움이 어떤 것인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해
서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
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적으로 말해도 차원 높은 고귀한 지적인 즐거움에서부터 아주 차원이 낮은 감각적
즐거움으로 그 단계를 크게 낮춰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정신적인 차원에서 육신적인 차원으로 떨
어져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의 추구로 치달려 보았습니다. 그래서 흔히 세상에서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가장 즐겁다고 하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 했습니다.

"지혜가 많으면 근심도 많으며 진지한 사람들은 우울한 것을 발견하고 나는 내 심중에 말하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겠다. 나는 그것이 네게 만족을 줄는지, 주지 못할는지 시험
해 보겠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낙을 누리리라. 조금도 꺼리지 말고 마음껏 즐겨
보라. 염려와 걱정은 다 던져 버리고 스트레스 쌓인 것을 다 풀어 버리고 즐거움을 누려 보라"고
말했습니다.

흔히 인간을 'Animal rationale', 이성을 가진 동물 또는 'Animal risible' 웃을 줄 아는 동물이라
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영혼에게 "편안하게 먹고 마시라"고 말하거나 "네 마음껏 즐기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어리석은 부자가 바로 그랬습니다. 농터의 농사가 잘 되어 풍년 들어 수확이
많아졌습니다. 전에 있던 창고 가지고는 도저히 곡식을 다 쌓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 나라의 형편과 비슷해진 것 같습니다. 곡식이 많으니까 쌀로 탁주도 만들고 쌀을 소비
하는 방법을 개발시키겠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 잘하는 일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부자는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고를 더 짓고 그 많은 곡식을 쌓아
두자 그리고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내 영혼아, 네가 여러 해 먹을 양식을 비축해 놓았으니 너는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라" 했습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재물이 많아지면 "내가 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어떻게 좀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게 됩니다. 사실 "내가 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사회를 위해 봉사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이 보는데서 좋은 일을 좀 하
기도 하지만 대개 정치적인 압력 때문이 아니면 세상에 자기 이름 남기려 해서입니다. 모두가 자
기 본위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의 즐거움의
극치는 육신적인 환락입니다. 이것밖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심령에 즐거
움을 줍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육신적인 환락이란 우리가 육신적으로 당하는 고통을 잊기 위해
서 사용하는 진통제와 같습니다. 진통제는 육신적인 고통을 잠시 잊어버리게 해 주기는 해도 고
통을 치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우리는 심령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을 위하여 수고하며 돈을 씁니다. 오늘 주신 말씀 2절에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사실 육신의 향락에 빠져 방종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제 정신이 아닙니다. 미친 것입
니다. 환락에 빠진 사람들은 인간의 진지성을 망각하고 사람이 사는 것을 놀음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환락에 빠진 사람치고 육신 생활이나 정신 생활에 건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
습니다.

3절을 보세요. "내 마음에 내가 궁구하기를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또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
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했습니다.
지혜와 지식으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솔로몬은 자기의 취향을 즐겁게 해주리라고 생각되는 것
으로 시험의 대상을 삼고자 했습니다.

"나는 마음으로 궁리하여 자신을 술에 맡기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진수성찬과 좋은 술에 자신을
내맡겼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술이 자기를 잡아 다니도록 내맡겼습니다. 술 마시는 일이 처
음엔 교제상 억지로 권해 못 이겨서 분위기 문제로 마시게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몸을
억지로 술에 그리고 술과 함께 끌어당깁니다. 솔로몬의 표현은 보통 술을 마셔 보지 않는 사람은
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제가 어느 기회에 술을 잘 하는 사람한테서 이런 말을 들으면서 성경 말씀이 너무 실감나는 표
현인 것을 알았습니다. 독한 술은 도수가 높기 때문에 너무 뜨거워 그냥 마실 수가 없어서 술잔
속에 얼음을 넣어 마시면 찬 맛에 처음 몇 잔을 마신다고 합니다.(이 말씀 드리는 동안 술 좋아
하시는 분 입맛 다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참 있으면 취하게 되고 취하게 되면 찬 것,
더운 것 분간할 수 없게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독한 술도 얼음없이 곧바로 쭉쭉 쉬지도
않고, 숨도 안 쉬고 들이마신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입이 마비가 되니까 속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되는지 상관하지 않고 그저 퍼 마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니 속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간장이 감당을 하겠습니까? 요사이 간암 환자의
70% 이상이 과음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뿐입니까? 흔히 요리집에서 술을 마실
때는 여자를 하나씩 끼고 앉아 마시는데 어떤 때는 술잔이 돌아가는데 받기 힘들어서 넘기는 사
람은 그 벌로 옷을 한 가지씩 벗기 내기를 한대요. 그래서 한 두 가지 벗으면 옆에 있던 사람은
그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못하는 척하면서 잔을 넘기고 자기도 벗고 그러면서 한참 동안 진행
하다가 보면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그때는 에덴 동산에서 범죄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처럼 된다
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술이라는 게 이런 것입니다. 취하는 게 아니라 미치는 거예요.

