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삶/기도

[스크랩] 시리즈 4, 비우는 기도, 헌신기도

이상과 현실 그리고 코람데오 2008. 10. 11. 20:48
11. 비우는 기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지기 위해 먼저 자신의 영혼과 마음에 있는 것들을 깨끗이 비워야 합니다. 그러나 동양 종교에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비움의 행위와는 그 목표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완전에 이르는 길은, 인간 영혼에서 온갖 잡념, 애착, 애정, 열정, 생각, 감정을 비워 열반-완전한 공(空)과 우주와의 합일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상태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주는 빈 공간이 아닙니다. 두 개의 라이벌(그러나 대등할 수 없는) 나라가 우주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둘 중 우세한 하나님 나라는 인간 영혼의 빈 상태를 악용하지 않으며, 그 왕이나 왕의 뜻을 인간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세의 어둠의 나라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무엇이든지 닿는 것마다 이용하고 악용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그곳의 군주는 영원히 분을 품은 어두운 반항자이며 만족한 줄 모르는 굶주린 암세포와 같습니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파고들어가 인간을 어떻게든 미혹합니다. 한때 하나님의 화려한 천사장이었다가 적장이 된 그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비워진 인간 영혼은 바알세붑의 노천시장에 걸려있는 신선한 고깃덩이 같아서 지옥의 온갖 파리들이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영혼의 비워진 공간을 채울 가치가 있는 단 하나뿐인 진리와 구세주를 소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 대한 기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구원만 받았으면 토요일은 마귀처럼 살고 주일은 성도처럼 기도하고 찬송하다가 월요일에 천국 가는 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입술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비움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매일 매순간 진정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들의 꾸준한 주제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비움과 채움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비움의 진정한 중요성은 하나님의 채우심에 있습니다. 그냥 비우는 것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에 대한 새로운 계시로 우리를 채우려 하십니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우리가 그분의 자리를 드려야 합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 오시기 전에 이미 죽은 ‘옛사람’의 바람직하지 못한 내용물과 재산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우는 기도의 중심은 바울과 같이 완전한 회개와 철저한 영적 중생(거듭남)의 순간에 시작되고 완성되어 집니다.


12. 헌신기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참된 헌신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만이 우주의 유일하신 불변의 능력이 되십니다. 끊임없이 진리의 생명이 시들어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불변의 약속을 지키시려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속에서 계속 역사하셔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경솔히 헌신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매우 진지하게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나 집회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신이 한 약속을 잊을지라도 그분은 우리의 사소한 말까지 다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저자의 부친이 어떤 집회에서 목격하신 아주 유별난 대화기도 한편이 있습니다. 열의에 찬 청년이 제단에서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를 채워주소서!” 그때 한 할머니가 청년 옆에서 똑같이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안됩니다. 주님, 저 사람은 줄줄 샙니다.” 알고 보니 그 청년은 뜨거운 부흥회나 기도회 중에 열심히 간구하며 헌신했다가 다음 월요일이면 모두 까맣게 잊는 버릇으로 유명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헌신을 미끼로 하나님을 유도하거나 설득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이 갈급함에 의해 헌신의 요소를 더할 수 있도록 그 시간 그 장소에 한나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한나가 사무엘을 낳기 전에 먼저 기도와 헌신으로 가득 채운 뒤 하나님의 선지자를 낳기 원하셨습니다.

마일스 커버데일도 심한 박해 속에서 강력한 헌신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거스틴 수사였던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핵심 지도자들의 저작을 일반 대중에게 보급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성경과 유럽 개혁가들의 많은 저작을 당시의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물론 그는 박해 받는다는 것, 투옥이나 신체적 위험의 끝없는 위협과 협박 속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심한 박해와 신체적 위험과 죽음의 끝없는 위협 속에서도 커버데일은 헌신의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헌신은 하나님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기초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헌신으로부터 시작되어 에덴동산을 아담에게 맡기신 위대한 헌신으로까지 확장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헌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죄인이 되셔서 아버지 손에 자기 목숨을 부탁하신 갈보리 십자가의 헌신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은 부활의 소망이 없는 자들과는 달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야 합니다. 그분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상처의 사건, 질병과 상실의 고통을 초월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를 믿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분이 우리를 암에서 고치시거나 치매에서 건지시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헌신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출처 : 청년아 부흥을 꿈꾸라
글쓴이 : 이상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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