솔로몬이 이처럼 술에 만취해 보는 생활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 중심에 참된 즐거
움을 주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술이란 조롱꾼입니다. 술은 사기꾼입니다. 조금만 더 하고는 그만둬야지. 한잔만 한잔만 하면서
결국은 술에 빠지고 맙니다. 술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달은 솔로몬은 사치스러
운 향락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솔로몬의 수입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서 그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오면
서 가지고 온 선물 보화만 해도 어마 어마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수입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했
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절 이하를 보세요.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
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
다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 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았다."고 했
습니다.
돈이 돈을 벌어 솔로몬은 점점 부자가 되었고 세상 것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
나 사업 그것이 그에게 참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8절 하반절부터 보면 "노래
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3절에 보
면 "솔로몬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고백한 대로 "내가 얼
마나 창성했든지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났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그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땅 위에 무수한 즐거움 가운데서도 최상의 즐거움을 다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이든지 그의 눈이 보고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했으며, 그의 마음에 생각이 나서 원하는 것
은 막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수고로 말미암은 분복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 향락에 빠져 사는 사람의 인생 철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식이나 권세나 재간이
나 사업이나 돈이나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줄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서는 아까운 것이 없이 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위해서 쓰자고 하면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의 십분지 일 아니 백분지 일도 쓰기 힘들어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인간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원하는 대
로 다 하고 나면 거기에 즐거움이 있습니까? 한판에 수천만 원씩 내놓고 하는 도박에 짜릿한 맛
을 맛보는 분이시여, 거기 정말 즐거움이 있습니까?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
기 위해 마약에 끌려가는 분이시여, 거기에 정말 즐거움이 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1절을 보세요.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지식과 지혜,
세상의 권력과 명성, 육신적인 향락을 누릴 수 있는 대로 다해 보았으나 그 결론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손에 안 잡히는 우리 속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사
람, 심령이 있습니다. 이 심령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비
록 이 육신이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는 영원한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람은 70년, 80년 살다가 가는 것뿐이지만 그 심령 속에는 영원히 살리라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
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우리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는 다른 데서 안식을 얻
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를 가져 참 생명을 얻기까지는 참 즐거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
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을 구원하고 그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인간의 지은 죄를 용서하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이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왜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합
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와서 다른 일은 다 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 영원한 생명을
찾지 못하면 이 사람은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더러 허무한 데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참 즐거움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있습니다. 참 즐거움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
로 잠시 동안은 즐거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환각제와 같아서 약기운이 있는
동안은 마비가 되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것 같지만 그 후에는 더욱 심각한 고통 속에 빠지고 마
는 것입니다.
성경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힘이 되는 즐거움은 하나
님께 있습니다.

예배 시작 때 읽은 성시 100편을 보세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기쁨으로 부를지어다.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기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03편에 보면 우리의 지은 죄를
용서받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
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한 그대로 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23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했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로 나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여기 하나님과 평생을 동행한 에녹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 품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도 요한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서 말
씀 듣는 마리아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
원한 소망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뜻깊은 크리스마스 계절에 우리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임하시는
즐거움을 다 소유하실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